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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브라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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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jia1222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11일 (화) 15:0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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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브라우저(web browser)는 사용자의 요청을 받아 웹서버에 전달하고, 응답을 받아 사용자에게 콘텐츠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브라우저(brows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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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달] 스마트 호스팅

상세

브라우저( browser)의 browse는 ‘가게 안을 둘러보거나 책을 군데군데 펼쳐 읽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웹이 붙어서 웹 페이지를 둘러볼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웹브라우저라고 한다. 웹브라우저는 웹 페이지의 내용을 보여주는 소프트웨어로, 서버와 접속하여 HTTP 서버에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하이퍼텍스트 문서를 읽고 그것을 사용 중인 컴퓨터에 보여 주는 프로그램이다. 웹브라우저는 WWW 서비스에서 문자나 화상은 물론 동영상, 음악, 게임 등을 지원하는 멀티미디어 검색 프로그램으로, 구체적인 자료의 검색, 저장, 전송 등을 가능하게 해준다.[1]

대표적인 웹브라우저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파이어폭스, 구글 크롬, 사파리 등이 있다. 이 중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접근이 가장 쉬운 웹브라우저로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인 윈도우를 설치할 때 함께 제공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구글의 크롬 역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웹 브라우져인데 구글이 가지고 있는 플랫폼(메일, 일정 관리, 문서 작성 및 편집, 화상회의 등)과 연동되어 효과적인 웹 탐색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인터넷 웹 페이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인 웹브라우저는 다양한 제품들이 나오면서 경쟁을 하고 있다.[2]

역사

세계 최초의 웹브라우저는 1991년 등장한 ‘월드와이드웹(WorldWideWeb)’이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연구원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가 정보 공유를 쉽게 하기 위해 하이퍼 텍스트의 개념을 처음 제안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월드와이드웹이다. 버너스 리는 이 발명으로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지만, 모든 로열티를 포기하고 일반에 공개하는 길을 택했다. 이후 월드와이드웹은 인터넷을 의미하는 ‘WWW(World Wide Web)’와의 명확한 구분을 위해 ‘넥서스(Nexus)’로 명칭이 변경됐다.

1992년 하반기에는 유닉스 진영에서 라인 모드 브라우저(Line mode browser), 비올라월드와이드웹(ViolaWWW), 이알와이즈(Erwise) 등 라이브러리월드와이드웹(LibWWW) 기반의 브라우저들이 등장했다. 매킨토시도 마이다스월드와이드웹(MidasWWW), 맥월드와이드웹(MacWWW) 등 전용 브라우저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알와이즈는 최초의 그래픽 환경을 지원하는 웹브라우저였다. 엑스-윈도우(X-Window)를 실행하는 유닉스 시스템을 위해 설계된 이 브라우저는 웹 페이지에서 특정 문자열을 찾거나 한 번에 여러 웹 페이즈를 열수 있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이 웹브라우저는 헬싱키 공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학생 4명에 의해 개발되었다고 전해진다.

1993년에는 ‘모자이크(Mosaic)’가 등장했으며, 1994년에는 최초의 상용화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Netscape)’가 나타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넷스케이프는 모자이크의 개발자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이 창업하여 만들었다. 한 때 전세계 웹브라우저 점유율 90%에 달했던 넷스케이프는 1995년에 등장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2008년 공식 종료). 이후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독주가 한동안 계속됐다. 한 때 전세계 웹브라우저 시장의 95% 이상이 인터넷 익스플로러였다고 하니 사실상 시장을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넷스케이프의 후계자격인 ‘파이어폭스(Firefox)’, 애플의 ‘사파리(Safari)’, 구글 ‘크롬(Chrome)’ 등 경쟁 브라우저가 등장하면서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은 점차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10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지 않고 엣지(Edge)라는 브라우저를 제공한다.[3]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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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 로고.png
크롬(Chrome)
인터넷 익스플로러 로고.png
인터넷
익스플로러
(Internet Explo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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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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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Saf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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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폭스
(Fire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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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스케이프
(Net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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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Mosa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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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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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S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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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인터넷
(Samsung Internet)
브레이브 브라우저 로고.png
브레이브
브라우저
웨일 로고.png
웨일(Whale)

