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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저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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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치

퉁저우구(중국어: 通州区 tōng zhōu qū)는 중국 베이징시 남동쪽에 위치해 있는 이다. [1][2][3][4]

개요[편집]

퉁저우구의 면적은 906㎢이며 인구는 184만 5,000명(2023년)이다. 퉁저우구는 순이구, 차오양구, 다싱구와 경계를 맞대고 있고, 톈진시허베이성과도 맞닿아 있다. 그리고 톈안먼 광장과 20km 떨어져 있고,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과 16km 떨어져있다.

베이징시 인민정부 및 중국공산당 베이징시위원회가 위치한 베이징 지방정치의 1번지이다.

베이징 도시 부중심 소재지로서, 지속적으로 세계적 비젼, 국제표준, 중국 특색, 고수준의 지위를 유지하는 동시에 역사 창조, 예술 추구의 정신으로, 선진적인 이념, 최고의 표준, 최적의 품질로 베이징 도시 부중심 건설을 추진함으로써 국제 일류의 조화롭고 살기 좋은 도시 시범지역, 신형 도시화 시범구와 징진지(京津冀, 베이징·톈진·허베이) 협동 발전 시범지역 구축에 전력하고 있다.

퉁저우는 2,2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깊은 문화 유산이 있는 운하로 징항대운하에 위치한 빛나는 진주이자 예로부터 상인들이 모여들고, 인문 문화가 집결된 수륙도시 겸 상업무역의 중심지이다. 연등불 사리탑(燃燈佛舍利塔), 삼교묘(三教廟), 대광루(大光樓) 등 많은 역사 유적과 유산들이 남겨져 있는 이 도시는 오래되고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퉁저우는 톈진(天津), 허베이와 인접하고 베이징-톈진 발전 축과 베이징-탕산(唐山)-친황다오(秦皇島) 발전축이 베이징시 구역내에서 교차하는 곳에 위치하여, 수도가 징진지 협동 발전에 참여하는 주요한 지탱점이다. 향후 퉁저우에서 출발하여 15분이면 수도국제공항에 도달할 수 있으며, 35분이면 베이징 다싱(大興)국제공항에 도달 할 수 있고, 1시간이면 슝안(雄安)신구에 도달할 수 있다.[5][6]

자연환경[편집]

퉁저우구 내부에는 대운하가 흐르고 있으며, 경항대운하의 종착지가 퉁저우구에 위치해 있다. 퉁저우는 베이징에서 수역 면적이 가장 넓은 지역이자 북방에서 보기 드문 내륙의 수성이다. 13개 하천이 분포되어 있고 총 길이가 245.3km에 달한다. 이곳에는 만묘(畝,1묘는 약 667.67㎡)에 달하는 삼림공원이 있으며, 녹지대가 둘러싸여 있고, 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또한 강과 인접되어 있는 도시에 새들이 지저귀고 꽃향기가 그윽하며, 연이어 '국가 위생구'와 '전국문명 도시 구역'으로 선정되고, '국가삼림도시'를 건설하는 중이다.

내몽골 고비 사막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황사의 피해가 심한 편이다. 기후는 추운 스텝 기후(Bsk)에 해당하여 일단 여름에는 엄청 덥고 비가 약간 내리며 겨울에는 춥고 건조하며 바람도 강하다. 냉대기후와 건조기후 중간에 있다고 봐도 된다.

사막 바로 아래 있어서 극단적으로 건조하며 연교차도 매우 크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인구 천만에 준하거나 그 이상급의 메갈로폴리스 중 서울과 함께 연교차가 가장 큰 도시이다. 대륙 동안 기후와 사막 기후가 섞인 형태이기 때문인데 5월부터 최고기온 40도를 찍는 경우가 흔하다. 반대로 겨울은 서울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춥다. 여름에도 비가 잘 오지 않을 정도인데다 겨울에는 아예 사막 수준으로 매우 건조해서 실제 최고-최저기온은 서울을 능가할 정도로 연교차가 크지만, 체감 연교차는 서울에 못 미친다. 또한 여름에 열사병 위험이 있으며, 겨울에는 꽤 추운 날씨임에도 대구광역시나 부산광역시에 비견될 정도로 눈이 오지 않는다.

1981년-2010년 기준 최한월 1월의 평균 기온은 -3.1℃이다. 최난월 7월 평균 기온은 26.7℃이며, 연 평균 기온은 13.2℃로 숫자만으로는 한국의 남부 내륙지역과 비슷하다. 21세기 들어 가장 심한 한파는 2021년 1월 7일의 -19.7℃이고, 그 다음에는 2016년 1월 23일, 영하 17.4℃였으며 최고기온은 -11.0℃에 불과했다.

