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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호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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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호출기

무선호출기(無線呼出機)는 호출 전용의 소형 휴대용 수신기를 말한다. 수신기에 가입자 번호를 부여하여 그 번호를 누르거나 돌리면 부호화되어 신호 전파기지국을 통하여 발사되어 수신음을 내거나 숫자를 표시한다. 무선호출단말기(無線呼出端末機), 삐삐 또는 호출기(呼出機)라고도 한다.

개요[편집]

무선호출기 외관

무선호출기는 무선 호출을 통한 호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 무선 통신 단말기기의 하나이다. 호출 알림 소리를 본떠 삐삐(beeper, pager)라고도 불린다. 또한, 무선으로 전송되는 신호를 수신하여 음향이나 진동 또는 빛으로 휴대자에게 호출을 알리는 소형 수신기이다. 호출자가 유선 또는 무선 단말기로 호출 신호를 보내면 무선 기지국에서는 통신망의 송신 장치를 통해 전송되어 온 신호를 수신, 이 신호를 무선으로 중계 송출하여 호출기 휴대자에게 호출을 알린다. 무선 호출기는 단방향 수신 장치로 메시지를 송신할 수는 없으나 문자·숫자 등의 조합으로 다양한 내용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무선 호출기는 구조가 단순하고 작고 가벼우며, 서비스 요금이 저렴하다. 흔히 '삐삐'라고도 부른다.

휴대 전화가 대중화되기 전,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널리 사용되었다. 휴대 전화 서비스의 사용이 대중화되면서, 무선 호출기의 사용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휴대 전화와는 달리 즉각적인 응답의 요구가 없으며, 수신 측으로부터 반송되는 정보 (수신자의 위치 등)가 없으므로 개인 정보 보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무선 호출 서비스의 장점을 들어 무선 호출 서비스의 이용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금 격식을 차린 이름이자 정식 명칭은 무선호출기(無線呼出機)다. 영어 명칭은 페이저(Pager)지만 수신받으면 삐삐 소리나면서 울린다고 해서 비퍼(Beeper)라는 명칭이 더 널리 쓰였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삐삐'라는 자생적 이름이 직관적으로 알기 쉽고 간편해서 대중적으로는 더 널리 쓰였다. 중국에선 BP기, 일본에선 포켓벨(ポケットベル), 포케벨(ポケベル)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모지로도 존재한다. 1949년 토론토의 발명가 알프레드 그로스(Alfred J. Gross)에 의해 발명되었다. 그로스는 무선호출 기술을 바탕으로 이후 워키토키의 초기 형태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에서는 1983년부터 무선 호출 서비스가 개시되었으며, 무선 호출 서비스 가입자의 식별 번호로 012, 015 등이 지정되어 있다. 개인이동통신이 대중화되기 전인 1990년대 중후반까지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통신수단으로 인기를 누렸다. 1997년 이후에 휴대전화에 밀려 이용률이 크게 감소하여, 무선호출기가 퇴출하게 되었다. 2013년에는 과거 무선호출기 사업자였던 서울이동통신에서 네띠앙을 인수하여 015 번호를 이용한 인터넷 삐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2014년 1월부터 012번호를 부활시켜 사물인터넷에 사용한다고 미래창조과학부는 밝혔다.[1][2][3]

역사[편집]

전성기[편집]

대한민국에서는 1983년부터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012(한국이동통신), 015·015-77(해피텔레콤)·015-79(세정텔레콤) 번호체계가 있었다.

다만 1980년대에는 꽤 비싼 물건이라 대중화되지는 않았고 1990년대 중반에야 015 사업자들의 서비스 시작을 기점으로 보편화하였고 1990년대 후반에 핸드폰이 보급되기 직전까지 이동 통신계를 풍미하였다. 전성기인 1997년에는 한국 4500만 인구 중 사용자가 2000만에 달할 정도였다.

