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나톨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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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나톨리아(튀르키예어: İç Anadolu)는 터키 중앙에 위치한 지역이다. [1]
개요
중앙아나톨리아의 면적은 151,000㎢이다. 터키 전체 면적의 21%를 차지한다. 북쪽으로는 흑해지역, 동쪽으로는 동아나톨리아 지역, 남쪽으로는 지중해지역, 서쪽으로는 에게지역, 북서쪽으로는 마르마라지역과 접한다.
터키에서 두 번째로 큰 지역이다. 기후는 덥고 건조한 여름과 춥고 눈이 내리는 겨울이 있는 반건조 대륙성 기후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일 년 내내 강수량이 적다.
중앙아나톨리아는 알렉산더 대왕과 타메를레인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하티안에서 히타이트, 프리기아에서 갈라디아, 로마에서 비잔틴, 셀주크에서 오스만에 이르기까지 기원전 8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명의 산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어느 거리의 모퉁이를 돌든 고유 문화와 종교적 특징이 담긴 문명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독특한 주방 건축, 주방 기구과 다양한 음식 유형, 요리 방법 등 독특한 요리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아나톨리아 지역을 더 깊게 알고 싶다면, 터키의 수도 앙카라의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방문을 추천한다. 문명 박물관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앙 아나톨리아 지역의 수많은 유물이 연대 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1464~1471년의 오토만 시대의 역사적인 건축물로, 건물 자체만으로도 여행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돌출한 대반도. 아시아 대륙의 남부에서 발칸 반도에 이르는 광활한 산악성 지대인 아나톨리아 반도를 고대에는 소(小)아시아라고 하였다. 비잔틴인들이 처음 지리용어로 사용한 아나톨리아는 터키어로는 아나돌루라고 하는데, 어원은 그리스어 아나톨레’anatole)이며, 동쪽 또는 해 뜨는 곳이란 뜻이다. 로마제국의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284~305)와 콘스탄티누스(재위 306~337) 두 황제 시대에 제국의 행정제도가 개편되면서 제국을 형성하는 4개 주(州) 가운데서 중동(中東) · 터키 · 이집트 · 리비아 지역을 망라하는 주의 명칭이 되었다.
11세기 셀주크의 정복을 계기로 아나톨리아란 명칭은 일시적으로 사라졌다가, 오스만 투르크 시대에 이르러 아나톨레라는 터키어로 와전되어 서부 아나톨리아 에이레트주(州)에 대한 명칭으로 부활되었다. 이후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행정개혁으로 인해 반도 전체를 가리키는 지리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터키공화국에서는 아나톨리아라고 하면 상(上)메소포타미아와 아르메니아 일부까지 포함한 아시아쪽 전역을 가리킨다.
아나톨리아는 광활한 고원 대지(臺地)로서 북에는 폰투스 산맥, 남에는 토로스 산맥이 자리를 잡아 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형태이며, 동과 서는 고원 상의 구릉지대이다. 두 산맥의 바깥쪽으로는 흑해 · 에게해 · 지중해와 접한 해안지대가 펼쳐져 있다.[2][3]
역사
오늘날의 튀르키예 영토 거의 대부분을 이루는 아나톨리아반도는 아시아와 유럽이 상호작용하는 장소로서 지구상에서 매우 오래전부터 인류가 거주하던 땅이었다. 차탈회윅(신석기 3기), 차외뉘(신석기 1기에서 신석기 3기), 네발리 코리(신석기 2기), 하클리아르(신석기 3기), 괴베클리 테페(신석기 2기), 메르신 등 초기 신석기 시대 거주지는 지구상 최초의 인류들이 살던 거주지로 여겨진다. 트로이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로, 철기 시대까지 취락이 지속되었다. 역사 시대로 접어들면 아나톨리아 사람들은 인도-유럽어, 셈어, 카르트벨리어를 비롯하여 기원이 불확실한 여러 언어를 썼다. 사실 고대 인도-유럽어인 히타이트어와 루위아어를 놓고 서구 학자들은 아나톨리아가 인도-유럽어를 확산시킨 중심지라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하였으나 쿠르간 가설에 밀려 인정받고 있지는 않다. 튀르키예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장소인데 아시리아 제국이 존재하였다.
이 땅에 들어선 최초의 제국은 히타이트로 기원전 18세기에서 13세기까지 존속하였다. 그 다음은 인도-유럽 계통의 프뤼기아인들이 패권을 잡았으나, 기원전 7세기에 킴메르인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프뤼기아의 가장 강력했던 후계국가는 뤼디아, 카리아, 뤼키아였다.
