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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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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치

팡산구(중국어: 房山区 fáng shān qū)는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이다. [1][2][3][4]

개요

팡산구의 면적은 2,019㎢이며 인구는 131만 3,000명(2023년)이다. 먼터우거우구, 펑타이구, 다싱구와 접한다. 베이징 도심에서 38km 떨어진, 타이항 산맥 동쪽에 위치하여 산지가 전체 면적의 약 60%를 차지한다.

팡산구 서부로 타이항 산맥이 지나가고 구 동부는 융딩허 강(永定河)이 흐르는 지역으로, 본래는 말만 베이징인 농촌이었으나 현재는 지하철도 지나가고 대규모 주거단지도 지속적으로 올라와 인구가 크게 늘었다. 특히 량샹지구(良乡地区)의 경우에는 베이징의 대학촌으로 개발중이기 때문에 베이징 내 여러 유명 대학교들이 팡산구에 캠퍼스를 짓고 있다.

을 비롯한 수자원도 풍부하여 전체적으로 농업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징광철도와 징위안철도가 교차하며, 징스고속도로를 비롯한 도로망도 잘 갖춰져 있다.[5][6]

자연환경

구의 동쪽과 남쪽은 비옥한 평야 지대이고 남서쪽과 북동쪽을 따라서 좁은 구릉 지대가 펼쳐져있다. 강과 수가 많아서 수자원이 풍부하다. 위치와 기후, 환경은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조건이다. 따라서 밀과 쌀과 다양한 양질의 과일과 육제품이 생산된다.

내몽골 고비 사막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황사의 피해가 심한 편이다. 기후는 추운 스텝 기후(Bsk)에 해당하여 일단 여름에는 엄청 덥고 비가 약간 내리며 겨울에는 춥고 건조하며 바람도 강하다. 냉대기후건조기후 중간에 있다고 봐도 된다.

사막 바로 아래 있어서 극단적으로 건조하며 연교차도 매우 크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인구 천만에 준하거나 그 이상급의 메갈로폴리스 중 서울과 함께 연교차가 가장 큰 도시이다. 대륙 동안 기후와 사막 기후가 섞인 형태이기 때문인데 5월부터 최고기온 40도를 찍는 경우가 흔하다. 반대로 겨울은 서울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춥다. 여름에도 비가 잘 오지 않을 정도인데다 겨울에는 아예 사막 수준으로 매우 건조해서 실제 최고-최저기온은 서울을 능가할 정도로 연교차가 크지만, 체감 연교차는 서울에 못 미친다. 또한 여름에 열사병 위험이 있으며, 겨울에는 꽤 추운 날씨임에도 대구광역시나 부산광역시에 비견될 정도로 눈이 오지 않는다.

1981년-2010년 기준 최한월 1월의 평균 기온은 -3.1℃이다. 최난월 7월 평균 기온은 26.7℃이며, 연 평균 기온은 13.2℃로 숫자만으로는 한국의 남부 내륙지역과 비슷하다. 21세기 들어 가장 심한 한파는 2021년 1월 7일의 -19.7℃이고, 그 다음에는 2016년 1월 23일, 영하 17.4℃였으며 최고기온은 -11.0℃에 불과했다.

폭염은 더 심한데 5월부터 폭염 수준 더위가 찾아오기 시작하고 한여름엔 40도 이상 올라가기도 한다. 2017년 7월 14일 아프리카에서 온 관광객이 베이징의 더위에 탈진한 일도 있었는데, 당시 온도계는 무려 42.5도를 나타냈다. 다만 습기가 별로 없다 보니 견딜 만한 편이다. 1951년 이후 기록된 역대 최저기온은 -27.4도 이며 역대 최고기온은 41.9도 이다.물론 이는 베이징 시내 중심부의 기온이며 외곽 지역인 화이러우구 등은 겨울철 영하 30도까지도 떨어지는 등 기온편차가 심하다. 이는 도심 열섬현상이 원인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체감 온도는 비슷하거나 덜하지만 건조기후의 영향으로 단순 최고-최저 기온 수치로는 서울을 능가하는 연교차를 자랑한다.

