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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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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손작두. 약을 자를 때 쓰는 소형 손작두인 약작두다.
① 손작두, ② 손작두, ③ 발작두
쌍작두

작두(Straw cutter)는 나무토막 위에 긴 칼날을 달고 그 사이에 짚, 풀, 약재 등을 넣어 써는 연장이다.

풀·콩깍지·짚·수수깡·고구마 덩굴 등을 썬다. 기름하고 두둑하며 끝이 양쪽으로 벌어진 나무토막 위에, 가운데 구멍이 뚫린 2개의 짤막한 쇠기둥을 박아 세우고, 그 틈에 길고 큰 칼날 끝을 끼워 고두쇠로 꿰고 한끝의 나무자루 안쪽에 쇠고리를 박아 새끼로 끈을 매어 손에 잡고 발판을 만들어 한 발을 딛는다. 다른 한 발은 작두 자루를 밟아 새끼줄을 잡아 올렸다내렸다 하며 썬다.

대부분 가지가 벌어진 끝을 작두의 머리 쪽으로 삼으나, 전라남도 지방의 작두는 이와 반대이다. 양 가지가 벌어진 쪽에 발걸이를 고정시켜 놓는다. 두 사람이 1조가 되며 한 사람은 여물감을 먹인다.

개요[편집]

작두란 두꺼운 짚더미나 한약재처럼 일반적인 가위나 칼로는 자르기 힘든 물건을 쉽게 자르기 위한 도구이다. 무교신앙에서 무당들의 무구(巫具)로 사용되기도 한다. 판관 포청천에서는 포청천(包青天)이 開鍘를 외치며 죄인을 참수(원래는 요참형)하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 이 드라마를 보고 작두라는게 뭔지 알게 된 사람도 있을만큼 작두의 비중이 크다.

현대에는 종이 재단기라 하여 사무용으로 모눈 판을 달아 종이를 크기에 맞게 자르는 용도로 쓰기도 한다.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잘라서 줄 때 많이 쓴다.

타짜에서도 작두가 나온다. 고니가 들고 다니던 칼이 바로 작두 손잡이에 달린 칼날부분을 떼어 만든 작두칼. 원작에서도 1권에 이걸 들고 깽판을 부렸는데[1] 이는 타짜 1부의 부제이기도 하다.

작두라는 말은 한자어 '작도(斫刀)'에서 온 말이며, 錯刀로 쓰거나 종종 음차하여 莝豆로 표기하기도 한다. 날이 일반적인 가위나 칼보다 길면서 두껍고 튼튼한데다 틀에 고정되어 있어 다량의 물건이나 두껍고 강한 물건을 손쉽게 일정한 규격대로 자르기 좋다.

작두는 최소 삼국시대 이전부터 쓰였던 것으로 보이며, 개중에는 무기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도 있다.

무속에서의 작두[편집]

작두타는 무당

무교에서 무당들이 자신의 신력을 보이기 위한 무구(巫具)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 신을 내린 뒤 두 개의 날을 쌍으로 배치한 쌍작두 위에 올라가거나, 작두로 된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인다.

무당이 굿할 때 타는 작두는 일반 농가에서 쓰는 작두와 그 겉모양에서는 같으나, 무당이 작두날 위에 맨발로 올라섬으로써 신령의 영험력을 발휘하는 도구로 그 의미가 변환(變換)된다. 무당들은 작두를 타기 전에 먼저 칼날의 날카로움을 시험하고 영험력을 극대화시켜 보여주기 위하여 작두를 어르면서 팔이나 다리, 혹은 혓바닥을 찌르거나 자르는 시늉을 한다. 작두를 타는 무당들에 의하면, 작두날이 날카로울수록 작두 위에 올라설 때 발바닥이 덜 아프다고 한다. 작두날을 갈 때에는 쓸데없는 말을 함으로써 부정이 끼어드는 일을 방지하도록 입에 '하미'고 불리는 한지를 물고 갈게 된다.

간혹 남다른 신통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외작두를 타거나, 사다리 모양으로 여러 개를 겹쳐서 '칠성작두'를 타기도 하며, 때에 따라서는 그네 위에 작두를 달고 마치 그네를 타듯이 작두를 타기도 한다. 이러한 행태들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지나치게 볼거리 위주로 흥행성만을 내세움으로써 굿의 본래 의미를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통 무당들로부터 낳기도 한다.

무당이 작두를 탐으로써 신령과 의사소통을 집중적으로 하고 신령으로부터 영험한 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작두 위에서 내리는 공수는 다른 어떤 종류의 공수보다도 신빙성과 위엄이 있다고 신도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작두는 또 나쁜 액을 누르고 해로운 기운을 잘라냄으로써 부정한 기운의 침입을 막거나 억제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도 한다. 굿을 하지 않는 평상시에는 작두를 고정하는 나사를 풀어서 한지에 싸서 신당에 보관한다.

또한 작두를 타는 것은 무당.박수들 중에서도 작두신령을 모시는 무당.박수들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현대과학으로는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컨셉이었던 방영 초기의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작두타기에 대해서도 검증을 한 적이 있다. 분석 결과 '실제 절단이 가능한 작두를 사용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무당들은 날 위에 올라서고 난 후엔 발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다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 작두날 위에서 움직이게 되면 짧은 접점에 압력이 집중되어 절삭 효과가 생기지만 날과 평행으로 대고 있으면 압력이 분산되는 원리.

