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학원(學院)이란 일정한 목적 교과 과정 설비 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을 말한다.[1]
목차
개요
학원은 학교교육 이외의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모든 교육을 실시하며 평생교육 차원에서 볼 때 계속교육의 강화를 의미하여 정규학교에서 학습하고 있는 자를 포함한 연령, 성별을 불문하고 국민 모두가 그 대상에 해당된다. 학원과 교습과정은 수강자에 의하여 자발적·선택적으로 이루어지고, 교육비는 교습과정, 지역별로 책정되며 당국의 지도 조정하에 설립자가 정한다. 학원의 종류는 크게 구분하면 인문, 기술, 외국어, 사무, 음악, 미술, 보습, 컴퓨터, 속셈, 웅변, 서예, 연예, 자동차 운전 및 독서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현대에는 교육인구의 폭등과 다양한 교육수요 욕구에 따라 학교교육이 지닌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된다.[2]
역사
삼국시대 ~ 조선시대
- 학원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 국립학교인 국학, 태학, 주자감 등이 존재하였으나 그 밖의 대다수의 교육은 사학, 즉 학원 형태의 교육으로 이루어졌다. 경당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에서는 교육열이 상당했으며, 국내 교육에 머무르지 않고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만 매년 수백 명에 달했다. 관직에 오르지 않아도 학식만으로 존경받는 인물들이 다수 있을 정도로 이미 고학력자와 지식인에 대한 우대가 확실했던 사회였다. 특히 당나라 빈공과에 합격하는 목표로 많은 사람들이 열공했으며, 그 결과 신라 학생들은 빈 공과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고려 시대에는 과거제가 도입되었고, 비록 음서제가 흥하여 한계가 있었지만 과거 합격은 큰 영광이었기에 과거 시험을 위한 사학들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 조선시대에는 공교육 기관인 성균관, 향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교육은 서당과 서원 등 사설 학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고려 말 성균관 박사로 성균관에서 성리학을 가르치던 길재는 조선이 건국되자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인 경상북도 선산으로 내려가 학원을 차려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이는 훗날 사림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퇴계 이황 등이 설립한 도산서원 등은 엘리트 기숙 학원 형태였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합격해야 양반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던 만큼 과거 시험을 위한 사교육이 성행했다. 소과, 대과, 초시, 복시, 전시 단계별의 학원이 존재하였으며, 상위로 올라갈수록 소수 정예 고액 과외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전시까지 합격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지만 사회에서는 꽤나 위세를 떨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과거 시험을 위한 학원과 사교육은 전국적으로 성행했다.
근대 및 일제강점기
- 근대 시대에 이르러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기존 과거 시험 중심의 서당 교육을 대체하는 신식 교육이 생겨났는데, 서양 선교사들에 의한 학당, 그리고 민족 선각자들에 의해 설립된 강습소(講習所) 등이 있다. 이 중 일부는 중학교, 전문학교 형태로 공교육 체계에 흡수되기도 했지만, 강습소의 대다수는 사설 교육기관으로 남았다.
-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높아지는 교육열에 비해 학교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각 학교는 입시를 통해 학생을 선발했다. 20~30년대 초등학교 경쟁률은 2 대 1, 중고등학교 입시 경쟁률은 10 대 1, 전문학교와 대학은 3 대 1에서 20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특히 중학교 시험의 경쟁률이 엄청났기 때문에 입시가 대단히 치열했다고 한다.
해방 후 ~ 1950년대
- 해방 후 미 군정기에는 일제강점기 동안 정식 대학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연희, 보성, 이화 등 명문 전문학교들이 미국식 학제를 따른 4년제 종합대학교로 잇따라 인가되면서 대입의 문이 대폭 확대되었다.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각 대학들은 대학별고사(본고사)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대입 학원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꾸준히 증설되었으나, 여전히 중학교, 고등학교의 수는 부족했고, 명문 중고교에 입학하기 위한 입시 경쟁도 치열했다.
- 1950년대 초에는 일본에서 교사 생활을 했던 안현필이 한국에서 일본의 대형 입시 학원에서 영향을 받은 E.M.I 학원이라는 대형 학원을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대형 단과 학원이 시작되게 되었다. 인기 강사들을 내세워 수백 명에 이르는 대형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시스템이 E.M.I 학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편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를 위한 종합반 형식의 학원들도 성행했다.
1960 ~ 현재
- 1960년대는 본고사 중심의 대입도 대입이지만, 중학교 입시 전쟁이 치열했다. 60년대에는 중학교 입시가 과열되었고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원과 과외가 성업했다. 60년대 당시 중학교 입시는 체감으로는 고교 입시나 대입보다 더 치열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자 고등학교 입시가 과열되었다. 경기고를 비롯한 명문고의 명문대 합격률은 해가 지날수록 높아졌다.