웹 브라우저의 주요 제품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E, Internet Explore), 마이크로소프트 엣지(Edge), 구글 크롬(Google Chrome), 애플 사파리(Apple Safari), 모질라 파이어폭스(Mozilla FireFox), 오페라(Opera), 넷스케이프(Netscape), 모자이크(Mosaic), 스윙(Swing) 등이 있다. 모바일 전용 웹 브라우저에는 삼성 인터넷(Samsung Internet)이 있다.

  • 크롬(Chrome) : 2008년 구글이 개발한 웹 브라우저이다. 정식 명칭은 구글 크롬(Google Chrome)이다. 2012년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누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웹 브라우저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IE에 이어 2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 :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개발한 웹 브라우저이다. 약칭 IE라고 쓴다. 1995년 Windows 운영체제의 일부로 포함시켜 판매함으로써 기존의 넷스케이프(Netscape)를 대체하고 빠른 속도로 시장을 점유했다. 2004년 전체 웹 브라우저 시장의 약 90%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2015년 7월 출시된 마이크로소프트 엣지 웹 브라우저로 대체되고 있다.
  • 엣지(Edge) : 2015년 7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Windows 10 운영체제와 함께 출시한 웹 브라우저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엣지(Microsoft Edge)라고도 한다. 기존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 11 버전을 계승하여 만들었다. 인공지능 개인 비서인 코타나(Cortana)를 이용할 수 있다.
  • 사파리(Safari) : 2003년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이끄는 애플(Apple)이 개발한 웹 브라우저이다. 아이폰아이패드 등에서 기본 웹 브라우저로 사용된다.
  • 파이어폭스(FireFox) : 2002년 모질라재단이 개발한 무료 오픈소스 기반의 웹 브라우저이다. 모질라 파이어폭스(Mozilla FireFox)라고 부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대항하기 위해 기존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를 계승하여 만들었다.
  • 넷스케이프(Netscape) : 1994년 넷스케이프 회사가 개발한 웹 브라우저이다. 모자이크(Mosaic) 웹 브라우저를 개발했던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이 개발했다. 초기 버전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고, 인터넷 사용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얻어 약 9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개발하고, Windows 운영체제에 포함시켜 무료로 배포하면서 시장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넷스케이프 출신의 일부 개발자들은 별도로 모질라(Mozilla) 커뮤니티를 만들고, 2002년 파이어폭스 웹 브라우저를 출시했다.
  • 모자이크(Mosaic) : 1993년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과 에릭 비나(Eric Bina)가 공동 개발한 웹 브라우저이다. 팀 버너스-리가 만든 기존의 WorldWideWeb 브라우저가 텍스트 위주였던 것과 달리, 모자이크는 이미지를 표시할 수 있는 그래픽 웹 브라우저였다. 출시 후 폭발적 반응을 얻었으나, 개발 책임자였던 마크 앤드리슨이 넷스케이프 웹 브라우저를 개발함에 따라 사실상 개발이 중단되었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 모자이크 웹 브라우저의 소스 코드를 활용하여 인터넷 익스플로러 웹 브라우저를 개발했다.
  • 오페라(Opera) : 1996년 노르웨이의 오페라소프트웨어 회사가 개발한 웹 브라우저이다. PC스마트폰뿐 아니라 PDA, 게임기, TV 셋톱박스 등 다양한 환경에서 작동한다. 데이터 압축 기술을 이용하여 사용자에게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인터넷 접속 환경이 좋지 않은 동유럽, 러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많이 사용한다. 2016년 2월 중국의 치후360(Qihoo360) 회사에 약 1.2조원에 인수되었다.
  • 스윙(Swing) : 2013년 한국 ㈜이스트소프트의 자회사인 줌인터넷㈜이 개발한 웹 브라우저이다. PC 버전과 모바일(Android, iOS) 버전을 모두 지원한다. 한국적 특수성을 반영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E) 웹 브라우저에서만 작동하는 액티브엑스(Active-X)도 실행할 수 있다.
  • 삼성인터넷(Samsung Internet) : 삼성 갤럭시스마트폰에 기본 탑재되어 배포되는 모바일 전용 인터넷 웹 브라우저이다.

