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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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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가

식당가(食堂街)는 식당이 많이 모여 있는 거리를 말한다. [1][2]

개요[편집]

식당가는 1900년대 초기 서울의 태평로 2가·명동·종로 5가·서소문동·소공동 등에 밀집되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아직 서민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 만한 새로운 음식점이 별로 없었다. 전통적인 주막이나 탕반류를 파는 음식점이 있기는 하였으나 새롭고 다양한 것을 찾게 된 입맛을 채워줄 수 없었다. 그리고 개화와 함께 도시에 생긴 고급 요정이나 서양식 음식점들에 서민들이 출입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였다. 중국인들은 이 때에 많은 중국 국수집을 내었다. 여기서는 짜장면·중국우동·짬뽕 등을 손쉽게 만들어 내었고, 또 잡채·탕수육·튀김·해삼탕·라조기·란즈완쯔 같은 간단한 요리도 만들었다. 그리고 고급 중국요리를 중국식 분위기에 맞추어 먹을 수 있는 고급중식도 생겨났다. 서울에는 아서원·사해루·금곡원·대관원 등이 생겼다. 이곳의 요리담당자는 거의가 중국 산둥성 출신으로 제한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음식점들은 이러한 역사를 거쳐 지금도 끊임없이 개선되고 개발되고 있다. 사회가 산업화됨에 따라 직장인들의 점심식사 해결을 위한 음식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최근의 외식문화의 발달은 음식점들을 대형화·고급화시키고 있는 추세이다. 프랑스·이탈리아·파키스탄·인도 등의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전문음식점도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외국의 외식산업체의 진출도 늘어나고 있다. 아울러 자동차의 증가로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교외에 나가서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한 패밀리레스토랑 등도 발전하고 있다.[3]

서울 대표적인 식당가[편집]

경희대 파전 골목[편집]

경희대 앞에는 파전에 막걸리를 파는 집들이 몰려 있어 예전 대학가의 낭만을 되살려주고 있다. 하철 1호선 회기역에서 1번 출구로 나와 경희대 방향으로 조금만 가다 보면 좁은 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파전집 간판들이 보인다. 거리 자체가 사람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파전집 안분위기도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1970~80년대 젊은이들의 추억이 가득한 곳에서 요즘 젊은이들 또한 예전에 그랬듯이 파전을 먹고 막걸리와 동동주를 마시고 고민하며 추억을 만들고있다. 그들의 식탁에 놓인 안주는 예나 지금이나 파전이다. 해물이 들어간 해물파전은 2㎝ 정도 두께에 지름도 30㎝는 족히 돼 보인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운 것이 씹는 맛과 재료의 맛을 고스란히 살리고 있다. 이런 전 종류 말고도 도토리묵, 곱창볶음, 순대볶음, 닭볶음탕, 오징어 볶음, 두부김치, 제육볶음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다. 하지만 파전 골목 인기 음식는 단연 해물파전이다. 단일 메뉴 말고도 집마다 다양한 조합의 세트메뉴를 만들어 놓고 있다. 경희대 파전골목에서 약 1.3㎞ 거리에는 홍릉수목원과 홍릉근린공원이 있어 파전을 맛있게 먹은 다음 둘러 보는 것도 좋다. 홍릉수목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이다.

공덕동 족발골목[편집]

