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그리닝(Evergreening)은 만기 연장이나 추가 대출을 통해 부실한 대출을 숨기고 끌고 가는 행태를 말한다.
자산의 거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가치하락→거래둔화→급매→경공매 순으로 이어지는 버블 붕괴 사이클은 강력한 충격이 없는 이상 작동이 더디다. 통상 주식시장에서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취하는 '숏포지션'이 부동산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가계 자산의 70~80%가 부동산인 상황에서 일반 차주들은 연체가 턱밑까지 차오를 때까지 부동산을 붙들고 있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미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수년간 지속된 저금리로 거품이 낀 미국 주택가격은 담보대출과 가계대출 연체율이 4%를 찍는 순간에서 터졌다. 지난해 9월 기준 국내 시중은행의 상업용 부동산담보대출 연체율은 0.2%, 비 은행은 4.4% 수준이다.
은행은 차주들이 거품이 낀 자산을 헐값에 넘기지 않고 버티도록 돕는 조력자다. 부실 담보물의 '에버그리닝(evergreening)'이 여기서 등장한다. 에버그리닝은 만기 연장이나 추가대출로 부실 채권을 마냥 생기있는 풀처럼 만드는 은행 관행을 말한다. 원칙대로라면 은행은 임대료·금리·기대인플레이션·감가상각·경쟁관계 부동산 등을 종합해서 담보 가치를 매년 재감평하고, 1년 사이 담보 가치가 떨어진 경우엔 대출 이자를 크게 올려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재감평 과정 자체가 매우 느슨하게 작동한다. A씨의 상가도 지난 7년간 공실이었지만 대출 금리가 체감상 부담이 될 정도로 오른 건 고금리가 본격화한 지난해 초부터다. 서울 영업지점에서 기업 대출 업무를 담당하는 한 은행원은 "적어도 부동산 시장이 뜨거웠던 최근 2~3년 동안 재감평으로 상환 독촉을 하거나, 재감평을 통해 대출이자를 높인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감정평가 법인도 거품을 유지하는 카르텔에 협조한다. 조정흔 감정평가사는 "재감평 할 때 기존 평가액보다 낮게 가치를 산정하면 은행이 평가법인에 책임을 묻거나 향후 거래를 끊을 수 있다는 무언의 압박감을 평가사들이 종종 호소한다. 재감평이 은행 세칙에 규정된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더구나 집합상가 등 비주거용 부동산은 정부가 내놓는 공시가격이 없다. 대조할만한 가격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은행의 인위적인 담보물 평가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은행은 '에버그리닝'을 통해 이자 장사를 한동안은 유지할 수 있고 외관상 건전한 대차대조표를 갖출 수 있다. 하지만 왜곡된 장부 가액의 뒷면에는 부실 담보물 위험이 곧 터질 폭탄처럼 도사리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2019년 '부동산금융의 시대' 보고서에서 "금융기관이 보유한 실물자산 익스포저는 극심한 변동성 위험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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