특징

웹 브라우저에는 에스큐엘 라이트(SQLite)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RDBMS)이 기본 탑재되어 있다.

브라우저 전쟁

브라우저 전쟁(Browser Wars)은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웹브라우저들이 점유율 경쟁을 하는 것을 말한다. 1차 브라우저 전쟁은 1990년대 후반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넷스케이프 두 브라우저 간 경쟁을 지칭하였다. 넷스케이프가 거의 몰락하고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웹브라우저 시장을 독점하게 되었다. 2차 브라우저 전쟁은 2003년 이후, 모질라 파이어폭스,구굴 크롬,사파리,오폐라와 같은 신흥 브라우저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간 경쟁을 말한다.

1차 브라우저 전쟁

넷스케이프 태동

인터넷 역사에서 1989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해이다. 이해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에 근무하고 있던 팀 버너스 리(Timothy Berners Lee)가 동료 연구원들간의 정보공유를 도와줄 목적으로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제안한 것이다.[4] 버너스 리는 자신이 만든 시스템에 월드와이드웹(WWW)이란 제법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인터넷과 동의어로 통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는 월드와이드웹은 이처럼 미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정작 인터넷 혁명의 불꽃이 본격적으로 타오른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92년이었다.

당시 일리노이대학의 국립슈퍼컴퓨터응용센터(NCSA)에서 고성능 컴퓨터들을 위한 코드를 짜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마크 앤드리슨(March Andereessen)은 인터넷을 좀 더 대중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앤드리슨은 3년 전 팀 버너스리가 고안해 낸 웹을 마음껏 항해할수 있는 브라우저 하나 만들고 모자이크(Mosaic)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자이크는 월드와이드웹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그래픽 브라우저였다.[5]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한 대학생의 소박한 발명품이 전 세계를 뒤바꿔 놓을 인터넷 혁명의 시발점이 될 것이란 사실을 눈치 챈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앤드리슨은 모자이크를 만든 뒤 인터넷에서 공짜로 다운 받아 쓸 수 있도록 했다. 프리웨어(freeware)로 뿌렸던 것이다. 그 이전까지 힘들게 인터넷을 이용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모자이크는 구세주나 다름 없었다. 복잡한 명령어를 몰라도 쉽에 인터넷을 이용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 덕분에 모자이크는 인터넷에 공개되자 마자 순식간에 이용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6] 모자이크가 인기를 누리자 덩달아 인터넷 이용자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기초적인 컴퓨터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인터넷을 마음껏 이용할수 있어지자 월드와이드 웹 세상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초의 그래픽 기반 브라우저였던 모자이크는 수많은 일반인에게 인터넷 세상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모자이크가 인기를 누릴수록 개발자인 마크 앤드리슨의 입지는 약해지기 시작했다. NCSA의 관리팀이 모자이크 돌풍을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자이크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런 결정은 곧바로 마트 앤드리슨을 비롯한 개발진들을 모자이크에서 떼어 내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더 이상 모자이크 개발 작업에 관여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NCSA의 이런 지시에 대해 모자이크 개발팀도 호락호락 물러서지는 않았다. 지시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자 NCSA의 관리팀들도 마크 앤드리슨을 비롯한 모자이크 개발자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앤드리슨은 NCSA의 이런 처사에 강하게 분노했다.