지하철 5, 6호선 공덕역 4, 5번 출구로 나와 한겨레신문사 방향으로 가다보면 길 왼쪽에 족발골목이 나온다. 예전에는 이곳이 재래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족발집들이 모여 있다. 족발골목의 역사는 지금부터 약 30여 년 전에 시작됐다. 당시 공덕시장 한쪽에 2평 남짓 되는 식당을 차려 놓고 족발을 팔았던 집이 공덕동 족발골목의 효시다. 그때는 순대국과 함께 족발을 팔았다. 식당이 잘 되자 주변 상가들이 업종을 바꾸었고 재래시장의 면모를 잃긴 했지만 족발골목은 번성했다. 이 골목 족발집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푸짐한 양과 특별한 서비스 음식이다. 족발을 시키면 뜨끈한 술국과 순대 한 접시가 공짜로 나온다. 족발의양도 많아서 큰 것을 시키면 4명이 먹기에도 충분하다. 뜨끈한 국물은 리필이 되므로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그렇다고 양으로만 승부하는 것은 아니다. 맛있는 족발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집집마다 맛을 내는 비법은 다 다르지만 어떤집은 12가지 한방 및 천연 재료를 넣어 족발의 맛을 완성한다. 사람이 몰릴 때는 기다렸다가 입장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30년이 훌쩍 넘은 세월 동안 맥을 잇고 있는 공덕동 족발골목은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추억의 장소이다.

광장시장 전골목[편집]

일제강점기 일본의 여러 정책 가운데 하나가 서울시장 상권을 장악하는 일이었다. 그에 맞서 뜻있는 몇 사람이 모여 토지와 현금을 출현하면서 세운 곳이 광장시장이다. 그때가 1905년이었다. 광장시장은 서민들의 상권을 앗아가려는 일본에 맞서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이다. 당시에는 농수산물이 주로 거래되었으나 지금은 농수산물은 물론 한복과 일반 의류, 침구, 수예, 주방용품 등 없는 게 없다. 광장시장은 그 거대한 규모에도 놀라지만 시장 안 여러 먹거리 골목을 보고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골목길 양쪽 옆으로 전을 파는 식당들이 있지만 길 가운데는 포장마차식으로 만든 점포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동남아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길거리 음식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광장시장 먹거리 골목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길거리 뷔페라고 할 수 있다. 광장시장 골목에는 다양한 음식을 파는 집들이 자연스럽게 구역을 이루고 있다. 빈대떡, 전을 파는 식당과 포장마차 구역이 있고 칼국수와 만둣국을 파는 곳, 양푼이 비빔밥을 파는 곳, 순대에 머리고기, 돼지껍데기를 파는 곳, 회를 파는 곳, 죽을 파는 곳, 잔치국수와 떡볶이를 파는 곳 등이 어깨를 맞대고 골목마다 줄을 지어 서있다. 최근에는 광장시장 전골목이 외국에도 소문이 나면서 외국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교대 곱창거리[편집]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교대역 14번 출구 부근에 양곱창 거리가 있다. ‘거북곱창’과 ‘교대곱창’ 등이 그 거리의 주인공이다. 원조인 거북곱창은 1984년 문을 열었다. 저녁 5~6시가 되면 이 거리에는 양곱창 굽는 냄새가 퍼진다. 곱창 굽는 냄새와 함께 식탁에 펼쳐진 음식만봐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날씨가 좋으면 테라스 식탁에 앉아 먹을 수도 있다. 냄새와 분위기가 곱창거리임 을 알려주는 교대 곱창거리는 학생과 직장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적댄다. 석유 드럼통을 잘라 만든 것 같은 식탁들은 옛 분위기를 자아낸다. 분위기가 무르익는 시간이면 이 거리의 곱창집은 앉을 자리 없이 꽉 들어찬다. 자리에 앉자마자 식탁에는 소금, 된장, 양념장 등의 장류와 마늘쫑, 양파, 당근 등이 기본찬이 올라온다. 양곱창은 양파와 부추 등을 넣어 함께 볶아 먹는데 곱창구이를 먹고나면 철판에 밥을 볶아 먹을 수 있다. 밥을 볶을 때는 양을 넣어 볶아 먹는 ‘양밥’이 인기다.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음식 중에 하나가 양곱창이다. 동의보감에도 양곱창은 허약한 기를 살려준 다고 전해진다. 무기질과 단백질이 풍부하고 비장과 위에 좋으며 피부미용에도 좋다고 알려졌다.

