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행정수도(行政首都)란 한 나라의 입법・행정・사법 기능이 도시별로 나뉘어 있는 이중수도(二重首都) 체제에서 행정부가 자리하는 도시를 말한다. 한국도 세종특별자치시를 새로운 행정수도로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위헌 판결을 받고 무산되었다.
개요
미국의 워싱턴DC, 독일의 베를린, 캐나다 오타와, 호주의 캔버라, 브라질 브라질리아, 터키 앙카라,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프리토리아….
이들은 수도권 과밀화 등의 이유로 발생한 도시경쟁력 저하를 차단하고 행정효율을 제고하기 위해 건설된 행정수도 혹은 행정도시들이다.
행정 기능을 분리해 별도의 행정수도를 지정한 국가는 보통 연방제를 채택한 국가다. 과거 미국 뉴욕시에서 필라델피아시로, 이후 다시 워싱턴DC로 수도를 이전한 미국, 멜버른시에서 캔버라시로 수도를 옮긴 호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연방제 국가는 역사적・정치적 이유로 수도를 옮겼다. 미국의 경우 북부주와 남부주 사이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뉴욕보다 아래에 있는 포토맥 강변 인근에 워싱턴DC를 설립했다.
호주 또한 독립 당시 임시 수도는 멜버른이었지만, 당시 호주의 양대 대도시였던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 정치적 타협 끝에 중간에 위치한 캔버라 땅을 수도로 선정했다.
이런 가운데 지역 개발을 위해 행정수도를 따로 건설한 예는 브라질의 브라질리아시가 있다.
앞서 브라질은 식민지 시절부터 동부 해안에 위치한 리우데자네이루시, 상파울루시를 중심으로 경제 활동이 밀집해 있었다. 브라질 정부는 내륙을 개발하고 심각한 수도 과밀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해안에서 965km 떨어진 땅에 계획도시 브라질리아를 건설하기로 했다.
브라질리아는 지난 1960년 처음 수도로 지정된 후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인구 300만의 큰 도시로 발전했으며 대통령관저, 국회의사당, 최고재판소 등 행정부・입법부・사법부 핵심 기관이 모여 있어 브라질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한다.
그러나 브라질리아는 급격한 도시 팽창으로 인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도로, 하수처리시설, 거주지 등 기반시설이 부족하고 관공서가 몰린 도시 중앙에만 일자리가 밀집해 있어, 출근 시간에만 유동인구가 몰렸다가 퇴근 이후 인근 침상도시로 빠져나가는 텅 빈 도시가 됐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영 매체 '파이낸셜 타임즈'는 과거 브라질리아를 조명한 특집에서 '도시적 낭만을 꿈꾸는 사람에게 경고를 주는 사례'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세계의 행정수도
- 미국 워싱턴DC
민주주의 이념 담긴 철저한 계획도시
워싱턴DC는 1790년 수도 소재지로 결정됐다. 도시 설계자는 피에르 랑팡이다. 각종 정부기관, 박물관 그리고 도시의 복합단지(워싱턴 내셔널몰)가 방사・격자형으로 잘 정돈되어 있는 게 이 도시의 특징이다. 네모난 모양을 가진 도시의 대각선을 그어 보면 사각뿔이 형성된다. 그 꼭짓점에 의회의사당이 있다.
대칭은 아니지만 의회의사당 좌우에 백악관과 연방대법원이 위치해 있다. 민의의 전당 의회가 행정부보다 우선한다는 의미를 담은 기획 설계 탓이다. 도시 설계 자체에 미국 민주주의 정신을 담아낸 것이다. 그 의도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알링턴 국립묘지다. 해발 100m 정도의 언덕에 위치한 알링턴 국립묘지 꼭대기에 있는 '전몰장병상'이 의회의사당을 정면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남북통일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죽어간 장병이 의회의사당을 지켜보고 있다. 설계에 담긴 미국 정신이 워싱턴 DC를 세계의 수도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됐다고 할 수 있다.
- 독일 베를린
행정기관 절반 이전 효율적 도시이용 교훈
통일된 독일은 1991년 과거 서독 수도(본)의 행정기관의 절반가량을 베를린으로 이전했다.
구동독지역에 있던 베를린의 경제 활성화 효과를 겨냥한 것이지만 정작 베를린은 경제보다는 정치 비중이 훨씬 큰 도시로 바뀌어갔다.
이 때문에 '1국2수도체제'의 비효율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으며 베를린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럽 대표도시로 키운다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와 언론중심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도 그 일환이다.
- 호주 캔버라
도시 전체가 공원
호주 캔버라는 전형적인 계획도시다. 무려 80년에 걸쳐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수도이전을 추진한 결과다. 특히 자연과 문명이 조화된 인공도시를 만든 것은 호주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특히 도시설계 콘셉트은 인공호수(벌리 그린피 호수)를 중심으로 환상, 바둑판 모양으로 꾸민,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원이다.
