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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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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의 모습
벵골호랑이

호랑이(tiger) 또는 , 칡범, 갈범(이는 표범과 구별하여 일컫는 말이다.)은 식육목 고양이과에 속하는 맹수다. 대한민국의 대표 동물이며 고양이과 동물 중 그 크기가 가장 크다.[1]

개요[편집]

호랑이는 생물종 분류로는 고양이과에 속하며 사자, 표범, 재규어와 근연속(Panthera)이다. 검은 가로줄무늬가 특징적인데, 생후부터 성장 후에도 남아 있다. 몸통은 길고 은 비교적 짧고 와 입끝의 폭이 좁다. 는 폭이 좁고 그 등면은 검은색이며 중앙에 크고 흰 얼룩점이 있다. 수컷암컷보다 크고 강한 턱과 긴 송곳니가 특징이다. 발톱의 발달이 좋고 특히 첫째, 즉 엄지발톱이 강력하다. 보통 때에는 발톱집 속에 넣어 둔다. 호랑이의 크기는 아종에 따라 다양한데, 발리호랑이는 100kg 미만이며, 시베리아호랑이는 수컷의 경우 최대 360kg에 이르기도 한다. 과거에는 아시아 대륙 전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했으나, 과도한 포획과 서식지의 감소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멸종하거나 심각한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호랑이는 열대부터 한대 지역에 널리 분포했으며, 열대우림, 온대산림, 맹그로브 숲과 습지, 툰드라, 초원, 사바나, 사막, 농경지 주변 등 다양한 서식 환경에 적응해 살다보니 형태나 습성이 지역마다 차이를 보여 세계적으로 9아종으로 나뉜다. 한반도에 분포하던 아종은 시베리아 동부, 러시아 극동 지역, 중국 동북부에 걸쳐 분포해 흔히 아무르호랑이(Amur tiger) 또는 시베리아호랑이(Siberian tiger)로 불린다. 몽골과 서쪽의 바이칼호 지역까지도 분포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하바롭스크에 이르는 지역을 중심으로 적은 수가 남은 것으로 여겨진다. 주로 해발 500~800m의 높지 않은 산림 지대에 서식하고 있다. 아무르호랑이(P. tigris altaica)는 호랑이 아종들 가운데 가장 북쪽에 분포해 추위에 적응하다보니 체구가 가장 크다. 한반도 아종은 러시아 극동 지역을 중심으로 500마리 정도가 남았다. 한국의 건국신화에도 등장하고 올림픽대회의 마스코트로 선정될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다. 옛날에는 호환이라 하여 민가에 나타나 피해를 줄 정도로 많았으나 1946년 평안북도 초산에서 1마리를 잡은 것을 마지막으로 멸종되었다. 원시시대에는 경외의 대상이자 숭배의 대상이었고, 산악숭배사상과 융합되어 삿된 귀신을 물리치는 신통함이 있다고 믿는 산신신앙으로 자리잡았다. 풍수에서는 우백호로 등장하며 설화나 민화에서는 위엄이 있으면서도 애교가 있고 신성한 영물로 등장할 정도로 친숙한 대상이다. 뼈를 비롯한 신체의 대부분의 부위가 한약으로 쓰이고 있으며, 그로 인해 심각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12간지 동물 중 하나이다. 호랑이는 뛰어난 시력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어두운 환경에서도 잘 볼 수 있다.[2]

공격성[편집]

호랑이는 기본적으로 덩치가 크고 공격성이 강한 데다가 성질도 대단히 사납고 기습으로 은밀히 공격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육식동물이다. 그래서 다양한 초식동물을 공격한다. 호랑이는 주로 야간에 기습으로 초식동물을 공격한다.

늑대, 하이에나 같은 육식동물 등의 초식동물을 공격하는 데에 반해 호랑이는 적극적으로 공격한다. 인도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호랑이가 초식동물을 주기적으로 공격한 적도 있다.

[편집]

몸길이 2.2~4.2m, 꼬리길이 80~110cm, 어깨높이 90~130cm, 몸무게 90~360kg이다. 사육한 아무르호랑이 가운데 체중이 무려 454kg나 나가는 개체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르호랑이수컷) 암컷수컷보다 훨씬 더 작다. 몸의 바탕색은 담황갈색에서 적황갈색이며, 검은색 또는 어두운 갈색의 옆줄무늬가 있다. 배는 흰색이다. 이는 야생에서 먹잇감을 은밀하게 사냥하기 위한 위장색 역할을 한다.

