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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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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야
세우타 전경

세우타(스페인어: Ceuta, 아랍어: سبتة 사브타, 베르베르어: ⵙⴰⴱⵜⴰ)는 아프리카 모로코 북부, 지브롤터 해협 연안에 위치한 스페인의 고립 영토이자 자치시이다. [1]

개요

세우타는 지브롤터 해협 남쪽에 삐져 나온 반도 모양의 땅이고 멜리야, 플라사스 데 소베라니아와 마찬가지로 이베리아 반도가 아닌 북아프리카 본토에 위치해 모로코와 육상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다. 이베리아 반도 남단의 영국령 지브롤터와 더불어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중계 지역 역할을 한다. 지브롤터 해협을 두고 스페인 남단과 인접하고 있고 어업, 경공업, 수산물 가공업이 경제 활동의 중심이다. 안달루시아와 실업률 1, 2위를 다투는 지역이지만 지역 재정은 좋은 편이다. 면적은 18.5㎢, 인구는 2019년 기준으로 84,777명이다.

행정상으로는 에스파냐 카디스주(州)에 속하며 군사주둔지이자 자유항이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에스파냐 남단의 지브롤터와 마주하고 있다. 고대 카르타고인이 건설한 항구가 기원이며, 로마, 반달, 비잔틴의 지배를 번갈아 받았고, 771년부터는 이슬람 문명인 아랍령이 되었다. 15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세우타는 아프리카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전략적인 요충지가 되었다. 유럽의 열강들은 세우타를 정복하기 위해 경쟁했지만 1415년 포르투갈 아비스 왕조의 엔히크 왕자에 의해 점령되었다. 아비스 왕조는 세우타를 근거지로 하여 아프리카 식민사업을 전개하였으며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였다. 1580년부터는 에스파냐령으로 바뀌었다. 모로코는 오랫동안 세우타 영토를 복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지명은 로마인이 셉템프라트레스(7형제)로 부르던 것을 아랍인에게는 사브타로, 에스파냐인에게는 ‘세우타’로 와전(訛傳)되어 생긴 지명이다. 어업·경공업·관광업·수산물가공업 등이 성하고, 본토의 아르헤시라스 사이에는 연락선이 운항되고 있다. 북아프리카 주둔 에스파냐군의 사령부가 있다. [2][3]

자연환경

지브롤터, 스페인과 아주 가까우며, 북쪽에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도 소수 있고, 북부 해안에는 스페인 영토인 세우타와 멜리야, 플라사스 데 소베라니아가 있다. 동남쪽으로는 알제리와 접해 있고, 모리타니, 포르투갈과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편이다.

지중해대서양을 끼고 있어서 여느 북아프리카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여름에 건조하고 겨울에 습하다. 하지만 북아프리카치고는 강수량이 높고, 여기에 아틀라스산맥이 국토를 지나간다. 덕분에 이런 곳도 있다. 이프란이라는 도시인데, 해발 1,665m로 고도가 높아서 1월 아침에 영하로 자주 내려가고, 1935년 아프리카에서 관측된 가장 낮은 기온인 -23.9°C를 기록한 적도 있다.

야생동물로는 단봉낙타, 바바리양, 바바리원숭이, 붉은사슴, 가젤, 아닥스, 긴칼뿔오릭스, 붉은볼따오기, 매, 멧돼지, 수달, 카라칼, 페넥여우, 붉은여우 등이 서식하며 지금은 멸종했지만 한때는 바바리사자와 아틀라스곰도 서식했다.

세우타 서쪽으로 안예라산이 모로코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 위에 군사요새가 있다. 동쪽 끝 알미나 반도에 있는 하초산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 중 한 곳이라는 설이 있다.[4][5]

역사

세우타는 지브롤터 해협 남쪽에서 위치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가는 길목의 숨통을 조이는 전략적 이점을 갖는다.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이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BC 1세기에 거점을 만들었다. 서기 42년에 로마제국이 이 땅을 차지해 영토로 삼았고, 중세에는 반달족의 나라가 되었다가 771년 이슬람의 영토가 되었다.