1993년 12월 일리노이 대학을 졸업한 마크 앤드리슨은 자신이 만든 모자이크를 토대로 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는 무작정 실리콘벨리로 향했다. NCSA에서 일하면서 학교 측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던 그는 자신의 힘으로 뭔가 거창한 것을 만들어 내보란 듯이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돈이 없었다. 게다가 그때 까지만 해도 그는 벤처캐피털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수백만달러를 끌어모을 수 있는 시대는 아직은 먼 얘기였던 것이다. 실리콘벨리 역시 아직은 인터넷 혁명을 기반으로 한 닷컴 붐의 꿈도 꾸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 무렵 실리콘밸리에 또 한 사람이 방황을 하고 있었다. 실리콘그래픽스란 그래픽 전문회사의 설립자로 큰 성공을 거둔 짐 클라크(Jim Clark)[7]란 인물이었다. 훗날 벤처투자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게 되는 짐 클라크 역시 이무렵에는 그냥 돈을 조금 번 평범한 사업가일 뿐이었다. 짐클라크는 그 무렵 실리콘그래픽스에서 손을 뗀 뒤 이윤배당을 둘러싸고 한바탕 분쟁이 벌어지지 비정한 비즈니스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인물을 찾던 참이었다. 마크 앤드리슨과 짐 클라크의 만남은 1990년대 후반 실리콘밸리를 강타한 닷텀 붐의 전형적인 모델이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마크 앤드리슨과 여유 자금을 소유하고 있던 짐 클라크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짐 클라클를 만남 앤드리슨은 '모자이크 킬러'를 만들고 싶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밤을 세워 가며 만들었던 모자이크를 독식해 버린 데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그 무렵 앤드리슨은 일리노이대학 NCSA대한 감정이 최악에 달한 상태였다.

실리콘그래픽스 이후 적당한 투자처를 찾고 있던 짐 클라크 역시 야생마 같은 마트 앤드리슨의 패기와 열정을 높게 평가했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둘은 정말로 모자이크 킬러가 될 만한 브라우저를 만들었다. 바로 모질라(Mozilla)였다. 모질라는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앤드리슨이 일리노이대학에서 만든 모자이크를 무색케 할 정도 였다. 이런 상황에 고무된 클라크와 앤드리슨은 곧바로 회사를 설립했다. 처음 이들은 회사 이름을 모자이크 커뮤니케이션으로 정했다. 하지만 NCSA로 부터 법적인 항의가 들어오자 고심 끝에 회사명을 넷스케이프(Netscape)로 바꾸었다.[8] 그리고 곧 바로 1994년 10월 첫 번째 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출시했다. 상용 브라우저로는 사실상 첫 제품이었던 넷스케이프(Netscape)내비 게이터가 몰고 온 바람은 엄청났다. 무료배포 되자마자 순식간에 사용자 수가 200만명을 돌파하면서 초기 인터넷 혁명의 진원지가 됐다.[9]

윈도우95 및 인터넷 익스플로러

넷스케이프가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을 무렵 마이크로스프트는 윈도우95 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윈도우 3.0을 내놓으면서 운영체제 시장을 완전 장악했던 마이크로소프트로선 한 단계 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윈도우 3.0 개방 당시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사이에 인터넷이란 변수가 생겨 버렸던 것이다. 마이트로소프트로서는 윈도우95를 개발하면서 인터넷 환경을 외면할 수 없었다. 처음 윈도우95 개발 작업을 시작할때만 해도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웹브라우저가 순식간에 거대한 산처럼 자신을 가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이크로스프트는 넷스케이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1994년 하반기부터 넷스케이프와 부쩍 자주 만났다. 이들은 새롭게 개발할 윈도우95상에서 넷스케이프의 브라우저가 좀 더 자연스럽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논의를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소스 코드를 알고 싶어 했다. 당시 넷스케이프는 세상 무서운 것 없을 정도로 잘 나갈 때였다. 거침없이 몸집을 키워 나가던 넷스케이프는 그 무렵 짐 박스데일(Jim Barksdale)[10]을 최고경영자로 영입한 상태였다. 창업자인 짐클라크와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던 짐 박스데일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소소 코드를 보여 달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요구를 탐탁지 않게 받아들였다. 수많은 PC업체들을 쥐락펴락하는 마이크로소프트였지만, 그 무렵 막 열리기 시작한 인터넷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른 넷스케이프와 대면한 자리에서는 자신들 마음대로 분위기를 주도해 나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무렵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도 인터넷 전략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새로운 영역으로 이끄는데 실해했다는 지적이었던 셈이다.