폭염은 더 심한데 5월부터 폭염 수준 더위가 찾아오기 시작하고 한여름엔 40도 이상 올라가기도 한다. 2017년 7월 14일 아프리카에서 온 관광객이 베이징의 더위에 탈진한 일도 있었는데, 당시 온도계는 무려 42.5도를 나타냈다. 다만 습기가 별로 없다 보니 견딜 만한 편이다. 1951년 이후 기록된 역대 최저기온은 -27.4도 이며 역대 최고기온은 41.9도 이다.물론 이는 베이징 시내 중심부의 기온이며 외곽 지역인 화이러우구 등은 겨울철 영하 30도까지도 떨어지는 등 기온편차가 심하다. 이는 도심 열섬현상이 원인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체감 온도는 비슷하거나 덜하지만 건조기후의 영향으로 단순 최고-최저 기온 수치로는 서울을 능가하는 연교차를 자랑한다.

연간 강우량은 500~560㎜이다. 생장기의 농업용수 수요치는 200~300㎜가 부족하다. 재해성기후로 남부는 가뭄과 황사 등이 많이 발생하는 편이고, 서북쪽 산간지역은 여름에 흙·모래·돌이 섞인 물사태가 쉽게 발생한다. 겨울에 춥지만 워낙 건조하다보니 눈이 아예 안 오며 차량 통행도 많은 데다 베이징 외곽에 잔뜩 자리한 공장들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황사와 대기오염 때문에 공기가 매우 안 좋다.

2013년 1월에 들어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발생해 베이징을 뒤덮었다. 스모그가 뒤덮었다지만 사진만 보면 안개로 뒤덮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미묘하다. 이 대기오염 등이 문제로 지적되자 2008 베이징 올림픽 때에는 아예 올림픽 기간 동안 베이징 근교 공장 올 스톱이라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공장 노동자들은 8월 내내 유급휴가를 받았다. 현재는 정상회담/엑스포 등 국가 중요 행사가 열리면 닫아라 공장을 시전한다. 그리고 이렇게 중국의 국가 주요행사가 베이징에서 개최되면 이후로 3일에서 1주일간은 서울 공기도 덩달아 깨끗해지는 경향이 있다.

기후는 사계절이 있고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있는 온대 기후대에 속한다. 평균 기온은 11.3 °C, 연평균 강수량은 620mm 정도이다.

역사[편집]

기원전 1000년 경 춘추전국시대의 나라 중 하나인 연(燕)의 수도인 계(薊)가 오늘날 베이징(北京)이 있는 곳에 건립되었다. 이후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 한 후 계성은 주(州)가 되었고 삼국 시대에는 공손찬과 원소가 보유하다가 조조의 위나라에게 함락되었다 936년 현재 베이징을 포함한 북부의 넓은 영토를 거란의 요(遼)에게 대부분 정복되었다. 938년에 요는 지금의 베이징을 정복하여 한족들을 유린한 다음 두 번째 수도를 건립했고 그것을 남쪽의 수도라는 뜻인 남경(南京)으로 불렀다. 1125년 여진의 금(金)왕조는 요를 합병하고 1153년 동북의 회령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여 중앙수도라는 뜻의 중도(中都)라고 개칭했다.

1215년에 몽골이 1267년에 북쪽에서 상도(上都)를 건설했다. 중국의 전 지역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로 원(元)왕조의 시조 쿠빌라이 칸은 베이징보다 북쪽에 칸발리크 (汗八里, Khanbaliq)(위대한 칸의 거주지라는 뜻) 혹은 대도(大都)를 건설하여 수도를 삼았고 이 위치는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 속에 'Cambuluc'로써 잘 나타나 있다.

