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징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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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징산구(중국어: 石景山区 shí jǐng shān qū)는 중국 베이징시 서쪽에 위치해 있는 구이다. [1][2][3][4]
개요
스징산구의 면적은 85.74㎢이며 인구는 59만명(2019년)이다. 베이징시 도심을 이루는 6개구 중 제일 인구가 적으며, 녹지 비율이 23%로 제일 높다. 시 서부로 융딩허 강(永定河)이 흐르며, 시 북쪽은 타이항 산맥이 지나간다.
스징산구는 과거 공업 거인으로서, 서우강(首鋼, 수도 철강)을 필두로 한 베이징 서쪽의 8대 공장은 베이징의 도시발전을 위해 뛰어난 기여를 하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및 도시기능 위치 조정으로 현대 금융, 문화 창의, 첨단기술 등을 대표로 하는 최첨단 산업들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산, 물, 도시, 산업이 한 데 어우러진 최적의 거주 구역으로 거듭났다.
스징산구는 1인당 GDP가 약 25,000달러에 달하여 베이징 도심인 둥청구 및 시청구보다 높으며, 경제 중심지인 차오양구보다는 낮지만 베이징 내에서는 나름 상위권에 들어서는 구이다. 이는 스징산구 서남부에 위치한 공단지대의 영향으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스키 및 스노우보드 경기장인 서우강 스키점프대(首钢滑雪大跳台)가 위치한 서우강원(首钢园)이 있다. 이곳 역시 과거에는 철강산단이었으며 현재는 관광지로 리모델링되어 민간에 개방되었다.[5][6]
자연환경
스징산은 '연도(燕都) 제일 선산인 스징(石經)산'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베이징의 젖줄인 융딩허(永定河)의 길이는 13.8km이고, 스징산구 산지 면적의 23%를 차지하며, 도시 녹지율은 52.38%으로 1인당 녹지 면적은 20.51㎡에 달한다. 이는 베이징시에서 삼림 자원이 가장 풍부하고, 녹지율이 제일 높으며, 1인당 소유한 공공녹지가 가장 많은 도심 지역으로서, '산과 물이 반, 도시 반'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
내몽골 고비사막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황사의 피해가 심한 편이다. 기후는 추운 스텝 기후(Bsk)에 해당하여 일단 여름에는 엄청 덥고 비가 약간 내리며 겨울에는 춥고 건조하며 바람도 강하다. 냉대기후와 건조기후 중간에 있다고 봐도 된다.
사막 바로 아래 있어서 극단적으로 건조하며 연교차도 매우 크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인구 천만에 준하거나 그 이상급의 메갈로폴리스 중 서울과 함께 연교차가 가장 큰 도시이다. 대륙 동안 기후와 사막 기후가 섞인 형태이기 때문인데 5월부터 최고기온 40도를 찍는 경우가 흔하다. 반대로 겨울은 서울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춥다. 여름에도 비가 잘 오지 않을 정도인데다 겨울에는 아예 사막 수준으로 매우 건조해서 실제 최고-최저기온은 서울을 능가할 정도로 연교차가 크지만, 체감 연교차는 서울에 못 미친다. 또한 여름에 열사병 위험이 있으며, 겨울에는 꽤 추운 날씨임에도 대구광역시나 부산광역시에 비견될 정도로 눈이 오지 않는다.
또한 한국, 일본과 다르게 봄철의 극값과 평균 기온 모두 가을철보다 높게 나타나며 상반기(3월 이후)에는 기온 상승 폭이 매우 크고 하반기(8월 이후)에는 하강 폭이 매우 크다.
1981년-2010년 기준 최한월 1월의 평균 기온은 -3.1℃이다. 최난월 7월 평균 기온은 26.7℃이며, 연 평균 기온은 13.2℃로 숫자만으로는 한국의 남부 내륙 지역과 비슷하다. 21세기 들어 가장 심한 한파는 2021년 1월 7일의 -19.7℃이고, 그 다음에는 2016년 1월 23일, 영하 17.4℃였으며 최고기온은 -11.0℃에 불과했다.