낙원동 아구찜골목[편집]

낙원동 아구찜골목은 1970년대 초에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에서 아귀로 만드는 음식은 아귀탕뿐이었고 아귀찜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마산 등 해안가 도시에서는 아귀찜을 해먹었지만 그 음식이 서울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아귀가 표준말이지만 흔히 아구로 표현한다.) 그때 낙원동에 양지집이라는 집에서는 매일 인천에서 아귀를 사다 아귀찜 요리를 했다. 새로운 음식이 서울 한복판에 등장했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아구찜 골목의 집앞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넘 쳐났다. 그러다 경기가 안 좋아지자 198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1년 사이에 열 집 정도가 문을 닫게 되었 다. 한 해에 열집 정도가 문을 닫는 일이 벌어져도 지금까지 아구찜골목의 맥이 이어져오고 있는 이유는그 맛이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아귀찜으로 시작한 메뉴에 해물찜이 더해졌다. 다양한 해물을 맛보고 싶은 사람들은 해물찜을 선호하고 졸 깃하고 고소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귀찜을 찾았다. 해물찜에는 오징어, 주꾸미, 관자살, 조갯살, 홍합 문어, 게 등 다양한 종류의 해물이 들어간다. 녹말성분이 들어가서 찐득한 물이 배어나오는 데 해산물의 향과 양념이 어우러져 요리를 다 먹고 밥을 비벼 먹기에도 좋다.

남대문 갈치골목[편집]

남대문시장 안에는 갈치조림 음식점들이 골목을 이룬 곳이 있다. 숭례문 앞 숭례문수입상가 아치를 통과해 서 쭉 걸어가다가 오른쪽에 있는 골목길로 따라 들어가면 갈치골목이나온다. 바로 그 골목이 남대문 갈치골목으로 역사가 40년이나 된다. 남대문 갈치골목에서는 처음부터 갈치조림을 대표메뉴로 내세운 것은 아니었다. 칼국수와 만두 등을 팔다가 주요메뉴를 생선요리로 바꿨다. 갈치조림과 함께 고등어조림, 동태조림 등을 내놓았지만 손님들은 유독 갈 치조림을 좋아했다. 시장 사람들은 물론이고 인근에 있는 회사원들도 찾아올 정도로 갈치조림은 맛있었다. 이미 소문난 남대문 갈치골목이 방송을 통해 소개된 뒤부터는 손님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게다가 해외까지 알려져 일본인 관 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이러다보니 갈치를 조리는 냄비는 1년에 한 두 번은 갈아야 한다. 갈치조림에 들어가는 재료는 무와 파, 마늘, 고춧가루 등이다. 맛의 차이는 양념의 맛과 조림국물에 있다. 어떤 집은 쌀뜨물로 국물을 한다. 주재료인 갈치는 부산, 여수, 목포, 제주산 갈치를 쓴다. 어떤 집은 여수 갈치를 주로 쓰고 어떤 집은 제주 갈치를 선호하는 등 갈치를 공수해오는 지역도 다르다.

남대문 칼국수골목[편집]

서울은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장이 남대문시장이다. 오래 전부터 내국인은 물론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언제 찾아가도 북적거리고 활력이 넘친다. 남대문시장 6번 출입구를 알 리는 아치를 통과해 조금 가다 보면 왼쪽으로 칼국수 골목이 나온다. 골목 양쪽으로 점포가 있고 가운데는 사 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해놓았다. 남대문 칼국수골목에서 파는 음식은 칼국수, 수제비, 잔치국수, 열무냉면, 찰밥, 보리비빔밥, 냉면 등이다. 점포마다 요리하는 좁은 공간과 긴 식탁이 있고 그 앞에는 의자가 있다. 좁은 골목으로 다니는 사람도 많고 앉아서 먹는 사람도 많다. 불편하게 앉아 먹는 음식이지만 시장 분위기 때문인지 음식은 더 맛있다. 인기메뉴는 칼국수로 굵은 면발에 구수한 육수 맛이 좋다. 하지만 칼국수를 시켰다고 칼국수만 먹는게 아니다. 칼국수를 시키면 냉면이 맛보기로 나온다. 냉면을 시키면 칼국수가 맛보기로 나오고 보리비빔밥을 시키면 냉면이나 칼국수 맛도 보라고 주인아줌마가 또 챙겨 준다. 어떤 음식을 시켜도 또 다른 한 가지 음식 맛을 볼 수 있는 것이 남대문 칼국수 골목의 특징이다. 재래시장 먹자골목에서 통하는 정을 느끼게 해준다. 재래시장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며 정감 있는 장바닥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마포 주물럭ㆍ돼지갈비거리[편집]

