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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마라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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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위치

마르마르지역(튀르키예어: Marmara Bölgesi)는 터키 북서부에 위치한 지역이다. [1]

개요

마르마르지역의 면적은 72,845㎢이며 인구는 21,887,360명(2010년 기준)이다. 터키에서 면적이 가장 작고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며 터키 전체 면적의 약 8.6%, 터키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한다.

마르마라해가 지역 중심부를 흐르며 지역 이름 또한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다. 서쪽으로는 그리스, 에게해, 북쪽으로는 불가리아, 흑해, 동쪽으로는 흑해지역, 남동쪽으로는 중앙아나톨리아, 남쪽으로는 에게지역과 접한다. 1941년 앙카라에서 열린 지리학 회의에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했으며 당시에는 터키를 4개 지역으로 구분했다.

울루다산이 위치하며 특히 올리브 과수원, 어선, 청록색 물을 즐길 수 있는 지역이다. 마르마라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 여름은 따뜻하고 덥고 습하며 적당히 건조하지만 겨울은 춥고 습하며 때때로 눈이 내린다. 보스포루스 해협마르마라해, 다르다넬스 해협을 경계로 유럽아시아로 나뉜다.

터키의 마르마라 지역은 올리브 나무와 푸른 바다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인류의 역사와 현대 세계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튀르키예 대표 여행지다. 터키의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과거로부터 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무역로였다.

마르마라 지역의 해안가 곳곳에는 튀르키예 전형적인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쾌적한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다. 이곳에서 마르마라 지역 특유의 다양한 향토 요리를 찾는 것이 가능하다.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시설 덕분에 이곳은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천국이다. 또한 이 지역은 풍부한 열수 자원과 건강 관광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마르마라 지역에서 가장 세계적인 도시인 이스탄불은 여전히 ​​그 웅장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도시 곳곳에 역사적 영광이 서려있다. 마르마라 지역에는 이스탄불 이외에도 부르사와 에디르네 등 다양한 관광 도시가 있다.[2]

역사

튀르키예 영토 거의 대부분을 이루는 아나톨리아반도는 아시아와 유럽이 상호작용하는 장소로서 지구상에서 매우 오래전부터 인류가 거주하던 땅이었다. 차탈회윅(신석기 3기), 차외뉘(신석기 1기에서 신석기 3기), 네발리 코리(신석기 2기), 하클리아르(신석기 3기), 괴베클리 테페(신석기 2기), 메르신 등 초기 신석기 시대 거주지는 지구상 최초의 인류들이 살던 거주지로 여겨진다. 트로이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로, 철기 시대까지 취락이 지속되었다. 역사 시대로 접어들면 아나톨리아 사람들은 인도-유럽어, 셈어, 카르트벨리어를 비롯하여 기원이 불확실한 여러 언어를 썼다. 사실 고대 인도-유럽어인 히타이트어와 루위아어를 놓고 서구 학자들은 아나톨리아가 인도-유럽어를 확산시킨 중심지라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하였으나 쿠르간 가설에 밀려 인정받고 있지는 않다. 튀르키예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장소인데 아시리아 제국이 존재하였다.

이 땅에 들어선 최초의 제국은 히타이트로 기원전 18세기에서 13세기까지 존속하였다. 그 다음은 인도-유럽 계통의 프뤼기아인들이 패권을 잡았으나, 기원전 7세기에 킴메르인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프뤼기아의 가장 강력했던 후계국가는 뤼디아, 카리아, 뤼키아였다.

기원전 1200년경부터 아나톨리아 해안에는 아이올리스와 이오니아의 그리스인들이 정착하였다. 이 지역은 기원전 6~5세기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에 정복되었으며, 이후 기원전 334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진출한다. 셀주크 튀르크인들이 11세기부터 이 지역에 나타났다. 1243년 룸 술탄국 나타났으며 13세기 후반,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점차 베이들을 통합하기 시작하였다. 330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이스탄불 지역에 로마의 수도로 비잔티움을 지었으나 동로마 시대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개명되었고 오스만 제국에는 이스탄불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연합군이 이스탄불과 이즈미르를 점령하면서 튀르키예의 민족 운동이 촉발되었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공훈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장군의 주도로 세브르 조약 규정을 철회시키기 위한 튀르키예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1922년 9월 18일, 이스탄불과 이즈미르에 있던 연합군은 퇴각하였으며, 새로운 튀르키예의 나라가 건국되었다. 11월 1일에 새로이 열린 의회는 공식적으로 술탄국을 폐지하여, 623년간 이어진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종식되었다. 1923년 7월 24일 로잔 조약에서 신생 튀르키예 공화국은 오스만 제국의 후계 국가로서 그 주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1923년 10월 29일에 새 수도 앙카라에서 튀르키예 공화국이 정식으로 건국을 선포하였다.