넷스케이프가 브라우저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떠오를수록 빌 게이츠의 부담감은 더 컸을 것이다. 빌 게이츠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마이크로소프트 고위간부들은 넷스케이프를 경계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었다. 운영체제 시장 독점의 장애요소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체 브라우저 개발을 진지하게 고려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빌 게이츠는 넷스케이프를 보면서 자신이 무너뜨린 IBM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마이크로스프트가 이렇게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IBM으로 부터 많은 것을 가져 온 덕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빌 게이츠로서는 넷스케이프에서 PC시장에 막 활성화되던 무렵의 마이크로소프트를 되새겼을 수도 있다. 변혁의 시기에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가는 IBM과 같은 처지가 될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위기감을 갖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1995년 들어 5개월 가량 넷스케이프와 협상을 계속했다. 이때만 해도 마이트로소프트는 브라우저 시장에서 넷스케이프를 밀어내기보다는 서로 공존하는 방안을 찾는 쪽에 주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빌 게이츠는 넷스케이프와 웹브라우저 시장을 좀더 심각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1995년 5월 26일 인터넷 물결(The Internet Tidal Wave)이란 제목의 메모를 통해 '(인터넷은)1981년 IBM PC가 도입된 이래 가장 중요한 발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11] 이 메모의 이어지는 내용은 빌 게이츠가 그 당시 넷스케이프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빌 게이츠는 넷스케이프가 급부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터넷 사업의 가능성에 눈을 뜬 것으로 보인다. 빌 게이츠는 골드러시 때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금광을 발견한 살감들이 아니라 바로 기반 설비를 제공했던 사람들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995년 들어 자체 웹브라우저 개발 쪽으로 입장 선회를 한 것도 빌 게이츠의 이런 깨달음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빌게이츠의 이런 열망은 그해 8월 발표된 윈도우95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95를 내놓으면서 자체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함께 제공했기 때문이다.[9]

반독점 경쟁

윈도우95와 함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시장에 나왔지만 넷스케이프는 여전히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강세를 유지했다. 윈도우95에서 넷스케이프 브라우저가 자연스럽게 작동하지 않도록 방해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넷스케이프의 위세는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몰랐다. 결국 1995년 12월 들어 빌 게이츠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바로 끼워팔기로 알려진 인터넷 익스플로러 무료배포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96년 10월 이후 발매된 익스플로러는 윈도우95와 함께 제공됐다. 또 윈도우98 버전부터는 아예 운영체제에 통합됐다. 일부러 넷스케이프를 깔지 않는 한 인터넷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라우저를 이용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넷스케이프를 쫓아내기 위해 단순히 끼워 팔기 전략만을 사용한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위치를 이용해 기업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때로는 무자비 할 정도로 강하게 몰아치면서 넷스케이프를 고립시키기도 했다. 넷스케이프 CEO를 역임했던 짐 박스데일은 나중에 반 독점 재판 과정에서 휴렛패커드(HP)와 넷스케이프가 공동 상품 출시 계약을 발표했다.[12] 빌 게이츠는 1995년에 배포한 새로운 물결이란 제목의 자료를 통해 "넷스케이프와 제휴를 고려하는 기업들을 손봐라"고 재촉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그 뒤 반독점 재판 과정에서 빌 게이츠의 위협 행위가 속속 드러났다. 특히 빌 게이츠는 컴팩이 자사 컴퓨터의 기본 웹브라우저를 넷스케이프로 변경하려고 하자 강하게 위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운영체제를 포기할수 없는 입장이었던 컴팩 역시 이 같은 위협에 굴복했다.