마포대교 북단 지하철 5호선 마포역과 공덕역 부근에는 유난히 고기 집이 많다. 이곳에 고기집이 밀집한 연유는 옛날에 마포 나루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포나루는 옛날부터 한강의 큰 나루터로서 새우젓 등 젓갈류와 소금, 곡식류의 집결지였으며 맛 좋은 젓갈을 찍어먹는 고기 맛이 좋다고 널리 알려진 곳이었다. 젓갈을 보관하는 옹기를 구워 만들던 마을도 생겼다. 이 마을이 마포 주물럭˙ 돼지갈비 거리가 있는 용강동이다. 마포대교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나루는 없어졌다. 나루터 주변의 상권은 문을 닫고 주택과 사무실이 들어 서게 되면서 옛 모습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거리에 있던 몇몇 음식점들이 활성화되면서 마포 고기골목의 효시가 되었다. 현재 이 거리에는 주물럭과 돼지갈비, 목살과 항정살 등을 파는 고기집들이 모여 있어 저녁이 되면 고기 굽 는 냄새가 진동한다. 이 골목의 대표메뉴는 주물럭과 돼지갈비다. 쇠고기에 양념을 입혀 주물럭거린다 해서 주물럭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함께 나오는 버섯 등과 먹는다. 돼지갈비는 갖은 양념을 해서 달콤한 맛이 배 어나는 게 입맛을 돋운다. 숯불로 굽기 때문에 숯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다. 마포구는 매년이 거리에서 음 식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삼각지 대구탕골목[편집]

30년이 넘는 세월 삼각지에 대구탕 끓는 냄새가 이어지고 있다. 해장국 중 으뜸으로 꼽히는 대구탕이 삼각지에 처음 자리 잡게 된 것은 1979년도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삼각지 주변에는 네 곳의 대구탕집이 우애 좋 은 형제처럼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대구탕 골목이 유명해진 것은 군인들 덕이다. 삼각지 주변에는 육군본부 등이 있어 군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주요단골이었다. 그들은 전국에서 모여드는 군인 동료들에게 시원한 대구탕 맛을 보이게 했는데 그 맛이 전국으로 소문이 났다. 전출과 파견근무 등이 많은 군인의 특성상 외지에 갔다가 오랜만에 돌아오는 군인들은 부대에 복귀하기 전 삼각지 대구탕 한그릇을 먼저 먹고 부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 14번 출구로 나오면 우리은행이 나오고 그 뒷골목에 원대구탕과 자원대구탕이 있다. 이 식당들이 오래된 집들로 세월이 지나도 맛은 언제나 한결같다. 대구탕은 대구 자체에서 시원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별다른 육수를 쓰지 않는데 한때는 동태로 육수를 만들었던 적도 있었다. 이 골목에는 콩나물과 미나리 등을 넣고 얼큰하게 끓여 내는 대구탕과 함께 맑은 국물로 나오는 대구탕도 있다. 입맛에 따라 몸 상태에 따라 선택해서 먹는 맛도 즐겁다.

