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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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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거울
명대의 동경
청동거울을 가슴에 걸고 제사를 지내는 모습

청동거울유리(琉璃)로 만든 거울이 보급되기 이전에 널리 사용된 청동제(靑銅製) 거울이다. 동경(銅鏡)이라고도 한다. 청동거울은 각 시대에 제작되었지만, 특히 이집트, 인더스 문명, 중국, 베트남, 한반도 그리고, 일본 유적에서 폭넓게 발굴되었다.

《삼국유사》의 고조선 편에 삼부인(三符印) 중 거울이 있으며, 한국에서는 만주식 동경이 기원전 1000년에서 기원전 400년 경에 유입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자체적으로 청동기의 제작이 되었다고 보기 힘들고,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세형동검의 시기에 본격적인 제작이 되었다고 추측한다.

개요[편집]

고대 중국에 기원을 갖고, 일본이나 조선동아시아에서 넓게 사용되었다. 고대 이집트에 서도 동경을 이용한 사례가 있다. 종교나 제사용 도구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청나라 대 이후 서양에서 유리거울이 전래되어 보급될 때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제작은 주형에 주조한 후 연마, 주석 도금, 연마하는 순서로 만들어진다. 거울의 연마에는 옛날에는 석류나무가 이용되었다. 포함되어 있는 옥살산 등으로 더러움이 제거되고 광채가 났다. 이후 수은에 주석의 분말을 혼합하고 아말감을 만들어, 이것에 매실초를 더해 숫돌에 갈았다. 구연산으로 표면의 더러움이 제거되어 거기에 주석 아말감을 부착하는 것으로 도금 상태가 되어, 아름다운 거울 표면을 얻을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 간쑤성 황하 유역의 치자 문화 유적에서 지름 6 cm 가량의 동경이 출토되었다. 상왕조 말기에서 주왕조 시대에는 청동의 주조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예술적인 제품이 많이 만들어졌다. 중국에서는 전국시대부터 당나라 때까지 주로 제작되었으며, 청나라 때 서구에서 유리 거울이 보급될 때까지 제작되었다. 형태는 원형이 많으며, 보기 드물게 사각형의 행태를 띤 것도 있었다. 직경은 수십 cm정도이다. 닦아진 거울 면의 뒤편에는 가운데 손잡이가 있어, 그 주위에 다양한 그림이나 문양이 주조되었다.

고대 중국제 동경에는 신상과 동물문양을 주조해 낸 거울이 많으며, 그 외 뒤쪽의 문양에 따라 방격규거경(方格規矩鏡), 해수포도경(海獸葡萄鏡), 내행화문경(内行花文鏡) 등 다양한 형식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동경의 용도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거울과 같이 단순하게 모습을 비추는 도구가 아니라, 제사, 주술용의 도구로서 이용되었다고 추측된다.

일본은 야요이 시대 고분 유적에서 많은 동경이 발굴되고 있다. 출토된 거울은 대륙에서 수입된 박재경(舶載鏡)과 그것을 본뜬 자체 제작한 방제경(仿製鏡)으로 분류된다. 종류에는 북부 큐슈의 야요이 유적에서 출토된 방격규거경(方格規矩鏡)이나 내행화문경(内行花文鏡), 다이와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의 전방후원분에서 출토된 삼각연신수경(三角縁神獸鏡) 등이 있다.

종류[편집]

유럽계통의 손잡이가 있는 것과 중국계통의 손잡이가 없는 것이 있다. 중국의 거울은 원형 또는 방형(方形)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만들어진 시대적 특색에 따라 춘추식(春秋式) 거울, 전국식(戰國式) 거울, 한(漢)나라식 거울, 당(唐)나라식 거울, 송(宋) ·원(元)나라식 거울 등으로 구분된다.

한나라 이전의 청동거울 중에서 진(秦)나라 때의 동기(銅器)와 유사한 무늬가 있는 청동거울이 1920~30년대에 주목되어 진나라식 거울 또는 선진(先秦)거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국식 거울을 주로 하면서 시대적으로는 춘추시대에서 전한(前漢) 초기에까지 미치고 있다. 분포지역도 진나라에 한정되지 않고 있어 한나라 이전의 옛 청동거울은 춘추식 ·전국식 거울로 구분한다.

① 춘추식 거울은 중국 청동거울 중에서 가장 오래된 형식으로 휘어짐이 없이 평직(平直)하며, 거울깃도 없고 두꺼우며 작은 형으로 꼭지는 반고리식이다. 시기적으로는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 초기에 만들어져 허난성[河南省] 산현[陝縣] 상춘링[上村嶺]에서 소문경(素文鏡) ·금수문경(禽獸文鏡) 등이 출토되었으며, 동기의 괴이한 짐승무늬를 둥근 거울 모양으로 잘라서 끼운 것도 있다.