최고 장점은 접근성과 저가격으로, 당시 호출기 최신 품도 비싸 봐야 5만 원을 넘지 않았으며 신품 기기 대부분이 3만 원, 중고기기는 만 원대였다. 요금 역시 매달 2000~4000원으로 당시 기준으로도 매우 저렴했다.

몰락[편집]

1995년 CDMA의 상용화와 1997년 PCS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휴대전화가 급속도로 보급되고 대한민국 1G 서비스가 종료되던 시기인 1999년을 즈음하여 삐삐는 급격히 쇠퇴하였으나 휴대폰의 사용이 불가능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 삐삐에 애착을 가진 사람들, 증권정보 수신 서비스 이용자 등 일부 사람은 2000년대까지 꾸준히 이용했다. 특히 병원에서는 휴대폰에서 발생하는 전파로 인해 정밀 의료기기가 오작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휴대전화가 보급된 후에도 한동안 삐삐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 기기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휴대전화의 주파수 대역을 제한하고 의료정밀기기 대부분이 안티노이즈 기능을 탑재한 지금 기준에선 한참 옛날 이야기다.

전성기인 1990년대 중반에는 가입자 수가 2000만명이 넘었으니 그야말로 경제활동인구의 거의 대부분은 가지고 있었던 물건이었지만 2000년대가 되면 거의 소멸되어서 그 존재조차 잊혀 버렸다. 이렇듯 전성기에 대단한 위세를 떨쳤지만 전성기가 매우 짧았다는 특성으로 인해 1990년대를 대표하는 물품으로써 1990년대를 추억하는 영화 등에는 필수요소로 등장한다.

2009년 말 즈음에 리얼텔레콤이 갑자기 폐업하면서 사용자 1만여 명이 강제해지를 당했는데 이에 반발하여 공정위와 방통위에 제소를 고려한 적이 있다. 현재는 서울이동통신만이 남아 2010년 6월 기준으로 사용자 약 2.5만명을 보유 중이며 언제까지 서비스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서울이동통신조차도 구조조정을 겪으며 무선호출기 사업 운영 법인이 바뀌는 등 이런저런 큰일이 있었다. 기사 2011년 2월 서울이동통신에서 서비스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후 소식은 없는 상태이다.

2012년 방통위는 리얼텔레콤이 사용 중이던 식별번호 012를 회수하였고 012 번호를 사용하던 삐삐 서비스는 완전히 종료되었다. 012 번호는 이후 사물인터넷에 사용한다. 이로써 015 번호를 사용하던 서울이동통신만 남게 되었다. 서울이동통신은 전국으로 서비스 지역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2017년 기사에 의하면 약 35,000 회선이 서울이동통신에 의해 서비스되고 있다고 한다. 단, 일반인 상대로는 서비스되지 않고 의료기관과 원격 검침 용도로만 사용된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마지막으로 남은 업체가 2019년을 끝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개인용 서비스를 종료했고 한국에서처럼 지자체나 의료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공 서비스만 유지하고 있다.

현재[편집]

서울이동통신은 네띠앙을 인수함은 물론, 미숙하지만 전국 서비스 지역 확대를 이끌며 2014년을 삐삐의 부활 시발점으로 삼고 있다. 안드로이드 삐삐를 개발했으며 015 삐삐라는 이름으로 마켓에서 받을 수 있다. 이 시도가 잘됐는지 베타서비스를 중지하고 신규가입을 받지않으며 본서비스를 준비한다는 공지와 함깨 삐삐단말기가 출시된다는 내용이 왔다. 서울이동통신이 인수한 네띠앙은 인터넷 삐삐 사이트로 전환했다. 015 번호를 발급받아 SMS, 인터넷 팩스, 음성 사서함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소프트폰을 개발하여 인터넷 전화에도 발을 들이고 있다.

