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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웹브라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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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Mosaic)
모자이크(Mosaic)
마크 앤드리슨(March Andereessen)

모자이크(Mosaic)는 1993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NCSA 연구소의 대학생이었던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과 에릭 비나(Eric Bina)가 공동 개발한 웹브라우저이다.

팀 버너스-리가 만든 기존의 월드와이드웹(WorldWideWeb) 브라우저가 텍스트 위주였던 것과 달리, 모자이크는 이미지를 표시할 수 있는 그래픽 웹 브라우저였다. 출시 후 폭발적 반응을 얻었으나, 개발 책임자였던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이 동료들을 데리고 1994년 넷스케이프(Netscape) 회사를 설립하고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 웹 브라우저를 개발함에 따라 사실상 개발이 중단되었다. 1994년 모자이크(Mosaic)는 스파이글래스(Spyglass) 회사에 인수되었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스파이글래스(Spyglass) 회사에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기존 모자이크 웹 브라우저의 소스 코드를 활용하여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 웹 브라우저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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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편집]

모자이크는 1993년 출시된 웹브라우저이다.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의 주도로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NCSA(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가 개발한 최초의 웹브라우저로, 텍스트만으로 전송되는 인터넷상의 정보를 의 형태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이퍼텍스트 구조이고, 마우스를 사용하여 인터넷 사이트에 직접 접속할 수 있으며 텍스트 정보와 그래픽 정보도 볼 수 있다. 매킨토시(McIntosh), 윈도우(Windows), 유닉스(Unix) 등에서 사용자에게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1]

모자이크의 등장으로 배너광고와 쇼핑사이트가 생겨나는 등 인터넷의 이용이 군사적, 학술적 목적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바뀌게 된다. 1993년 초에는 겨우 130대의 사이트만 있을 뿐이었으나, 모자이크가 소개된 지 반년도 채 못되어 상황은 크게 바뀌어 당시에만 약 10,000대 이상의 서버가 생겼다고 한다. 모자이크 개발에 참여했던 NCSA의 마크 앤드리슨는 졸업후인 1994년 넷스케이프(Netscape)를 창업하고 모자이크를 기반으로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1.2(Netscape Navigator 1.2)를 발표하여 전세계를 인터넷 열풍에 휩싸이게 했다. 모자이크가 개발됨으로써 인터넷 이용자와 콘텐츠 사이트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나, 현재는 넷스케이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2]

역사[편집]

NCSA 모자이크는 NCSA의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과 에릭 비나(Eric Bina)가 본래 유닉스의 X 윈도 시스템을 위해 설계 및 개발했다. 모자이크의 개발은 1992년 12월 시작됐다. 1.0 버전이 1993년 4월 22일 출시되고, 이후 1993년 여름 동안 두 개의 보완 버전이 나왔다. 1993년 12월에는 2.0 버전 출시와 함께 애플 매킨토시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용 1.0 버전이 출시되었다. 에이콘 아르키메데스용 포팅을 1994년 5월에 추진하기도 했다. 모자이크는 인터넷이 교육 기관이나 대규모 산업 연구소 밖으로 급속도로 팽창하던 때, 제한된 정보 서비스(당시는 대개 FTP, 유즈넷, 고퍼 정도)만이 존재하던 인터넷 환경에 매끄러운 멀티미디어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최초의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1990년대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NCSA 모자이크는 상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서는 관대한 라이선스를 채택했다. 모든 버전에서 비상업적 목적의 사용은 일정한 제한을 제외하고는 자유로웠다. 게다가 유닉스 X 윈도 시스템 버전의 소스 코드는 공개 배포되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모자이크가 주요 브라우저로서 군림하던 시기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로서 출시된 적은 없으며, 구입하지 않은 경우에는 언제나 사용에 제약이 있었다. 그 뒤에 모자이크 개발팀의 지휘자였던 마크 앤드리슨은 실리콘 그래픽스(SGI)의 창립자들 가운데 한 명인 짐 클락과 함께 NCSA를 떠나 일리노이 대학교의 전 학생과 교원을 데리고 나중에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출시하는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스 코퍼레이션이 될 모자이크 커뮤니케이션즈 코퍼레이션을 창립했다.

