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
안산시(富川市)는 대한민국 경기도의 남서부 서해안에 위치하는 시이다. 북쪽으로 시흥시와 안양시, 동쪽으로 군포시와 의왕시, [[수원시], 남쪽으로 화성시와 접하고 있으며 대부도는 월경지이다. 대부도를 중심으로 서쪽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의 선재도와 연륙교가 연결되어 있으며, 최남단에 위치한 풍도는 지리적으로 충청남도 당진시 및 서산시에 근접한다. 반월국가산업단지, 시화국가산업단지를 배경으로 공업 도시로 발전하여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서 원곡동 일대가 다문화 특구로 지정되어 있다. 고속국도나 수도권 전철 등으로 서울 등지와 접근성이 높아졌으며, 시화산업단지 개발로 공업지역 확장과 함께 고잔신도시 등을 개발하였다. 2009년 11월 11일에는 대한민국 지방 정부 최초로 시청을 24시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지방자치법 제175조에 의거 특례를 둘 수 있으며, 전국대도시시장협의회 회원시이다. 안산에서는 매년 거리극 축제가 열린다.
목차
개요
- 행정 단위: 대한민국 경기도 도시
- 면적: 155.19km²
- 인구: 654,915명 (2020년)
- 시청 소재지: 단원구 화랑로 387
- 시장: 윤화섭(더불어민주당)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ansan.go.kr/www/index.do
지도
지명
안산(安山)이라는 이름은 고려시대 이후부터 쓰였다. 신라 시대 장구군(獐口郡)으로 불리던 것을 고려 시대인 940년 안산군(安山郡)으로 개칭하였고, 1018년에는 안산현(安山縣)이 되었다. 1906년 9월 24일 광주군의 북방면, 성곶면, 월곡면이 안산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4월 1일 안산군이 폐지되면서 '군자면'과 '수암면'이 시흥군으로 편입되고 광주군에서 8년 전에 편입되었던 북방면, 성곶면, 월곡면은 '반월면'으로 개칭되어 수원군에 편입되었다.
1976년 이곳에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할 때나 1979년 반월지구출장소를 설치할 당시에만 해도 이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은 가장 인지도가 높은 반월(半月)이었고, 대한민국 정부가 반월지구출장소의 시승격을 추진할 때도 도시의 명칭은 반월시로 거의 확정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반월공업도시 기공식 당시 행사에 참석하였던 국회의원 오학진(吳學鎭)은 "전체 면적의 1/3밖에 안되는 반월면을 도시 이름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원래 지명인 안산군(安山郡)을 따서 안산시로 이름을 지어달라"고 언급한 바 있고, 시승격 추진 당시 시흥군 수암면에 거주하던 향토사학자 유천형(柳天馨), 이승언(李承彦) 등은 '반월시라는 명칭은 역사적 정통성이 없이 일제가 임의로 만들어 붙인 이름'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며 새로이 승격되는 도시의 명칭은 1천년의 역사를 가진 안산시로 해야 한다고 정부에 수 차례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정부에서는 이를 검토한 결과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하여 최종적으로 반월지구의 명칭을 안산시로 확정, 1986년 1월 1일 승격시켰다.
역사
고대부터 좋은 수산물과 소금으로 유명한 어촌이였으며, 일찍부터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남부 지역과 함께 하나의 지역으로써 마을과 어시장이 형성되어 수리산 서쪽에 해당하는 현재의 상록구 안산동 지역인 수암 지역을 중심으로 중부 지방의 주요 고을로 발전했다. 특히 중국으로 가는 주요 포구 중 하나인 마포의 길목에 위치했으며 관내에도 잿머리 포구에서 무역이 시작되었고, 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여러 사대부들이 자리 잡았던 지역이 되었다. 이 지역은 ‘안산(安山)’이라는 이름으로 고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조선 초기부터 연성(蓮城)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또한 조선 시대의 실학자 성호 이익이 활동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에는 염전(鹽田) 지역이었던 곳을 간척하여 1976년 이후에 조성하기 시작한 반월국가산업단지와 배후 지역인 시흥군의 수암면, 군자면과 화성군 반월면 일부가 인구 약 30만의 계획도시인 반월신공업도시로 조성되었으며, 1986년 1월 1일 시로 승격되었다. 이와 함께 이 지역의 옛 이름인 ‘안산’을 시명으로 택하게 되었다.