한편 작두를 타기 전 식칼로 과일을 숭겅숭겅 베어낸 후, 그 칼을 뺨이나 목, 뺨, 혀에 가져다 대고 베이지 않는 걸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쪽은 압력을 분산시키는 게 아니라 압력 자체를 주지 않는 방법이다. 칼날을 움직이면서 힘을 주지 않아 압력을 없애서 절삭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즉 전자의 경우 커터칼 날에 손가락을 가만히 꾹 누르면 그냥 피부가 움푹 눌리지만 옆으로 스치면 바로 베이는 것, 후자는 커터날을 쥔 손에 최대한 힘을 빼고 그으면 베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날이 극도로 무뎌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 작두날은 웬만한 집의 안 간 지 10년 된 부엌칼보다도 무디다. 작두를 타기 전 사과 등을 써는 의식이 있는데 요리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은 칼이 얼마나 무딘지 한눈에 파악할 정도이다.

그래도 절대로 안 다치는 건 아니다. 작두나 식칼에 베어서 피가 철철나거나 119를 불러서 응급실에 실려가 꿰매는 사건이 터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굿판이 그냥 깨져버린다. 이후 대처는 무당에 따라서 전액 환불을 해주거나 다시 굿판을 열어준다고 한다.

어찌 됐건 작두는 무속인을 상징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예측을 잘하는 사람을 일컬어 '작두 탄다'라고 칭한다. 대체로 스포츠팬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말인데 해설자가 경기의 판세를 정확히 읽어내거나 감독이 선수 기용을 적재적소에 해낼 때 주로 쓰인다.

형태

농가나 한의원, 한약방에서 사용하는 작두는 외작두이지만, 무당굿에서는 주로 쌍작두를 사용한다. 2003년 인천광역시 강화도 지역에서 실시한 무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작두의 재료와 형태는 다음과 같다. 즉 작두의 재료는 쇠이며, 총 길이는 73㎝, 날의 길이는 52.2㎝이다. 폭은 8.5㎝이며, 두 개의 작두를 연결해 주는 나사의 길이는 14㎝이다. 이러한 형태의 쌍작두는 두 개의 작두날을 세우고 그 사이에 나사로 고정시켜서 타게 된다.

같은 해 강원도 원주에서 실시한 무구조사에서 보고된 작두의 경우에도 대동소이한 크기와 형태를 띠고 있다. 원주에 거주하는 40년 경력의 무녀가 사용하는 작두도 두 개의 날과 4개의 볼트[나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두날에는 볼트를 끼우기 위한 구멍이 4개 뚫려있다. 날의 길이는 37.5㎝, 폭은 9㎝이다. 볼트의 길이는 15.5㎝, 두께가 1.5㎝이다.

충청북도 제천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년 경력의 해당 지역 무녀가 대장간에서 맞추어 제작한 쌍작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작두날의 크기는 가로 57㎝, 세로 9㎝이며, 날과 날 사이의 길이는 43㎝이다. 작두 나무판은 그 재질이 송판으로 되어 있으며, 흰 천[소창]으로 싸여 있다. 나무판의 크기는 가로 64㎝, 세로 23㎝이다.

충청북도 충주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38년째 활동하는 남자 법사가 사용하는 작두는 충주에 있는 대장간에서 주문 제작한 것이다. 장군거리와 신굿의 작두거리에서 사용한다. 작두날의 크기는 날 높이 11.4㎝, 날 길이 37㎝, 쇠손잡이 길이 51.5㎝이다. 작두 밑에는 송판을 이용해서 받침을 깔았다. 송판 받침대의 크기는 가로 68.9㎝, 세로 20㎝, 두께 3㎝이다.

포청천의 세가지 작두[편집]

용작두, 호작두, 개작두

포청천 포증의 손에 들린 세 가지의 작두는 개봉부윤(開封府尹) 포증의 최고 징벌 도구였다.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징벌에 황실 자제와 고관대작들은 죄의 값을 치렀다. 물론 사실은 아니지만, 포증의 세 작두는 중국역사에서 가장 어질다고 평가받는 북송 인종(仁宗)이 하사한 형벌 도구라고 하며, 먼저 목을 베고 나중에 보고해도 되는 막강한 형 집행 도구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포증은 개봉부윤(開封府尹)을 담당하지는 않았고, 권지개봉부사(權知開封府事)라는 실무직 관직을 1년 남짓 맡았다. 당시 개봉부윤(開封府尹)은 일반 관원들의 몫이 아니고, 황위 계승자들이 맡았던 자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제가 그에게 하사했다는 세 종류의 작두는 소설가들의 창의력에 의한 것이다. 비록 역사적 사실이 아니더라도, 실제 존재하지 않는 부분은 역시 소설가들의 창의적 상상력에 의하여 더욱 실감나게 채워지게 되는데, 이 역시 문학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붓의 마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용머리 작두는 황실 사람들의 목을 베는데 사용되고, 호랑이 머리 작두(虎頭鍘/용두찰)는 탐관오리의 목을, 개머리 작두(狗頭鍘/용두찰)는 민간 불량배들의 목을 베는 사용된다. 공포의 형벌 작두들은 비록 허구이지만, 이것들의 원형은 먼 옛날 중국의 용아(龍牙), 호익(虎翼), 견신(犬神)이라는 이름의 "상고 삼대사도(上古三大邪刀)"에 있다.[1]

각주[편집]

  1. 초이스, 〈포청천의 세 가지 작두는 누가 발명했을까?〉, 《네이버 블로그》, 2021-03-02

참고자료[편집]

  • 작두〉, 《나무위키》
  • 작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작두〉,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 작두〉, 《두산백과》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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