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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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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과 맷방석
맷돌과 매함지
풀매

맷돌(millstones, mill stones)은 곡식을 가는 데 쓰는 기구이다.

둥글넓적한 돌 두 개를 포개고, 위에 뚫린 구멍으로 갈 곡식을 넣으며 손잡이를 돌려서 갈게 된다. 맷돌을 돌리는 맷돌의 손잡이를 맷손이라고 하며, 대개 나무로 만들고 윗돌 옆에 수직으로 달아 손잡이를 돌려서 곡식을 간다.

개요[편집]

·녹두· 등의 곡식을 가는 데 쓰는 도구. 믹서기의 조상 격이다.

간혹 멧돌로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맷돌이 맞다.

둥글고 넓적한 돌을 위짝과 아래짝 중쇠에 맞춰 포개어 놓고, 위짝에 구멍을 파서 나무 손잡이인 맷손을 끼워 넣어 만든다. 위짝 뚫린 구멍에 곡식 낱알을 넣고 맷손을 돌리면 두 맷돌 사이로 들어간 곡식들이 곱게 갈아져서 사방으로 흘러나온다.

맷돌에서 간 것과 일반 믹서기로 간 것과 맛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칼날로 갈아낸 것과 돌로 으깬 것 간의 입자의 질감 차이다. 특히 단단한 재료일수록 믹서기의 칼날로는 입자가 균일하게 갈리지 않기 때문에 맛의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녹즙기나 원액기 같은 자동 맷돌도 개발되었다. 아예 맷돌에 모터를 달아서 자동 맷돌로 쓰는 가게도 많다. 가게 규모가 큰 데 직접 맷돌로 재료를 간다고 하면 십중팔구 이런 제품을 쓰는 것. 간혹 모터 열 때문에 영양분이 파괴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근거가 부족하고, 식감 정도에는 영향이 있을 수 있겠다. 간혹 맛을 위해서 맷돌을 쓰는 식당 등도 있는데, 기계 믹서로 바꾸었다가 기계열을 신경쓰지 못해 음식이나 식재의 맛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돌로 만든 물건이다 보니 녹즙기 등에 비해 굉장히 무겁고, 아주 시골 지방이 아니면 이젠 보기가 매우 힘든 물건이 되었다. 현대엔 소형 맷돌도 나오지만, 그 소형이라는 것의 무게도 기본이 10 kg는 넘는다. 개당 2~5만 원 정도. 다만 커피 맷돌이라고 해서 맷돌로 가루 내어 만드는 커피 전용 맷돌은 비싸면서도 그 크기가 작다.

일반적인 맷돌보다 더 대량으로 갈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하는 '연자매'란 것도 있었다. 연자매는 거대한 돌을 원반 모양으로 다듬어서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막대를 연결하고, 원반을 세워서 사람이나 가축이 막대를 붙잡고 빙빙 돌리면서 돌의 무게로 곡식 등을 갈아버렸다. 그만큼 많이 갈 수 있지만 고된 노동이었다. 하루종일 바쁘게 일한다는 뜻으로 "연자매를 가는 당나귀"라는 속담도 있을 정도였다. 현대 한국에서 맷돌은 흔하진 않더라도 찾아보면 찾을 수 있고 수요도 없지는 않지만, 연자매는 정말로 수요가 전무해서 민속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빵을 만드느라 연자매를 많이 사용했는데, 노예나 당나귀가 방앗간 겸 빵집의 구석에서 힘겹게 연자매를 종일 돌리곤 하였다. 오늘날에도 멕시코에서 데킬라를 빚는 업자들은 용설란을 짓이길 때 연자매를 사용한다. 전통적인 방법대로 당나귀가 연자매를 돌리게끔 하지만, 대형 업자들은 모터를 연결해서 전자동으로 연자매를 갈기도 한다.

흔히 우리말로 맷돌이라고 번역하는 영단어 millstone은 정확히는 연자매를 가리킨다.

구조 및 특징[편집]

곡식을 압착하고 비비면서 껍질을 까거나 빻는데 사용하는 연장이다. 바닥이 평평한 두 짝의 둥근 돌 사이에 곡식을 넣고 한 짝을 돌리면서 곡식을 갈거나 탄다.

맷돌은 돌로 아래짝 위짝을 같은 크기로 만들고, 아래짝에는 한가운데에 수쇠, 위짝에는 암쇠를 끼워 매를 돌릴 때 벗어나지 않게 한다. 그리고 위짝에는 매를 돌리는 맷손을 박는 홈과 곡식을 넣는 구멍을 낸다. 또 아래짝과 위짝이 접하는 면을 오톨도톨하게 쪼아 곡식이 잘 갈리게 하고, 갈린 곡식이 잘 빠지도록 아래짝은 약간 볼록하게, 위짝은 오목하게 만들고 듬성듬성 골을 낸다. 그러나 현무암으로 만든 맷돌을 이미 표면이 거칠기 때문에 매를 쫄 필요가 없다.