3월, 9월등 1년에 두번 털갈이를 한다. 사자에 비해 어깨가 높고 몸통이 길고 코와 입끝의 너비가 좁고, 귀가 좁다. 등면은 검으며, 중앙에 크고 흰 반점이 있다. 갈기가 없는 대신에 성장하면서 옆쪽에 긴 털이 나기 시작하는데, 성장한 수컷은 특히 길다. 수컷은 갈기나 하복부의 긴 털이 거의 없고 2차 성장이 불확실하다.

앞다리는 아주 단단한 근육질이며, 먹이를 잡아 끌어당길 정도로 힘이 세다. 앞발로는 최대 227kg의 공격을 가할 수 있다.

한편, 유전적인 결함으로 몸 빛깔을 띠는 색소가 없어 흰빛을 띠는 호랑이를 백호라 하는데,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상상의 동물로 여겨 왔다.

생태[편집]

호랑이는 삼림, 갈대밭, 바위가 많은 곳에 살며 물가의 우거진 숲을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호랑이는 단독으로 생활하며 먹이가 풍부한 지방에서는 약 50km², 먹이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3,000km²의 세력 범위를 가진다.

호랑이는 오줌과 항문 근처에 있는 샘에서 나오는 액체로 자신이 다니는 길을 표시한다. 냄새는 다른 호랑이에게 이 지역에 이미 주인이 있음을 알린다. 수컷의 넓은 텃세권은 두 마리 이상의 암컷의 작은 텃세권을 포함하는데, 암수는 각각 홀로 배회하지만 서로를 알고 있다. 3km 이상 되는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포효 소리 등 여러 가지 소리로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인도에서는 호랑이가 자신의 영역을 강하게 지키기 때문에 같은 형제자매도 경쟁을 통하여 쫓아내고, 심지어 여왕격인 엄마 호랑이도 딸이 몰아내는 것이 확인되었다.

사냥과 식성[편집]

먹이는 주로 사슴산양, 영야, 고라니, 토끼, 멧돼지이고, 과 들꿩, 비둘기, 메추라기, 꽃사슴, 어린 노루, 들쥐와 두더지, 숭어, 연어, 송어, 다람쥐 등도 먹으며, 때로는 대륙사슴 등을 사냥해 잡아먹기도 한다.

육식성이라고 알려진 호랑이는 두리안이라는 과일을 먹기도 한다. 먹이가 부족하면 가축인 소나 돼지를 습격하기도 하고 이나 오리와 같은 가금류를 습격하기도 한다.

대형 고양잇과의 특징으로, 잠복하고 기다리거나 소리 없이 다가가서 사냥을 하는데, 작은 동물은 목덜미를 물어 죽이고 큰 동물은 송곳니로 기도에 구멍을 내어 질식시켜 죽인다. 주로 밤에 사냥을 하는데, 눈과 귀와 후각으로 사냥한다. 호랑이의 이빨은 먹이를 물고 살 덩어리를 뜯어내기에 적합하다. 호랑이는 짧은 거리는 아주 빨리 뛸 수가 있다. 그러나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먹이를 잡지 못하면 사냥을 포기해 버린다.

죽인 먹이를 물가로 끌고 가는데 다 큰 말이나 230kg짜리 새끼 물소를 0.5km나 끌고 갈 수 있다. 뼈와 내장만 남기고 다 먹을 때까지 먹이 옆에서 머문다. 호랑이는 고양잇과 동물 중, 뼈까지 부술 정도로 턱의 힘이 강한 맹수이다. 하룻밤에 23kg의 고기를 먹을 수 있고, 다 먹은 다음에는 많은 양의 물을 마시고 잠을 잔다. 헤엄을 잘 쳐 먹이를 찾아서 강을 건너기도 하고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보통 시속 48km 정도로 달리지만 최고 속력은 시속 80km에 이른다. 더운 날에는 몸을 식히러 물속으로 들어간다. 나무도 탈 수 있지만, 즐겨 하지는 않는다. 호랑이의 먹이는 사슴 등의 큰 초식동물로써 생태계의 최상위에 있다. 인도에서는 호랑이로 인한 인명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생식[편집]

