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보리밥(Bori-bap)은 쌀에 보리를 섞어 지은 밥이거나 보리로만 지은 밥을 말한다.
개요[편집]
보리밥은 한국 요리의 하나로 보리를 넣어 지은 밥이다. 보리를 아주 많이 넣거나 보리로만 지은 밥은 꽁보리밥이다. 보리쌀로 지어낸 밥은 보통 백미(쌀)와 보리를 섞어서 밥을 지어내거나 아예 보리로만 밥을 짓는다. 보리의 식감이 상당히 거칠고 알도 굵기 때문에 그냥 쌀밥 짓던 방식으로 지으면 보리밥집에서 먹는 그 식감이 잘 나오지 않고, 물에도 좀 불리는 등의 추가 수고를 해야 먹을 만하다. 또한, 순전히 보리쌀만으로 지은 밥은 꽁보리밥이라고 한다. 50~60년대생은 국민학교 시절에 도시락으로 꽁보리밥을 싸가면 기립박수를 받던 기억이 1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름 그대로 보리에서 나온 보리쌀로 만든 밥이며, 보리밥 전용으로 가공된 제품은 할맥(割麥)과 압맥(壓麥,납작보리)이 있다. 압맥은 가공 도중 납작하게 짓누른 것, 할맥종은 가공 도중에 2등분한 것으로 작지만 빚깔이 희게 보이는 편이다. 백미와는 달리 보리가 첨가되었기 때문에 섬유질, 탄수화물, 단백질이 많은 편이며, 특히 비타민 B1, 비타민 B2가 많다. 혈당지수 또한 35로, 60인 백미밥이나 50인 현미밥보다도 낮다. 당뇨 환자에게 좋으며 천천히 소화되어 체지방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적기 때문에 비만에도 좋다. 식당에 따라 정식 형태로 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빔밥 형태로 먹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1][2]
상세[편집]
보리밥은 쌀에 보리를 섞어 짓거나 보리만으로 지은 밥을 말한다. 보리는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설화에 나타나고 있고,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보리가 풍년이 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제의 군창지에서도 보리가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이미 서민들의 중요한 주식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보리는 추위에 약하다는 결점을 빼고는 아무 흙에서나 자라는 곡물인데다 재해에 강하고 잡초를 뽑아주지 않아도 되므로 벼에 비하여 재배가 수월하다. 따라서 쌀을 주식으로 삼을 수 없었던 서민들은 삼국시대 이래 보리를 주식으로 삼았으며 이러한 상황은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에도 변함이 없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경작한 쌀은 농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거의 팔아야 하였고 강제 공출을 하여야 하였으므로 봄철인 3, 4월에 이르면 양식이 떨어져 보리의 수확을 애타게 기다려야 하였다. 이 시기를 보릿고개라 하며 보리가 익을 때까지 산과 들을 헤매며 나무껍질이나 나물을 캐어다 연명을 하였다.
보리가 익을락 말락 하면 덜 여문 곡식을 쪄서 식량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보리밥은 열무김치나 고추장에 비벼 먹거나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함께 먹으면 별미이다. 또, 보리가 완전히 익기 전에 베어다 쪄서 지은 햇보리밥의 누룽지를 끓여 만든 숭늉은 독특한 미각을 나타낸다. 한때는 이러한 보리밥을 경시하고 쌀밥만을 선호하여 정부에서 보리혼식을 장려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보리밥이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하여 보리밥을 먹는 가정이 늘고 있다. 특히, 보리밥은 각기병을 예방하고 변비를 방지하며 소화를 순조롭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3]
보리는 주요 재배식물의 하나로서 높이 1m 정도다. 마디가 높고 원줄기는 둥글다. 속이 비어 있고 마디 사이가 길다. 잎은 어긋나고 넓은 줄 모양의 바소꼴로, 뒤로 젖혀지지 않는다. 너비 10 ∼ 15mm이고, 녹색 바탕에 다소 흰빛이 돈다. 잎자루는 잎집으로 되어 원줄기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다. 녹색으로 털이 없으며, 잎혀[葉舌]는 짧다. 이삭은 줄기 끝에 달리고, 한 이삭에는 15 ∼ 20개의 마디가 있다. 한 마디에는 3개의 영화(穎花)가 달린다. 한 마디에 달리는 3개의 영화가 모두 여물어서 얼기설기 달린다. 그러므로 씨알의 배열이 6줄로 되어 여섯줄보리가 된다. 3영화 중 가운데 영화만 여물고 2개의 영화는 퇴화되어, 씨알이 2줄로 배열되는 것은 두줄보리가 된다.
