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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브라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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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12일 (수) 17:53 판 (브라우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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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브라우저(web browser)는 사용자의 요청을 받아 웹서버에 전달하고, 응답을 받아 사용자에게 콘텐츠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브라우저(brows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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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편집]

브라우저의 browse는 ‘가게 안을 둘러보거나 책을 군데군데 펼쳐 읽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이 붙어서 웹페이지를 둘러볼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웹브라우저라고 한다. 웹브라우저는 웹페이지의 내용을 보여주는 소프트웨어로, 서버와 접속하여 HTTP 서버에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하이퍼텍스트 문서를 읽고 그것을 사용 중인 컴퓨터에 보여 주는 프로그램이다. 웹브라우저는 WWW 서비스에서 문자나 화상은 물론 동영상, 음악, 게임 등을 지원하는 멀티미디어 검색 프로그램으로, 구체적인 자료의 검색, 저장, 전송 등을 가능하게 해준다.[1]

대표적인 웹브라우저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파이어폭스, 구글 크롬, 사파리 등이 있다. 이 중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접근이 가장 쉬운 웹브라우저로서 마이크로소프트운영체제윈도우를 설치할 때 함께 제공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다. 그러나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 이외의 플랫폼에서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지원을 중단하고, 모질라 파이어폭스 등 대체 브라우저가 개발되면서 후기 버전의 출시에도 불구하고 하락세가 계속되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11에서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지원을 중단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엣지의 사용을 권고하였다. 구글크롬 역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웹브라우저인데 구글이 가지고 있는 플랫폼(메일, 일정 관리, 문서 작성 및 편집, 화상회의 등)과 연동되어 효과적인 웹 탐색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인터넷 웹페이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인 웹브라우저는 다양한 제품들이 나오면서 경쟁을 하고 있다.[2]

역사[편집]

세계 최초의 웹브라우저는 1991년 등장한 월드와이드웹(WorldWideWeb)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연구원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가 정보 공유를 쉽게 하기 위해 하이퍼텍스트의 개념을 처음 제안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월드와이드웹이다. 버너스 리는 이 발명으로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지만, 모든 로열티를 포기하고 일반에 공개하는 길을 택했다. 이후 월드와이드웹은 인터넷을 의미하는 ‘WWW(World Wide Web)’와의 명확한 구분을 위해 넥서스(Nexus)로 명칭이 변경됐다.

1992년 하반기에는 유닉스 진영에서 라인 모드 브라우저(Line mode browser), 비올라월드와이드웹(ViolaWWW), 이알와이즈(Erwise) 등 라이브러리월드와이드웹(LibWWW) 기반의 브라우저들이 등장했다. 매킨토시도 마이다스월드와이드웹(MidasWWW), 맥월드와이드웹(MacWWW) 등 전용 브라우저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알와이즈는 최초의 그래픽 환경을 지원하는 웹브라우저였다. 엑스-윈도우(X-Window)를 실행하는 유닉스 시스템을 위해 설계된 이 브라우저는 웹 페이지에서 특정 문자열을 찾거나 한 번에 여러 웹페이지를 열수 있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이 웹브라우저는 헬싱키 공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학생 4명에 의해 개발되었다고 전해진다.

1993년에는 모자이크(Mosaic)가 등장했으며, 1994년에는 최초의 상용화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Netscape)가 나타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넷스케이프는 모자이크의 개발자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이 창업하여 만들었다. 한 때 전세계 웹브라우저 점유율 90%에 달했던 넷스케이프는 1995년에 등장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2008년 공식 종료되었다. 이후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독주가 한동안 계속됐다. 한 때 전세계 웹브라우저 시장의 95% 이상이 인터넷 익스플로러였다고 하니 사실상 시장을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넷스케이프의 후계자격인 파이어폭스(Firefox), 애플사파리(Safari), 구글 크롬(Chrome) 등 경쟁 브라우저가 등장하면서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은 점차 낮아졌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10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지 않고 엣지(Edge)라는 브라우저를 제공한다.[3]

종류[편집]

웹브라우저의 주요 제품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E, Internet Explore), 마이크로소프트 엣지(Edge), 구글 크롬(Google Chrome), 애플 사파리(Apple Safari), 모질라 파이어폭스(Mozilla FireFox), 오페라(Opera), 넷스케이프(Netscape), 모자이크(Mosaic), 스윙(Swing) 등이 있다. 모바일 전용 웹브라우저에는 삼성 인터넷(Samsung Internet)이 있다.

크롬[편집]

크롬(Chrome)