② 전국식 거울은 진나라식 거울, 선진 거울, 선한(先漢) 거울 등으로 불리었던 것으로 전국시대 중기에서 전한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엷은 편이며 휘어짐이 없이 평직하고, 세 개의 활 모양의 꼭지가 달려 있다. 무늬는 지문(地文)과 주문(主文)으로 되어 있는데, 지문에는 우상수문(羽狀獸文) ·구련뇌문(鉤連雷文) ·능운문(菱雲文) 등이 있고, 주문으로는 동물무늬 ·식물무늬 ·화판(花瓣)무늬 등의 기하학 무늬가 많다. 청동의 질이 좋고 일반적으로 칠흑색(漆黑色)이다.

③ 한나라식 거울은 중국 청동거울 중에서 가장 양식이 정비된 것으로 전한(前漢)식 거울과 후한(後漢)식 거울로 나눈다. 전자에는 이룡문경(螭龍文鏡)과 명대경(銘帶鏡)이 많고, 후자에는 내행화문경(內行花文鏡) ·사신경(四神鏡) ·신수경(神獸鏡) 등이 발달하였다.

④ 당나라식 거울은 중국의 옛 청동거울 중 만듦새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두꺼운 백동질(白銅質) 거울로 원형 ·방형 외에 팔화형(八花形) 등이 있다. 무늬에도 서방적인 해수포도(海獸葡萄)무늬를 비롯하여 용(龍)이 서린 무늬, 난새와 봉황새무늬, 꽃가지무늬, 계수나무와 달 ·토끼무늬 등 다양하며 제작기법에서도 은첩(銀貼) ·도금(鍍金) ·금은을 바른 것, 나전(螺鈿) ·칠보(七寶) 등 뛰어난 공예술을 보여주고 있다.

⑤ 송 ·원나라식 거울은 당나라의 청동거울을 고비로 하여 제작기술이 퇴보하고 있어 동질도 나빠지고 무늬에 있어서도 초화(草花)무늬 외에는 한나라식과 당나라식 거울을 모방한 것이 많다. 요(遼) ·금(金) ·원(元) 나라의 청동거울도 조방(粗放)한 것이지만 연호가 들어 있는 금나라의 사수포도문경(四獸葡萄文鏡), 원나라의 쌍룡경(雙龍鏡) 등의 연호경(年號鏡)도 있다. 한국에서는 중국에서도 출토되지 않은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이 있는데, 이것은 둘레가 반원형(半圓形)으로 끈을 끼워 잡게 된 꼭지가 2개 정도 있다.

경주 입실, 평남 대동군에서 출토된 퉁구스계(系)의 청동거울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낙랑고분을 중심으로 껴묻거리[副葬品]로 출토된 청동거울은 여러 가지 무늬와 명문(銘文)이 들어 있다.

특징[편집]

원형의 뒷면에 꼭지〔瞿〕가 2∼3개 달리고 대체로 삼각톱니무늬〔三角鋸齒文〕를 기본단위로 한 기하학무늬〔幾何學文〕가 특징이다. 꼭지가 두개 이상이고, 기하학무늬가 장식된 거울이라 하여 여러꼭지거울〔多瞿鏡〕, 기하학무늬거울, 또는 여러꼭지기하학무늬거울로 불린다. 전체 크기는 대체로 7∼22㎝ 정도로서 대부분 백동질(白銅質)이며,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걸쳐 청동단검과 함께 한국 청동기문화의 표지유물(標識遺物)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중국 동북지방, 한반도, 일본에 걸쳐 약 90면이 발견되었다.

여러꼭지청동거울의 기원에 대해서는 오르도스(Ordos)지방에서 출토된 청동단추〔銅泡〕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 설과 중국 인싸앙(殷商)시대의 무덤에서 출토하는 한꼭지〔單瞿〕 원형청동거울에서 기원하였다고 보는 설로 나뉜다. 이러한 기하학무늬거울은 멀리 허베이성(河北省) 칭하이(靑海)에서도 출토하는 것으로 보아 그 기원이 대체로 중국 후앙허(黃河) 이북과 오르도스에 걸치는 지역에 있음은 분명하다.

여러꼭지청동거울은 무늬의 거칠고 고운 정도와 주연부(周緣部)·꼭지 모양에 따라서 거친무늬거울〔粗文鏡〕, 거친잔무늬거울〔粗細文鏡〕, 잔무늬거울〔細文鏡〕 등의 세 형식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거친무늬거울과 잔무늬거울 두 형식으로 분류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다

거친무늬거울은 무늬선이 거친 것으로 번개모양〔雷文〕을 이루며, 주연부와 꼭지 모양이 일정하지 않다. 거친잔무늬거울은 무늬선이 다듬어지고, 주연부도 잔무늬거울과 같은 횡단면 반원형으로, 삼각톱니무늬〔三角鋸齒文〕가 별모양무늬〔星形文〕, 방사상문(放射狀文) 형식, 평행(平行) 혹은 동심원문(同心圓文) 형식으로 조합된 것이 특징이다. 꼭지는 평면 오목렌즈모양의 보다 정형화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잔무늬거울은 무늬선이 실날처럼 가늘고, 주연부 횡단면이 반듯한 반원형을 이룬다. 외(外)·중(中)·내구(內區)로 구획되면서 삼각톱니무늬를 기본 단위로 하고, 동심원문이 복잡하고 정교한 기하학무늬가 특징이다.