고대
안산에 인류가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로 추정되며, 초지동 일대, 대부도, 인근 시흥시의 오이도와 시화호 등에서 여러 조개더미 유적과 선사 유적 군락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선부동과 월피동 일대에서는 지석묘를 비롯하여 10기 이상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또한 1995년 서해안고속도로 공사 중 화성군 인접 지대에서는 석영제의 구석기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안산 지역에서 발견되는 지석묘들은 대부분 남방식 고인돌이지만 선부동의 지석묘는 탁자식이며, 인접한 광명시 가학동에서도 탁자식 지석묘가 발견되는 등, 안산은 일명 남방식과 북방식 지석묘가 함께 존재하고 있는 문화적 경계 지역의 일부이다.
삼국 시대
원삼국 시대와 삼한 시대에 안산 지역과 그 주변 지역에서 나타나는 고대 국가의 성립 증거는 많지 않다. 안산과 시흥 지역에서 나타는 고고학 유물들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때문에 삼한 시대의 국명에 관한 연구에서도 안산 지역은 소외되고 있다. 진수의 《삼국지》 〈위서동이전〉에는 마한(馬韓)에 50여 개의 군장 국가가 있던 것으로 나와 있는데, 그 중 안산 지역과 가까운 곳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나라는 원양국(爰襄國), 상외국(桑外國), 수원 지역의 모수국(牟水國)이다.
삼국 시대에는 백제에 속해 있었지만, 백제 영토 시대의 기록은 얼마 남아있지 않으며, 단지 고구려 장수왕 시대에 안산 지역이 고구려에 복속되면서 장항구현(獐項口縣)의 일부로 지정되어 있다가, 551년 성왕에 의해 다시 백제의 영토로, 2년 뒤에 진흥왕에 의해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경덕왕 때에는 안산현(安山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신라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성태산성이 시내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고려 시대
후삼국 시대에는 사료의 기록을 통해 신라 효공왕 4년(900년) 즈음까지는 태봉국(후고구려)으로 이 지역이 넘어갔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태봉국의 궁예가 왕건에 의해 추방되고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면서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려 초 장구군은 안산군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군으로서의 지위는 변동되지 않았다. 광종 23년 (972년)에 서희가 송나라로 출발하였을 때 안산을 이용하였으며, 여기서 서희가 겪은 설화에서 잿머리 성황제가 유래하였다. 그 후, 성종 14년에는 10도(道)제의 정비에 따라 안산 지역은 관내도(關內道)에 예속되었다. 헌종 9년에는 행정구역의 정비에 따라 군에서 현으로 강등되었고,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 속현이 되어 수주(水州, 수원)에 예속되었다. 문종 23년 이후부터 안산현은 경기에 예속되어, 지개성부사(知開城府事)의 지휘를 받게 되어 개성부를 거쳐 중앙 정부와 연결될 수 있게 되었다. 원종 12년 (1271년) 몽고군이 대부도와 시흥의 소래산 등지로 침입하였을 때, 대부도 별초와 민병대들은 부사 안열(安悅)의 지휘 하에 몽고군을 격파하였으며, 그 군공을 인정받아 안산현이 소속되어 있던 수원부는 수원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충렬왕 33년에는 군으로 승격되었고, 지사가 임명되어 내려오게 되었다. 지사는 고려 말까지 파견되었으며, 공양왕 2년 (1390년) 경기도가 좌·우도로 분할됨에 따라 경기좌도에 예속되었다. 이 시대에 안산 잿머리(城頭)의 포구는 큰 배들이 오갈 수 있는 외항으로 축조되었으며, 무역을 위해 여러 중국인들이 체류하였다.
조선 시대
안산은 조선 건국 이후에도 경기좌도에 속해있었다. 태조 5년 (1396년) 궁중에 해산물을 진상하는 기관인 사옹원분원이 직할하는 안산어소가 설치되었으며, 태종 2년 (1402년) 경기좌·우도의 통합이 이루어진 후에도 안산이라는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태종 13년 (1413년) 전국을 8도로 재편성하면서 경기도로 편입되었으며, 종4품의 군수와 정9품의 훈도가 파견되었다. 안산이라는 지명 외에 세조 때부터는 연성(蓮城)이라고도 흔히 불렸다. 이는 세조 9년 (1463년) 문신 강희맹이 명나라 남경에 갔다가 귀로에 연꽃씨를 가지고 와, 안산의 관곡지(官谷池)라는 연못에 시험 재배한 데서 유래하였다. 한편, 목내동 부근에 관아(館衙)가 설치되었으며, 1441년 수암동으로 이전하였고 다시 1669년에는 관아의 위치를 안산읍성 내로 이전하였다. 조선 시대의 안산 지역에는 여러 사대부들이 살았는데, 초기에는 강희안과 강희맹 형제, 중기에는 인조반정을 주도한 김류와 장유, 후기에는 이익과 강세황 등이 안산에서 활동했다. 1895년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되었을 때는 시흥군 및 과천군과 함께 인천부에 예속되었으나, 다음해 13도제로 대체된 이후에는 경기도의 4등군이 되었다. 1906년 9월 24일에는 측령 제49호로 지방구역 정리건이 반포됨에 따라 광주군의 견아상입지(현재의 상록구 일동·이동·사동·본오동·반월동 등 구 반월면 지역)가 안산군으로 이속되었다.