크롬(Chrome)은 2008년 구글이 개발한 웹브라우저이다. 정식 명칭은 구글 크롬(Google Chrome)이다. 2012년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누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웹브라우저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IE에 이어 2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크롬은 구글 사에서 독자적인 웹브라우저를 확보할 목적으로 오픈 소스 웹브라우저인 모질라 파이어폭스(Mozilla Firefox) 개발팀을 스카우트한 후, 2008년 12월 11일에 정식으로 발표한 웹브라우저이다. 2015년 5월 기준 전세계 웹브라우저 점유율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윈도우즈 계열, OS X 계열, 리눅스 계열 등의 OS에서 모두 사용가능하며,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iOS 모두를 지원하여 어떠한 스마트폰에서도 같은 웹브라우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또한 북마크 등 사용자 환경을 지원하여 어떤 장치에서 사용하던 크롬 브라우저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같은 사용자 환경을 제공하며, 자바스크립트 가상 기계(Javascript virtual machine)를 지원하여 자바스크립트로 만든 웹브라우저에서 수행되는 앱들을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다.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프로그래밍 언어와 함께 동적인 컨텐츠와 기능성 표현을 위한 HTML5의 웹표준을 가장 우수하게 지원하는 브라우저이다. 속도면에서 자바스크립트 가상 기계(Javacript virtual machine)는 구글에서 만든 오픈소스 ‘V8 자바스크립트 엔진’을 사용하는데, 동적 코드 생성(dynamic code generation)과 정확한 쓰레기 수집(garbage collection)을 사용하여 다른 브라우저에 비해 빠른 속도를 보인다. 또한 멀티프로세스를 사용하여 속도가 빠르고,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다른 웹사이트 서버와 통신할 때 HTTP(Hypertext transport Protocol)보다 더 빠른 SPDY 프로토콜을 사용한다. 위험한 사이트의 방문을 제어하고 악성코드를 다운받지 못하도록 하는 보안 기능이 포함되어 있으며, 다국어 번역 등의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 이외에 크롬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크롬OS가 있으며, 크롬OS가 설치된 '크롬북'(Chrome book) 등이 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편집]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개발한 웹브라우저이다. 1995년 윈도우즈 운영체제의 일부로 포함시켜 판매함으로써 기존의 넷스케이프(Netscape)를 대체하고 빠른 속도로 시장을 점유했다. 2004년 전체 웹브라우저 시장의 약 90%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2015년 7월 출시된 마이크로소프트 엣지 웹브라우저로 대체되고 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월드와이드웹(WWW)에서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해주는 검색용 프로그램이다. 1995년 8월 버전1.0이 발표되었으며 1996년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인 윈도에 기본 내장되어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버전3.0에서는 HTML3.2 및 액티브X 콘트롤러와 자바 애플릿의 실행환경을 갖추는 등 경쟁제품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에 필적하는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1997년 8월에 발표된 버전4.0부터는 컴퓨터를 기본적으로 통합 관리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넷스케이프사에서 만든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가 더 대중적으로 사용되었으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운영 체제에 이 소프트웨어를 포함하면서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고 1999년 이후 가장 널리쓰이는 웹브라우저가 되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5와 6 버전의 경우 사용률이 전 세계의 95%를 점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파이어폭스나 크롬 등의 브라우저들이 개발되고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후기 버전들의 점유율은 하락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는 2022년 6월 15일부로 인터넷익스플로러에 대한 기술지원을 공식 종료하였다.

엣지[편집]

엣지(Edge)는 2015년 7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Windows 10 운영체제와 함께 출시한 웹브라우저이다. 기존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 11 버전을 계승하여 만들었다. 인공지능 개인 비서인 코타나(Cortana)를 이용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엣지는 2015년 3월 출시된 윈도우즈10의 기본 브라우저로 기존의 익스플로러(Explore)와는 별도의 제품으로 개발되었다. 윈도우즈 10, 윈도우즈 10 모바일, 윈도우즈 서버 2016의 운영체제를 지원한다. “현대적인 웹과의 상호 운용성”을 중시하며 웹 표준을 지원하는 레이아웃(layout) 엔진(EdgeHTML)에 의해 움직이도록 경량 설계에 초점을 두었다. 엣지는 출시 전인 2014년 후반부터 “스파르탄(Spartan)”이라는 코드명으로 보도되었으며, 2015년 1월 마이크로소프트의 키노트 발표에서 공식적으로 소개되었다. 2015년 11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홈 비디오 게임 콘솔인 엑스박스 원(Xbox One)에서도 지원하게 되었다.

엣지는 PC 및 모바일 기기용 윈도우 10의 기본 웹브라우저로, 인터넷 익스플로러 11과 인터넷 익스플로러 모바일을 대체한다.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와 PDF 리더가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액티브엑스 혹은, 익스플로러에서 사용하는 플러그인 기술인 BHO(Browser Helper Object)와 같은 기존 기술에 대해 더 이상 지원하지 않고 확장 기능으로만 제공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통합도 진행되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인 코타나(Cortana)와의 통합 음성 제어 및 검색, 웹페이지에 대한 주석 작성,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원드라이브(OneDrive)에의 자료 저장 및 공유 기능을 포함한다. 또한 여러 장치 간에 콘텐츠를 동기화하고 불필요한 서식을 제거하여 가독성을 높이는 ‘리딩 모드’ 기능도 탑재되었다. 하지만 익스플로러에 탑재되었던 웹페이지를 파일로 저장하는 기능이나 작업 표시줄에 고정하는 기능, 애드온(add-on) 확장 기능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중 애드온 확장 기능은 추후 업데이트에 추가될 예정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엣지 자체의 확장 기능뿐 아니라 크롬과 파이어폭스의 확장 기능과도 호환성을 제공할 예정이다.

사파리[편집]

사파리(Safari)

사파리(Safari)는 2003년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이끄는 애플(Apple)이 개발한 웹브라우저이다. 아이폰아이패드 등에서 기본 웹브라우저로 사용된다. 매킨토시나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 디바이스에서만 최신 버전을 사용할 수 있다. 사파리는 아이튠즈와 유사한 북마크 관리 체계를 가지고 있고, 애플의 퀵타임 멀티미디어 기술과 통합되어 있으며 탭 브라우징 인터페이스를 사용한다. 구글 검색 상자는 사파리 인터페이스의 기본 요소이며 웹 주소 자동완성과 웹 페이지 텍스트 영역의 맞춤법 검사를 지원한다.

