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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이베이(ebay)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이베이 웹사이트에서 소비자 대 소비자 그리고 비즈니스 대 소비자 판매를 중개하고 있다. 이베이는 1995년 [[피에르 오미디야르]]에 의하여 설립되어 닷컴 버블의 주목할 만한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다양한 종류의 물건과 서비스를 일반 개인과 사업체가 사고파는 사이트 이베이 닷컴을 운영하고 있다. 구매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나 판매자는 제한된 수의 무료 리스팅 이후에 초과 리스팅들에 대하여 또한 물건이 판매된 이후 최종 가격의 일정 비율에 대하여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ref name ="위키피디아_이베이">〈[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B2%A0%EC%9D%B4 이베이]〉, 《위키피디아》 </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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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 *1990년대 | ||
− | 이베이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 + | 이베이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옥션웹'은 1995년 9월 3일 캘리포니아에서 프랑스 태생의 이란계 미국인 컴퓨터 프로그래머 피에르 오미디야르에 의하여 개인 사이트로서는 조금 큰 편으로 시작되었다. 옥션웹에서 판매된 첫 번째 물건들 중 하나는 망가진 레이저 포인터였고 팔린 가격은 14.83달러였다. 너무 높은 가격에 놀란 피에르 오미디야르는 입찰자와 접촉하여 레이저 포인터가 망가진 것을 알고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구입자는 이메일 답장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저는 망가진 레이저 포인터를 수집하는 사람입니다." 이베이는 오미디야르 약혼자의 페즈 캔디 수납통 수집을 돕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흔히 반복되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것은 '완벽한 시장'을 만들기 원했다는 회사 측의 이전 설명에 흥미가 없었던 미디어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1997년 당시 대외 홍보 매니저였던 메리 루 송이 꾸며낸 것이었다. 이것은 아담 코헨의 출판물 퍼펙트 스토어에서 밝혀졌고 후에 이베이에 의해 확인되었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인터넷 서비스 회사가 오미디야르의 웹사이트 트래픽이 너무 많기 때문에 비즈니스 계정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기 전까지 이베이는 오미디야르의 단순한 취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결과 비즈니스 계정 업그레이드는 한 달에 30달러에서 250달러로 지출이 증가하였으며, 이는 그가 이베이 사용자들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동기가 되었는데 이에 대한 사용자들의 어떠한 반감도 없었다. 또한 이것은 수수료로 받는 많은 수표들을 처리하기 위해 이베이의 첫 번째 직원 크리스 아가파오를 고용하는 계기가 되었다.1996년 초 제프리 스콜이 이베이의 첫 번째 새로운 사장으로 고용되었으며, 1996년 11월 이베이는 비행기 표와 다른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스마트마켓 테크놀로지를 사용하기 위해 [[일렉트로닉 트래블 옥션]]이라는 회사와 첫 번째 제3자 사용권 계약을 맺었다. 1997년 1월 이베이는 2백만 개의 경매 리스팅이 올라왔는데 이것은 1996년 한 해 동안의 25만 개와 비교하면, 회사의 발전은 경이적이었다. 1997년 9월 회사는 옥션웹에서 이베이로 그 서비스 이름을 공식으로 변경하였는데, 원래 사이트는 오미디야르의 컨설팅 회사인 에코 베이 테크놀로지 그룹에 속해 있었다. 오미디야르는 에코베이 닷컴으로 도메인 이름을 정하려고 했으나 그 이름은 금광 회사인 에코 베이 광산에 의해 이미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조금 그 이름을 줄여서 이베이 닷컴으로 하였다. 1997년 이베이는 벤처 자본 회사 벤치마크 캐피탈로부터 67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으며, 1998년 3월 이사회에 의하여 메그 휘트먼이 이베이의 사장이자 CEO로 고용되었다. 당시 회사는 30명의 직원이 있었고 50만의 사용자와 47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베이는 1998년 9월 21일 기업공개를 하였으며, 오미디야르와 스콜은 모두 억만장자가 되었다. 이베이의 주당 목표 가격은 18 달러가 전부이었으나 거래 첫날 53.50 달러까지 치솟았다.<ref name ="위키피디아_이베이"></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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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2일 (토) 23:20 기준 최신판
이베이(ebay)는 미국의 인터넷 쇼핑 회사이다. 1995년 이란계 미국인인 피에르 오미디야르(Pierre Omidyar, پیر مراد امیدیار)가 창업했다. 처음에는 경매 사이트로 시작하여 종합 쇼핑몰로 발전했다. 2002년 페이팔(PayPal)을 인수했다. 2005년 인터넷 전화 및 화상회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스토니아의 스카이프(Skype)를 인수하여 2009년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에 되팔았다.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에 있다. 2001년 한국의 옥션(Auction)을 인수하고, 2009년 지마켓(Gmarket)을 인수한 후, 2011년 두 회사를 합병하여, 이베이코리아를 운영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숍봇(shopbot)을 개발하여, 사용자들의 쇼핑을 도와주고 있다.