기원전 1200년경부터 아나톨리아 해안에는 아이올리스와 이오니아의 그리스인들이 정착하였다. 이 지역은 기원전 6~5세기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에 정복되었으며, 이후 기원전 334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진출한다. 셀주크 튀르크인들이 11세기부터 이 지역에 나타났다. 1243년 룸 술탄국 나타났으며 13세기 후반,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점차 베이들을 통합하기 시작하였다. 330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이스탄불 지역에 로마의 수도로 비잔티움을 지었으나 동로마 시대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개명되었고 오스만 제국에는 이스탄불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연합군이 이스탄불과 이즈미르를 점령하면서 튀르키예의 민족 운동이 촉발되었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공훈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장군의 주도로 세브르 조약 규정을 철회시키기 위한 튀르키예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1922년 9월 18일, 이스탄불과 이즈미르에 있던 연합군은 퇴각하였으며, 새로운 튀르키예의 나라가 건국되었다. 11월 1일에 새로이 열린 의회는 공식적으로 술탄국을 폐지하여, 623년간 이어진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종식되었다. 1923년 7월 24일 로잔 조약에서 신생 튀르키예 공화국은 오스만 제국의 후계 국가로서 그 주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1923년 10월 29일에 새 수도 앙카라에서 튀르키예 공화국이 정식으로 건국을 선포하였다.
무스타파 케말은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구 오스만의 잔재를 털어내고 새로운 세속 공화국의 건설을 목적으로 여러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1924년에 그는 632년 이래 1300년 동안 이어져 오던 칼리프제를 폐지하였고, 튀르키예 공화국의 기본 정신인 세속주의를 법으로 제정했다.
1925년에는 복장 개혁을 시행하여 여성들의 복장을 해방시키고, 과거에 금지되었던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해 남녀평등교육을 시행하였으며, 이슬람력을 폐지하여 유럽식 그레고리력으로 대체했다. 1926년에는 민법을 개정해 일부다처제를 금지하고 일부일처제를 확립하였으며, 1928년에 튀르키예어의 아랍 문자 표기법을 폐기하고 로마자 표기법으로 변경하였다. 1930년에는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다. '가족명에 관한 법'에 따라, 1934년에 튀르키예 의회는 무스타파 케말에게 '아타튀르크'(아버지 튀르키예인, 즉 '국부')라는 명예 성명을 부여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팽창은 셀림 1세의 재위기에도 계속되었고, 슐레이만 대제의 시대에는 오스만 제국이 남동부 유럽 대부분,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방까지 장악하며 세계적인 대제국으로 떠올랐다. 다만 18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도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쇠퇴를 막기 위하여 마흐무트 2세가 19세기 초에 근대화 개혁을 실시하며 군대, 봉건제, 사회 등 모든 전반적인 부분을 대개혁하였다.
1913년에 젊은 군 장교들을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들의 지휘 아래 오스만 제국은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이 때 오스만 제국은 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그리고 그리스인들에게 잔혹한 학살을 저질렀다. 오스만 제국과 그 동맹국들이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자 각 지역과 민족들의 독립 요구가 강해졌고 유럽 국가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오스만 제국의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결국 오스만 제국은 유럽 국가들로 인해 여러 국가들로 나누어 졌다. 튀르키예 지방에서는 튀르키예의 국가 영웅 케말 아타튀르크가 외국 군대에 대항하여 튀르키예 독립전쟁을 전개하였고, 1922년 11월 1일에 마침내 술탄제를 폐지하며 1923년 10월 29일에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웠다. 아타튀르크는 수없이 많은 개혁안들을 내놓았으며, 서구 사상을 들여왔고 새로운 신생 튀르키예 정부에 민주주의와 자유와 같은 가치들을 주입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거의 대부분 튀르키예는 중립을 취하였으나, 1945년 2월 23일에 의례적인 의미로 연합군 측에 참전하였으며, 1945년 유엔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튀르키예 해협에 군사 기지를 요구하는 가운데 옆 나라 그리스에서는 공산주의자와 내전을 벌이면서 위기 상황이 조성되자, 1947년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하게 된다. 이 독트린에서 미국은 튀르키예와 그리스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개입할 수 있음을 밝혔으며, 그 결과 미국이 대규모로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제공하게 되었다.
튀르키예는 한국 전쟁에서 유엔군으로 참전하였으며 튀르키예는 한국의 형제의 나라임을 자처하고 있으나, 키프로스 그리스계 탄압 문제와 쿠르드족 탄압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1952년에는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여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소련의 팽창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이후 키프로스에서 십여 년간 내전이 벌어졌고, 1974년 7월에 그리스인들의 군사 정변으로 마카리오스 3세 대통령이 실각하고 니코스 삼프손이 독재 정권을 세우자, 튀르키예는 1974년에 키프로스 공화국을 침공하였다. 9년 뒤에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 나라는 오직 튀르키예의 승인만 받은 나라이다.