교미기는 다양하나 11-3월이 많고, 수컷끼리 암컷을 둘러싸고 격렬히 싸우며,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임신기간은 105-113일이고, 한배에 2-4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눈을 감고 있으며 무늬가 있고, 몸길이는 30cm, 몸무게는 약 1.5kg이다. 새끼는 성장이 빨라 2주 후에는 눈을 뜨고 4-5주 때 걷기 시작하며 8주가 되면 젖을 뗀다. 7개월 째에는 스스로 먹이를 잡을 수 있게 되는데, 2세까지는 어미와 지내며, 그동안에 사냥훈련을 받고, 젖을 떼면 자신이 사냥한 먹이를 새끼에게 처음으로 먹이를 맛보게 한다.

새끼는 주로 암컷이 돌본다. 그러나 아무리 같은 호랑이라도 자기 새끼가 아니면 물어 죽이는 것이 맹수들의 본능이다. 어린 새끼가 죽는 비율이 높아, 반 이상이 3-4세가 되기 전에 죽는다. 암컷은 3.5-4년이 되면 새끼를 낳을 수 있게 된다. 수호랑이와 암사자 사이에 태어난 새끼를 타이곤이라고 한다. 호랑이는 대개 9종으로 분류한다. 이들 중에서 발리호랑이, 카스피호랑이, 자와호랑이는 현재 멸종했으나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종도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교미(交尾)시기와 교접(交接)은 12∼1월 초순경에 시작되며, 젊은 호랑이는 2주일간 늦어진다. 이 시기에 수컷은 이산 저산 숲이란 숲은 모조리 뒤져서 암컷을 찾아 헤맨다. 수컷 여러 마리는 암컷 한 마리를 두고 큰 투쟁을 벌인다. 제일 힘이 센 호랑이는 특권을 가지고 욕정(欲情)을 충족시킬 때까지는 다른 수컷이 암컷 있는 근처에도 못 오게 한다. 수컷의 투쟁은 맹렬하며 투쟁장소는 항상 피투성이가 되는데, 발톱으로 말미암아 부상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그 투쟁으로 죽음을 초래하는 일은 없으며, 약자는 패배당하면 그 투쟁하던 장소를 강자에게 양보하고 새로운 행운을 찾아서 물러서게 된다.

암컷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바위로 된 동굴이나, 바위와 바위 사이에 움푹 팬 곳, 절벽의 동굴에 보금자리를 만든다. 보금자리는 먹이를 찾는 데에서 너무 멀지 않은, 즉 멧돼지와 여러 가지 야생동물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을 선택한다. 또, 일반적으로 보금자리는 바위 위의 자연히 움푹 팬 곳에 만들며, 나무의 마른잎, 마른풀을 보금자리 밑에 깐다.

암컷은 항상 경계하기 위하여 결코 일직선으로 보금자리를 찾아가지 않고 바위를 밟고 다녀서 자신의 발자국을 감추려고 노력한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하여서는 맹목적으로 용감하여져서 모성애를 발휘하며 미친 듯이 엽사(獵師)에게 덤벼드는 성질이 있다.

새끼들은 1, 2년간 어미 곁에 머무른 뒤 서서히 독립생활에 들어가지만, 어미 호랑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는 않는다. 3년 뒤에야 좋은 서식 장소를 찾기 위하여 방랑하기 시작한다. 호랑이는 생후 5년이 되어야 비로소 성숙하며, 수명은 15∼20년이다.

1년에 두 번 털갈이를 하는데 그 시기는 9월과 3월이다. 검은 줄무늬와 코와 발의 털은 몸의 다른 부분보다 빨리 털갈이를 하며 털갈이 기간은 약 2주간이다. 또, 길고 날카로운 발톱도 매년 바뀌며, 바뀌는 시기는 12월경이다.[3]

한반도 호랑이[편집]

한반도에서는 민화 속에도 종종 등장하고 심지어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번 등장할 정도였으나, 남획으로 인해 멸종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멸종하지 않고 소수가 남아 있다고도 한다. 조선이 개국된 이래로, 냇가에 천방을 설치하여 논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야생동물이 많이 서식하던 무너미의 넓은 숲, 초지나 습지는 야생동물의 서식지에서 급속히 농경지로 바뀌었다. 그 결과 호랑이는 먹이와 서식지가 산록지대로 줄어들게 되었고, 일부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게 되었다.

