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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0일 (수) 09:28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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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제르바이잔(영어: South Azerbaijan)은 아제르바이잔과 접해 있는 이란 서북부 아제리인 지역을 뜻한다. 이란 영토에 속하기 때문에,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이라고도 부른다. 중심지는 타브리즈이다.[1] 남아제르바이잔 지역에 속하는 이란의 행정구역은 서아제르바이잔주, 동아제르바이잔주, 아르다빌주, 잔잔주가 있다. 남아제르바이잔 주민들은 대부분 아제르바이잔인에 속하고, 언어는 아제르바이잔어를 사용하고 있다. 남아제르바이잔은 북쪽에 있는 아제르바이잔과 더불어 남북아제르바이잔(범아제르바이잔)에 속한다.
개요[편집]
페르시아 서북부 지방이자 훗날 오우즈 투르크의 한 지파인 아제르바이잔인(아제리인)들이 정착한 이후 흑양 왕조와 사파비 왕조의 첫 발흥지이기도 하다. 카자르 왕조까지는 원래 아제르바이잔 대부분이 페르시아의 세력권이기도 했으나, 1813년 러시아 제국과 카자르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러시아에게 지금의 카프카스 일대를 넘기게 되었고, 아제르바이잔 역시 둘로 나뉘어 북쪽은 러시아령이 되어 지금의 아제르바이잔이 되고, 남쪽은 이란이 그대로 차지하여 지금의 남아제르바이잔으로 남았다.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은 서아제르바이잔과 동아제르바이잔으로도 나뉜다. 실제로 서아제르바이잔 주, 동아제르바이잔 주, 아르다빌 주, 잔잔 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에 속하는 4개 주의 면적은 12만 2,660km², 인구는 2016년 인구조사 기준 9,502,752명으로 이란 면적의 7.4%, 인구의 약 12%를 차지한다.[2]
역사[편집]
642년, 아르다빌은 조로아스터교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대가로 이슬람 제국군에 항복하였다. 한편, 북방 유목민족의 위협은 이슬람 시대에도 지속되었다. 4대 칼리파 알리 때에 총독이던 알 아사트는 그에 대비하기 위해 마라가에 주둔하던 아랍 군대를 도시로 옮겨 정착시켰다. 8세기 들어 우마이야 왕조는 캅카스의 하자르 칸국과 극명히 대립하였다. 730년 경 하자르 칸국군이 알란 관문을 통해 남하하여 아르다빌 외곽 평원에서 아르메니아 총독 알 주라흐를 전사시켰다. 그들은 아르다빌을 함락하고 디야르바크르까지 공격한 후에야 회군하였다. 비록 마르완 2세가 반격에 성공하였지만 하자르 칸국과의 전쟁은 우마이야 조의 몰락을 촉진시키는 요소 중 하나였다.
9세기 전반, 이란 서북부에선 아부 무슬림을 추종하는 호람딘의 반란이 터졌다. 이때 아르다빌은 아바스 왕조의 장군들인 아프신과 부가 알 카비르가 주둔하는 진압군 사령부로 기능하였다. 838년에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이미 중앙 정부의 통제력은 쇠퇴하였다. 아르다빌은 시아파인 지역 우체국장이 다스리던 시기를 지나 아제르바이잔 총독에서 사실상 독립한 사즈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창건자이자 아바스 조의 총독이던 아불 카심 유수프는 총독부가 있던 마라게 대신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중앙에 위치한 아르다빌을 수도로 삼았다. 비록 919년, 아바스 왕조의 군사령관 무니스가 아르다빌 성문에서 유수프를 격파, 생포하고 도시를 점령하기도 했지만 곧 복권되었다.