맷돌의 크기와 모양은 매우 다양해서 적은 것은 지름이 20cm에 불과하지만 절에서 사용하던 맷돌은 1m가 넘는 것이 있다.

마른 곡식을 갈 때는 지름이 1∼2m 되는 맷방석에 맷돌을 올려놓지만 두부콩과 같이 젖은 곡식을 갈 때는 함지나 매함지 위에 맷다리를 걸치고 그 위에 맷돌을 놓는다. 맷방석은 도래방석과 같지만 둘레에 10cm가량의 운두를 두었고, 매함지는 가공물이 흘러 내리도록 함지의 한쪽을 터놓았다.

그리고 어떤 것은 맷돌의 아래짝과 함지를 한 덩어리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를 '풀매'라고 한다.

작은 맷돌은 혼자서 돌리기도 하지만 큰 것은 둘이서 마주앉아 맷손을 같이 잡고 돌린다. 그리고 아주 큰 것은 여러 사람이 돌리거나, 토매와 같이 크랭크 기구를 만들어 두 손으로 돌리기도 했다. 보통 맷돌로 한시간에 두부콩을 5리터를 갈 수 있다.

종류[편집]

맷돌은 물맷돌과 구멍맷돌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구멍맷돌에는 한구멍 맷돌 ·두구멍맷돌 ·네구멍맷돌 등이 있는데, 이것들은 절에서 많이 썼다. 절에서는 단백질의 공급을 두부에 의존하기 때문에 콩을 한꺼번에 많이 갈 수 있는 매우 큰 맷돌이 필요하였다. 물맷돌은 수로에서 떨어지는 물이 바퀴를 돌리고 그 힘을 받은 굴대가 윗짝을 회전시키는 맷돌로서 서아시아에서 발명되어 중앙아시아를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두구멍맷돌은 긴 작대기를 잡아매고 집짐승이 끌어서 돌리며, 네구멍맷돌은 ㅁ자꼴의 틀을 얹고 이를 네구멍에 잡아매고 두 마리의 집짐승이 돌린다. 고구려 승려 담징이 만들었다고 전하는 네구멍맷돌은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縣] 다자이후시[大宰府市] 간제온사[觀世音寺]에 지금도 남아 있다.

이 밖에 풀매라 하여 옷에 먹일 풀을 만들기 위해 물에 불린 쌀을 가는 맷돌이 있으며, 이것은 밑짝에 주둥이를 길게 달아놓은 것이 특징이다. 흔히 한 사람이 손잡이를 돌리고 다른 한 사람은 아가리에 곡물을 흘려넣는다. 그러나 맷돌이 크고 갈아야 할 곡물이 많을 때에는 손잡이에 가위다리 모양으로 벌어진 맷손을 걸고 2~3사람이 노를 젓듯이 앞뒤로 밀어가며 갈기도 한다.

역사[편집]

기원은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와 비슷한 도구는 조리기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석기 시대부터 발달하였다.

곡물의 가열방법과 조리방법에서 동서간에는 시종 엄연한 차이를 보여왔다. 서아시아에서는 선토기 신석기시대(PPNA와 PPNB)에 맥류를 비롯한 농경이 발생한 후 주로 구워서 빻거나, 빻아서 구워먹는 소분식(燒粉式) 음식문화가 발달하였다. 여기서 제분은 필수과정이다. 따라서 용기나 도구의 제작으로 볼 때, 서아시아의 신석기문화는 제분기문화(製粉器文化)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제분기 유물의 출토는 이를 증명해준다. 지중해 동안에서는 처음에는 공이와 절구가 상하운동 하는 방식으로 제분하였으나 효율성이 낮아 전후운동식(前後運動式) 제분법으로 전환하였다. PPNB 초기에는 한쪽 변(邊)을 열어놓은 채 한 손으로 동작하는 이른바 개변식(開邊式) 맷돌(Open quern)이 나타났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 약 8,000년 전에 출현한 안장식(鞍裝式) 맷돌(saddle quern)인데, 두 손으로 전신의 힘을 기울여 움직이게 되어 있다. 이러한 안장식 맷돌은 맥류를 위주로 한 서아시아식 농경이 보편화 된 곳, 즉 유럽의 동서양 연안에서부터 동은 인더스 강 유역, 남은 사하라 사막 북변까지를 망라한 광활한 지역에서 다수 발견된다. 서양과는 달리 중국 남부에서 출발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확산된 벼 위주의 농경문화에서는 제분기가 별로 쓰이지 않았다.
실크로드 사전』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유럽인들이 오기 전 석회수에 불린 옥수수를 갈돌(위에도 있는 원시맷돌)로 갈아 먹었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문화를 무시하고 그냥 말라있는 상태로 갈았다가 펠라그라 병에 걸렸다.