17세기에는 늘어난 인구가 산간지대에서 화전을 개발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하삼도를 중심으로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호랑이의 안정적인 서식지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17세기 후반 화전개발의 심화, 야생으로 전파된 우역으로 멧돼지와 사슴 등이 거의 절멸에 이르게 되면서 호랑이와 표범의 개체수는 더욱 줄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 극단적인 대규모 호환(虎患)이 빈발하기도 했다.

조선은 국초부터 농지개간의 과정에서 호환이 빈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대응하여 착호갑사를 설치하는 등 국가가 주도적으로 호환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였다. <경국대전>에는 포호조가 신설되어 호랑이와 표범을 잡은 사람에게 군공에 버금가는 큰 상을 주어 호랑이와 표범의 사냥을 장려하였다. 또한 호피공납제를 통해 각 지방에서 포획한 호랑이와 표범가죽을 거두어들였다. 백성을 위한다(위민제해)는 명분으로 시행된 포호정책으로 인해 17세기에 이르면 국가에서 정한 호피와 표피를 거둘 수 없게 되어, 17세기 중엽 대동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실제 가죽 대신에 그 값을 내는 호속목제를 법제화하였지만, 실제 호랑이와 표범을 잡을 수 없는 데 그 값을 거두는 것은 명분과 실제가 어긋나는 것이라는 이유로 1724년에 호속목제를 혁파하였다. 이는 18세기 초에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호랑이와 표범의 사냥이 대단히 어렵다는 현실을 국가에서 공인한 조처였다.

이처럼 호랑이의 수가 줄면서, 일시적으로 몽골 등에서 유입된 늑대가 한반도에서 최고 포식동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늑대의 수가 줄어들면서 삵과 검독수리가 실질적으로 한반도 최상위 포식동물이 되었다.[4]

문화[편집]

옛 조상들은 호랑이를 범이라고 불렀으며 산신령(山神靈)·산군(山君)으로, 백두산 인근에서는 노야(老爺)·대부(大父)로 여겼다.

호랑이는 건국신화에 등장하여 곰과 함께 사람이 되고자 하였으나 조급하여 금기를 지키지 못해 실패했다. 이는 범 부족이 곰 부족에게 패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삼국유사》에 후백제의 견훤이 유아 때 호랑이가 젖을 먹였다 하여 웅의 보호자이며 창업의 조력자로 부각시켰고, 고려 태조의 5대조 호경(虎景)이 굴속에 잠을 자다가 굴 입구에서 호랑이가 크게 울부짖었다. 이에 호경이가 밖으로 나왔더니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굴이 무너졌다. 여기서 호랑이는 신의 사자 또는 신 자체로 등장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 하였다. 호랑이 숭배사상과 산악 숭배사상이 융합되어 산신(山神) 또는 산신의 사자를 상징하여 산신당의 산신도로 나타나 있는 등 한국 민족에게 신수(神獸)로 받들여진 것은 오래 된 일이다. 호랑이의 용맹성은 군대를 상징하여 무반(武班)을 호반(虎班)이라 하였다. 호랑이는 병귀나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져 호랑이 그림이나 호(虎)자 부적을 붙이면 이를 물리친다는 속신이 있다. 소의 목에 단 쇠방울이나 절의 풍경도 같은 속신에서 나온 방편이었다.

호랑이는 인간의 효행을 돕거나 인간의 도움을 받으면 은혜를 갚고, 성묘하는 효자를 등에 실어 나르거나 시묘살이하는 효자를 지키며, 은혜를 갚기 위해 좋은 묏자리를 찾아주기도 한다는 속신이 있다. 이는 호랑이를 효와 보은의 동물로 묘사한 것이다. 문학에서, 박지원의 《호질(虎叱)》, 유몽인의 《호정문(虎穽文)》, 이광정의 《호예(虎輗)》에는 호랑이가 인간사회를 질타, 풍자하는 심판자로 등장한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호랑이〉, 《위키백과》
  2. 호랑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호랑이(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4. 호랑이〉,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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