연간 강우량은 500~560㎜이다. 생장기의 농업용수 수요치는 200~300㎜가 부족하다. 재해성기후로 남부는 가뭄과 황사 등이 많이 발생하는 편이고, 서북쪽 산간지역은 여름에 흙·모래·돌이 섞인 물사태가 쉽게 발생한다. 겨울에 춥지만 워낙 건조하다보니 눈이 아예 안 오며 차량 통행도 많은 데다 베이징 외곽에 잔뜩 자리한 공장들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황사와 대기오염 때문에 공기가 매우 안 좋다.

2013년 1월에 들어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발생해 베이징을 뒤덮었다. 스모그가 뒤덮었다지만 사진만 보면 안개로 뒤덮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미묘하다. 이 대기오염 등이 문제로 지적되자 2008 베이징 올림픽 때에는 아예 올림픽 기간 동안 베이징 근교 공장 올 스톱이라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공장 노동자들은 8월 내내 유급휴가를 받았다. 현재는 정상회담/엑스포 등 국가 중요 행사가 열리면 닫아라 공장을 시전한다. 그리고 이렇게 중국의 국가 주요행사가 베이징에서 개최되면 이후로 3일에서 1주일간은 서울 공기도 덩달아 깨끗해지는 경향이 있다.

역사

기원전 1000년 경 춘추전국시대의 나라 중 하나인 연(燕)의 수도인 계(薊)가 오늘날 베이징(北京)이 있는 곳에 건립되었다. 이후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 한 후 계성은 주(州)가 되었고 삼국 시대에는 공손찬과 원소가 보유하다가 조조의 위나라에게 함락되었다 936년 현재 베이징을 포함한 북부의 넓은 영토를 거란의 요(遼)에게 대부분 정복되었다. 938년에 요는 지금의 베이징을 정복하여 한족들을 유린한 다음 두 번째 수도를 건립했고 그것을 남쪽의 수도라는 뜻인 남경(南京)으로 불렀다. 1125년 여진의 금(金)왕조는 요를 합병하고 1153년 동북의 회령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여 중앙수도라는 뜻의 중도(中都)라고 개칭했다.

1215년에 몽골이 1267년에 북쪽에서 상도(上都)를 건설했다. 중국의 전 지역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로 원(元)왕조의 시조 쿠빌라이 칸은 베이징보다 북쪽에 칸발리크 (汗八里, Khanbaliq)(위대한 칸의 거주지라는 뜻) 혹은 대도(大都)를 건설하여 수도를 삼았고 이 위치는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 속에 'Cambuluc'로써 잘 나타나 있다.

1368년 원의 멸망 후 도시는 명(明)조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고 순천(順天)지사 관저가 도시의 주위 지역에서 설립되었다. 1403년 이 곳이 수도인 난징(南京)보다 북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베이징(北京)으로 개명한 뒤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북경은 또한 경사(京師)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단순히 수도라는 뜻이다. 명나라 시기 동안 전통적인 베이징의 구획이 확립되었다. 자금성과 천단 등의 건축물이 1406년에서 1420년대 사이에 건설되었다. (현재의 천안문(중국어 정체자: 天安門)은 1651년에 마지막으로 재건된 것이다.) 1644년, 만주족의 청나라가 베이징을 점령한 뒤 베이징을 유린하였고 베이징은 청의 통치 기간 동안 중국의 수도로 남게 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을 일으킨 혁명 정부는 베이징은 만주족의 수도라는 주장으로 난징을 수도로 정하고자 하였다. 의 치열한 대화 끝에 베이징은 난징과 같이 수도로서의 역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1916년 중국은 지방 군벌들의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며, 각자 베이징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 1928년, 국민당 정부는 북부의 군벌을 소탕하고, 난징을 공식적인 중화민국의 수도로 정한 뒤, 베이징을 북부의 평화 또는 북부의 평화를 회복시켰다는 뜻의 베이핑(北平)으로 개칭하여 베이징의 상징적인 의미를 떨어뜨렸다. 이후 일본제국이 베이징을 정복하였다.