스파이글래스에서 자신들의 독자 웹 브라우저의 출시를 위해 기술과 상표를 라이선스했지만, NCSA 모자이크의 소스 코드는 사용하지는 않았다.[3] 스파이글래스 모자이크는 이후에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라이선스되어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모자이크의 인기는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의 출시 이후 시들해가다가 1998년에는 사용자가 거의 사라졌다.[4]

주요 인물[편집]

마크 앤드리슨[편집]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은 1971년 7월, 미국 아이오와주 시더폴스에서 태어났으며, 1993년 12월까지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캠퍼스에서 컴퓨터과학 학사 과정을 이수한다. 그는 재학 중 IBM에서 잠깐 인턴 생활을 하고, 이와 함께 NCSA(국립 슈퍼컴퓨팅 연구소)에서도 일하게 된다. 이 기간에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가 공개한 월드 와이드 웹(WWW) 관련 기술을 접한다. 1992년 12월, 그와 그의 동료 에릭 비나(Eric Bina)는 NCSA에서 근무하는 동안 팀 버너스 리가 공개한 기술을 바탕으로 웹브라우저 개발 계획을 세운다. 그들의 목표는 사용자 친화적이면서 다양한 기종의 시스템에서 구동할 수 있는 통합 그래픽 기반의 브라우저를 만드는 것이다. 바로 모자이크의 탄생이다.

모자이크 1.0 버전은 1993년 4월 22일 처음 등장한다. 원래는 유닉스 계열 운영체제에서 작동하는 브라우저로 개발됐지만, 같은 해 12월에는 애플 매킨토시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용 버전도 등장한다. 당시 모자이크는 오늘날의 웹 브라우저처럼 멀티미디어 GUI를 지원했기 때문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모자이크가 오늘날 인터넷 환경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실제로 1990년대 일어난 인터넷 붐을 이끄는 주역이었다. 월드 와이드 웹이 새로운 정보 공유 방식을 제안했다면, 모자이크는 웹에 있는 정보를 사람들이 더 쉽고 간편하게 검색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비상업적인 목적에서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으며, 유닉스 버전은 소스 코드까지 공개 및 배포해 많은 사람이 웹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모자이크의 인기를 시들하게 만든 사람은 마크 앤드리슨이다. 50%를 넘나들던 모자이크의 점유율은 그가 새로운 웹 브라우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내놓으면서 사용자가 줄었고, 1998년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

마크 앤드리슨은 졸업과 함께 NCSA를 떠난다. 이 때 그와 함께 한 사람은 짐 클락(Jim Clark)이다. 짐 클락은 모자이크 브라우저가 상업적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마크 앤드리슨에게 인터넷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탄생한 회사가 '모자이크 커뮤니케이션즈 코포레이션'이다. 하지만 회사는 곧 이름을 바꾼다. '모자이크'라는 명칭은 이미 NCSA 시절에 사용했기 때문에, 이전 관계자들이 새로운 회사에서 사용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겼던 모양이다. 1994년 10월, 베타버전인 모자이크 '넷스케이프 0.9가' 탄생했지만, 곧 이름을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로 바꾸고, 회사 이름 역시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 코포레이션'으로 바꿨다.