종로구 생선구이골목[편집]

생선구이 골목 주변에는 평화시장동대문시장, 동대문 쇼핑타운 등 빌딩들이 밀집해 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많은 사람들과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 주던 음식 중의 하나가 생선구이였다. 점심식사 전부터 손님 맞을 준비를하는 식당들은 생선을 굽는데 그 냄새가 고소하다. 골목 밖까지 퍼지는 생선 굽는 냄새에 이끌려 발길이 저절로 움직인다. 취급하는 생선도 아주 다양해 입맛에 맞게 생선구 이를 선택해 먹을 수 있다. 특이한 점은 굴비, 고등어, 삼치, 꽁치 등 다양한 생선을 연탄불에 구워 내온다는 것이다. 연탄불을 이용해 적당한 화력으로 은근히 구워내면 기름기가 적절하게 빠져 고소한 맛을 더해준다. 반찬과 국 한 그릇이 나오는 것은 일반 백반 상과 같다. 생선에는 동맥경화와 고혈압 등에 도움이 되는 성분은 물론 DHA 성분이 있어 기억력 등 두뇌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이밖에 노화방지와 치매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생선구이백반으로 배를 채웠다면 볼거리가 많은 동대문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일단 청계천으로 나가 산책을 즐기면서 몸에 밴 생선구이 냄새를 없앤다. 그리고 난 뒤 쇼핑타운을 찾는다. 쇼핑천국인 동대문에서 의 쇼핑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신당동 떡볶이골목[편집]

신당동 떡볶이 골목은 우리나라의 떡볶이 중흥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쉽게 떡볶이집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곳 신당동에서 현대식 떡볶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떡볶이의 종류와 맛도 다양해서 골라먹어야 할 정도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은 1953년에 태동되었는데 마복림 할머니떡볶이집의 마복림 할머니가 처음으로 떡볶이를 팔기 시작했다. 마복림 할머니는 TV를 통해 며느리도 몰라라는 카피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골목을 이루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동아극장 앞에서 포장마차를 꾸려 떡볶이도 팔고 옥수수며 감자 등도 함께 팔았다. 하지만 떡볶이골목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다. MBC 라디오의 임국희의 여성 살롱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신당동 떡볶이골목을 소개한 후 더 유명해졌다. 그렇게 떡볶이 맛이 소문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떡볶이는 집마다 소스가 달라 맛도 약간씩 차이가 난다. 어떤 집은 고추장에 춘장 등을 섞어 양념장을 만들기도 한다. 신당동 떡볶이는 손님들이 재료를 골라 즉석에서 볶아 먹는 게 특징이다. 떡볶이에 넣어 먹는 사리는 달걀, 라면, 당면, 쫄면, 만두, 어묵 등으로 다양하다.

신림동 순대타운[편집]

1970년대 초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골목 여기저기에 순대를 파는 음식점들이 성시를 이룬 적이 있었다. 신림동 순대골목이 바로 그곳으로 연탄불로 순대 요리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흙바닥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던 시절이라 공동수도시설을 이용하면서도 불편한줄 몰랐다. 1970년대 중반이 되면서 골목에 있던 순대집 들은 신림동 시장 안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곳이 재개발로 사라지고 빌딩이 들어섰다. 그러나 순대집들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빌딩 안에 순대집들이 점포를 얻어 입주해서 다시 순대를 팔았다. 그 이후 순대집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신림동 골목에 처음 등장한 순대는 바로 백순대다. 소금에 찍어 먹는 순대로 우리나라 백순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백순대는 고추장 양념을 해서 순대볶음으로 먹는 지금의 순대와는 사뭇 달랐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순대골목에 화로가 등장했다. 화력 좋은 화로는 볶고 지지는 요리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파와 당근 등 각종 야채를 순대와 함께 넣고 고추장 양념을 얹어 볶았다. 그 이후 원조 백순대에 고추장 양념순대가 추가되면서 신림동 순대골목의 양대산맥으로 자리 잡게 됐다. 옛날 신림동 순대골목의 순대볶음 맛은 아직까지 추억과 함께 온전하게 살아 있다.