보리의 영화에는 외영과 내영이 있고, 1개의 암술과 3개의 수술이 있다. 외영의 끝에는 까락[芒]이 달려 있다. 까락의 길이에 따라서 장망(長芒) · 중망(中芒) · 단망(短芒), 까락 흔적만 있는 흔적망 등이 있다. 보리 종류나 품종에 따라 달라진다. 두줄보리의 재배 기록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이라크 북부의 자르모 유적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것은 이삭이 부러지지 않은 두줄보리의 알과 수축(穗軸)을 발견하였는데, BC 5000년경에 이미 두줄보리의 재배종이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중국에서는 은(殷)나라 때 갑골문자에서 보리에 해당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보리가 오곡 중의 하나로 설정된 것이 BC 2700년경의 신농시대(神農時代)라는 점에서 고찰한다면, 그 재배 역사가 매우 오래됨을 알 수 있다. 한국에는 고대 중국으로부터 전파된 것으로 보이며, 일설에는 4 ∼ 5세기경에 보리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원산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야생종이 발견된 지역을 토대로 여섯줄보리는 중국 양쯔강 상류의 티베트 지방, 두줄보리는 카스피해 남쪽의 튀르키예 및 인접 지역을 원산지로 보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보리는 인류가 재배한 가장 오래된 작물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지금부터 7000 ∼ 1만 년 전에 재배가 시작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4]
보리밥 만드는 법[편집]
보리밥은 멥쌀에 보리를 섞거나 보리만 넣어서 지은 밥으로 소화가 잘되는 것이 특징이다.
재료 및 분량 (4인분)
보리 2컵(450g), 멥쌀 ½컵(110g), 물 5컵
준비하기
- 1. 보리를 30분 이상 물에 불려서 냄비에 넣고 물 5컵을 부어 20분 동안 삶아 건진다.
- 2. 쌀은 30분쯤 불려서 건져둔다.
만들기
- 1. 불린 쌀과 삶은 보리를 합하여 물을 넣고 밥솥에 안친다.
- 2. 물을 붓고 센 불에서 끓이다 팔팔 끓어오르면 중간 불에서 20분 동안 더 끓인다. 쌀알이 퍼지면 약한 불로 줄이고 10분 동안 뜸을 들인다.[5]
여담[편집]
- 보리는 상당히 수고를 들여야 먹을만 해지는데, 보리쌀이 탱탱해서 오래 씹어야 하는데다가 쌀밥 짓듯이 하면 물컹거리고 끈적한데도 꺼끌꺼끌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밑준비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식당 보리밥은 쫄깃쫄깃하고 구수하나 잘못 지으면 쉰내마저 나는 등, 쌀이 귀했던 시절에는 무시받는 음식이었다.
- 현대 한국에선 건강과 웰빙의 상징과도 같은 메뉴다. 보리밥 특유의 알갱이가 터지는 식감을 즐길 수 있으며, 첨단 전기밥솥에 보리밥, 잡곡밥, 발아현미밥 등 조리 기능이 추가돼 그럭저럭 초보자도 보리밥을 지을 수 있게 되면서 밥집들 보리밥 맛까지 상향 평준화됐다.
쌀과 보리의 관계는 서양의 밀과 호밀의 관계와 유사하다. 호밀과 보리 모두 동서양을 막론하고 '없던 시절'에 싼 맛에 먹었지만, 현재는 거친 식감과 높은 가격이라는 단점에도, 조리법의 발전으로 맛과 영양을 동시에 챙겨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 일본어로는 '무기고항(麦ご飯)'이라 한다.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천대받은 음식으로, 이케다 하야토 총리가 대장대신 재임 중에 했던 '가난한 사람은 보리밥이나 먹어라(貧乏人は麦を食え).'라는 발언에서 알 수 있다. 과거 일본에서는 묵은 보리로 만든 밥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쿠사이메시'(臭い飯, 냄새나는 밥)란 별명도 있었고 흔히 감옥간다고 할 때 '콩밥먹다'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일본에서도 통한다.
- 먹고나면 배에 가스가 자주 차는데 보리에는 수용성 식이섬유의 함량이 높아 작은창자에서 소화가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수용성 식이 섬유가 대장에 도달하면 대장 내 미생물에 의해 급속발효돼 여러 가지 휘발성 물질을 생성하게 되고, 이것이 방귀가 잦게 되는 원인이다. 이 기전은 대장 내에 지방산을 증가시켜 대장암 발생을 억제시킨다.
- 보리밥을 지을 때는 압맥과 할맥을 사용하면 그대로 지으면 되지만, 통보리쌀은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밥을 짓기 전에 미리 삶아놓는다고 한다. 귀리와 마찬가지로 이런 가공을 거치면 소화가 잘 돼 혈당지수가 생각보다는 올라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2]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보리밥〉, 《네이버 국어사전》
- 〈보리밥〉, 《두산백과》
- 〈보리밥〉, 《음식백과》
- 〈보리밥〉, 《위키백과》
- 〈보리밥〉, 《나무위키》
- 〈보리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보리밥〉, 《음식백과》
- 〈보리〉, 《두산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