근대와 현대
현재 안산시의 일부로 관리되고 있는 풍도에서는 조선 말 청일 전쟁에서 일본과 청나라 간에 풍도해전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시흥군 수암면, 군자면으로 전환되었으며, 일부 지역(반월면)을 수원군에 양도하였다.
1937년에는 안산을 관통하여 수원과 인천 간을 연결하는 수인선 협궤 철도가 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72년 대한민국 정부의 철도 노선 정리와 1988년 안산선 전철 개통 이후 운송이 급감하다가, 1995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운행을 중단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안산시의 공업 위성도시화가 가속되기 시작하여, 1976년 12월 시흥군과 화성군의 일부였던 안산 일대에 ‘반월신공업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하였으며, 1979년 8월 31일에 경기도 반월출장소를 설치하였고, 1986년 1월 1일에는 출장소에서 지금의 안산시로 승격되었다. 2002년에는 상록구와 단원구 등 2개 구를 새로 설치하면서 구제(區制)를 실시하였다.
- 1986년 1월 1일: 화성군 반월면, 시흥군 수암면·군자면의 각 일부 지역을 합쳐 안산시가 신설되었다.
- 1988년 10월 1일: 중앙동을 고잔1동·고잔2동·성포동으로, 원곡동을 원곡1동·원곡2동으로, 원초동을 공단동·초지동으로 분동하였다.
- 1991년 11월 18일: 반월동을 일동·본오동으로, 수암동을 월피동·와동으로, 선부동을 선부1동·선부2동으로 분동하였다.
- 1993년 12월 1일: 본오동에서 사동을, 선부2동에서 선부3동을 분동하였다.
- 1994년 1월 1일: 군자동을 원곡본동으로 개칭하였다.
- 1994년 7월 15일: 본오동을 본오1동·본오2동으로 분동하였다.
- 1994년 12월 26일: 화성군 반월면 일부와 옹진군 대부면(大阜面)을 편입하였다.
- 1995년 3월 2일: 월피동에서 부곡동을 분동하였다.
- 1995년 4월 20일: 시흥시 일부를 안산시에 편입하였다.
- 1996년 1월 22일: 사동을 사1동·사2동으로 분동하고, 본오2동에서 본오3동을 분동하였다.
- 1997년 5월 28일: 대부동을 대부출장소에 편입하였다.
- 1998년 10월 12일: 공단동을 초지동에 합동하였다.
- 2002년 11월 1일: 상록구와 단원구를 설치하였다.
지리
안산시는 경기도 서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반도에서는 중부 지역에 자리잡은 도시이다. 경도 및 위도 상으로는 동경 126도 28분 01초 ~ 126도 56분 29초, 북위 37도 04분 40초 ~ 37도 22분 26초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시의 남쪽에는 대부도와 풍도가 있다. 동쪽은 수원시 권선구, 군포시, 안양시, 서쪽은 황해, 남쪽은 화성시, 북쪽은 시흥시와 접하고 있다. 대부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과 접하고 있고, 풍도지역은 충청남도 당진시와 접하고 있다. 면적은 144.92km2이며, 해안선의 총 길이는 84.5km이다. 행정구역 상으로 속한 도서 지역은 총 14개로, 유인도가 2개, 무인도는 12개이다.