한국에서의 맷돌[편집]

맷돌의 원형 격인 갈돌이다. 석기시대부터 사용한 유서 깊은 물건이다.
약연의 모습이다. 재료가 사진처럼 나무면 나무약연, 이면 돌약연, 면 쇠약연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기원전 3천-기원전 2천 년 무렵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이후 석기인들이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학자들은 석기인들이 최초로 회전축을 이용한 '움직이는 도구'를 만들었으니, 바로 빗살무늬토기인의 맷돌이라고 여긴다.

맷돌은 편평한 돌(갈판) 위에 적당한 돌, 또는 물건으로 문지르는 갈돌과 갈판이라는 물건으로부터 시작됐다. 이러한 갈돌과 갈판은 철기 시대 무렵까지 사용되었으나 철기 시대를 전후하여 절구로 대체되었다. 한약재를 가공하는 데 사용하는 약연(藥碾)은 갈돌의 원형을 상당부분 간직했다.

이러한 원시적인 것이 아닌 넓고 등굴넓적한 돌 2개를 위아래로 겹치고 아랫돌의 중심에 박은 중쇠에 윗돌 중심부의 구멍을 맞추어 회전시키는, 우리가 아는 맷돌은 갈돌과 절구보다 뒤에 발전한 것으로, 기원 전후 무렵 고대 서아시아에서 만들어져서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구려에 담징이 건너가 세웠다는 절에 회전식 맷돌이 있기 때문에 삼국 시대로 추정하며, 한국에서 실제로 발굴되는 유물과 유적 상으로는 고려시대의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

한국에서 주로 쓰이던 맷돌은 돌로 다듬어진 제분용 맷돌, 옷에 풀을 먹이기 위해 물에 불린 쌀을 갈던 돌로 만든 풀매, 곡식의 껍질을 벗기기 위한 목매(매통) 등이 있다. 제분용 맷돌은 안쪽 면을 다소 얽게 만들었고 풀매는 안쪽 양면을 곱게 다듬었다. 특히 이 풀매는 옷에 풀을 먹이기 위해 물에 불린 쌀을 주로 같았기에 사용이 많지 않아 마을별로 1∼2개를 제작, 공동우물가에 놓고 마을 주부들이 함께 쓰게 했다.

곡식 도정용 목매(木磨)는 '매통'이라고도 하여 나무나 흙으로 만들어 안쪽 상하 모두 톱니바퀴와 같은 홈을 파 벼나 보리를 넣고 돌리면 껍질이 벗겨진다. 목매를 나무매, 통매라고도 부르고, 흙으로 빚어 만든 것은 토매라고 한다. 이들 맷돌의 규격은 제분용은 지름이 40-50 cm 정도였고 풀매는 다소 작았고 목매는 다소 컸다. 좀 더 큰 맷돌은 손으로 돌리기 힘들어 맷손에 T자 모양 막대를 달아 한두 사람이 밀고 당기며 돌릴 수 있게 하였는데, 이런 장치를 '맷지게'라 한다. '연자매'라고 하는 대형 맷돌은 맷돌과 모양이 좀 달라서 누운 아랫짝 위에 윗짝이 세워져서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빙빙 도는 구조로 만들어 주로 소나 말의 힘으로 돌렸고 가축이 없을 때는 사람의 힘으로 돌리기도 했다.

맷손

맷돌의 손잡이는 어처구니?[편집]

맷돌의 손잡이를 순우리말로 '어처구니'라고 한다는 설이 퍼져 있으며, 이것에는 으레 '어처구니 없다'는 말의 어원은 맷돌을 돌리려고 보니 손잡이가 없을 때의 황당한 상황이라는 말이 함께 따라다닌다.

하지만 맷돌의 손잡이를 가르키는 진짜 말은 맷손이다. 어처구니의 본 뜻은 '상상 밖의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 이다. 구한 말 시대에 서양에서 들어온 거대한 기계에 대해서 '어처구니 기계'라고 부르는 용례들이 기록되어 남아 있다.

참고자료[편집]

  • 맷돌〉, 《위키백과》
  • 맷돌〉, 《나무위키》
  • 맷돌〉, 《한국의 농기구》
  • 맷돌〉, 《두산백과》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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