사파리는 웹페이지 렌더링 및 자바스크립트 실행에 웹키트를 사용한다. 웹키트는 웹코어(컹커러의 KHTML 엔진에 기반한 것)와 자바스크립트코어(KDE의 kjs 자바스크립트 엔진에 기반한 것)로 구성되어 있다. KHTML과 kjs와 마찬가지로 웹코어와 자바스크립트코어는 자유 소프트웨어이며, LGPL(약소 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 라이선스로 배포된다. KHTML 코드로부터 애플이 개선한 일부 코드는 컹커러 프로젝트에 합쳐진다. 애플은 또한 2절로 된 BSD 라이선스와 유사한 오픈 소스로 추가 코드를 공개한다.

파이어폭스[편집]

파이어폭스(FireFox)는 2002년 모질라재단이 개발한 무료 오픈소스 기반의 웹브라우저이다. 모질라 파이어폭스(Mozilla FireFox)라고 부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대항하기 위해 기존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를 계승하여 만들었다. 모질라는 웹브라우저 및 전자우편 관리 기능 등을 포함하면서 프로그램의 덩치가 매우 커졌다. 그래서 네티즌들은 보다 가벼운 웹브라우저를 원하게 되었고, 웹브라우저만 따로 떼어내어 피닉스(phoenix)를 만들었다. 이후에는 하위 프로젝트인 피닉스에서 기술을 개발하여 역으로 모질라에 적용시키며 앞서나갔다. 상표권 문제로 Firebird, Firebird™, Mozilla Firebird로 이름을 바꾸다가 결국은 Mozilla Firefox로 결정했다. 현재 모질라는 개발을 중단하고 웹브라우저인 모질라 파이어폭스와 전자우편 관리 프로그램인 선더버드의 하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계속 진행 중이다.

개발 초기에는 안정성이 떨어지고 리소스가 많이 소요되는 등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개발을 시작한 넷스케이프커뮤니케이션이 인수와 합병을 거쳐 AOL-타임워너가 되는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AOL-타임워너는 2003년 6월 모질라를 별도의 비영리재단으로 독립시켜 네티즌과 함께 개발을 계속하였고, 마침내 2004년 11월 1.0버전을 무료로 제공하였다. 발표 이후 전세계 네티즌의 큰 호응을 얻었다.

속도가 빠르며 ActiveX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보안과 사용자 프라이버시 보호에 뛰어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웹사이트가 ActiveX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 뱅킹, 인터넷 쇼핑 등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호환성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렌더링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IE Tab 2, Coral IE Tab과 같은 부가 기능이 등장했고, 이러한 부가 기능을 설치하면 ActiveX나 전자결제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넷스케이프[편집]

넷스케이프(Netscape)

넷스케이프(Netscape)는 1994년 넷스케이프 회사가 개발한 웹브라우저이다. 최초의 웹브라우저인 모자이크 개발에 참여했던 일리노이대학 출신 프로그래머 마크 엔드리슨(Marc Andreessen)과 벤처 투자자인 짐 클라크(Jim Clark)는 1994년 넷스케이프를 창업하고 '모자이크'를 기반으로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1.2'를 발표하여 전 세계를 인터넷 열풍에 휩싸이게 했다. 버전 3.0까지는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라고 불렀으며, 버전 4.0 이후로는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터라고 이름을 변경하였다.

넷스케이프사는 1995년 미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성공적인 데뷔를 하며 닷컴붐을 견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와 자사의 웹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통합 판매하고 익스플로러를 무료로 배포하는 전략을 구사함에 따라 시장 지배력을 점점 잃었고, 결국 1999년 AOL에 회사를 넘기는 비운을 맞게 됐다. 당시 MS의 익스플로러는 전체 웹브라우저 시장의 96%를 점하고 있었다. 2007년 넷스케이프 9.0 버전을 발표하면서 재기를 노렸으나 실패하였고, 2007년 12월 AOL은 넷스케이프의 제작 중단을 선언하였다. 2008년에는 넷스케이프가 은퇴를 선언하고 파이어폭스로 흡수되며 종료되었다.

2012년 7월, 웹브라우저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MS의 익스플로러는 우리나라의 시장점유율 66~68%로 하향세를 보이고 있고, 대신 구글의 웹브라우저인 크롬이 우리나라의 시장점유율 20%를 돌파하며 선전하고 있다. 크롬 사용이 증가한 이유로는 MS의 익스플로러보다 빠른 속도, 컴퓨터의 브라우저 설정을 모바일 기기와 연동할 수 있는 점 등이 꼽힌다.

모자이크[편집]

모자이크(Mosaic)

모자이크(Mosaic)는 1993년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과 에릭 비나(Eric Bina)가 공동 개발한 웹브라우저이다. 팀 버너스-리가 만든 기존의 WorldWideWeb 브라우저가 텍스트 위주였던 것과 달리, 모자이크는 이미지를 표시할 수 있는 그래픽 웹브라우저였다. 출시 후 폭발적 반응을 얻었으나, 개발 책임자였던 마크 앤드리슨이 넷스케이프 웹브라우저를 개발함에 따라 사실상 개발이 중단되었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 모자이크 웹브라우저의 소스 코드를 활용하여 인터넷 익스플로러 웹브라우저를 개발했다.

모자이크는 텍스트만으로 전송되는 인터넷상의 정보를 웹의 형태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모자이크의 등장으로 배너광고와 쇼핑사이트가 생겨나는 등 인터넷의 이용이 군사적, 학술적 목적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바뀌게 된다. 1993년 초에는 겨우 130대의 사이트만 있을 뿐이었으나, 모자이크가 소개된 지 반년도 채 못되어 상황은 크게 바뀌어 당시에만 약 10,000대 이상의 서버가 생겼다고 한다. 모자이크 개발에 참여했던 NCSA의 마크 엔드리슨는 졸업후인 1994년 넷스케이프를 창업하고 '모자이크'를 기반으로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1.2'를 발표하여 전세계를 인터넷 열풍에 휩싸이게 했다.