929년, 유수프의 조카이자 후계자인 알 무자파르가 아르다빌에서 살해되며 사즈 왕조는 해체되었고 다일람 계열의 살라르 왕조가 아제르바이잔의 새 주인이 되었다. 937년 경 아제르바이잔은 사즈 왕조의 신하였던 쿠르드 족장 다이삼과 시아파 지여르 왕조에 충성하는 다일람 군대의 침공을 받아 혼란에 휩쌓였다. 그러나 941년, 살라르 조의 마르주반은 그들을 격퇴해내었고 다이삼에 호의를 보였던 아르다빌의 성벽을 허물어버렸다.[4] (943년) 그럼에도 그는 957년 사망할 때까지 아르다빌을 수도로 삼았다. 11세기 아르다빌은 셀주크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12세기 들어 셀주크 조가 분열되자 아제르바이잔 일대는 아타베그 정권인 엘디귀즈 왕조가 들어섰는데, 아르다빌은 그 수도였다. 엘디귀즈 조는 그리스도교 왕국인 조지아 왕국과 대립하였다. 그러던 1209년, 타마르 대왕의 조지아 군대가 아르다빌을 함락하였고 1만 2천명에 달하는 무슬림 시민들을 학살하였다. 겨우 재건되었나 했더니 1220년에는 호라즘 제국 원정을 수행하던 몽골군에 의해 함락되어 초토화되었다. 이로써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의 중심 도시는 아르다빌에서 몽골에게 순순히 항복하고 일 칸국의 수도로 변모한 타브리즈, 그리고 신도시로 지어진 술타니야로 넘어갔다. 여담으로 14세기 아르다빌에선 쥐가 많아 쥐잡이용 고양이 판매가 흥했다고 한다.
14세기 초엽, 일 칸국이 붕괴될 무렵에 아르다빌에는 11세기부터 거주해 오던 쿠르드 계 가문이 있었다. 그들은 튀르크화 되었는데, 그중 사피 앗 딘이란 인물이 수피 교단을 인수받아 세습적인 사파비야 교단을 세웠다. 사파비야는 티무르의 호의를 얻어 아르다빌 지역을 지배할 수 있었고, 이후 백양 왕조의 우준 하산과 동맹하여 흑양 왕조와 맞서기도 하였다. 15세기 경 그들은 열두이맘파 시아파로 개조하였다. 그리고 사피의 6대손이자 하산의 외손자가 바로 사파비 제국의 창건자 이스마일 1세이다. 아르다빌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과 형의 비극적인 죽음을 딛고 키질바시의 도움으로 1499년 아르다빌로 돌아왔다. 이후 이스마일 1세는 이란을 통일하고 대제국을 세웠다. 비록 수도는 아제르바이잔의 중심 도시인 타브리즈가 되었지만 아르다빌은 사파비 왕조 시대에 정치적 &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이스마일의 후계자인 타흐마스프 1세는 아르다빌에서 왕실의 카펫을 주문하였고 동생 모하메드를 그 총독으로 선임하였다. 그의 치세인 1570년 영묘 복합단지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아르다빌은 오스만 제국과의 국경과 가까운 관계로 그와의 전쟁에서 종종 함락되기도 하였다. 오스만 군에게 타브리즈를 상실한 타흐마스프 2세는 아르다빌로 피신하였으나 결국 카즈빈을 거쳐 테헤란으로 도주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1725년, 아제르바이잔 일대는 오스만령이 되었다가 1730년 나디르 샤에 의해 수복되었다. 1736년, 결국 찬탈한 나디르 샤는 수니파였고 아르다빌의 시아파 영묘가 지니던 막대한 재산을 압수하였다. 이때부터 순례객들에 대한 복지가 폐지되었고 19세기 초까지 영묘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19세기 초엽, 카자르 왕조의 왕자 아바스 미르자가 아르다빌의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러시아 제국의 남하에 대비하여 프랑스 장교 가르단 (1807~1809년 이란에서 파견 근무)과 함께 아르다빌을 요새화 하였다. 그럼에도 5차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중이던 1827년, 아르다빌은 러시아 군에게 점령되었고 이때 사피 도서관에 소장 중이던 수천권의 귀중한 필사본이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반출되었다. 19세기 초반 도시의 인구는 약 4천명이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 아르다빌의 총독으로 부임한 나시르 웃 딘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전쟁을 겪으며 손상된 사피 영묘를 보수하였다. 이때 러시아 군의 약탈에서 살아남은 문서들은 테헤란으로 옮겨졌다. 1910년 경 이란 헌법 혁명 당시 입헌파 장군 라힘 칸의 수중에 있던 아르다빌은 1917년 혁명까지 러시아 제국군이 진주하였고 이후엔 오스만 제국군이 주둔하기도 하였다.[3]
주요 지역[편집]