제2차 중일전쟁 당시인 1937년 7월 29일, 베이징(베이핑)이 일본 제국에게 정복된 기간 동안 도시는 그 이전의 이름인 베이징으로 개명되었고, 일본 제국에 의해 많은 한족들이 강간되었다. 이 곳에 일본에게 점령된 화북의 일부 한인들이 설립한 괴뢰정부인 중화민국임시정부(中華民國臨時政府)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에 패전하게 되고, 한편으로 소련이 만주 지역을 점령하는 등과 같은 영향에 따라 베이징의 이름은 다시 베이핑으로 바뀌었다.

1949년 1월 31일, 공산당 세력은 베이핑으로 무혈입성 하였고, 같은 해 10월 1일, 베이징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을 발표하였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중국어 정체자: 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에서 베이핑은 공산 정권의 수도로 확정되었고, 이름도 다시 베이징으로 개명되었다.)

1958년에 저우커우뎬구(周口店区)라는 이름으로 베이징시에 편입되었고 1960년에 팡산현(房山县)으로 강등되어 1981년에 옌산구(燕山区)가 잠시 독립되었던 것을 거쳐서 1987년에 팡산현과 옌산구가 다시 팡산구(房山区)로 통합된다.

산업

중국 특산물인 백색 대리석을 비롯하여 매장량이 21억 톤에 이르는 석탄, 화강암, 규석, 점토, 광천수, 판석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농업, 어업, 목축이 고루 발달하였으며 특히 밀, 쌀, 각종 과일을 많이 재배한다. 석유화학, 건축, 전기, 기계, 전자, 직물, 인쇄, 신소재, 에너지, 식품가공, 관광 등도 급속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2023년 지역내총생산은 4.7% 증가했고 일반 공공예산 수입은 3.7% 증가한 96.1억 위안에 달했다. 규모 의상 공업 총생산액은 4.7% 증가한 1,068억 위안에 달했으며 고정자산 투자, 건안 투자는 각각 4.6%, 3.6% 증가했다. 사회소비재 소매 총액은 367.7억 위안이며 주민 1인당 가처분소득은 6.3% 증가한 5.2만 위안에 달했다.

관광

유구한 역사를 지닌 팡산구에는 70만 년 전의 저우커우뎬(周口店) '베이징 원인' 유적, 3,063년 역사를 지닌 류리허(琉璃河) 서주(西周) 시대 연(燕) 나라 수도 유적 및 860여 년 전의 금나라 황릉(金代皇陵)이 있다. 또한 팡산구는 생태환경이 우월하며 중국 팡산 세계지질공원(中国房山世界地质公园), 화베이(华北)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원시 재생림 상팡산 국가삼림공원(上方山国家森林公园) , 북방지역에서 최대 규모의 스화둥(石花洞)과 인후둥(银狐洞) 등을 비롯한 카르스트 동굴군을 보유하고 있다.

교통

팡산구는 징강아오(京港澳: 베이징-홍콩-마카오) 고속도로, 징쿤(京昆: 베이징-쿤밍) 고속도로, 건설 중인 징슝(京雄: 베이징-슝안) 고속도로 및 철도 교통인 팡산선(房山线)과 옌팡선(燕房线) 등이 개통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한데 베이징 다싱 국제공항까지 반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으며 슝안신구(雄安新区) 또는 수도 핵심 지역까지는 1시간 안에 갈 수 있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팡산구〉, 《위키백과》
  2. 팡산구〉, 《나무위키》
  3. 베이징시〉, 《위키백과》
  4. 베이징시〉, 《나무위키》
  5. 팡산구〉, 《베이징시 인민정부》
  6. 두산백과: 방산〉,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아시아 같이 보기

동아시아 국가
동아시아 도시
동아시아 지리
동아시아 바다
동아시아 섬
동아시아 강
동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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