폭염은 더 심한데 5월부터 폭염 수준 더위가 찾아오기 시작하고 한여름엔 40도 이상 올라가기도 한다. 2017년 7월 14일 아프리카에서 온 관광객이 베이징의 더위에 탈진한 일도 있었는데, 당시 온도계는 무려 42.5도를 나타냈다. 다만 습기가 별로 없다 보니 견딜 만한 편이다. 1951년 이후 기록된 역대 최저기온은 -27.4도 이며 역대 최고기온은 41.9도 이다.물론 이는 베이징 시내 중심부의 기온이며 외곽 지역인 화이러우구 등은 겨울철 영하 30도까지도 떨어지는 등 기온편차가 심하다. 이는 도심 열섬현상이 원인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체감 온도는 비슷하거나 덜하지만 건조 기후의 영향으로 단순 최고-최저 기온 수치로는 서울을 능가하는 연교차를 자랑한다.
연간 강우량은 500~560㎜이다. 생장기의 농업용수 수요치는 200~300㎜가 부족하다. 재해성기후로 남부는 가뭄과 황사 등이 많이 발생하는 편이고, 서북쪽 산간지역은 여름에 흙·모래·돌이 섞인 물사태가 쉽게 발생한다. 겨울에 춥지만 워낙 건조하다보니 눈이 아예 안 오며 차량 통행도 많은 데다 베이징 외곽에 잔뜩 자리한 공장들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황사와 대기오염 때문에 공기가 매우 안 좋다.
2013년 1월에 들어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발생해 베이징을 뒤덮었다. 스모그가 뒤덮었다지만 사진만 보면 안개로 뒤덮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미묘하다. 이 대기오염 등이 문제로 지적되자 2008 베이징올림픽 때에는 아예 올림픽 기간 동안 베이징 근교 공장 올 스톱이라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어쩌겠는가, 정부에서 닫으라고 했다. 덕분에 공장 노동자들은 8월 내내 유급휴가를 받았다. 현재는 정상회담/엑스포 등 국가 중요 행사가 열리면 닫아라 공장을 시전한다. 그리고 이렇게 중국의 국가 주요행사가 베이징에서 개최되면 이후로 3일에서 1주일간은 서울 공기도 덩달아 깨끗해지는 경향이 있다.
역사
기원전 1000년 경 춘추전국시대의 나라 중 하나인 연(燕)의 수도인 계(薊)가 오늘날 베이징(北京)이 있는 곳에 건립되었다. 이후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 한 후 계성은 주(州)가 되었고 삼국 시대에는 공손찬과 원소가 보유하다가 조조의 위나라에게 함락되었다 936년 현재 베이징을 포함한 북부의 넓은 영토를 거란의 요(遼)에게 대부분 정복되었다. 938년에 요는 지금의 베이징을 정복하여 한족들을 유린한 다음 두 번째 수도를 건립했고 그것을 남쪽의 수도라는 뜻인 남경(南京)으로 불렀다. 1125년 여진의 금(金)왕조는 요를 합병하고 1153년 동북의 회령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여 중앙수도라는 뜻의 중도(中都)라고 개칭했다.
1215년에 몽골이 1267년에 북쪽에서 상도(上都)를 건설했다. 중국의 전 지역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로 원(元)왕조의 시조 쿠빌라이 칸은 베이징보다 북쪽에 칸발리크 (汗八里, Khanbaliq)(위대한 칸의 거주지라는 뜻) 혹은 대도(大都)를 건설하여 수도를 삼았고 이 위치는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 속에 'Cambuluc'로써 잘 나타나 있다.
1368년 원의 멸망 후 도시는 명(明)조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고 순천(順天)지사 관저가 도시의 주위 지역에서 설립되었다. 1403년 이 곳이 수도인 난징(南京)보다 북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베이징(北京)으로 개명한 뒤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북경은 또한 경사(京師)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단순히 수도라는 뜻이다. 명나라 시기 동안 전통적인 베이징의 구획이 확립되었다. 자금성과 천단 등의 건축물이 1406년에서 1420년대 사이에 건설되었다. (현재의 천안문(중국어 정체자: 天安門)은 1651년에 마지막으로 재건된 것이다.) 1644년, 만주족의 청나라가 베이징을 점령한 뒤 베이징을 유린하였고 베이징은 청의 통치 기간 동안 중국의 수도로 남게 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을 일으킨 혁명 정부는 베이징은 만주족의 수도라는 주장으로 난징을 수도로 정하고자 하였다. 의 치열한 대화 끝에 베이징은 난징과 같이 수도로서의 역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1916년 중국은 지방 군벌들의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며, 각자 베이징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 1928년, 국민당 정부는 북부의 군벌을 소탕하고, 난징을 공식적인 중화민국의 수도로 정한 뒤, 베이징을 북부의 평화 또는 북부의 평화를 회복시켰다는 뜻의 베이핑(北平)으로 개칭하여 베이징의 상징적인 의미를 떨어뜨렸다. 이후 일본제국이 베이징을 정복하였다.