안산시가 포함되어 있는 경기만 일대는 한반도의 중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뻗어나간 광주산맥의 서남단에 위치한 해안 지역으로서, 내륙은 구릉선 산지가 발달한 노년기 지형의 특성이 뚜렷하고, 해안에는 이들 구릉성 산지의 절단과 해식애(海蝕崖)의 발달이 현저한 암석 해안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안산시의 동부는 편암 및 편마암류로 구성된 산지 지역으로, 주릉은 남북 방향으로, 지릉은 북동 방향으로 발달해 있다. 석영편암층이 분포한 지역은 험준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반면, 안산시와 시흥시 부근의 서부 해안 지역은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며, 침식 해안을 이루고 있다. 안산과 시흥 신도시 건설 이전에는 활발한 간척 사업으로 인하여 넓은 갯벌지지대가 육지화되어 염전 지대와 농경지로 이용되었다.[65] 그러나 신도시 건설 이후 대부분의 구릉성 산지는 평지화되어 시가지를 이루고 있으며, 시화방조제 건설에 따라 인공적인 시화호가 형성되었다. 북동쪽으로 수리산이 시외곽에 있어, 해발 고도 400미터 이내의 구릉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서북 외곽쪽으로 군자산, 시내 북쪽으로 광덕산, 동쪽으로는 노적봉 등의 해발 고도 200미터 이내 구릉지역으로 남서쪽으로 갈수록 낮은 구릉 및 간석지 등의 해안지역이 나타난다. 하천은 신길천, 화랑천, 안산천, 반월천 등이 있는데, 대체로 지방하천으로써 안산시 외곽의 구릉지대에서 발원하여 남남서 혹은 남서 방향으로 시화호, 경기만을 거쳐 황해로 흐른다.
지형
안산시는 해안을 따라 바닷물의 영향을 받은 해양평탄지토양과 내륙의 내륙평탄지토양, 구릉 및 산악곡간지토양, 저구릉지토양, 산록지토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토양 분포를 살펴보면 고도별로 해면으로부터 고도 10m에 이르는 해안 지역에는 염류도가 높고 염기성을 띠는 간석지토양이 주로 분포하고, 10~40m의 저평한 하천 유역 지대를 따라서는 충적토양이 분포한다. 또한 고도 40 ~ 150m 사이에서는 적황색의 구릉지토양이, 200m 이상 지대에서는 토층이 얇은 암쇄토와 암석 노출지가 분포해 있다. 지형상 도서 해안지형과 내륙지형으로 나뉘며 식생의 분포도 이러한 형태를 나타내는데, 내륙지역의 나대지와 야산은 대도시 주변의 전형적인 식물상을 보인다. 나대지에는 은행나무, 무궁화 등 식재림과 독새풀, 개피, 냉이 등 음지성 초본이 나타나며 야산에서는 소나무, 상수리나무, 해당화, 제비꽃, 양지꽃 등 소관목과 초본이 하층식생을 이루고 있다. 서부의 해안지역의 식물상은 해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육지식물상과 차이가 거의 없으며, 해안 뻘에서는 염수성 식물이 자생하지만 시화방조제 건설로 인한 뻘의 감소로 염수성 식물의 수는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 지역은 중국과 공통된 해루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인천광역시 남동구로부터 연결되는 영동고속도로를 비롯한 여러 도로망이 안산시를 관통하게 되면서 많은 외래 식물이 유입되고 있다.
기후
안산시는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하여, 온난한 남부 지방과 대륙성의 북부 지방의 중간에 있는 점이 지대에 속해 있다. 또한 안산시는 수심이 얕고 내륙성인 황해와 접하고 있으며, 지형상으로는 경기도의 저평한 평야 지대에 속하는 소규모 구릉성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 기온이 연안을 따라 낮은 특색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안산시는 Cfa로부터 Dwa로 옮아가는 점이 지대로서 한국의 소기후 구분상 중부서안형(DMW)에 속해 있다.
행정 구역
2002년 11월 1일 안산시는 인구 50만 이상의 조건을 충족하여 상록구와 단원구를 설치하였다. 안산시의 행정 구역은 25개동 1,187통 5,884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 상록구(常綠區)
- 일동(一洞)
- 이동(二洞)
- 사동(四洞)
- 사이동(四二洞)
- 해양동(海洋洞)
- 본오1동(本五洞)
- 본오2동(本五洞)
- 본오3동(本五洞)
- 부곡동(釜谷洞)
- 월피동(月陂洞)
- 성포동(聲浦洞)
- 반월동(半月洞)
- 안산동(安山洞)
- 단원구(檀園區)
- 와동(瓦洞)
- 고잔동(古棧洞)
- 중앙동(中央洞)
- 호수동(湖水洞)
- 원곡동(元谷洞)
- 신길동(新吉洞)
- 백운동(白雲洞)
- 초지동(草芝洞)
- 선부1동(仙府洞)
- 선부2동(仙府洞)
- 선부3동(仙府洞)
- 대부동(大阜洞)
참고자료
- 〈안산시〉, 《위키백과》
- 〈안산시의 행정 구역〉, 《위키백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