1415년 8월 21일 아침 포르투갈의 후안 1세가 엔리크 왕자와 함께 기습공격을 가해 세우타를 점령했다. 포르투갈은 이 곳을 교역항을 만들어 북아프리카 진출 거점으로 삼았다.

1415년 포르투갈이 세우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세우타는 1580년 스페인 왕이 포르투갈의 왕을 겸하는 동군 연합이 형성되면서 스페인에게 넘어갔고, 1581년 스페인 필리페 2세가 포르투갈의 왕위를 이어받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합병되면서 세우타는 스페인 영토가 되었다. 이 시기 스페인 사람들이 대거 세우타로 이주했다.

1640년 포르투갈 귀족들의 주도로 브라간사 왕조를 옹립하여 포르투갈 독립 전쟁이 터지면서 상황이 복잡해진다.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는 대부분의 지역은 브라간사 왕조를 지지해 주앙 4세와 그 뒤를 이은 아폰수 6세를 포르투갈 국왕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세우타는 포르투갈인보다 스페인인이 많이 넘어온 탓에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포르투갈 국왕 필리프 3세)를 포르투갈 국왕으로 간주했다. 포르투갈 독립 전쟁은 1668년 리스본 조약을 체결하면서 끝나는데 이에 따라 스페인은 브라간사 왕조의 포르투갈 지배를 인정하고 포르투갈은 세우타를 공식적으로 스페인(정확히는 카스티야 연합 왕국)에 양도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공식적으로도 스페인의 영토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문장과 깃발은 이전처럼 포르투갈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세우타의 문장(깃발 가운데에 그려진 것이 문장이다)은 변형된 포르투갈 문장을 사용하고 깃발의 배경 부분은 수도 리스본를 비롯한 여러 포르투갈 도시에서 사용하는 깃발의 배경과 동일한 디자인이다.

17세기 말 ~ 18세기 초 모로코 군이 세우타를 공격했지만 함락하지 못했다. 스페인은 1912년에 모로코 북부 지역을 보호령으로 통치한 후 1958년 모로코에 되돌려 주면서도 세우타와 멜리야는 원래부터 자국 영토라며 돌려주지 않았다. 1936년 스페인의 프랑코 장군이 아프리카 주둔군을 장악하고 쿠데타를 주도한 곳이기도 하다.

모로코는 스페인이 영국에 지브롤터를 반환할 것을 요구하는 논리를 차용해 세우타와 멜리야의 반환을 요구하여 왔는데, 스페인은 이에 대해 세우타는 모로코의 알라위 왕조(1631년~ )가 성립하기 50년 전부터 400년 이상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스페인의 영토라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교통

세우타는 유럽 연합의 일원이며, 스페인이 1986년 유럽 연합에 가입하기 전부터 자유 항구였다. 세우타에는 공항이 없기 때문에 스페인 본토와의 교통은 보통 바닷길을 이용하며, 말라가 공항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헬리콥터가 있다.

특징

스페인계와 아랍계가 절반 정도인 인구 분포를 보이고 아랍어도 잘 통한다. 2013년 기준으로 기독교인이 68.0%, 이슬람교인이 28.3%였다.

EU의 일부로 유로화가 통용되지만, 본토와 달리 EU관세동맹의 적용을 받지 않고 EU법 적용에 있어서 일부 예외가 있다. 또 솅겐 조약 적용에도 예외가 있는 특수영토이다. 프랑스령 마르티니크나 기아나, 레위니옹과 같은 해외 레지옹과 비슷한 지위에 있다.

유럽 난민 사태의 영향으로 세우타를 통해 유럽으로 몰래 입국하려다 적발된 난민들이 늘어나고 있고 2017년 초에 난민 1,100여명이 장벽을 넘으려다 모로코, 스페인 군경과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2018년 7월에도 아프리카 출신 난민 수백명이 세우타를 급습했다.