오페라[편집]

오페라(Opera)

오페라(Opera)는 1996년 노르웨이의 오페라소프트웨어 회사가 개발한 웹브라우저이다. PC스마트폰뿐 아니라 PDA, 게임기, TV 셋톱박스 등 다양한 환경에서 작동한다. 데이터 압축 기술을 이용하여 사용자에게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인터넷 접속 환경이 좋지 않은 동유럽, 러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많이 사용한다. 2016년 2월 중국의 치후360(Qihoo360) 회사에 약 1.2조원에 인수되었다.

오페라는 넷스케이프나 인터넷익스플로러에 비해 크기가 작지만 속도는 빠른 웹브라우저이다. 윈도와 매킨토시·리눅스 등 다양한 운영체제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디렉터리와 북마크 파일을 동시에 제공하며, 메뉴를 타일 형태나 계단식으로 겹쳐 보여주므로 여러 개의 웹사이트를 한 화면에서 보는 데 유용하다. 이전에 방문했던 사이트를 복원하도록 설정할 수 있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써서 줌과 단축키 등 다양한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다. 다른 html 헤더 및 텍스트를 위해 원하는 글꼴 및 색상을 선택할 수 있으며, 링크 표시를 완전히 제어할 수 있다. 또한 클릭과 로딩 완료, 로딩 실패 등을 소리로 알려줄 수도 있다. 리얼오디오나 쇼크웨이브 등과 같은 플러그인도 적용될 수 있으며, 자바 애플릿 지원도 가능하다. 2003년 현재 버전7이 나와 있다.

스윙[편집]

스윙(Swing)

스윙(Swing)은 2013년 한국 ㈜이스트소프트의 자회사인 줌인터넷㈜이 개발한 웹브라우저이다. PC 버전과 모바일(Android, iOS) 버전을 모두 지원한다. 한국적 특수성을 반영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E) 웹브라우저에서만 작동하는 액티브엑스(Active-X)도 실행할 수 있다. 1년여 간의 베타테스트를 거쳐 2013년 12월 정식 버전이 출시되었으며 PC 버전과 모바일 버전(안드로이드, iOS)을 모두 지원한다.

스윙 브라우저는 파일전송, 아이디·패스워드 자동 입력, 화면 캡처, 크롬 확장 플러그인 지원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특히 웹킷 랜더링 엔진을 채택해 빠른 웹서핑이 가능하며, 퀵전송 기능을 통해 개인용 PC와 모바일 기기 간 용량의 제한 없이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다. 또 마우스액션, 온라인으로 저장되는 즐겨찾기, 클라우드 형식의 메모, 아이디·패스워드 자동 관리, 화면 캡처 기능이 포함되었다. 이 밖에도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구동되는 액티브엑스(Active X)도 원활하게 실행할 수 있다. 스윙 브라우저는 2015년 5월 누적 다운로드 1000만 건을 기록한데 이어 2016년 8월에는 200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서비스 이용자가 줄어들면서 2019년 1월 7일 스윙 브라우저 서비스 지원을 종료했다.

삼성인터넷[편집]

삼성인터넷(Samsung Internet)

삼성인터넷(Samsung Internet)은 삼성 갤럭시스마트폰에 기본 탑재되어 배포되는 모바일 전용 인터넷 웹브라우저이다. 2021년 4월 기준 전세계 모바일 웹브라우저 점유율 약 6.1%로 크롬과 사파리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크롬에 이어 약 27%로 2위이다. 삼성 갤럭시 유저가 굉장히 많다보니 모바일 점유율도 순위권 안에 든다. 특히 모바일 크롬에서 애드블록(Adblock)이 지원이 되지 않아 넘어오는 경우도 많다. 삼성인터넷은 안드로이드에 최적화한 블링크 엔진을 쓰나, 크롬과는 약간 렌더링이 다르다. 삼성전자가 커스텀빌드한 웹뷰를 사용한다. 삼성전자가 만든 앱답게 One UI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는 편으로, 깔끔하고 직관적이라는 평가가 많으며 이미지 색상은 보라색이다.

특징[편집]

웹브라우저에는 에스큐엘 라이트(SQLite)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RDBMS)이 기본 탑재되어 있다.

브라우저 전쟁[편집]

웹브라우저 전쟁

브라우저 전쟁(Browser Wars)은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웹브라우저들이 점유율 경쟁을 하는 것을 말한다. 1차 브라우저 전쟁은 1990년대 후반에 마이크로소프트인터넷 익스플로러넷스케이프 두 브라우저 간 경쟁을 지칭하였다. 넷스케이프가 거의 몰락하고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웹브라우저 시장을 독점하게 되었다. 2차 브라우저 전쟁은 2003년 이후, 모질라 파이어폭스, 구글 크롬, 사파리, 오페라와 같은 신흥 브라우저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간 경쟁을 말한다.

1차 브라우저 전쟁[편집]

넷스케이프 태동[편집]

인터넷 역사에서 1989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해이다. 이해 스위스 제네바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근무하고 있던 팀 버너스 리(Timothy Berners Lee)가 동료 연구원들간의 정보공유를 도와줄 목적으로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제안한 것이다.[4] 버너스 리는 자신이 만든 시스템에 월드와이드웹(WWW)이란 제법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인터넷과 동의어로 통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는 월드와이드웹은 이처럼 미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정작 인터넷 혁명의 불꽃이 본격적으로 타오른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92년이었다.

