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고시촌
신림동 고치촌(新林洞考試村)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에 학원 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말한다.[1] [2]
개요
필기시험을 통한 신분 상승의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은 현대에 고시촌의 개념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사대문안이 산업화에 힘입어 업무지구, 상업 지구로 개발되면서 고시촌은 동숭동에 있었던 서울대학교가 새로 이전한 신림동에 새로 생겨나게 되었다.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 등 고시생의 주류층인 서울대생들에게 접근성이 극대화되는 것도 있지만 신림동이 사대문이나 다른 번화가들에 비해 지가가 싸고 공부하기 좋은 지리적 환경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시촌이 생기고 수험생들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전문 학원이나 가성비 좋은 식당, 저렴한 숙박 시설 같은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타 지역에서도 신림동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많은 수험생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신림동은 고시촌의 대명사가 되었다.
5급 공개경쟁채용 시험, 경간부 시험, 각종 전문직(법무사, 감정평가사, 관세사, 공인노무사 등) 준비생들이 주축이 된다. 녹두거리 외에도 도림천을 따라서 서울 산업정보학교 부근까지 각종 학원, 서점, 독서실이 쭉 이어져있다. 근래 들어 인터넷 강의 활성화, 대학 고시반 운영 등으로 고시촌에서 월세 내가며 살면서까지 공부할 이유가 많이 줄어들면서 학생들의 고시촌 유입이 옛날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사법시험의 폐지로 고시생이 감소하였는데, 집값이 싼 메리트를 가지고 지방에서 상경한 직장인들이 많이 입주하면서 신림동은 예전의 고시촌 분위기가 옛날보다 많이 사라졌다. 5급 공채, 외교관 후보자 시험, 각종 전문자격사 등의 시험은 주관식 논문형 시험이기 때문에 2차 시험 준비를 하는 경우 오프라인 실강 수강이 필수불가결한 측면이 있다.
자격사 1차 시험이나 7, 9급 공시의 경우는 객관식 시험이기에 동영상 강의로도 충분히 정오답 체크가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실강이 없더라도 자체적인 피드백이 가능하지만, 주관식 논문형 시험의 경우 강사의 '첨삭'이 필수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학원에 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강사에 따라서 온라인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면 첨삭을 해주는 경우가 있지만, 그게 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원에 다니는 것이다. 혼자서 하게 되면 온라인첨삭이 되지 않는 이상 모의고사 자체를 칠 수가 없다. 평가가 되지 않기 때문. 일반적으로 0순환 ~ 3순환까지 나눠서 0, 1순환은 이론학습, 2, 3순환은 본격적인 쓰기 모의고사를 하게되는데, 이 중에서 1순환까지는 어떻게 동영상 강의로 비벼볼 수 있다해도 2, 3순환은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시험을 치기 위해 학원에 가는 경우가 많다. 유예생, 장수생 등의 다년간의 경험자들도 보통 1순환까지는 자체학습 또는 인터넷으로 공부를 하면서도 2순환부터는 학원에 들어오게 된다.[3]
신림동 연혁
- 조선시대 : 경기도 시흥군 동면 서원리(書院里: 현 서원동·신원동·신사동·신림동), 신림리(현 서림동·삼성동·대학동), 난곡리(蘭谷里: 현 난곡동·난향동·조원동·미성동)
- 1914년 4월 1일 :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로 통폐합
- 1963년 1월 1일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림동 (행정동 : 봉신동 → 1966년 5월 1일 신림동)
- 1970년 5월 18일 : 신림동이 3개동(신림 1동, 신림 2동, 신림 3동)으로 분동
- 1973년 7월 1일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 1동, 신림 2동, 신림 3동
- 1975년 10월 1일 : 신림4동이 신림 3동에서, 신림 5동이 신림1동에서, 신림6동이 신림2동에서 각각 분동
- 1977년 9월 1일 : 신림 7동이 신림 3동에서 분동
- 1978년 10월 10일 : 신림 8동이 신림 4동에서 분동
- 1980년 7월 1일 : 신림 9동이 신림 2동에서, 신림 10동이 신림 6동에서, 신림 11동이 신림 3동에서, 신림본동이 신림1동에서 각각 분동
- 1988년 9월 1일 : 신림12동이 신림 11동에서 분동
- 1992년 7월 1일 : 신림13동이 신림 3동에서 분동
- 2008년 9월 1일 : 신림1동이 신원동으로, 신림 2동이 서림동으로, 신림 3동과 신림 13동이 난곡동으로, 신림 4동이 신사동으로, 신림 5동이 신림동으로, 신림6동과 신림 10동이 삼성동으로, 신림 7동이 난향동으로, 신림 8동이 조원동으로, 신림9동이 대학동으로, 신림 11동과 신림 12동이 미성동으로, 신림본동이 서원동으로 각각 명칭 변경 및 개편[4]
신림동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시흥군에 속하였다가, 1914년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서원리·난곡리의 자연마을을 합하여 신림리로 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면서 신림동으로 바뀌었고, 1973년 관악구 신설로 이에 속하게 되었다. 관악구에서 가장 먼저 상업지역으로 발전한 서원동은 예전에는 서원마을이었다. 마을 이름은 고려 시대에 서원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붙여졌다. 강감찬 장군이 송도에 왕래할 때 자주 머물렀던 곳으로 정자는 없어졌으나 지금까지도 지명은 남아 있다. 마을 뒷산인 장군봉은 강감찬 장군이 무예를 연마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북쪽 산정에는 군웅당이라는 제당이 있었으나 주택 신축공사로 헐렸다. 신림동 지역은 먹을거리 골목 및 각종 편의시설 등이 잘 갖추어진 곳이다. 대학동은 서울대학교가 있는 곳으로 고시촌이라는 독특한 동네가 형성되어 있으며 대규모 하숙집, 고시전문서점 등이 들어서 있다. 삼성동에는 약수암이라는 유서 깊은 절이 있다.