이렇게 밀입국자들이 스페인 영토로 진입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모로코를 상대로 책임을 묻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 모로코측에서도 비웃는다. 모로코도 자국민이 아닌 아프리카 각지에서 온 밀입국자들이 유럽으로 가고자 엄청 몰려오기에 심각한 골칫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모로코도 거대 장벽을 곳곳에 쌓아둘 지경. 이러니 아프리카 각지에서 온 밀입국자들이 모로코에서 숨어들어 살면서 돈을 모으거나 기회를 노려 모로코에서도 여러 문제가 된다.

2021년 5월 17일에 모로코인 1천명 이상이 세우타에 들어가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다.# 스페인 정부는 세우타에 몰려든 모로코인 8,000명중 절반을 돌려보냈다고 밝혔고 보안도 강화한다고 밝혔다.

영토 분쟁

지리적으로 모로코와 가까워 모로코도 역사적, 지리적 이유를 삼아 세우타의 영유권을 주장해 멜리야와 함께 영토 반환을 요구했지만, 스페인은 모로코가 국가 개념을 세우기 이전부터 스페인의 영토였다면서 거부하고 있다. 좀 더 나중에 먹은 스페인령 모로코는 20세기 들어 탈식민지가 대세가 되자 비교적 순순히 돌려줬지만 여기는 나머지 모로코 지역과 역사적 맥락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현지에 거주하는 스페인인 시민들 대부분도 모로코가 종교, 문화적으로 로마 카톨릭교 국가인 스페인과 다른 이슬람 국가에다 경제적으로 스페인보다 더 떨어진다는 근거를 내세우며 모로코로의 귀속을 반대, 스페인령 잔류를 주장하고 있다.

현재 스페인 영토이지만 과거에 비해 크게 중요성이 떨어진 데다 경제마저 쇠락해 그다지 전망이 밝지는 않다. 사실 제 1,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열강들이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식민 지배하던 시기가 끝나고 아랍계 독립 국가들이 들어섰고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스페인 본토와 멀리 떨어져 적대적인 모로코 영토에 둘러싸였으니 도시 확장 등을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 식량이나 필수품도 모로코에 의존하고 마음만 먹으면 말려 죽일 수 있다. 다만 모로코 측도 영유권 주장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스페인과 EU로 통하는 길목이라 경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건비가 싼 모로코인들이 국경을 넘어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모로코도 딴지를 걸기 어렵고 세우타 측도 이들의 저임금 노동으로 이뤄지는 산업이 커서 여기 영토 문제로 서로 전쟁을 벌일 분위기까지는 아니라고 한다.

한편 스페인이 영국에게 지브롤터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면 영국 측은 세우타와 멜리야를 문제 삼으며 스페인도 모로코 영내에 있는 멜리야와 세우타를 지배하는데 우리가 왜 지브롤터를 돌려줘야 하냐면서 맞서기도 한다. 사실 이 문제가 없어도 어차피 지역 주민들의 확고한 영국령 잔류 지지를 받는데다 실효 지배만 3세기가 지난 영국의 입장에서 굳이 지브롤터를 스페인에게 돌려줘야 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물론 스페인의 입장에서도 실효 지배만 3.5세기가 지난 세우타와 5세기가 지난 멜리야를 모로코에게 돌려줘야 할 이유가 더더욱 전무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치

스페인에서 국민당 지지율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유럽 난민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극우정당 VOX도 지지율이 점점 오르고 있다. 사회노동당의 험지까지는 아니라서 하원, 상원에서는 당선되기도 하고, 시의회에서도 주요 정당을 차지한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세우타〉, 《위키백과》
  2. 세우타〉, 《나무위키》
  3. 세우타〉, 《네이버 지식백과》
  4. 모로코〉, 《나무위키》
  5. 김현민 기자, 〈모로코에 있는 스페인 고립영토, 세우타와 멜리야〉, 《아틀라스뉴스》, 2020-06-12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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