당시 일리노이대학교의 국립슈퍼컴퓨터응용센터(NCSA)에서 고성능 컴퓨터들을 위한 코드를 짜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마크 앤드리슨(March Andereessen)은 인터넷을 좀 더 대중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앤드리슨은 3년 전 팀 버너스리가 고안해 낸 웹을 마음껏 항해할수 있는 브라우저 하나 만들고 모자이크(Mosaic)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자이크는 월드와이드웹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그래픽 브라우저였다.[5]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한 대학생의 소박한 발명품이 전 세계를 뒤바꿔 놓을 인터넷 혁명의 시발점이 될 것이란 사실을 눈치 챈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앤드리슨은 모자이크를 만든 뒤 인터넷에서 공짜로 다운 받아 쓸 수 있도록 했다. 프리웨어(freeware)로 뿌렸던 것이다. 그 이전까지 힘들게 인터넷을 이용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모자이크는 구세주나 다름 없었다. 복잡한 명령어를 몰라도 쉽에 인터넷을 이용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 덕분에 모자이크는 인터넷에 공개되자 마자 순식간에 이용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6] 모자이크가 인기를 누리자 덩달아 인터넷 이용자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기초적인 컴퓨터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인터넷을 마음껏 이용할수 있어지자 월드와이드 웹 세상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초의 그래픽 기반 브라우저였던 모자이크는 수많은 일반인에게 인터넷 세상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모자이크가 인기를 누릴수록 개발자인 마크 앤드리슨의 입지는 약해지기 시작했다. NCSA의 관리팀이 모자이크 돌풍을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자이크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런 결정은 곧바로 마트 앤드리슨을 비롯한 개발진들을 모자이크에서 떼어 내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더 이상 모자이크 개발 작업에 관여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NCSA의 이런 지시에 대해 모자이크 개발팀도 호락호락 물러서지는 않았다. 지시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자 NCSA의 관리팀들도 마크 앤드리슨을 비롯한 모자이크 개발자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앤드리슨은 NCSA의 이런 처사에 강하게 분노했다.

1993년 12월 일리노이대학교를 졸업한 마크 앤드리슨은 자신이 만든 모자이크를 토대로 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는 무작정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NCSA에서 일하면서 학교 측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던 그는 자신의 힘으로 뭔가 거창한 것을 만들어 내보란 듯이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돈이 없었다. 게다가 그때 까지만 해도 그는 벤처캐피털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수백만달러를 끌어모을 수 있는 시대는 아직은 먼 얘기였던 것이다. 실리콘벨리 역시 아직은 인터넷 혁명을 기반으로 한 닷컴 붐의 꿈도 꾸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 무렵 실리콘밸리에 또 한 사람이 방황을 하고 있었다. 실리콘그래픽스란 그래픽 전문회사의 설립자로 큰 성공을 거둔 짐 클라크(Jim Clark)[7]란 인물이었다. 훗날 벤처투자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게 되는 짐 클라크 역시 이무렵에는 그냥 돈을 조금 번 평범한 사업가일 뿐이었다. 짐클라크는 그 무렵 실리콘그래픽스에서 손을 뗀 뒤 이윤배당을 둘러싸고 한바탕 분쟁이 벌어지지 비정한 비즈니스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인물을 찾던 참이었다. 마크 앤드리슨과 짐 클라크의 만남은 1990년대 후반 실리콘밸리를 강타한 닷텀 붐의 전형적인 모델이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마크 앤드리슨과 여유 자금을 소유하고 있던 짐 클라크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짐 클라클를 만남 앤드리슨은 '모자이크 킬러'를 만들고 싶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밤을 세워 가며 만들었던 모자이크를 독식해 버린 데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그 무렵 앤드리슨은 일리노이대학 NCSA대한 감정이 최악에 달한 상태였다.

실리콘그래픽스 이후 적당한 투자처를 찾고 있던 짐 클라크 역시 야생마 같은 마트 앤드리슨의 패기와 열정을 높게 평가했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둘은 정말로 모자이크 킬러가 될 만한 브라우저를 만들었다. 바로 모질라(Mozilla)였다. 모질라는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앤드리슨이 일리노이대학교에서 만든 모자이크를 무색케 할 정도 였다. 이런 상황에 고무된 클라크와 앤드리슨은 곧바로 회사를 설립했다. 처음 이들은 회사 이름을 모자이크 커뮤니케이션으로 정했다. 하지만 NCSA로 부터 법적인 항의가 들어오자 고심 끝에 회사명을 넷스케이프(Netscape)로 바꾸었다.[8] 그리고 곧 바로 1994년 10월 첫 번째 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를 출시했다. 상용 브라우저로는 사실상 첫 제품이었던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가 몰고 온 바람은 엄청났다. 무료배포 되자마자 순식간에 사용자 수가 200만명을 돌파하면서 초기 인터넷 혁명의 진원지가 됐다.[9]

윈도우95 및 인터넷 익스플로러[편집]

넷스케이프가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을 무렵 마이크로스프트(Microsoft Corporation)는 윈도우95 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윈도우 3.0을 내놓으면서 운영체제 시장을 완전 장악했던 마이크로소프트로선 한 단계 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윈도우 3.0 개방 당시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사이에 인터넷이란 변수가 생겨 버렸던 것이다. 마이트로소프트로서는 윈도우95를 개발하면서 인터넷 환경을 외면할 수 없었다. 처음 윈도우95 개발 작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웹브라우저가 순식간에 거대한 산처럼 자신을 가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이크로스프트는 넷스케이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1994년 하반기부터 넷스케이프와 부쩍 자주 만났다. 이들은 새롭게 개발할 윈도우95상에서 넷스케이프의 브라우저가 좀 더 자연스럽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논의를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소스 코드를 알고 싶어 했다. 당시 넷스케이프는 세상 무서운 것 없을 정도로 잘 나갈 때였다. 거침없이 몸집을 키워 나가던 넷스케이프는 그 무렵 짐 박스데일(Jim Barksdale)[10]을 최고경영자로 영입한 상태였다. 창업자인 짐 클라크와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던 짐 박스데일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소소 코드를 보여 달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요구를 탐탁지 않게 받아들였다. 수많은 PC 업체들을 쥐락펴락하는 마이크로소프트였지만, 그 무렵 막 열리기 시작한 인터넷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른 넷스케이프와 대면한 자리에서는 자신들 마음대로 분위기를 주도해 나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무렵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도 인터넷 전략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다. 빌 게이츠(William Gates)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새로운 영역으로 이끄는데 실해했다는 지적이었던 셈이다.