무스타파 케말은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구 오스만의 잔재를 털어내고 새로운 세속 공화국의 건설을 목적으로 여러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1924년에 그는 632년 이래 1300년 동안 이어져 오던 칼리프제를 폐지하였고, 튀르키예 공화국의 기본 정신인 세속주의를 법으로 제정했다.

1925년에는 복장 개혁을 시행하여 여성들의 복장을 해방시키고, 과거에 금지되었던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해 남녀평등교육을 시행하였으며, 이슬람력을 폐지하여 유럽식 그레고리력으로 대체했다. 1926년에는 민법을 개정해 일부다처제를 금지하고 일부일처제를 확립하였으며, 1928년에 튀르키예어의 아랍 문자 표기법을 폐기하고 로마자 표기법으로 변경하였다. 1930년에는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다. '가족명에 관한 법'에 따라, 1934년에 튀르키예 의회는 무스타파 케말에게 '아타튀르크'(아버지 튀르키예인, 즉 '국부')라는 명예 성명을 부여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팽창은 셀림 1세의 재위기에도 계속되었고, 슐레이만 대제의 시대에는 오스만 제국이 남동부 유럽 대부분,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방까지 장악하며 세계적인 대제국으로 떠올랐다. 다만 18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도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쇠퇴를 막기 위하여 마흐무트 2세가 19세기 초에 근대화 개혁을 실시하며 군대, 봉건제, 사회 등 모든 전반적인 부분을 대개혁하였다.

1913년에 젊은 군 장교들을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들의 지휘 아래 오스만 제국은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이 때 오스만 제국은 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그리고 그리스인들에게 잔혹한 학살을 저질렀다. 오스만 제국과 그 동맹국들이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자 각 지역과 민족들의 독립 요구가 강해졌고 유럽 국가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오스만 제국의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결국 오스만 제국은 유럽 국가들로 인해 여러 국가들로 나누어 졌다. 튀르키예 지방에서는 튀르키예의 국가 영웅 케말 아타튀르크가 외국 군대에 대항하여 튀르키예 독립전쟁을 전개하였고, 1922년 11월 1일에 마침내 술탄제를 폐지하며 1923년 10월 29일에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웠다. 아타튀르크는 수없이 많은 개혁안들을 내놓았으며, 서구 사상을 들여왔고 새로운 신생 튀르키예 정부에 민주주의와 자유와 같은 가치들을 주입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거의 대부분 튀르키예는 중립을 취하였으나, 1945년 2월 23일에 의례적인 의미로 연합군 측에 참전하였으며, 1945년 유엔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튀르키예 해협에 군사 기지를 요구하는 가운데 옆 나라 그리스에서는 공산주의자와 내전을 벌이면서 위기 상황이 조성되자, 1947년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하게 된다. 이 독트린에서 미국은 튀르키예와 그리스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개입할 수 있음을 밝혔으며, 그 결과 미국이 대규모로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제공하게 되었다.

튀르키예는 한국 전쟁에서 유엔군으로 참전하였으며 튀르키예는 한국의 형제의 나라임을 자처하고 있으나, 키프로스 그리스계 탄압 문제와 쿠르드족 탄압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1952년에는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여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소련의 팽창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이후 키프로스에서 십여 년간 내전이 벌어졌고, 1974년 7월에 그리스인들의 군사 정변으로 마카리오스 3세 대통령이 실각하고 니코스 삼프손이 독재 정권을 세우자, 튀르키예는 1974년에 키프로스 공화국을 침공하였다. 9년 뒤에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 나라는 오직 튀르키예의 승인만 받은 나라이다.

1945년에 일당제 시대가 종식된 이후, 다당제 시대에는 수십여 년간 긴장을 초래하였으며, 1960년대에 1980년대 사이에 정치적 불안 상태가 계속되면서 1960년, 1971년, 1980년에 군사 정변이 일어났으며, 1997년에는 1997년 튀르키예 군부 협정 시기이기도 하였다.[35] 한편 1980년대 튀르키예 경제의 자유화 이후 튀르키예는 더 강력한 경제 성장과 더 큰 정치적 안정을 누렸다.[3]