이 지역은 관악산 기슭에 밤나무가 무성했던 동네라 하여 밤골이라 불렀으며 삼성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지형이 조개 모양을 하고 있어 합실(蛤室)이라고도 했다. 남부순환도로와 신림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에는 유흥업소와 상가 등이 밀집하여 상업과 주거의 복합 구조를 이루고 있다. 난곡동, 난향동, 미성동 지역은 난곡이라 불리는 곳으로서 조선시대 강홍립(姜弘立) 장군이 유배되어 은거할 때 난초를 많이 길렀다는 데서 유래하며, 낙골, 난골 등으로도 불린다. 자하골은 서울대 정문 동쪽의 운동장 부근에 있던 마을이다. 문화재로는 난곡동에 굴참나무(천연기념물 271)가 있는데, 이곳은 강홍립 장군 집 뜰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1987년에 건설된 건영아파트 뒤쪽에 있다. 또한 강사상신도비(서울유형문화재 104)가 있으며, 그 밖에 난곡동과 난향동의 경계에는 강홍립 장군의 묘와 진주(晋州) 강씨(姜氏) 일가의 묘역이 있다.[1]
주변 환경
사실 신림동이라고는 부르지만, 단순하게 단일 지역으로만 취급하기에는 너무 큰 곳이다. 관악구 전체 면적의 58.3%, 전체 인구의 50.7%를 차지한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이웃 금천구(13.01km2)보다 신림동(18.14km2)이 더 클 지경이다. 절반 이상이 관악산이긴 해도 거의 대동소이한 수준. 인구도 전국의 법정동 중 1위이며, 금천구(232,583명)보다 더 많다. (252,015명). 최대 28만 명대였던 적도 있었다. 행정동이 11개로 분할되어 있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신림동이라고 하면 고시촌, 서울대, 신림역 먹자골목, 난향 지구, 난곡 지구 등등 상당히 상이한 이미지가 동시에 부여되어 있다. 이렇듯 법정동 신림동이 너무 비대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행정동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많다. 오죽하면 이 동네만 위주로 하는 선거구인 관악구 을이 있을 정도다. 또한 먹거리로는 순대가 굉장히 유명하며 대표적인 신림동의 핫플레이스로는 순대타운이 있다.[5]
교통
- 서울 지하철 2호선 : 신림역, 신대방역
- 남부순환로
- 신림로[4]
관련 기사
과거 대표적인 고시촌·대학촌이었던 서울 신림동이 경전철 신림선 개통 바람을 타고 신흥 주거지로 빠르게 탈바꿈하고 있다. 인구 밀집으로 노후화된 단독·다세대·다가구주택은 재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고, 식당·유흥시설 용지도 오피스텔로 속속 개발되고 있다. 이들 개발사업이 완료되는 3~4년 후에는 20·30대 젊은 층 유동인구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현재 신림동의 1인 가구는 총 1만2258가구로 전체 가구의 66%에 달한다. 신림동에 이어 중구 을지로동 60%, 광진구 화양동 59%, 중구 명동 52%, 강남구 역삼1동 51% 순이다. 신림동은 2년 전 조사에서도 1인 가구 비율이 77%로 혼자 사는 가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소형 주거지를 찾는 1인 가구의 경우 서울 내에서 선호지역(밀집지역)이 다르게 나타났다. 20·30대 젊은 층 1인 가구는 대학가나 회사 주변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성향을 보였다. 40·50대 중장년층은 연립·다세대주택 등 저층 주거지에서, 60대 이상 노년층은 강북·도봉·노원구에서 밀집도가 높았다. 특히 중구와 종로구 등 도심은 1인 가구 자체는 많지 않았지만 인구 대비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신림동은 인구 대비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은 물론, 절대적인 1인 가구 수도 역삼1동(1만6130가구), 화양동(1만5049가구), 관악구 청룡동(옛 봉천동·1만2798가구)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신림역세권은 최근 지하철 4개 노선과 교차하는 경전철 신림선 개통으로 여의도·강남지역에 10분대로 도착할 수 있게 됐다. 여의도, 강남까지 출퇴근이 용이하고 난곡선 개통 호재까지 겹쳐 실거주나 임대수요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6]
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신림동〉, 《네이버 지식백과》
- 〈고시촌〉, 《네이버 국어사전》
- 〈고시촌〉, 《나무위키》
- 〈신림동〉, 《위키백과》
- 〈신림동〉, 《나무위키》
- 서찬동 기자, 〈자취방 헐고 오피스텔 분양 러시…1인가구 밀집 이 동네 갑자기 왜?〉, 《매일경제》, 2022-09-25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