넷스케이프가 브라우저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떠오를수록 빌 게이츠의 부담감은 더 컸을 것이다. 빌 게이츠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마이크로소프트 고위간부들은 넷스케이프를 경계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었다. 운영체제 시장 독점의 장애요소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체 브라우저 개발을 진지하게 고려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빌 게이츠는 넷스케이프를 보면서 자신이 무너뜨린 IBM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마이크로스프트가 이렇게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IBM으로 부터 많은 것을 가져 온 덕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빌 게이츠로서는 넷스케이프에서 PC시장에 막 활성화되던 무렵의 마이크로소프트를 되새겼을 수도 있다. 변혁의 시기에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가는 IBM과 같은 처지가 될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위기감을 갖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1995년 들어 5개월 가량 넷스케이프와 협상을 계속했다. 이때만 해도 마이트로소프트는 브라우저 시장에서 넷스케이프를 밀어내기보다는 서로 공존하는 방안을 찾는 쪽에 주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빌 게이츠는 넷스케이프와 웹브라우저 시장을 좀더 심각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1995년 5월 26일 인터넷 물결(The Internet Tidal Wave)이란 제목의 메모를 통해 '(인터넷은)1981년 IBM PC가 도입된 이래 가장 중요한 발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11] 이 메모의 이어지는 내용은 빌 게이츠가 그 당시 넷스케이프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빌 게이츠는 넷스케이프가 급부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터넷 사업의 가능성에 눈을 뜬 것으로 보인다. 빌 게이츠는 골드러시 때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금광을 발견한 살감들이 아니라 바로 기반 설비를 제공했던 사람들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995년 들어 자체 웹브라우저 개발 쪽으로 입장 선회를 한 것도 빌 게이츠의 이런 깨달음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빌게이츠의 이런 열망은 그해 8월 발표된 윈도우95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95를 내놓으면서 자체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함께 제공했기 때문이다.[9]

반독점 경쟁[편집]

윈도우95와 함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시장에 나왔지만 넷스케이프는 여전히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강세를 유지했다. 윈도우95에서 넷스케이프 브라우저가 자연스럽게 작동하지 않도록 방해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넷스케이프의 위세는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몰랐다. 결국 1995년 12월 들어 빌 게이츠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바로 끼워팔기로 알려진 인터넷 익스플로러 무료배포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96년 10월 이후 발매된 익스플로러는 윈도우95와 함께 제공됐다. 또 윈도우98 버전부터는 아예 운영체제에 통합됐다. 일부러 넷스케이프를 깔지 않는 한 인터넷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라우저를 이용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넷스케이프를 쫓아내기 위해 단순히 끼워 팔기 전략만을 사용한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위치를 이용해 기업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때로는 무자비 할 정도로 강하게 몰아치면서 넷스케이프를 고립시키기도 했다. 넷스케이프 CEO를 역임했던 짐 박스데일은 나중에 반 독점 재판 과정에서 휴렛팩커드(HP)와 넷스케이프가 공동 상품 출시 계약을 발표했다.[12] 빌 게이츠는 1995년에 배포한 새로운 물결이란 제목의 자료를 통해 "넷스케이프와 제휴를 고려하는 기업들을 손봐라"고 재촉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그 뒤 반독점 재판 과정에서 빌 게이츠의 위협 행위가 속속 드러났다. 특히 빌 게이츠는 컴팩이 자사 컴퓨터의 기본 웹브라우저를 넷스케이프로 변경하려고 하자 강하게 위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운영체제를 포기할수 없는 입장이었던 컴팩 역시 이 같은 위협에 굴복했다.

이는 휴렛패커드나 AOL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기본 웹브라우저로 익스플로러를 채택하는 일부 회사들에 대해 보조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끼워 팔기를 통해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한편으로 컴퓨터 업체들을 협박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놀라울 만큼 막강한 위력을 과시했다. 넷스케이프의 영향력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1996년 4분기 5,850만 달러였던 넷스케이프의 수익은 1997년 4분기에는 1,850만 달러 까지 떨어졌다. 불과 1년 사이에 68%나 감소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넷스케이프는 300명 가량을 감원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식 가치 역시 최고가의 80퍼센트까지 떨어지면서 끝없는 나락을 경험했다. 1998년이 되자 넷스케이프는 웹브라우저 사업에서 전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리고 그해 여름, 드디어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익스플로러 점유율이 44%까지 늘어나면서 42%에 머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앞질렀다.