이는 휴렛패커드나 AOL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기본 웹브라우저로 익스플로러를 채택하는 일부 회사들에 대해 보조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끼워 팔기를 통해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한편으로 컴퓨터 업체들을 협박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놀라울 만큼 막강한 위력을 과시했다. 넷스케이프의 영향력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1996년 4분기 5,850만 달러였던 넷스케이프의 수익은 1997년 4분기에는 1,850만 달러 까지 떨어졌다. 불과 1년 사이에 68%나 감소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넷스케이프는 300명 가량을 감원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식 가치 역시 최고가의 80퍼센트까지 떨어지면서 끝없는 나락을 경험했다. 1998년이 되자 넷스케이프는 웹브라우저 사업에서 전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리고 그해 여름, 드디어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익스플로러 점유율이 44%까지 늘어나면서 42%에 머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앞질렀다.

결국 넷스케이프는 웹브라우저의 프로그래밍 소스 코드까지 모든것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면서 사실상 이 시장에서 사라져 갔다. 넷스케이프로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맞선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었다. 실제로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불과 삼사 년 만에 비참하게 시장에서 쫓겨 나간 넷스케이프의 사례는 이후 마이트로소프트와 빌 게이츠에게 폭군 이미지를 심어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넷스케이프 이외에도 노벨, 리얼네트웍스 등 많은 기업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상공세를 견뎌 내지 못하고 뒷전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어느 기업의 사례도 넷스케이프 퇴출 만큼 시장에서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넷스케이프 간의 웹브라우저 전쟁은 시대의 패러다임을 누가 잡을 것이냐는 힘겨루기였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라는 무기를 앞세워 웹브라우저란 새로운 영토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웹브라우저 시장이 한창 열릴 무렵 회사 전체가 위기의식에 사로잡혔던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선 넷스케이프와 벌인 브라우저 전쟁에서 승리가 그만큼 절박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끌고 있는 빌 게이츠는 공공의 적으로 완전히 자리를 굳혔다. 마이크로소프트 효과라는 말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일단 어떤 업체가 새로운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가 뛰어들면 곧바로 몰락한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었다 그 만큼 빌 게이츠으 이미지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또 실제로 당시 빌 게이츠는 시장의 질서를 무시한 정책 결정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9]

각주

  1. 웹브라우저〉, 《시사상식사전》
  2. 천재학습백과 초등 소프트웨어 용어사전 - 웹 브라우저 ( web browser )〉, 《어린이백과》
  3. 강일용 기자, 〈용어로 보는 IT - 웹 브라우저 (웹페이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네이버캐스트》, 2011-05-03
  4. keit_newtech, 〈월드 와이드 웹을 발명한 팀 버너스 리〉, 《네이버 블로그》, 2018-02-07
  5. chamnet21, 〈넷스케이프는 왜 몰락했는가?〉, 《네이버 블로그》, 2019-11-25
  6. 김상현 자유 기고가, 〈‘정보의 바다’ 물길 트다〉, 《시사저널》, 2003-05-01
  7. leegw21, 〈혁신적인 기업가 짐클락 그는 누구인가?〉, 《네이버 블로그》, 2008-12-12
  8. 피우스, 〈1994년 이후 인기 웹 브라우저의 흥망성쇠〉, 《네이버 블로그》, 2022-07-29
  9. 9.0 9.1 9.2 김승수 기자, 〈브라우저 전쟁〉, 《N뉴스통신》, 2022-11-06
  10. 허의원 기자, 〈짐 박스데일〉, 《전자신문》, 2002-03-11
  11. 미지남, 〈(op)빌 게이츠, MS를 구할 수 있을가?〉, 《네이버 블로그》, 2013-08-28
  12. 허의원 기자, 〈美HP-넷스케이프, 인트라넷 사업 제휴〉, 《전자신문》, 1996-05-17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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