제2차 중일전쟁 당시인 1937년 7월 29일, 베이징(베이핑)이 일본 제국에게 정복된 기간 동안 도시는 그 이전의 이름인 베이징으로 개명되었고, 일본 제국에 의해 많은 한족들이 강간되었다. 이 곳에 일본에게 점령된 화북의 일부 한인들이 설립한 괴뢰정부인 중화민국임시정부(中華民國臨時政府)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에 패전하게 되고, 한편으로 소련이 만주 지역을 점령하는 등과 같은 영향에 따라 베이징의 이름은 다시 베이핑으로 바뀌었다.
1949년 1월 31일, 공산당 세력은 베이핑으로 무혈입성을 하였고, 같은 해 10월 1일, 베이징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을 발표하였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중국어 정체자: 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에서 베이핑은 공산 정권의 수도로 확정되었고, 이름도 다시 베이징으로 개명되었다.)
스징산구는 중화민국 시절인 1948년에 생겨났으며, 이후 권역이 조금씩 바뀌기는 하였으나 스징산구 자체는 폐지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베이징 산하 구로써 자리하였다.
관광
스징산구는 110곳의 역사 문화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세계적으로 2곳밖에 안 되는 석가모니 부처님 이빨 사리 중의 하나인 바다추(八大處) 링광쓰(靈光寺), 명나라 벽화로 유명한 파하이쓰(法海寺), 츠산쓰(慈善寺), 완산치오(萬善橋), 난마창(南馬場)저수지 등 관광지이다. 그외 스징산 놀이동산과 국제조각단지, 랑위안(郎園)파크 등이 포함되어 도시예술센터, 잔디미술관, 창의와 체험이 일체화된 문화 예술구이기도 하다.
산업
베이징 도시 마스터플랜이 부여한 기능적 지위을 둘러싸고, 스징산구는 최선을 다해 현대 금융을 주도로, 과학기술 서비스, 디지털 창의성, 차세대 정보기술을 특색으로, 비즈니스 서비스를 주축으로 한 '1+3+1' 최첨단 산업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금까지 스징산구는 국가급 과학기술 혁신기지 17개, 각 유형의 시급 과학기술 혁신기지 78개가 있고, 국가 하이테크 기업 수는 900개에 달한다. 2019년 스징산구의 지역 생산총은 630억 위안을 기록하고, 경제 성장에 대한 제3차 산업의 기여도는 70%를 웃돌았다.
새로운 서우강 첨단 산업 종합 서비스구의 부지 면적은 8.63㎢로서, 베이징시에서 유일하게 규모가 크고, 여러 지역을 연결시켜 개발하는 구역으로서, 구내에 활성화할 예정인 공업용지는 967만㎢이며, 베이징 은행보험 산업단지, 중하이(中海) 과학기술 금융 타워, 징시(京西) 비즈니스 센터 등 프로젝트는 이미 완공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베이징시 '9+N' 정책 벤치마킹으로, 스징산구는 비즈니스 환경 최적화를 위한 준비 및 구현할 3년 실행 계획을 제정하여 '원스톱 처리·입주 및 접수의 비율은 모두 90%를 초과하였다. 그린 통로를 구축하고 원스톱식 행정서비스 업무구역을 조성했으며, 30개에 달한 높은 빈도 사항은 '1회에 처리 완료'를 실현한다. '백인의 워크팀은 백개의 기업과 접목(百人對百家)', 1:1 맞춤형 서비스 기업 메커니즘을 출범하여, 인재 도입, 자녀입학, 고위 관리자의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여, 기업 직원들의 고민을 해결하여 준다. 아울러, 스징산구는 공공 서비스, 산업발전, 단지건설 등 방면에서 20조항 정책을 출범하여, 1+N 정책체제구조를 구축하여, 과학기술 혁신 지원, 대출 이자 할인율, 부동산 임대비 감면, 인재 아파트 제공 등을 포함한 각종 혜택 정책을 마련한다. 그에, 스징산구는 현대 혁신산업 발전기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자본을 활용해 구내 우위 기업들이 더 크고 강하게 발전하도록 지원을 제공한다.
지도
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스징산구〉, 《위키백과》
- 〈스징산구〉, 《나무위키》
- 〈베이징시〉, 《위키백과》
- 〈베이징시〉, 《나무위키》
- 〈스징산구 소개〉, 《베이징시 인민정부》
- 〈두산백과: 스징산〉,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동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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