결국 넷스케이프는 웹브라우저의 프로그래밍 소스 코드까지 모든것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면서 사실상 이 시장에서 사라져 갔다. 넷스케이프로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맞선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었다. 실제로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불과 3~4년 만에 비참하게 시장에서 쫓겨 나간 넷스케이프의 사례는 이후 마이트로소프트와 빌 게이츠에게 폭군 이미지를 심어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넷스케이프 이외에도 노벨(Novell), 리얼네트웍스(RealNetworks) 등 많은 기업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상공세를 견뎌 내지 못하고 뒷전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어느 기업의 사례도 넷스케이프 퇴출 만큼 시장에서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넷스케이프 간의 웹브라우저 전쟁은 시대의 패러다임을 누가 잡을 것이냐는 힘겨루기였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라는 무기를 앞세워 웹브라우저란 새로운 영토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웹브라우저 시장이 한창 열릴 무렵 회사 전체가 위기의식에 사로잡혔던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선 넷스케이프와 벌인 브라우저 전쟁에서 승리가 그만큼 절박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끌고 있는 빌 게이츠는 공공의 적으로 완전히 자리를 굳혔다. 마이크로소프트 효과라는 말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일단 어떤 업체가 새로운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가 뛰어들면 곧바로 몰락한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었다 그 만큼 빌 게이츠의 이미지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또 실제로 당시 빌 게이츠는 시장의 질서를 무시한 정책 결정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9]

2차 브라우저 전쟁[편집]

파이어폭스의 대항[편집]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는 1차 브라우저 전쟁으로 인해 도태되었다. 그 하락이 시작되었을 시점에서 소스코드를 공개하였으며 비영리 재단인 모질라재단(Mozilla Foundation)에 의해 이 코드들은 계승된다. 커뮤니티를 통한 수 년간의 개발은 지속되었고, 그 대표적인 기능이 검색상자(Search Bar)의 개발이다. 모질라는 이 브라우저의 이름을 처음에는 피닉스(Phoenix)로 정했지만 상표권 문제로 파이어버드(FireBird)로, 나중에는 결국 파이어폭스(Firefox)로 변하게 되었고 2004년 11월 9일 1.0을 발표하게 된다.

넷스케이프의 실패는 모질라 재단에 비영리라는 교훈을 주었다. 그리하여 0.x 버전부터 시작한 파이어폭스는 자본의 문제에 전혀 구애받지 않은 환경이 되었다. 특히 ECMA스크립트(ECMAScript) 제정 정통성, 우수한 개발 도구 지원 등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상대로 꽤 선전적인 대항을 해나갔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아웃룩 등과의 연계, 표준화 거부, XAML의 웹 기술 제정, WPF(Windows Presentation Foundation)의 설립으로 대항하였다. 파이어폭스는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었지만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길들여진 사용자층에게는 막강한 파급력을 미치기에는 힘들었다. 그러던 중 2007년 아이폰의 등장으로 개발 표준에 대한 불안성이 증대되던 중 크롬(Chrome)이 등장한다.[13]

크롬의 등장[편집]

당시 구글(Google) CEO였던 에릭 슈밋(Eric Schmidt)는 1차 브라우저 전쟁을 두고 구글은 아직 덩치가 작아 타격을 크게 입을 수 있다는 이유로 6년 간 반대했었다. 결국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증명해야 했다. 크롬 브라우저프로토타입 개발을 위해 모질라재단의 인재들을 고용했고, 에릭 슈미트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도록 하였다. 모질라 재단에서는 크롬에 대한 발표(2008년 9월)를 듣고 격하게 반대하였다. 자신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충분히 대항 중이고 크롬의 출시는 되려 파이어폭스의 점유율만 갉아먹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모질라가 2000~10년 동안 꾸준히 쌓아왔던 30%의 점유율을 구글은 개발을 시작한지 불과 3년 만인 2011년 11월에 돌파했고, 2012년 5월을 기점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점유율을 꺾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비해 압도적인 편의성, 경이적인 속도, 날마다 혁신적인 개발 도구 제공 등으로 개발자부터 모든 사용자에 아우르게 되었다. ECMA 등의 표준을 충실하게 지켰고 그보다 더 나아가 실험적인 기술들을 적극 도입함으로서 모두의 지지를 받게 된다.

크롬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던 또 다른 이유는 크롬의 출시 시기이다.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시장을 장악했을 즈음 파이어폭스, 오페라 등의 사용자들은 인터넷 익스플로러 위주로 만들어진 웹 사이트 때문에 불편을 겪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웹 사이트들도 인터넷 익스플로러 이외의 브라우저의 점유율이 점점 높아지고, 동시에 스티브 잡스(Steven Jobs)의 어도비플래시(Adobe Flash) 반대 발언 이후, 리치 인터넷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브라우저를 지원할 수 있는 웹 표준을 지키는 사이트로 차츰 변화하였다. 그리고 마침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그러한 방향으로 변화했을 때 쯤 크롬이 출시했기 때문에 크롬은 새로운 브라우저임에도 이전의 다른 브라우저가 나왔던 시기에 비하면 웹 사이트들를 이용하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또다른 이유로는 크롬 출시 전 이미 구글이 검색엔진 분야에서 정상에 올랐다는 것이 있다. 점유율 뿐만 아니라 신뢰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크롬 또한 사용자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으며, 각종 구글 서비스와의 연동성으로 인해 제공하는 편의성도 한 몫을 하였다. 이후에도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제안드로이드가 자리를 제대로 잡고 널리 쓰이게 되면서 안드로이드의 기본 탑재앱으로 들어간 크롬이 세를 불리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한국의 경우 2016년 4월을 기준으로 크롬이 점유율 1위를 차지하였다. 이렇게 제2차 브라우저 전쟁은 모질라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아닌 구글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13]

웹브라우저 시장점유율.jpg

IETab 전쟁[편집]