1368년 원의 멸망 후 도시는 명(明)조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고 순천(順天)지사 관저가 도시의 주위 지역에서 설립되었다. 1403년 이 곳이 수도인 난징(南京)보다 북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베이징(北京)으로 개명한 뒤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북경은 또한 경사(京師)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단순히 수도라는 뜻이다. 명나라 시기 동안 전통적인 베이징의 구획이 확립되었다. 자금성과 천단 등의 건축물이 1406년에서 1420년대 사이에 건설되었다. (현재의 천안문(중국어 정체자: 天安門)은 1651년에 마지막으로 재건된 것이다.) 1644년, 만주족의 청나라가 베이징을 점령한 뒤 베이징을 유린하였고 베이징은 청의 통치 기간 동안 중국의 수도로 남게 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을 일으킨 혁명 정부는 베이징은 만주족의 수도라는 주장으로 난징을 수도로 정하고자 하였다. 의 치열한 대화 끝에 베이징은 난징과 같이 수도로서의 역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1916년 중국은 지방 군벌들의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며, 각자 베이징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 1928년, 국민당 정부는 북부의 군벌을 소탕하고, 난징을 공식적인 중화민국의 수도로 정한 뒤, 베이징을 북부의 평화 또는 북부의 평화를 회복시켰다는 뜻의 베이핑(北平)으로 개칭하여 베이징의 상징적인 의미를 떨어뜨렸다. 이후 일본제국이 베이징을 정복하였다.

제2차 중일전쟁 당시인 1937년 7월 29일, 베이징(베이핑)이 일본 제국에게 정복된 기간 동안 도시는 그 이전의 이름인 베이징으로 개명되었고, 일본 제국에 의해 많은 한족들이 강간되었다. 이 곳에 일본에게 점령된 화북의 일부 한인들이 설립한 괴뢰정부인 중화민국임시정부(中華民國臨時政府)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에 패전하게 되고, 한편으로 소련이 만주 지역을 점령하는 등과 같은 영향에 따라 베이징의 이름은 다시 베이핑으로 바뀌었다.

1949년 1월 31일, 공산당 세력은 베이핑으로 무혈입성 하였고, 같은 해 10월 1일, 베이징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을 발표하였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중국어 정체자: 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에서 베이핑은 공산 정권의 수도로 확정되었고, 이름도 다시 베이징으로 개명되었다.)

1958년에 퉁저우구(通州区)라는 명칭으로 베이징시에 편입되었으나 1960년에 퉁현(通县)으로 격하되었고, 1997년에 다시 퉁저우구로 명칭이 환원된다.

본래는 말만 베이징인 농촌이었으나 2015년, 베이징시 인민정부가 퉁저우구로 이전된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개발이 되고 있으며, 현재는 베이징시 2번째 CBD인 윈허상무구(运河商务区)가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인구가 증가중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베이징 내부에서는 경제력이 딱히 높은 편은 아니다.

산업[편집]

퉁저우 경내 산업단지 총면적은 100㎢ 이상이며, 공간이 매우 광활하다. 행정사무, 비즈니스 서비스, 문화관광 3대 주요 기능으로 과학혁신 플랫폼을 구축했으며 본사 경제, 재부 관리, 문화관광, 문화과학기술, 첨단 칩, IT 정보 소프트웨어, 스마트 제조 등 7대 천억 위안 급의 산업 클러스터를 이루어, 최첨단 경제구조 구축을 가속하고 있다.

'양구' 건설의 장기적 비전. 퉁저우구(通州区)의 '양구(两区,국가 서비스업 개방 확대 종합시범구와 중국·베이징 자유무역시험구)' 건설은 운하 비즈니스 구역, 문화관광 구역, 장자완(张家湾) 디자인 타운 등 중점 시범 구역 및 기능 구역을 높은 수준의 개방을 위한 핵심 수용 지역으로 삼고 있다. 베이징 부도심 산업 배치와 관련해, 자산 관리, 녹색 금융, 핀테크, 도시 계획 및 설계, 문화창의 디자인, 문화관광, 전문 서비스 등 분야를 중점적으로 집결하여, 개혁 혁신을 모색하고 서비스 기능 및 보장 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징진지(京津冀, 베이징·톈진·허베이) 협동 시범 작용을 심화한다. '산업 개방+단지 개방' 모델을 통해 개혁 개방을 부단히 심화하며, 더 넓은 범위, 더 많은 분야, 더 다양한 차원에서의 전면적 개방을 모색하여, 더 높은 수준의 개방 발전 국면을 수도에 형성할 수 있도록 퉁저우의 역량을 보탠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퉁저우구〉, 《위키백과》
  2. 퉁저우구(베이징시)〉, 《나무위키》
  3. 베이징시〉, 《위키백과》
  4. 베이징시〉, 《나무위키》
  5. 퉁저우구 소개〉, 《베이징시 인민정부》
  6. 두산백과: 퉁저우〉,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동아시아 도시
동아시아 지리
동아시아 바다
동아시아 섬
동아시아 강
동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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