1945년에 일당제 시대가 종식된 이후, 다당제 시대에는 수십여 년간 긴장을 초래하였으며, 1960년대에 1980년대 사이에 정치적 불안 상태가 계속되면서 1960년, 1971년, 1980년에 군사 정변이 일어났으며, 1997년에는 1997년 튀르키예 군부 협정 시기이기도 하였다.[35] 한편 1980년대 튀르키예 경제의 자유화 이후 튀르키예는 더 강력한 경제 성장과 더 큰 정치적 안정을 누렸다.[4]
행정구역
- 앙카라주 - 앙카라주(튀르키예어: Ankara ili)는 터키 중부에 위치한 주로,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속한다. 24개 군을 관할한다.
- 창키리주 - 창키리주(튀르키예어: Çankırı ili)는 터키 중북부에 위치한 주로,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속한다. 12개 군을 관할한다.
- 에스키셰히르주 - 에스키셰히르주(튀르키예어: Eskişehir ili)는 터키 북서부에 위치한 주로,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속한다. 북서쪽으로는 빌레지크주, 서쪽으로는 퀴타히아주, 남서쪽으로는 아피온카라히사르주, 남쪽으로는 코니아주, 동쪽으로는 앙카라주, 북쪽으로는 볼루주와 접하며 14개 군을 관할한다. 터키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주이자 문화가 크게 발전한 주이며 대학과 연구 기관이 밀집해 있다. 해포석으로 유명한 주이기도 하다.
- 카이세리주 - 카이세리주(튀르키예어: Kayseri ili)는 터키 중부에 위치한 주로,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속한다. 16개 군을 관할한다. 터키 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터키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여겨진다.
- 키르셰히르주 - 키르셰히르주(튀르키예어: Kırşehir ili)는 터키 중부에 위치한 주로,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속한다. 북아나톨리아 단층의 영향 때문에 지진이 자주 일어나며 높이는 평균 985m이다. 7개 군을 관할한다.
- 콘야주 - 콘야주(튀르키예어: Konya ili)는 터키 중남부에 위치한 주로,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속한다. 튀르키예에서 면적이 가장 큰 주이며 31개 군과 1개 시를 관할한다.
- 네브셰히르주 - 네브셰히르주(튀르키예어: Nevşehir ili)는 터키 중부에 위치한 주로,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속한다. 8개 군을 관할한다.
- 니데주 - 니데주(튀르키예어: Niğde ili)는 터키 중남부에 위치한 주로,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속한다. 카이세리주와 아다나주, 메르신주, 코니아주, 악사라이주, 네브셰히르주와 접하며 6개 군을 관할한다.
- 시바스주 - 시바스주(튀르키예어: Sivas ili)는 터키 북동부에 위치한 주로,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속한다. 서쪽으로는 요즈가트주, 남서쪽으로는 카이세리주, 남쪽으로는 카흐라만마라슈주, 남동쪽으로는 말라티아주, 동쪽으로는 에르진잔주, 북동쪽으로는 기레순주, 북쪽으로는 오르두주와 접하며 17개 군을 관할한다. 터키에서 두 번째로 면적이 넓은 주이며 온천으로 유명한 주이다.
- 요즈가트주 - 요즈가트주(튀르키예어: Yozgat ili)는 터키 중부에 위치한 주로,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속한다. 북서쪽으로는 초룸주, 서쪽으로는 키리칼레주, 남서쪽으로는 키르셰히르주, 남쪽으로는 네브셰히르주, 남동쪽으로는 카이세리주, 동쪽으로는 시바스주, 북동쪽으로는 토카트주, 북쪽으로는 아마시아주와 접하며 14개 군을 관할한다.
- 악사라이주 - 악사라이주(튀르키예어: Aksaray ili)는 터키 중부에 위치한 주로,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속한다. 서쪽과 남쪽으로는 코니아주, 남동쪽으로는 니데주, 동쪽으로는 네브셰히르주, 북쪽으로는 키르셰히르주와 접하며 7개 군을 관할한다.
- 카라만주 - 카라만주(튀르키예어: Karaman ili)는 터키 중남부에 위치한 주로,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속한다. 6개 군을 관할한다.
- 키리칼레주 - 키리칼레주(튀르키예어: Kırıkkale ili)는 터키 중부에 위치한 주로,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속한다. 9개 군을 관할한다.[5]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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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 ↑ 〈중앙아나톨리아 지역〉, 《위키백과》
- ↑ 〈실크로드 사전: 아나톨리아〉, 《네이버 지식백과》
- ↑ 〈튀르키예 여행: 중앙 아나톨리아 지역〉, 《네이버 지식백과》
- ↑ 〈튀르키예〉, 《위키백과》
- ↑ 〈튀르키예의 주〉, 《위키백과》
참고자료
- 〈중앙아나톨리아 지역〉, 《위키백과》
- 〈실크로드 사전: 아나톨리아〉, 《네이버 지식백과》
- 〈튀르키예 여행: 중앙 아나톨리아 지역〉, 《네이버 지식백과》
- 〈튀르키예〉, 《위키백과》
- 〈튀르키예의 주〉, 《위키백과》
같이 보기
서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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