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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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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시 시기
오키나와시 휘장

오키나와시(일본어: 沖縄市, おきなわし, 문화어: 오끼나와 시)는 오키나와섬 중부에 위치한 시이며, 오키나와 현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다.

가데나 공군기지등의 주일미군 기지가 많은 등 원인으로 미국색이 풍부하여 일본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진 가지고 있다. 또한 예능도 활발하여 많은 음악가를 낳은 도시이다. 도치기현 도치기시, 야마나시현 야마나시시와 마찬가지로 도도부현 이름과 동일한 이름의 도시이지만 현청 소재지는 아니다.

개요[편집]

연혁[편집]

류큐 왕국시절에는 고에쿠(越来)로 불렸다. 1666년에 고에쿠 마기리에서 미사토(美里) 마기리가 분리된다. 류큐국이 일본제국에 병합된 후 1908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각각 고에쿠 촌, 미사토 촌이 되었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 중에 미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고에쿠 촌의 고야(胡屋)란 곳에 군시설을 설치하게 되는데, 이때 미사토 촌의 코쟈(古謝)란 지역과 헷갈리면서 이곳의 기지를 "캠프 코자(Camp Koza)"라고 부르게 되었다. 여기서 유래한 코자(コザ)라는 지명이 고에쿠라는 이름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후 1945년 9월에 코자시(胡差市), 1946년 다시 고에쿠 촌이란 이름을 쓰다가 1956년 6월 가타카나를 쓴 코자촌(コザ村)이 되며 코자란 이름이 정착하였고, 같은 해 7월에 코자시(コザ市)로 승격되었다.

미군 카데나 공군기지의 입구에 자리잡은 기지촌으로서 미군정 시대에 급속히 성장한 도시이다. 하지만 미군에 의한 사건사고도 잦은 편이어 갈등도 컸다. 1970년에는 미군 병사의 뺑소니가 발단이 되어 코자 폭동이 발생, 미군 차량 수십 대에 불을 지르고 심지어 군 부지 내부의 미국인 학교에까지 방화를 저지르는 일이 벌어졌다.

1974년 코자시와 미사토 촌이 합병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도시 이름을 응모하게 되었는데, 여러 후보 가운데 오키나와시(沖縄市)로 최종 결정되었다.

그러나 현재도 오키나와 주민들에게는 "코자"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리고 있는데, 오키나와시 관광포털 사이트도 "코자 웹(KOZA WEB)"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지리[편집]

오키나와섬 중부이며 나하시에서 북동쪽으로 약 2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태평양에 접하고 있다. 서비스업의 중심은 국도 제330호선 주변의 고야 십자로(胡屋十字路)에서 고자 십자로(コザ十字路)에 이르는 거리이다. 또 고야 십자로에서 가데나 기지 게이트에 걸친 공항 거리(空港通り)나 중앙 파크 애비뉴(中央パークアベニュー)는 미군이 많이 방문하기 때문에 간판에 일본어와 영어를 병기하는 가게가 많다.

다만 근래에 차탄 정(北谷町) 미군 지구와 우루마시(うるま市)에 대형 상업시설이 건설됨에 따라 이 거리의 상업 쇠퇴가 예상된다. 도시 북부의 가데나정(嘉手納町)이나 온나촌(恩納村) 같은 지역은 가데나 주일 미 공군 기지와 탄약고가 대부분의 면적을 점유하고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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