개요[편집]
이베이(ebay)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이베이 웹사이트에서 소비자 대 소비자 그리고 비즈니스 대 소비자 판매를 중개하고 있다. 이베이는 1995년 피에르 오미디야르에 의하여 설립되어 닷컴 버블의 주목할 만한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다양한 종류의 물건과 서비스를 일반 개인과 사업체가 사고파는 사이트 이베이 닷컴을 운영하고 있다. 구매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나 판매자는 제한된 수의 무료 리스팅 이후에 초과 리스팅들에 대하여 또한 물건이 판매된 이후 최종 가격의 일정 비율에 대하여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1]
연혁[편집]
- 1990년대
이베이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옥션웹'은 1995년 9월 3일 캘리포니아에서 프랑스 태생의 이란계 미국인 컴퓨터 프로그래머 피에르 오미디야르에 의하여 개인 사이트로서는 조금 큰 편으로 시작되었다. 옥션웹에서 판매된 첫 번째 물건들 중 하나는 망가진 레이저 포인터였고 팔린 가격은 14.83달러였다. 너무 높은 가격에 놀란 피에르 오미디야르는 입찰자와 접촉하여 레이저 포인터가 망가진 것을 알고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구입자는 이메일 답장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저는 망가진 레이저 포인터를 수집하는 사람입니다." 이베이는 오미디야르 약혼자의 페즈 캔디 수납통 수집을 돕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흔히 반복되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것은 '완벽한 시장'을 만들기 원했다는 회사 측의 이전 설명에 흥미가 없었던 미디어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1997년 당시 대외 홍보 매니저였던 메리 루 송이 꾸며낸 것이었다. 이것은 아담 코헨의 출판물 퍼펙트 스토어에서 밝혀졌고 후에 이베이에 의해 확인되었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인터넷 서비스 회사가 오미디야르의 웹사이트 트래픽이 너무 많기 때문에 비즈니스 계정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기 전까지 이베이는 오미디야르의 단순한 취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결과 비즈니스 계정 업그레이드는 한 달에 30달러에서 250달러로 지출이 증가하였으며, 이는 그가 이베이 사용자들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동기가 되었는데 이에 대한 사용자들의 어떠한 반감도 없었다. 또한 이것은 수수료로 받는 많은 수표들을 처리하기 위해 이베이의 첫 번째 직원 크리스 아가파오를 고용하는 계기가 되었다.1996년 초 제프리 스콜이 이베이의 첫 번째 새로운 사장으로 고용되었으며, 1996년 11월 이베이는 비행기 표와 다른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스마트마켓 테크놀로지를 사용하기 위해 일렉트로닉 트래블 옥션이라는 회사와 첫 번째 제3자 사용권 계약을 맺었다. 1997년 1월 이베이는 2백만 개의 경매 리스팅이 올라왔는데 이것은 1996년 한 해 동안의 25만 개와 비교하면, 회사의 발전은 경이적이었다. 1997년 9월 회사는 옥션웹에서 이베이로 그 서비스 이름을 공식으로 변경하였는데, 원래 사이트는 오미디야르의 컨설팅 회사인 에코 베이 테크놀로지 그룹에 속해 있었다. 