오장동 함흥냉면 거리[편집]

중구청 사거리와 오장동 사거리 중간에는 고향의 맛을 찾아 모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오장동 함흥냉면거리다. 6.25전쟁이 끝나고 북쪽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오장동 등지에 많이 살았다. 모든 것을 북쪽 에 두고 온 사람들은 살기 위해 온힘을 다해 일했다. 실향민 중 일부는 고향에서 해먹던 음식의 맛을 잊지 못해 고향의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오장동흥남집은 1953년부터 함흥식 냉면을 팔았다. 곧 다시 고향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실향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 고향의 맛을 듬뿍 담고 있는 고향의 음식이었다. 오장동흥남집은 비빔냉면에 가오리 양념회무침이 고명으로 얹어진다. 면은 고구마 전분을 쓴다. 여기에 참기름, 식초, 겨자, 양념장 등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넣어야 맛이 좋다. 비빔냉면을 먹으면서 사골을 우려 만든 구수한 육수를 곁들여 마시면 냉면으로 차가워진 속이 따듯해지며 냉면의 맛이 더욱더 살아난다. 함흥냉면집도 역사가 50년 정도 된다. 함흥에서 피난 와서 냉면집을 열었다. 다른 냉면집도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장동 함흥냉면거리는 6.25전쟁 직후부터 지금까지 오장동 터주대감으로 실향민들의 입맛과 마음을 달래주고 있는 망향의 거리다.

용두동 주꾸미 골목[편집]

가끔 매운맛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찾아갈 만한 곳이 바로 용두동 제기역 부근에 있는 주꾸미 골목이다. 1980년대 후반 우연치 않게 주꾸미요리를 손님상에 냈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아 본격적으로 주꾸미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입소문을 통해 주꾸미와 매운 양념이 어우러진 주꾸미 볶음이 손님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음식점 주인은 주 꾸미볶음 하나만으로 음식점을 전문화 시켰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근처에 하나 둘씩 주꾸미요리집이 늘었고 199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지금과 같은 주꾸미 골목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용두동 주꾸미 볶음은 매운 맛이 특징이다. 빨간 양념에 무친 주꾸미를 볶아 먹는데 매운 성분이 가득한 주꾸미가 불에 끓으면서 익는다. 냄새부터 매콤하다. 쫄깃하게 씹히는 주꾸미와 양념이 어우러진 맛이 맵지만 자꾸만 손이 간다. 주꾸미 볶음에 들어가는 다양한 부재료도 입맛을 돋우게 해준다. 삼겹살, 국수사리, 떡사리, 어묵사리 등 사 리의 종류도 집집마다 다양하다. 여러 사리 가운데 주꾸미 국물과 잘 어울리는 게 국수사리다. 주꾸미볶음을 다 먹고나면 밥을 볶아 먹을 수도 있다. 또한 주꾸미 볶음은 포장도 가능하다.

을지로 골뱅이 골목[편집]

을지로에 골뱅이를 파는 식당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60년대 말이다. 원조 영동골뱅이, 금호골뱅이, 영락 골뱅이 등이 골뱅이 골목 초창기에 있었던 집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골뱅이를 팔았던 곳이 있었다. 현재 골뱅이 골목에 있었던 구멍가게에서 골뱅이 통조림에 쥐포를 찢어 넣고 양념을 해서 버무려 팔았다. 그 구멍가게에서 만들어 팔던 골뱅이무침이 을지로 골뱅이 의 시작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골뱅이무침이 원조라 할 수 있다. 이 거리에 골뱅이무침을 파는 식당이 몇 곳 생기면서 골뱅이무침에 마늘과 고춧가루 등의 양념과 함께 파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파를 채썰어 넣는데 갖은 양념과 함께 어우러진 매운 맛이 골뱅이 육수와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낸다. 비슷한 재료로 만든 골뱅이무침이지만 집집마다 맛 차이가 난다. 골뱅이무침의 매운 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조개 국물이나 달걀요리 등을 기본안주로 내놓는 집도 있다. 주재료인 골뱅이와 함께 무침에 들어가는 부재료 또한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보통 골뱅이무침에 쥐포나 대구포가 들어간다. 대구포는 골뱅이 육수와 어우러진 갖은 양념국물에 스며들어 씹는 맛이 다르다. 이 을지로 골뱅이무침이 전국으로 널리 퍼져 있다.

