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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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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전화기

유선전화기(有線電話機)는 전화기 본체와 수화기 사이에 연결된 선이 있는 전화기를 말한다.

개요[편집]

필립스 유선전화기

유선전화기는 전화기 본체와 송수화기가 선으로 연결된 제품이다. 본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송수화기(送受話器)를 들고 전화할 수 있는 거리가 짧으며 오래 사용 시 줄이 꼬이는 현상이 있다. 송수화기를 어디에 놓았는지 자주 잊어버리는 분들께 효과적이다.[1]

유선전화기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면 우선 송화기에 대고 말을 하면 내부의 자석이 음성을 전기 신호로 바꿔 전선을 통해 상대의 수화기에 전달한다. 상대의 수화기는 전달받은 전기 신호를 다시 음성으로 변환시켜 들려주게 된다. 이는 어릴 때 가지고 논 적이 있을 법한 '실 전화기'의 원리와 유사한데, 실 전화기가 실의 진동으로 목소리를 전달한다면 전화기는 전선이나 전파를 매개체로 목소리를 전달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 때문에 전화기를 사용하려면 전화하려는 기기들을 미리 전선 혹은 전파로 연결해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전화의 보급을 위해선 우선적으로 국가적 범위의 통신망을 구축해야 하며, 이 모든 통신망을 관리하는 중앙 시스템과 시스템 관리 업체 역시 요구된다. 그것이 오늘날의 통신 서비스 업체이다.[2]

역사[편집]

1876년 벨(A. G. Bell)에 의해 발명된 전화는 복잡한 기호의 조합에 의해서만 소통이 가능했던 모스전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일반 대중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전기통신의 새 지평을 열었다. 벨이 발명할 당시 1:1통신에 불과했던 유선전화는 신소재의 개발, 교환기술의발달, 호출방식의 변화, 컴퓨터와의 결합 등을 거치면서 근대 기계 및 전자문명의 발달과 그 괘를 같이 하며 급격히 발전하여 무전기(워키토키), 카폰, 휴대폰무선전화의 탄생을 이끌었다.

초기의 전화기는 손으로 자석발전기를 돌려 교환원을 불러 상대방을 호출하는 자석식 전화기였다. 그 후 1877년 에디슨(T.E.Edison)에 의해 탄소송화기가 발명되고, 유도코일이 이용되면서 통화 거리가 연장되었으며, 같은 해 훅크스위치의 발명에 이어 1880년에는 수화기만 들면 곧바로 교환원과 연결되는 공전식 전화기가 제작되었다. 그리고 1891년에는 스트로우져(A.B.STROWGER)에 의해 자동식 다이얼 전화기가 발명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유선전화기 발달사

대한민국의 전화기는 1882년 청나라에 유학하였던 상운에 의해 최초로 도입이 이뤄졌지만 시험용전화였다. 상용전화로는 먼저 궁중전용(직통)전화가 통신원이 주관하는 전화보다 먼저 가설되었는데, 빠르게는 1891년도에 궁중과 동구릉간 대왕대비 조씨를 문상하기 위한 전용(직통)전화가 처음 가설되었고, 1897년경에는 궁중과 각부처간, 궁중(각부처)과 인천(감리서) 간, 궁중과 평양간에 궁중전용(직통)전화가 가설되었다(개화백경에 언급된 황우찬의 전언에 의하면 1900년경 전화기가 궁내부에 3대, 각 부처에 7대, 인천과 평양에 각 1대 등 총 12대가 가설되어 있었다고 한다).

통신원이 주관하는 전화는 전화소를 거점으로 시행되었는데, 1902년 한성, 인천, 개성전화소 개설에 이어 1903년 평양, 수원, 마포, 도동(남대문), 시흥(영등포), 경교(서대문) 등 총 9개소에 전화소 및 전화지소가 개설되어 공중전화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전화소에 설치된 교환기를 이용하는 개인전화도 가입신청하여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최초의 통화방식은 자석식이었으며, 1908년 공전식, 1935년 자동식(기계식)에 이어 1979년 전자식(MFC)교환기가 도입되었다.

암울한 식민지시대 도입된 일제전화기와 미군정기 도입된 미제전화기들이 주종을 이루던 대한민국 전화기의 역사는 1962년 '체신 1호' 전화기(자석식,공전식,자동식)들이 늦게나마 대한민국에서 생산된 최초의 국산전화기라는 의미를 갖고 출시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1973년에는 '체신1호'전화기를 개선한 '체신 70호' 시리즈가 개발되었고, 드디어 1981년 국가에서 보급(관급제)하던 전화기의 구입절차가 개인이 직접 구입하는 '자급제'로 바뀌면서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과 화려하고 개성화된 전화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가정과 직장 등에서 사용하던 개인 전화기가 널리 보급되지 못하였고, 휴대폰 등 무선통시기가 없던 시절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공중전화가 있었다.

해방후 주화투입식 (옥내)공중전화기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60년으로 일본다무라사의 '5호탁상형공중전화기'로 500대의 부품을 도입, 조립생산하였다. 주화투입식 옥외 무인 공중전화기는 1962년 7월 1일 산업박람회장에 설치된 것이 국산공중전화기로는 처음으로 한국통신기공업에서 제작한 '통신1호'공중전화기였다.

산업박람회가 끝나고 박람회장에 설치되었던 공중전화 10대가 서울 시내 번화가에 설치되면서 공중전화는 본격적으로 가설되기 사작하였는데, 당시 전화요금은 1통화당 주화 50환이었다. 1969년에는 한국통신기공업에서 제작한 '체신1호' 공중전화기가 1통화당 주화 5원의 전화요금으로 선보였는데, 이 전화기는 1977년 요금이 10원으로 인상되고 1978년 701A 주황색공중전화기가 설치되기 전까지 전화가 없거나 급하게 연락할 일이 있는 일반시민의 유용한 통신수단으로 사랑을 받았다.