거친무늬거울로서 가장 오랜 형식은 중국 리야오닝성(遼寧省), 리아오허(遼河) 서쪽의 따링허(大陵河) 유역에 위치한 차오양(朝陽) 쓰얼타이잉즈(十二台營子) 유적에서 출토하였으며, 한반도의 평양, 대전 등지에서도 출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이 리야오허유역에서 기원하여 한반도로 전파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거친잔무늬거울은 중국 리야오닝성, 지린성(吉林省),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지역에 각각 출토하였다. 한반도에서도 평남과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출토하였는데, 각각 세형동검(細形銅劍) 초기 단계의 유물과 동반하였다.

잔무늬거울의 분포지역은 청천강 이남으로 내려오고, 그 이북에는 출토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일본 큐슈(九州) 지역은 물론 긴키(近畿) 지방까지 세형동검과 함께 분포한다. 이와 같은 출토상황을 종합하여 볼 때에 대체로 거친무늬거울은 비파형동검과 함께 청동기시대에 거친잔무늬거울과 잔무늬거울은 세형동검과 함께 초기철기시대에 제작 보급되었음이 확인된다.

여러꼭지청동거울은 거푸집〔鎔范〕을 만든 다음 구리물을 부어 만드는데, 이러한 제작방식을 뒷받침하는 자료로서 석제거푸집이 평남 맹산과 전남 영암에서 출토하였다고 전하는 예가 있다. 전자는 거푸집의 앞 뒤면에 거울 형틀을 만든 것으로, 거친잔무늬거울 형식에 속하는 삼각복합의 별모양무늬가 조성되었다. 영암 출토 예는 주연부와 꼭지부분만 조성되고, 무늬가 장식되지 않았다. 잔무늬거울에 해당하는 거푸집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고운 점토로 만든 1회용 거푸집으로 제작되어, 제품이 만들어진 후 파쇄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고운 잔줄에 동심원문이 장식된 영암 출토 잔무늬거울 등은 밀랍(蜜蠟)에 무늬를 새기고, 고운 점토를 부어 형틀을 만든 다음, 밀랍을 녹여 낸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꼭지청동거울은 다른 청동기와 함께 대부분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주검〔屍身〕에 패용되기 보다는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 다른 청동기와 함께 매납(埋納)된다. 써언양(瀋陽) 쩌엉지아와즈(鄭家窪子) 유적에서는 머리 쪽의 껴묻기〔副葬〕공간에 청동검과 말갖춤〔馬具〕이 함께 부장된 것이 확인되었고, 함평 초포리 유적에서는 세형동검과 함께 중첩하여 나무널〔木棺〕 내부의 주검 측면 공간에 부장되었다. 일본 후쿠오카(福岡) 요시타게다카기(吉武高木) 유적에서도 나무널〔木棺〕 내부 주검 옆구리 쪽에 동검과 함께 부장된 것이 초포리 유적의 예와 동일하다. 매납된 상태로 발견된 예도 있는데, 특히 일본에서 더욱 그러하다. 일본 후쿠오카 소군(小郡) 약산(若山)의 집자리 유적에서는 바리모양〔鉢形〕 토기가 거꾸로 묻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 잔무늬거울 두 매가 서로 포개 겹쳐 있었다.

이러한 여러꼭지거울은 오늘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거울처럼 화장용(化粧用)이 아니라 신의(神意)를 받는 의기(儀器), 혹은 종교적 권위의 상징물로 이해되고 있다. 초기철기시대에 금강, 영산강 유역에서는 이형동기(異形銅器), 방울〔銅鈴〕 등의 제사도구와 함께 발견되는 바, 이들 무덤의 주인공은 종교적 권위를 갖고 제의(祭儀)를 주관하는 제사장으로 추정된다. 그 밖의 지역에서는 무덤의 껴묻거리로서 무기(武器) 혹은 공구(工具)만 동반하는데, 이 무덤의 주인공은 제사를 주재하는 제사장(祭司長)의 성격을 갖지 않는 세속적인 우두머리일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경사[편집]

거울을 만드는 장인을 경사(鏡師)라고 한다. 사(師)는 거울의 명문에 잘 나오는 글자로 경사이다. 거울의 명문 중 경사(京師)는 도읍의 거울을 만드는 장인이며, 주사(州師)는 주(州의)의 거울을 만드는 장인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선사시대이 동경은 꼭지가 두 개 이상이어서 다뉴경으로 불리며, 무늬의 세련도에 따라 조문경과 세문경으로 구분된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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