한편 위기를 맞은 다른 삐삐 제조사들도 돌파구를 찾아내 아직까지 생존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게 식당이나 커피숍에 가면 흔하게 있는 진동벨, 호출벨이다.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삐삐와 거의 동일한 물건인데 무선 통신 기기의 특성 상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은 또 아닌지라 삐삐 회사들이 기존의 노하우를 활용하기에 좋았다. 2016년 기준 호출벨 시장 점유율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리텍'이라는 회사도 원래는 삐삐를 만들던 회사였다. 삐삐 형태와 비슷한 호출기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건 대부분 프랜차이즈 카페나 식당 종업원이나 대형 마트 직원 호출용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2]

종류[편집]

  • 초창기의 무선호출기는 호출을 수신했을 때 벨소리나 녹음된 목소리 같은 간단한 음향만으로 수신 사실을 나타내었다. 호출을 받은 단말 사용자는 기지국이나 교환국에 직접 전화를 해야 호출을 한 사람을 알 수 있었다.
  • 숫자를 나타낼 수 있는 무선호출기가 출시되면서 호출은 한 사람이 전화번호나 숫자로 된 간단한 메시지를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숫자식 무선호출기에서, 호출을 한 사람이 아무 번호도 남기지 않으면 호출이 온 순서대로 번호가 기록되기도 한다.
  • 문자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는 무선호출기의 경우, 호출하는 사람은 미리 자주 쓰이는 문자열이나 구문에 대응시킨 숫자열을 사용하거나, 인터넷, PC 통신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문자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는 무선호출기 일부는 양방향 서비스가 가능하다. 즉, 무선호출기를 통해 메시지를 발신할 수도 있다.
  • 최근의 무선호출기들은 대부분 숫자를 표시할 수 있으며, 제한된 가짓수의 벨소리와 진동 수신 알림 설정을 지원하고 있다.
  • 정해진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단말기 (지역 단말기)는 해당 지역에서만 쓸 수 있으나 전국에서 쓸 수 있도록 설계된 단말기 (광역 단말기)는 전국에서 모두 쓸 수 있다.[3]

기능[편집]

송신은 되지 않고 수신만 되는 단방향통신기기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전자기기로[3] 한 줄(많아야 20자) 정도의 텍스트를 표기할 수 있는 Passive Matrix LCD와 간단한 버튼 2~3개가 있다. 수신을 받으면 여기에 전화번호나 메시지가 표시된다. 그래서 메시지를 수신한 사람은 사용 가능한 전화나 근처 공중전화로 가서 발신자에게 연락하는 식이다. 핸드폰으로 치면 '급히 연락바람' 문자와 수신자 번호를 함께 보내는 셈이다. 스마트폰에도 삐삐와 유사한 기능이 있는데 바로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으면 그 번호로 전화를 되거는 것이 사실상 과거 삐삐의 기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되걸기 싫으면 안 되걸면 그만이듯 삐삐도 호출번호로 연락 안 하면 그만이었다.

오늘날과 당시의 입장이 매우 상반된 기계 중 하나로, 휴대 전화가 보편된 지금은 '굳이 이런 걸 왜 쓰나'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통신 기기였다. 휴대 전화가 보급되기 전인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단 사람이 한번 집 밖을 나서면 연락이 불가능했다. 그나마 어딘가 가게에 있다는 걸 안다면 가게로 전화해서 바꿔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가게 종업원도 이런 걸 귀찮게 여겨서 잘 해주지 않았고 그나마도 전화가 없는 야외에 있는 상황이면 그냥 연락할 방법이 없는 시절이었다.[4] 삐삐 보급 이전에는 전화의 자동응답을 남기거나 갈만한 곳에 미리 전화를 걸어 "이쪽으로 전화해 달라"고 부탁하고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든 호출이 가능하다'라는 것만으로도 매우 진보한 것이었다.