물론 넷스케이프는 모자이크의 소스 코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처음에는 넷스케이프라는 이름 대신 '모자이크 킬러'라는 뜻의 '모질라'를 코드명으로 사용했다. 이때부터 사용하던 마스코트는 '고질라'를 형상화한 거대한 도마뱀이다. 경쟁사들을 때려 부수겠다는 의미다. 넷스케이프는 말 그대로 승승장구했다. 인터넷 붐이 일어난 시기에 웹 표준으로 쓰일 정도였으며, 윈도우, 맥OS, 유닉스 등 다양한 운영체제를 지원해 웹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1995년 8월, 넷스케이프는 성공적인 기업공개(IPO)를 마치고 상장한다. 상장 첫날 주당 주가는 75달러에 이를 정도였으며, 넷스케이프의 시장 가치는 29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넷스케이프의 성공을 보고, 그 뒤를 좇기 시작한 기업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다. 물론 넷스케이프와의 초기 싸움에서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들이 내놓은 첫 번째 웹 브라우저 '인터넷 익스플로러 1.0'의 성과는 말 그대로 형편없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도 나름의 전략이 있었다. 자사의 운영체제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본 탑재하는 것이었다. 윈도 운영체제와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함께하기 시작한 것은 윈도95 플러스팩부터였다. 1997년 추락하기 시작한 넷스케이프의 점유율은 윈도98과 IE4가 등장하면서 빠르게 줄어들었고, 1999년 등장한 IE5.0은 처음으로 넷스케이프의 점유율을 넘어서기도 했다. 한편, 브라우저 전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마크 앤드리슨은 1999년, 넷스케이프를 42억 달러에 AOL(아메리칸 온라인)에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넷스케이프를 떠난 마크 앤드리슨은 벤 호로위츠(Ben Horowitz), 팀 하워즈 등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라우드클라우드(LoudCloud)'를 설립한 것이다. 이 회사는 SaaS(Software as a Service)나 IaaS(Infrastructure as a Service) 등 기업용 소프트웨어나 기반 시설을 클라우드 형태로 제공했다. 한 매체는 이 회사에 관해 클라우드 컴퓨팅과 SaaS를 제공하는 최초의 기업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붐이 시들해지면서 회사도 어려움에 직면한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2년 회사 이름을 옵스웨어(Opsware)로 변경, 데이터센터 자동관리 솔루션 같은 IT 솔루션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이들에 주목한 기업은 휴렛팩커드(HP)다. 마크 앤드리슨이 옵스웨어를 HP에 매각한 가격은 16억 달러다. 망해가는 회사를 4년 만에 회생시키고, 대기업에 팔아치운 셈이다. 그의 경영 능력과 시장을 보는 안목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HP는 2007년 옵스웨어를 인수하자마자, 자동화 관리 솔루션 시장에서 경쟁자인 IBM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서게 된다. 당시 HP 관계자는 "HP는 옵스웨어 인수를 통해 데스크톱,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등 모든 IT 기반 시설 관리 자동화를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옵스웨어를 정리한 이후, 그는 벤처 캐피탈 안드레센 호로비츠(Andreessen Horowitz)를 설립한다. 이들에게 투자를 받아 성공한 벤처 기업은 페이스북(Facebook), 포스퀘어(Foursquare), 깃허브(GitHub), 핀터레스트(Pinterest), 트위터(Twitter)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마크 앤드리슨을 자신의 멘토로 삼기도 했다. 이런 성공 사례만 보더라도 그가 벤처 기업을 보는 안목이 정확했다고 볼 수 있다. 마크 앤드리슨은 개발자의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지난 2008년 페이스북 이사직을 맡았고, 새로운 벤처 기업에 관한 투자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여전히 실리콘 밸리 벤처 투자자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고 있다.[5]

의미[편집]

1993년에 나온 모자이크는 그저 새로운 버전의 웹브라우저가 아니었다. 그전까지는 텔넷(네트워크 프로토콜), FTP, 이메일 등의 인터넷 서비스를 해당 프로그램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동작 원리와 실제 사용되는 프로토콜도 달랐는데, 이런 것들을 한 공간인 웹브라우저 안에서 가능케 했다는 것은 정보통신 생태계에서는 혁명으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모자이크를 전세계 최초의 웹브라우저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최초는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최초는 본격적으로 월드와이드웹 세상의 포문을 열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고 그런 측면에서는 분명히 최초다. 무엇보다 모자이크부터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그래픽 데이터(이미지, 영상)를 표시할 수 있었다.[6]

마우스만으로 인터넷을 브라우징할 수 있는 클릭앤포인트(Click and Point) 방식을 처음으로 구현한 모자이크는 인터넷이 진정한 정보의 바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성공하였다. 이들의 성취를 보고 NCSA 에서는 몇 명의 인원을 더 보강해서 윈도와 매킨토시를 지원하는 모자이크도 같은 해 11월 발표하게 되는데, 이 브라우저는 2달 동안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운로드 받아 이용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웹의 세상을 열었다.

모자이크는 당시 일반인들이 보유한 PC 주요 운영체제인 윈도우, 매킨토시, 유닉스를 모두 지원한 최초의 오픈소스 브라우저였으며, 이를 통해 일반인들도 웹의 세상에 뛰어들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7] 모자이크를 탄생시킨 NCSA는 초기에는 인터넷을 통해 웹과 같은 기술보다는 운영체제에 상관없이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는 동기화된 협업 기술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이런 목적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NCSA 콜라주(collage)였는데,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유닉스의 X 윈도우, 매킨토시, 윈도우를 모두 지원할 수 있어야 해서 여기에 대비하던 것이 아르바이트 학생과 한 명의 프로그래머가 일으킨 예상 밖의 혁신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게 만들었다.