캔버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행정과 문화 중심도시가 되는 바람에 산업기반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
전시행정 비난 불구 관광 관문으로 정착
말레이시아는 14년 동안 끌어온 수도이전 작업(쿠알라룸푸르→푸트라자야)을 지난 2010년에 완료했다. 수도이전은 '아시아의 가치'를 주창했던 마하티르 전 총리에 의해 시작됐다.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한 장기발전전략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마하티르 전 총리는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무엇보다 푸트라자야는 쿠알라룸푸르와 불과 2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인근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업지구가 자리를 잡고 정부가 각종 문화행사를 유치하는 등 '수도 마케팅'에 나서면서 푸트라자야는 서서히 쿠알라룸푸르의 그늘에서 벗어나 말레이시아 관광의 관문으로 터를 잡아가고 있다.
- 브라질 브라질리아
독수리형상을 모델로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는 선거의 산물이다. 해안지역에 밀집된 인구 집중을 완화하고 낙후된 내륙의 개발을 촉진하는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행정수도 건설을 공약한 쿠비체크 전 대통령이 수도 이전 건설을 착수했다. 1960년 수도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리아로 옮겼다. 브라질리아는 현대 건축의 거장 오스카 니마이어가 독수리 형상을 기하학적으로 설계해서 만든 인공도시다. 머리 부분에 대통령관저와 국회의사당, 최고재판소가 들어선 '3권 광장'이 있다. 몸통 부분엔 정부기관, 양 날개 쪽에는 주택가와 상업지구가 조성됐다. 유네스코는 1987년 브라질리아를 '현대와 미래가 어울리는 독창적인 도시'로 평가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도시건설 과정에서 든 과도한 재정 부담(20억달러)은 결국 인플레이션과 외환위기 원인이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1]
우리나라의 행정수도 이전
우리나라는 현재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모두 서울에 모여 있는, 수도권 중심 국가다. 국가의 모든 기능이 한 도시에 모여 있으면서 인구 과밀화, 국토 불균형 발전 등의 부작용이 끊임없이 지적됐다. 핵심적인 국가 기관이 모두 모여 있기 때문에 교육, 교통인프라, 기업 등 사회 전반적인 요소들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지속하는 것이다. 실제로 5,000만 인구 중 수도권인 서울, 경기, 인천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2,0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수도권에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가까운 국민이 거주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급에 대한 문제는 해결하기 쉽지 않고, 수요는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부동산 정책을 내놓더라도 그 효과가 미미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1년 당시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인 김대중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을 제안하면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군불 때기 식 행정수도 이전이 반복되었다. 정부 과천청사가 완공되었지만, 이전한 부서가 많지 않고, 과천 역시 수도권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수도권 집중화를 해결하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일부 정부 부서를 대전 청사로 이전했지만, 규모가 크지 않았다.
그리고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행정수도 이전 논의를 시작하게 된다.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정부가 발의하게 되면서 세종시로의 행정수도 이전이 본격화되었다. 이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었지만, 헌법재판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수도'라는 개념은 조선 시대의 '경국대전'부터 이어져 온 '서울'이라는 논리였다. 헌법상에 수도가 서울이라는 문구는 존재하지 않지만, 관습법적으로 수도는 서울이기 때문에, 수도를 이전한다는 해당 법률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결정이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관습법 국가가 아닌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법에 따라 체계가 유지되는 '성문법' 국가다. 그런데도 법조문에 따른 판단이 아닌 '관행' 혹은 '관습'에 의해 내린 판단은 당시 많은 논란을 남기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판단 때문에 관련 법률은 효력을 잃게 되었고,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 지역 행정 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라는 새로운 법률이 통과된다. 그리고 세종특별자치시는 행정수도가 아닌 '행정 중심 복합도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세종특별자치시에는 국가의 행정기관 대부분이 이전했지만, 각종 교육기관, 기업체, 교통인프라 등이 따라오지 않으면서 도시의 기능이 서울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 기관 이전 이후 공무원들이 대거 이주했지만, 이러한 이유로 가족 단위 전체가 이주하지 않고 공무원 당사자만 따로 이사 오는 등 실질적인 도시의 성장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에서 KTX를 통해 매일 출퇴근하는 공무원도 상당히 많다. 단지 수도의 기능 중 하나인 행정부를 이전한다고 하여 인구 분산과 균형발전이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2020년 기준 세종시에는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환경부, 농림축산 식품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22개의 중앙행정기관과 21개의 소속 기관, 15개의 국책연구기관, 4개의 공공기관이 이전해 운영되고 있으며 총 2만여명이 넘는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고 35만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등은 업무의 성격 등에 의해 이전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각주
참고자료
- 〈수도〉, 《위키백과》
- 〈수도(행정구역)〉, 《나무위키》
- 임비호 기자, 〈"행정수도, 백지계획때부터 시작됐다"〉, 《세종의소리》, 2020-06-20
- 〈세계의 행정도시〉, 《경향신문》, 2012-10-18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