초창기에는 개통한 광역단체 내에서만 쓸 수 있었으나 이후 전국에서 쓸 수 있는 삐삐가 출시되었다. 또한 숫자만 표시할 수 있었지만 문자메시지도 뜨는 삐삐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 시점에선 이미 핸드폰에 밀려 사양길에 접어들 때여서 묻혔다. 참고로 이 문자는 호출하는 사람이 말로 하면 오퍼레이터가 입력하는 식이었다. 호출자 중 적나라한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이 조금 있어서 나름대로 고역이었다고 한다. PC통신에서도 삐삐 호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해외에는 양방향 삐삐도 있었는데 쿼티자판 스마트폰으로 유명한 블랙베리(당시 '리서치 인 모션')도 초창기에는 양방향 삐삐를 만들었다.

컬러링 서비스처럼 자신이 원하는 문구를 녹음해서 삐삐를 치는 상대방이 듣도록 할 수 있었는데 이를 '인삿말'이라고 불렀다. 일부 사람들은 이 인삿말에 장난스러운 메시지를 녹음해두기도 했는데 '지금 거신 전화는 국번이 없거나 결번이오니...'를 녹음해 둔 사람은 한 달간 삐삐가 한 통도 오지 않기도 했다고 한다. 1997년에는 삐삐와의 상호 보완을 전제로 한 발신전용 휴대전화인 시티폰이 개발되기도 했다.[2]

사용 계층[편집]

전술했듯 오늘날에는 불편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혁신적인 통신 수단이었기 때문에 돌아다닐 일이 많은 세일즈맨과 택시 기사들에게는 필수품이 되었다. 학생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초중고생의 삐삐 휴대, 허용해야 하는가?'의 의제로 언론에서 여론조사를 할 정도였으며 삐삐를 압수하기 위해 소지품 검사를 하기도 했다. 통신사에서도 주로 학생과 10대층을 상대로 마케팅을 집중적으로 했다. 그래서 삐삐 가입자를 대상으로 당시 유행하던 아이돌들이 대거 출연하는 콘서트를 매년 개최하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2010년대부터 대두된 이른바 '카톡 괴롭힘' 문제의 원조격으로 왕따 피해자들에게 가해진 '삐삐 괴롭힘'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2]

사건사고[편집]

2024년 레바논 및 시리아 무선호출기 테러

2024년 9월 17일부터 18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레바논과 시리아 일대에서 사용되던 각종 통신기기 등에 사전에 설치된 폭발물이 기폭되면서 벌어진 테러이다. 2024년 9월 17일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의 첩보공작 내지는 해킹으로 추정되는 공작으로 무선호출기(삐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는 사건이 일어나 약 2750명의 부상자와 1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희생자들은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인 헤즈볼라 요원들로 볼 수 있지만 8세 소녀과 11세 소년이 사망하고 의료인들이 부상을 입는 등 일반인 피해도 보고되었으며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1등 서기관이나 이란 대사 등의 타국 외교관들도 이 테러로 부상을 입었다. 시리아에서 이슬람 혁명 수비대(IRGC) 소속 19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이튿날 무전기와 단파라디오의 동시다발 폭발로 450여 명의 부상자와 20명의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헤즈볼라 최정예 라드완 부대 수뇌부가 무력화됐고 휴대전화, 태양광 에너지 시스템, 지문인식기까지 폭발했다고 한다. 2024년 9월 20일, 대만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된 자국 회사를 압수 수색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기들이 흉기로 돌변했다는 점에서 레바논 사회는 전자기기를 두려워하는 공황에 빠졌으며 이 사태를 지켜본 다른 나라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이슬람 혁명 수비대는 모든 통신기기를 검사하는 대규모 작전을 시행할 것이며 전수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 어떠한 통신기기도 사용하지 말 것을 조치했다.[4]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무선 호출기〉, 《IT용어사전》
  2. 2.0 2.1 2.2 2.3 무선호출기〉, 《나무위키》
  3. 3.0 3.1 무선호출기〉, 《위키백과》
  4. 2024년 레바논 및 시리아 무선호출기 테러〉,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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