- 아제르바이잔 - 캅카스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수도는 바쿠, 공용어는 아제르바이잔어이다. 주민은 아제르바이잔인이다. 동쪽은 카스피해와 접하고 있으며 북쪽은 러시아의 다게스탄 공화국, 서쪽으로는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남쪽으로는 이란과 접경하며, 바다 없는 내륙국으로,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 공화국은 아르메니아와의 전쟁 이후로 사실상 독립 상태에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와 문화가 비슷하며, 이웃 국가인 아르메니아계 주민의 나라 아르메니아의 남서쪽에는 아제르바이잔의 고립 영토이자 아제르바이잔의 자치 공화국인 나히체반 공화국이 있다. 터키의 지배를 받았으나 러시아-터키전쟁 결과 러시아에 편입되었으며 1922년 소련에 가입했다. 1991년 독립하였으며, 1993년 CIS에 가입했다. 나라의 3면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은 넓은 쿠라 아라쿠스 저지로 되어 있다. 산지에는 강수량이 있으나 중앙 저지는 건조하여 스텝지대를 이루고 동남쪽 구석의 렌코란 평야는 아열대 기후이다. 주민은 아제르바이잔인이 90%, 러시아인이 3%, 아르메니아인이 2%, 다게스탄인이 3%가 있으며, 튀르키예인도 소수 있다. 이 나라는 석유와 석유제품, 기계제조, 면화, 과수, 포도의 재배, 포도주 양조, 양잠업으로 뛰어나다. 에너지원은 석유, 천연가스, 수력전기인데 석유는 질이 좋으며 주로 바쿠 부근의 육상과 카스피해의 해저에서 산출된다. 공업은 석유업장치류, 강관(steel pipe), 알루미늄의 제조 등이다. 관개로 면화·쌀·담배 등이 재배된다.
- 타브리즈 - 이란 서북부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주의 도시이며 인구는 174만명으로, 이란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13세기 말에 일 칸국의 수도로, 16세기 초에 사파비 왕조의 첫 수도로 번영하였고 특산물로 카펫과 금속세공품, 특히 사모바르가 유명하다. 아제르바이잔주라는 이름답게 주민 대부분이 튀르크계의 아제리인이다. 튀르키예 도시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로 튀르크계가 많다. 애초 이곳을 수도로 했던 일 칸국부터 튀르크계 국가다. 정확히는 훌라구 칸의 자손들이 튀르크화된 튀르크화한 몽골 제국으로 칭기즈 칸의 혈통을 물려받은 엄연한 튀르크 이슬람 국가였는지라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또한 통념상 서남아시아인 이란이 대한민국보다 위도가 한참 아래라고 생각하지만 타브리즈는 서울과 위도가 비슷하다. 도심의 그랜드 바자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우르미아 호의 동안의 해발 1500m의 고지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분리운동[편집]
남아제르바이잔 문자는 페르시아 문자를 쓰기 때문에 혼동될 수 있으나 언어적으로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아제르바이잔어를 쓰고 있고 본토 아제르바이잔과의 교류가 많기에 이런저런 제약을 받는 이란의 일부로 있을 바에 아제르바이잔 본토와 통합하는 것이 더 낫다는 분리주의 여론이 존재하는 편이다. 다만 이란 정부는 물론이고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남아제르바이잔 분리운동에 대해 지원하지 않고 있다. 남아제르바이잔 독립운동을 지원할 경우 튀르키예와 이란에 걸쳐 사는 쿠르드족에게 독립 명분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튀르키예의 경우 합심해서 쿠르드족에 대한 독립운동을 막는다는 점에서 이란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상황인데 남아제르바이잔 분리운동에 지원을 보낸다면 뒷감당을 하기가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제르바이잔 입장에서 불만이 있다고 해도 이란 내에서 아제리인이라고 차별하거나 해코지하는 것은 없기에 더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지금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도 아제르인이다. 물론 아제르바이잔이라고 해서 좋아서 분리운동을 지원하지 않는것은 아니다. 애뷜패즈 엘치배이 정권 시절에 남아제르비아잔과의 통일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면서 그간 중립을 유지하던 이란이 친아르메니아로 돌아서서 전쟁에서 대차게 망해서 영토도 상실한 트라우마 때문인데, 이 때문에 이란을 자극해서 전쟁에 관여시켜봐야 좋을게 없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튀르키예도 서아제르바이잔 주의 극서부 국경 지대를 튀르키예 영토라며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튀르키예인들도 사는 동네이기도 하고 압뒬하미트 2세 당시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같은 시기에 상실한 카르스, 아르다한은 공화정 수립 이후 되찾았지만 이 지역은 여전히 이란령으로 남아 있어서 그렇다. 신오스만주의 성향이 강한 현 정부의 성향상 마찬가지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상실한 북시리아, 북이라크에 대한 영유권 주장과 비슷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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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페르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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