-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 경기고 학생들의 절반 이상인 300명 이상이 서울대에 합격했으며, 서울고와 경복고에서 200명 이상, 경남고, 부산고에서 150명 이상, 경북고, 광주 일고 등이 100명 이상의 서울대 합격자를 내면서 명문고에서 서울대 합격자 수의 대부분을 배출하였고 고교 입시가 갈수록 치열해졌다.
- 1980년 7월 30일 "7·30교육 개혁 조치"가 발표되어 재학생의 과외 교습 및 입시 목적의 재학생 학원 수강을 금지하였다. 이에 따라 모든 학생의 학교 외 수업이 금지되었다. 다만 재수학원은 학원 금지 조치에 해당하지 않았다. 또한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경감한다는 이유로 일선 학교들의 보충수업 및 야간자율학습도 전면 폐지되었다.
- 1989년 6월부터 중·고교 재학생의 방학기간 중 학원 수강이 허용되었고, 대학생의 비영리 과외가 허용되었다. 1990년대 초에 학기 중 학원 수강이 가능하였다. 이후 전국적으로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들이 다시 전국적으로 성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0년대 중후반부터는 학원이 엄청나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 교육열을 완화를 주장했던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 유명한 이해찬이 교육부 장관이 되면서 1999년 대한민국 입시 제도는 전면 쇄신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해찬 장관은 대학 입시를 무시험 대학 전형으로 바꾸고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고 공언했다. 동시에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학력고사, 모의고사 등을 전면 폐지했다. 1999년부터 고교 보충수업이 단계적으로 금지되어 2002년에는 전면 금지되었지만, 직후 2002년 이해찬 세대로 유명한 이해찬 당시 교육부 장관이 입시 교육이 아닌 특기 정성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보충 수업이 부활했다. 이러한 총체적인 교육개혁의 결과 이제는 대학교를 가기 위해 공부할 필요가 없는 불리는 공부 안 해도 되는 시대, 즉 이해찬 세대가 도래했다. 이때부터 강제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학교의 모습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2010년 새벽시간 학원 운영이 금지되며 밤늦게까지 운영하던 학원이 타격을 입었다.
-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는 교육 정책에는 거의 손대지 않으면서 노무현 정부의 수시 확대 및 수능 과목수 대폭 축소로 인한 난이도 상승 추세는 이후 15년 넘게 큰 틀의 변화 없이 계속되었다. 수시는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에 40%를 돌파했으며,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매년 조금씩 늘어나 50%를 넘겼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조금씩 늘어나 60%를 넘겼으며,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70%를 넘기게 되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학원에 집합 금지 명령이 내려지면서 많은 학원들이 타격을 받았고,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흥하게 되었다.[3]
목적
학원의 설립 목적은 국민에게 실력 보충의 학습 기회 제공, 취업에 필요한 지식·기술의 습득 기회 제공, 정서함양 및 소질 개발 기회의 제공, 여가시간 활용방안의 제공, 승진 및 전직에 요구되는 능력 향상을 위한 기회 제공 등을 들 수 있다.[2]
특성
학생들에게 학원이란 자기의 부족한 공부를 더하는 곳이지만 단순히 공부만을 하는 곳은 아니다. 사교의 목적도 띄는 곳인데 특히 남중, 남고, 여중, 여고의 경우는 이성친구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이성친구가 아니더라도 다른 학교 친구들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학교가 공교육의 중심이라면, 학원은 사교육의 중심 격이다. 대한민국 교육에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입시의 진정한 주역으로, 현 입시 교육의 알파와 오메가라 할 수 있겠다. 현 대한민국 대졸 취업률의 1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 사교육 시장의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하나쯤은 꼭 다니는 곳으로 여겨진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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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입학설명회나 상담을 가보면 선행학습을 기준으로 볼 때 아이는 그간의 공백이 길어 많이 늦었고 갈 길이 멀었다. 선행학습의 부작용 및 효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우리 애만 안 하는 것도 염려스러웠다. 올바른 교육 가치관을 가지고 정도를 지키기엔 내가 지극히 평범한 엄마라 자신이 없었다. 이토록 선행을 강조하다 보니 아이들의 행복은 과중한 학습 부담에 밀려 유예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저마다의 개성 있는 영법으로 헤엄치며 무한한 가능성을 만끽해야 할 나이에 아이들은 무작정 나아가다 어느 순간부터는 규격에 맞춘 레인을 무한히 반복하며 기록만 단축하는 지치고 힘든 경쟁에 내몰렸다.[4]
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학원〉, 《네이버 국어사전》
- 〈학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학원〉, 《나무위키》
- 이미란 기자, 〈수험생에게 보내는 응원가〉, 《조선일보》, 2022-11-14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