당시 시내 통화만 가능했던 공중전화는 1978년 12월 일제 다무라사의 시내 외 겸용 공중전화기(일명 노랑전화기) 455대의 부품을 도입, 조립생산하면서 비로소 시외전화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그 후 1983년 시내 외 겸용 DDD 공중전화기가 국내 기술로 개발되어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1986년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카드식 공중전화기가 등장하면서 공중전화카드수집붐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후 신용카드로 국제전화까지 가능한 주화-카드 겸용 공중전화기도 보급되는 등 그 동안 정부주도의 '관리형 공중전화기'가 주류를 이뤘으나 1997년도부터는 개인이 직접 공중전화기를 구입해 상점이나 식당 등에 설치할 수 있는 다양한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의 '자급제형 공중전화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현재는 휴대폰 등의 보급으로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공중전화기 설치 대수도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이다.[3]

유선전화[편집]

지멘스가 1997년부터 만든 유선전화

유선전화는 무선전파를 이용한 이동전화와 구별되는, 금속선이나 광섬유 전화선을 이용해 송출하는 전화다.

특성

유선전화는 유선 또는 무선일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가정, 학교, 은행, 공공건물 등 고정된 장소에서 무선 장치 또는 시스템을 작동하는 것을 말한다. 고정식 무선 장치는 배터리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는 모바일 무선 또는 휴대용 무선과 달리 일반적으로 전력 공급원에서 전력을 공급받았다. 모바일 및 휴대용 시스템은 고정된 위치에서 사용할 수 있지만, 고정 시스템에 비해 효율성과 대역폭이 저하된다. 모바일 또는 휴대용 배터리 방식의 무선 시스템은 정전 또는 자연재해 발생 시 고정 시스템의 긴급 백업으로 사용될 수 있다.

배치

2003년 CIA 월드 팩트북은 전 세계적으로 약 12억 6,300만 개의 주요 전화선을 보도했다. 중국은 3억 5,000만 명으로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았고, 미국은 2억 6,800만 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영국은 2,370만대의 고정 가정용 전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고정전화 가입자는 약 12억 6,000만 명이다. 디지털 기술의 업그레이드와 무선(셀룰러) 또는 인터넷 기반 대안으로의 전환에 따른 편의성 때문에 유선 가입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휴계자

많은 나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선전화를 쉽게 이용할 수 없었다.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서는 휴대폰의 증가가 유선전화의 증가를 능가하고 있다. 1998년과 2008년 사이에 아프리카는 240만 개의 유선만을 추가했다. 이 기간에 가입한 휴대전화 회선은 급증했다. 2000년과 2008년 사이에 휴대전화 사용은 100명 중 2명 이하에서 100명 중 33명으로 증가했다. 모든 사용자에게 유선 동선을 설치하는 것은 어디서나 연결할 수 있는 이동 무선 탑 설치보다 더 어렵다. 인도 아대륙, 도시, 그리고 농촌 지역에서도 유선전화의 상당한 감소가 있었다.

21세기 초, 유선전화는 이동통신 기술의 발전과 오래된 구리선 네트워킹의 노후화로 인해 쇠퇴하였다. 결국, 이러한 금속 네트워크는 완전히 구식이며, 더욱 효율적인 광대역과 광섬유 유선 연결로 대체될 것이며, 이는 통신량이 훨씬 더 희박했던 시골 지역과 지역까지 확대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2025년이 되자마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본다.

2004년에는 12세에서 17세 사이의 미국 인구 중 45%만이 휴대폰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이 유선전화에 의존해야 했다. 불과 4년 후, 그 비율은 약 71%로 증가했다. 같은 해인 2008년에는 성인의 77%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2013년에는 미국 성인의 91%가 휴대폰을 소유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의 60%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가 2017년 5월 4일 발표한 19,956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건강인터뷰 조사에서 미국 가구의 45.9%만이 유선전화를 보유하고 있지만 휴대전화만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9% 이상이 둘 다 가지고 있었다.

캐나다에서는 가정의 5명 중 1명 이상이 휴대폰을 유일한 전화 서비스 공급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21%의 가정이 휴대전화만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35세 미만의 가구원이 소유하고 있는 가구는 전용 휴대폰 사용 비율이 상당히 높다. 2013년에는 젊은 세대주의 60%가 휴대전화만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규제 당국이 가입자를 무단으로 차단하는 제한 등 현직 유선사업자에게 적용하는 소비자 보호 중 상당수가 케이블 모뎀, 음성인식 IP 등 경쟁 통신서비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포팅을 통해, VoIP 서비스는 기존의 고정전화 네트워크에서 이전에 호스팅 된 유선 번호를 호스팅할 수 있다. 스마트폰 등 여러 기기에서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곳이면 어디서나 VoIP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유연성이 뛰어나 원격, 모바일, 홈워킹 등이 쉽다. VoIP 포팅을 통해 유선 번호를 계속 사용할 수 있으며, 한 곳에 묶인 실제 유선 번호에서 해방된다. 이 기능은 발신자가 유선 번호를 선호하는 것으로 생각되거나 기존 유선 번호가 연결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될 때 유용하다.[4]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유선전화기〉, 《쇼핑용어사전》
  2. 유선전화〉, 《나무위키》
  3. 춘하추동, 〈유선전화기 발달사〉, 《네이버 블로그》, 2016-08-27
  4. 유선전화〉,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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