응암동 감자국 거리[편집]

응암동 감자국 거리의 역사는 19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림시장 주변에 돼지뼈를 푹 고와 육수 를 만들고 그 육수에 돼지 등뼈와 감자와 우거지 등을 넣고 끓여 내는 감자국이 등장했다. 감자국이 맛있다 는 소문이 나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자 주변에 음식점들이 하나 둘씩 늘었다. 1990년대는 응암동 감자국거리 최고의 번성시기로 열 곳이 넘는 감자국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서울에서 감자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응암동은 감자국의 메카와도 같았다. 맛 경쟁도 치열해서 각집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육수를 만들었고 감자국에 들어가는 재료를 바꿔가며 맛내기에 열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응암동 감자국 거리의 감자국은 입소문을 타고 장안의 별미로 인정받게 되었다. 응암동 감자국의 특징은 푸짐한 양과 각 집마다 특색 있게 만들어 내는 육수 맛이 색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등뼈에 붙은 고기맛은 일품이다. 등뼈에 붙은 고기를 다 먹으면 밥을 볶아서 먹을 수 있다. 식사로도 인기만 점이지만 진한 육수에 채소가 들어간 국물 때문에 술안주에도 잘 어울린다. 저녁에는 여기에 술 한 잔을 곁 들이면 더욱 맛있다.

이태원 세계음식 거리[편집]

이태원삼거리 한복판에 해밀턴호텔과 쇼핑센터가 있다. 그 쇼핑센터를 끼고 올라가면 화려하진 않지만 마치 일부러 감춰놓기라도 한 듯 중국, 인도, 중동,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벨기에, 불가리아, 브라질, 멕시코 등 세계 각국의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골목 안에 들어서면 마치 외국의 한 거리에 들어온 듯하다. 나란히 늘어선 레스토랑들은 제각기 개성이 다른 인테리어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골라 먹는 재미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다양한 세계 문 화가 공존하는 서울 안의 작은 용광로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음식문화가 그 중심에 있다. 각국을 대표하는 음식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셀 수 없이 많다. 브라질 정통 숯불바비큐 호시디오가 있다. 호디시오는 바비큐 그릴에 부위별로 구운 고기를 웨이터들이 들고 다니면서 손님들에게 서빙하는 음식이다. 태국을 대표하는 음식 파파야샐러드도 만날 수 있다. 고소하고 담백하게 볶은 면과 새콤하고 매콤한 맛이 상큼하다. 유럽의 어느 작은 골목에 실제로 있을 법한 이탈리 안 레스토랑에서는 고르곤졸라 피자와 마리게리타 피자 등을 주문할 수도 있다. 이태원 세계음식 거리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장충동 족발 골목[편집]

장충동은 6.25 전쟁 때 북쪽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서울에 터를 잡고 살았던 곳 중의 하나다. 곧 통일이 될 것 같았던 기대도 멀어지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달래고 삶을 영위해나기 위해 1950년대 후반 현재의 장충동 족발 골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족발을 파는 식당을 열었다. 그 집 주인아주머니가 평안도에서 내려 온 사람이었는데 자신의 어머니가 고향에서 해주던 족발요리의 맛을 되살려 고향의 맛을 간직한 족발을 메 뉴에 올렸다. 옛날에 평안도에서는 음식이 잘 상하지 않는 추운 겨울이면 돼지를 잡아 통째로 걸어놓고 먹고 싶을 때 썰어서 먹었다. 꾸둑꾸둑한 고기를 요리해서 먹을 때면 씹히는 질감도좋았다. 족발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자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지나면서 주변에 족발집이 생기기 시작했고 지금의 족발 골목을 이루게 됐다. 이 골목의 족발집은 적어도 3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각 집마다 족발의 맛이 약간씩 차이가 난다. 족발을 삶는데 들어가는 재료와 삶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재료와 비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족발골목은 24시간 문을 여는 집도 있고 자정이나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 집도 있다. 요즘은 일본까지 그 명성이 자자하게 퍼져 일본인 관광객들도 몰리고 있다.