모자이크는 인터넷이 대학이나 연구소 밖으로 급속도로 팽창하던 때, 제한된 정보 서비스만 존재하던 인터넷 환경에 매끄러운 멀티미디어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최초의 프로그램이었다. 이렇게 멋진 기능을 제공했지만 모자이크도 상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서는 관대한 라이선스를 채택했다. 모든 버전에서 비상업적 목적의 사용은 일정한 제한을 제외하고는 자유로웠으며, 유닉스X 윈도우 시스템 버전의 경우 소스코드도 공개배포 되었다. 다른 운영체제 버전의 경우에도 동의만 얻으면 소스코드가 제공되었다.[8]

이렇듯 모자이크는 출시 1년 만에 200만명이 사용하는 웹브라우저가 됐다. 인터넷으로 메일을 보내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고, 인터넷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세상이 비로소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모자이크는 일종의 신드롬을 불러왔다. 그 위력은 숫자들로 한층 더 실감할 수 있다. 이전에는 수백개에 지나지 않았던 웹사이트가 모자이크의 등장과 함께 폭증했다. 웹페이지가 화려해지기 시작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세계 인터넷 이용자가 5억5300만명에 달하게 한 근원이 됐다. 또 웹은 인터넷의 부흥을 이끌면서 전자상거래 등 수천억달러에 이르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냈다. 나아가 웹은 사람들간 소통방식과 사회구조까지 바꿔버렸다. 산업계에서 모자이크가 갖는 의미를 가장 빠르게 알아차린 사람은 짐 클라크였다. 모자이크커뮤니케이션스(후에 넷스케이프커뮤니케이션스로 전환)를 설립, 앤드레센을 채용해 제품을 보다 신속하고 안정적이 되도록 개선해나갔다.

바톤을 이어 받은 넷스케이프는 더욱 거대한 인터넷 세상을 만들었다. 참고로 넷스케이프는 모자이크 개발자 중 한 명인 마크 앤드리슨이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하고 만든 웹브라우저로, 사실 상 모자이크의 후속작이라고 보는 게 맞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3이 나오기 전까지 전세계 90%가 넷스케이프를 사용했다고 하니 ‘모자이크-넷스케이프’의 시대를 바꾸는 역할은 충분히 했다. 모자이크는 인터넷의 역사 중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최초의 본격적이고 대중적인 WWW 툴로서 인터넷의 사용 인구를 엄청나게 늘렸고, 이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WWW 서버 기능을 갖는 호스트의 숫자도 크게 늘어났다. 이러한 울림은 지략가인 빌 게이츠(William Gates)를 자극했다. 이후 넷스케이프는 95년 기업을 공개해 닷컴 붐의 시조가 되기도 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에 밀려 군소 브라우저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넷스케이프는 세계 최대 온라인서비스 업체인 AOL에 흡수됐다.[6][9]

각주[편집]

  1. 모자이크 ( Mosaic )〉, 《IT용어사전》
  2. 모자이크〉, 《시사상식사전》
  3. Memoirs From the Browser Wars〉, 《WayBack Machine》, 2003-04-15
  4. 모자이크 (웹 브라우저)〉, 《위키백과》
  5. 이상우 기자, 〈(IT인물열전) 벤처 투자자가 된 모자이크 개발자, 마크 안드레센〉, 《아이티동아》, 2015-03-26
  6. 6.0 6.1 조상록 기자, 〈(그때 그 시절 IT) ㉖닷컴버블 씨앗이자 WWW 세상 연 '모자이크'〉, 《아이티 마소코딩》, 2022-12-18
  7. 이수운 기자, 〈(이수운기자의 백투더퓨처)최초의 웹 브라우저, 모자이크 탄생〉, 《전자신문》, 2011-04-20
  8. 정지훈 기자,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32) – NCSA 모자이크, 웹의 세상을 열다〉, 《벤처스퀘어》, 2014-07-29
  9. 허의원 기자, 〈브라우저의 원조 `모자이크` 탄생 10돌〉, 《전자신문》, 2003-04-16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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