2차 브라우저 전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몰아내기 위한 전쟁이었다. 세계 시장에서는 2차 브라우저 전쟁을 통해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을 크게 떨어트렸다. 그러나, 2차 브라우저 전쟁을 벌이며 파이어폭스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을 점점 뺏고 크롬이 점유율 1위를 차지할 동안, 한국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2015년까지만 해도, 한국 민관 사이트의 70%가 액티브엑스(ActiveX)를 사용했는데, 이러한 환경에 맞는 브라우저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때는 인터넷쇼핑을 할 때에도 액티브엑스 사용이 필요한 공인인증서가 필요하여 더더욱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 많은 한국의 사이트들이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결국 한국에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포기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에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대체하기 위한 각종 브라우저와 프로그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세계에선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몰아낸 전쟁을 이미 끝낸 상황이었지만, 한국에서는 그와는 조금 달리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대체하는 새로운 양상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2013년, 줌 인터넷에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대체하기 위해 웹브라우저인 스윙(Swing)을 출시했다. 스윙 브라우저는 크롬의 블링크 엔진과,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트라이던트 엔진을 탑재하여, 듀얼 엔진으로 작동한다. 크롬과 같은 패스트 모드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처럼 액티브엑스를 지원하는 모드를 번갈아가며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크롬과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완전히 통합하지 못했던 점, 스윙 브라우저의 기타 여러 단점에 더해, 한국의 여러 정부 사이트나 은행 사이트들에서도 액티브엑스를 버리기 시작하며 스윙 브라우저는 결국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 외에도, 크롬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맞춰져있는 사이트를 열 수 있게 한다든지, 아니면 아예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빠르고 가볍게 만들어주는 프로그램도 등장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HTML5 지원에 취약한게 드러나고 유튜브의 지원이 종료되자 크롬의 사용률이 예전보다 올라갔다.

2014년 1월 이후부터는 한국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점유율이 계속하여 떨어지기 시작했다. 2015년에도 작은 등락을 거듭하여 우하향 그래프를 그려오다가 2016년 1월을 기점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이 드라마틱하게 급격히 떨어졌고, 드디어 2016년 4월 스탯카운터(statcounter) 기준 한국에서도 크롬이 1위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액티브엑스 폐지를 발표했고 이에 맞춘 최소한의 꼼수로 기존의 보안 프로그램들을 exe로 다운받아서 실행하는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16년, 네이버에서 출시한 웹브라우저인 네이버 웨일(Naver whale)은, 아직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 한국의 상황을 감안해,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맞춰져있는 사이트도 지원할 수 있도록 호환 모드를 적용시켰다. 또한 네이버 메인 상단에 눈에 띄는 배너를 강제적으로 표시하는 등 점유율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네이버를 접속한 유저에게는 보안에 취약한 브라우저라면서 웨일로 전환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2021년 들어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마이크로소프트 엣지에도 크게 밀리는 것은 물론 웨일보다도 점유율이 낮아진 2%대까지 떨어졌다. 2022년 이후로는 마지막 보루이던 한국의 관공서마저도 IE를 버리게 되었고 사실상 이제는 IE가 한국에서 퇴출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13]

3차 브라우저 전쟁[편집]

인공지능[편집]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급부상하자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이 3차 브라우저 전쟁에 돌입했다. 은 곧 브라우저이고 브라우저는 곧 디지털 서비스다. 이를 장악한 기업이 디지털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에 웹은 전쟁이다. 브라우저 전쟁은 영원히 끝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구세주인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나타났다. 검색시장 강자인 구글이 오류를 두려워해 생성형 인공지능 도입을 머뭇거리는 사이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와 손잡고 전방위적으로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폰용 키보드인 스위프트키 베타다. 스마트폰 키보드에 챗봇브라우저 엣지를 장착해 키보드 자체에서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브라우저에 별도로 접속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웹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PC에서 모바일로, 다시 인공지능으로 전쟁터가 바뀔 때마다 디지털 서비스의 흥망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변화라는 파도에서 살아남으려면 거대 정보통신 기업만큼이나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14]

각주[편집]

  1. 웹브라우저〉, 《시사상식사전》
  2. 천재학습백과 초등 소프트웨어 용어사전 - 웹 브라우저 ( web browser )〉, 《어린이백과》
  3. 강일용 기자, 〈용어로 보는 IT - 웹 브라우저 (웹페이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네이버캐스트》, 2011-05-03
  4. keit_newtech, 〈월드 와이드 웹을 발명한 팀 버너스 리〉, 《네이버 블로그》, 2018-02-07
  5. chamnet21, 〈넷스케이프는 왜 몰락했는가?〉, 《네이버 블로그》, 2019-11-25
  6. 김상현 자유 기고가, 〈‘정보의 바다’ 물길 트다〉, 《시사저널》, 2003-05-01
  7. leegw21, 〈혁신적인 기업가 짐클락 그는 누구인가?〉, 《네이버 블로그》, 2008-12-12
  8. 피우스, 〈1994년 이후 인기 웹 브라우저의 흥망성쇠〉, 《네이버 블로그》, 2022-07-29
  9. 9.0 9.1 9.2 김승수 기자, 〈브라우저 전쟁〉, 《N뉴스통신》, 2022-11-06
  10. 허의원 기자, 〈짐 박스데일〉, 《전자신문》, 2002-03-11
  11. 미지남, 〈(op)빌 게이츠, MS를 구할 수 있을가?〉, 《네이버 블로그》, 2013-08-28
  12. 허의원 기자, 〈美HP-넷스케이프, 인트라넷 사업 제휴〉, 《전자신문》, 1996-05-17
  13. 13.0 13.1 13.2 브라우저 전쟁〉, 《나무위키》
  14. 이상덕 실리콘밸리 특파원, 〈(World & Now) 구글 vs MS, 3차 브라우저 전쟁 승자는〉, 《매일경제》, 2023-04-10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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