오미디야르는 에코베이 닷컴으로 도메인 이름을 정하려고 했으나 그 이름은 금광 회사인 에코 베이 광산에 의해 이미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조금 그 이름을 줄여서 이베이 닷컴으로 하였다. 1997년 이베이는 벤처 자본 회사 벤치마크 캐피탈로부터 67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으며, 1998년 3월 이사회에 의하여 메그 휘트먼이 이베이의 사장이자 CEO로 고용되었다. 당시 회사는 30명의 직원이 있었고 50만의 사용자와 47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베이는 1998년 9월 21일 기업공개를 하였으며, 오미디야르와 스콜은 모두 억만장자가 되었다. 이베이의 주당 목표 가격은 18 달러가 전부이었으나 거래 첫날 53.50 달러까지 치솟았다.[1]
- 2000년대
이베이는 단순한 수집품을 넘어서 판매 가능한 거의 모든 물건들로 제품 분류를 확대함에 따라 비즈니스는 더욱 빠르게 성장하였다. 2002년 2월 이베이는 1998년에 세워진, 이베이와 비슷한 유럽의 경매 사이트 아이바자를 인수했고, 2002년 10월 3일 페이팔을 자회사로 편입하였다. 2008년 초까지 회사는 전 세계로 규모를 확장하였고 억 대의 등록 사용자와 직원 15,000명 그리고 77억 달러의 수익을 기록하였다. 이베이에서 거의 10년을 최고경영자로 일했던 메그 휘트먼은 이후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정하였으며, 2008년 1월 23일 이베이는 휘트먼이 2008년 3월 31일 부로 사임하고 존 도나호가 회장 겸 CEO로 선출되었다고 발표하였다. 휘트먼은 2008년 말까지 이베이 이사회에 남아 신임 CEO 도나호에게 조언을 계속해주었다. 2009년 말 이베이는 스카이프를 27.5억 달러에 팔아치웠지만 회사의 지분 30%는 계속 소유하기로 하였다.[1]
- 2010년대
2012년 연방 법무부는 다른 실리콘 밸리 기업들과 함께 이베이가 하이테크 우수인력 채용과 관련하여 서로의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이직을 막는 담합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하였는데, 이들 기업들은 직원의 이직을 막으려는 시도 또는 기업 간 인력 확보 경쟁을 제한하는 담합을 앞으로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고 법무부와 합의하였다. 2014년 9월 30일 이베이는 페이팔을 독립된 회사로 분리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9개월 전에 헤지 펀드 거물 칼 아이칸이 요구한 것이었다. 분리는 2015년 7월 18일 완료되었으며, 이베이의 전임 CEO 존 도나호는 사임하였다. 2018년 1월 31일 이베이는 페이팔을 대신하여 이베이의 주된 결제 서어비스 제공자를 네덜란드의 신생 기업 아디옌으로 바꿀 것이라고 발표하였는데, 교체는 2021년까지 완료될 예정이며 2023년 7월까지 페이팔은 이베이에서의 지불 가능한 결제 수단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1]
주요인물[편집]