행정구역

  • 발리케시르주 - 발리케시르주(튀르키예어: Balıkesir ili)는 터키 중서부에 위치한 주로, 마르마라 지역에 속한다. 마르마라해, 에게해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차나칼레주, 남서쪽으로는 이즈미르주, 남쪽으로는 마니사주, 남동쪽으로는 퀴타히아주, 동쪽으로는 부르사주와 접한다. 19개 군을 관할한다. 올리브와 온천,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며 고령석이 많이 채굴된다.
  • 빌레지크주 - 빌레지크주(튀르키예어: Bilecik ili)는 터키 중서부에 위치한 주로, 마르마라 지역에 속한다. 서쪽으로는 부르사주, 북쪽으로는 코자엘리주와 사카리아주, 동쪽으로는 볼루주, 남동쪽으로는 에스키셰히르주, 남쪽으로는 퀴타히아주와 접하며 8개 군을 관할한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히타이트(기원전 1400년~1200년)와 프뤼기아(기원전 1200년~기원전 676년), 뤼디아(기원전 595년~기원전 546년), 페르시아 제국(기원전 546년~기원전 334년), 로마 제국(74년~395년), 비잔틴 제국(395년~13세기 말)의 지배를 받았다. 1281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었다.
  • 부르사주 - 부르사주(튀르키예어: Bursa ili)는 터키 서부에 위치한 주로, 마르마라 지역에 속한다. 북쪽과 북서쪽으로는 마르마라해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발리케시르주, 남쪽으로는 퀴타히아주, 동쪽으로는 빌레지크주와 사카리아주, 북동쪽으로는 코자엘리주, 북쪽으로는 얄로바주와 접하며 17개 군을 관할한다.
  • 차나칼레주 - 차나칼레주(튀르키예어: Çanakkale ili)는 터키 북서부에 위치한 주로, 마르마라 지역에 속한다. 12개 군을 관할한다. 이스탄불과 마찬가지로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며 유럽 지역에는 겔리볼루가 있고 아시아 지역에는 아나톨리아의 역사적 영역 가운데 하나인 트로아스가 있다. 다르다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으며 마르마라해, 에게해와 접한다. 트로이 유적으로 유명하다.
  • 에디르네주 - 에디르네주(튀르키예어: Edirne ili)는 터키 최서단에 위치한 주로, 마르마라 지역에 속한다. 그리스, 불가리아와 국경을 접하며 9개 군을 관할한다.
  • 이스탄불주 - 이스탄불주(튀르키예어: İstanbul ili)는 터키 북서부에 위치한 주로, 마르마라 지역에 속한다. 서쪽으로는 테키르다주, 동쪽으로는 코자엘리주, 북쪽으로는 흑해, 남쪽으로는 마르마라해와 접하며 보스포루스 해협을 경계로 서쪽에 있는 유럽 지역과 동쪽에 있는 아시아 지역으로 양분되어 있다. 32개 군을 관할한다.
  • 키르클라렐리주 - 키르클라렐리주(튀르키예어: Kırklareli ili)는 터키 북서부와 흑해 서부 연안에 위치한 주로, 마르마라 지역에 속한다. 북쪽으로는 불가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에디르네주, 남쪽으로는 테키르다주, 남동쪽으로는 이스탄불주와 접하며 8개 군을 관할한다.
  • 코자엘리주 - 코자엘리주(튀르키예어: Kocaeli ili)는 터키 북서부에 위치한 주로, 마르마라 지역에 속한다. 마르마라해와 접하며 12개 군을 관할한다. 코자엘리주의 게브제는 한니발의 사망지로 알려져 있다.
  • 사카리아주 - 사카리아주(튀르키예어: Sakarya ili)는 터키 북서부와 흑해 연안에 위치한 주로, 마르마라 지역에 속한다. 흑해로 흘러가는 사카리아강이 주내를 흐르고 있고 서쪽으로는 코자엘리주, 남쪽으로는 빌레지크주, 남동쪽으로는 볼루주, 동쪽으로는 뒤즈제주와 접하며 13개 군을 관할한다.
  • 테키르다주 - 테키르다주(튀르키예어: Tekirdağ ili)는 터키 북서부에 마르마라 지역에 있는 주이다. 차나칼레주와 키르클라렐리주, 이스탄불주, 에디르네주와 접하며 9개 군을 관할한다.
  • 얄로바주 - 얄로바주(튀르키예어: Yalova ili)는 터키 북서부와 마르마라해 동부 연안에 위치한 주로, 마르마라 지역에 속한다. 남쪽으로는 부르사주, 동쪽으로는 코자엘리주와 접하며 4개 군을 관할한다. 1995년 이전까지는 이스탄불주의 일부로 남아 있었다.[4]

마르마라해

마르마라해는 흑해에게해를 잇는 바다이다. 터키아시아 쪽과 유럽 쪽을 가르는 바다이기도 하다. 흑해 쪽은 보스포루스 해협, 에게해 쪽은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면적은 11,350㎢이다. 이 해역 아래로 아나톨리아판과 유라시아판의 경계를 이루는 북아나톨리아 단층이 지나간다.

고전 고대에는 프로폰티스 (Propontis) 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는 그리스어로 '~ 전'이라는 의미의 프로 (pro-)와 '바다' 라는 의미의 폰토스 (pontos) 에서 파생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흑해에 도달하기 위해 이곳을 항해했다는 사실이 반영되었다.[5]

지도

튀르키예 행정 지도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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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1. 마르마라 지역〉, 《위키백과》
  2. 튀르키예 여행 : 마르마라 지역〉, 《네이버 지식백과》
  3. 튀르키예〉, 《위키백과》
  4. 튀르키예의 주〉, 《위키백과》
  5. 마르마라해〉, 《위키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서아시아 같이 보기

아라비아 국가
페르시아 국가와 지역
아나톨리아 국가
레반트 국가
남캅카스 국가
아라비아 도시
페르시아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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