종로5가 닭한마리 골목[편집]

종로5가에 가면 닭 한 마리를 독특한 방법으로 요리해 먹는 집들이 모여 있다. 이른바 닭한마리 골목이다. 이 골목에 닭한마리가 등장한 것은 30년도 훌쩍 넘는다. 당시에는 부근에 고속버스터미널이 있어서 언제나 많 은 사람들이 오가던 곳이었다. 또한 주변에 동대문시장, 평화시장 등 시장 사람들과 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많았다. 이들의 배고품을 달래주기 위해 여기저기 먹을거리를 파는 골목이 늘어나게 됐는데 닭한마리 골목도 그 즈음에 생겨났다. 처음에는 지금같은 방식의 닭한마리 요리를 만들었던 게 아니다. 요즘 가끔 볼수 있는 칼국수에 닭고기를 넣고 끓인 닭칼국수를 만들었다. 음식점 간판도 없이 한옥집에서 닭칼국수를 끓여 냈다. 이 골목의 닭칼국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형태와 요리 방법이 바뀌어져 지금과 같은 닭한마리 요리가 탄생 되었다. 큰 양푼에 육수를 넉넉하게 붓고 초벌로 삶은 닭을 넣고 끓인다. 거기에 인삼, 대추, 버섯, 감자, 떡 등 부재 료를 넣어 또 끓인다. 고기와 부재료 등을 어느 정도 건져 먹은 뒤 남은 육수에 칼국수 사리를 넣어 끓여 먹는다. 이것이 닭한마리골목에서 닭을 요리하는 방법이다. 닭 한마리요리는 집집 마다 만드는 방식이 비슷한데 다만 차이가 있다면 육수와 소스다.

중대 먹자골목[편집]

대학교 주변에는 어디나 유명한 먹을거리들이 있기 마련인데 중앙대학교 근처에는 돼지갈비골목이 있다. 흑 석동성당 맞은편 골목 입구에 중대 먹자골목이라는 간판이 있는데 그골목이 흑석동 돼지갈비 골목이다. 30~40년 역사를 가진 이 골목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앙대학교 학생들이 주요 단골이었다. 학과 주요행사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은 이골목을 찾았다. 아곳에 모인 학생들은 고기를 굽고 술잔을 돌리며 낭만을 즐겼다. 학생들은 졸업을 하고 회사에 취직한 후에도 이 맛을 잊지 못해 회사 동료들과 함께 찾아왔다. 단골은 학생 들뿐만 아니고 흑석동 주민들도 돼지갈비를 즐기러 이 골목을 찾았다. 하지만 아곳의 돼지갈비가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장안의 많은 사람이 찾아올 정도로 유명해졌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인기메뉴는 돼지갈비지만 소금구이, 숯불 삼겹살과 해물요리, 매운 갈비 등도 인기가 있어 입맛에 따라 선택해서 먹을 수가 있다. 저렴한 가격에 맛좋은 돼지갈비를 먹고 싶다면 흑석동 돼지 갈비 골목을 찾으면 된다. 흑석동을 찾았다면 이곳에서 돼지갈비를 먹기 전에 1시간 정도 짬을 내어 서달산 산책로를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4]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식당가〉, 《네이버 지식백과》
  2. 가게〉, 《위키백과》
  3. 음식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정다운, 〈서울의 대표 음식거리〉, 《네이버 블로그》, 2013-08-23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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