- 피에르 오미디야르 : 피에르 오미디야르는 1967년 6월 21일에 이란 부모님 사이에서 파리에서 태어났다. 6살 때 미국으로 이민, 워싱턴DC에서 성장하였다. 고교 시절에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되고, 터프츠 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였다. 1988년 졸업 후, 애플 컴퓨터의 자회사인 클라리스(현 파일 메이커)에 입사하여, MacDraw 개발에 종사했다. 1991년에 3명의 친구와 함께 Ink Development를 공동 설립. e-커머스 사업의 시작과 함께 1993년에 eShop과 사명을 변경,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했다. 1994년 말에 퇴사하고 General Magic에 입사하였다. 1995년, 오미다이어는 인터넷을 통한 소비자간 거래의 수요를 예상, 방학을 이용하여 eBay의 기반이되는 컴퓨터 코드를 다 썼다. 1995년 9월 4일 시험적으로 Auction Web의 이름으로 인터넷 경매 서비스를 시작하였으며, 수요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General Magic를 퇴사하고 서비스를 사업화하여 1997년에 eBay로 개칭하였다. 1997년 중반에는 1일당 약 80만 경매를 처리하고 1998 까지 100만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하였다. 1998년 9월에 상장을 하였다. 자선 활동에도 관여하여, 2004년 6월, 비영리 단체에 자금을 제공하는 오미디야르 네트워크를 아내와 함께 설립했다. 2005년 11월에는 모교 터프츠 대학교에 1억 달러를 기부했다.[2]
주요사업[편집]
이베이는 판매자가 상품에 대한 리스팅을 올리는 경우 리스팅 수수료(insertion fee) 그리고 팔렸을 때 물건 가격에 따른 최종 가치 수수료(final value fee) 등 서어비스에 대한 수수료를 부과하는 시스템으로 수익을 발생시킨다. 수수료는 물건의 최종 가격, 리스팅의 형식 그리고 물건을 올릴 때 선택한 제품 분류 즉, 카테고리에 따라서 달라지며 또한 리스팅을 올릴 때 별도의 추가 업그레이드 옵션을 선택한 경우 또는 이베이가 정한 판매자 성과 기준에 부합되는지 여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2018년 6월 현재 이베이 닷컴은 매달 50개까지의 무료 리스팅을 올릴 수 있으며 이 숫자를 초과한 경우는 리스팅을 올릴 때마다 별도의 0.35 달러 수수료가 있다. 리스팅 시작 수수료는 경매 스타일의 경우 물건이 팔리면 그 수수료를 다시 크레딧 형태로 돌려받을 수 있으나 고정 가격 판매의 경우에는 다시 돌려받을 수 없다. 물건이 팔린 후 최종 가치 수수료는 물건 가격에 배송료를 더한 총 판매 가격의 10%이고 최종 가치 수수료 상한이 있어서 하나의 물건당 최대 750 달러까지이다. 최종 가치 수수료는 리스팅을 올릴 때 선택한 제품 분류 즉, 카테고리에 따라서도 각기 다를 수 있다. 별도의 수수료를 내고 이베이 스토어를 여는 경우, 최종 가치 수수료는 할인받을 수 있으며 또한 매달 올릴 수 있는 무료 리스팅 숫자도 늘어난다. 이베이 영국 사이트의 경우 매달 20개까지는 리스팅을 무료로 올릴 수 있으나 이후 하나를 올릴 때마다 0.35 파운드의 시작 수수료가 있는데 최종 가치 수수료는 최종 판매 가격의 10%이며 최종 가치 수수료 상한제를 두어서 하나의 물건 당 최대 250 파운드까지이다. 비즈니스 등록 판매자의 경우에는 최종 가치 수수료를 경감받을 수 있다. 미국 법에 따르면 주 정부는 주 외부에 있는 판매자에게 주 판매세 징수를 요구할 수 없으므로 구매자에게는 판매세를 내지 않을 수 있는 이베이에서의 타주 판매자 물건 구매가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일부 주의 법률은 해당 주의 구매자가 주 경계를 벗어난 지역에서의 물건 구매에 대하여 사용세를 지불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 널리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비즈니스로 운영하는 판매자의 경우에는 이베이 거래에 대하여 주 판매세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유럽 연합의 판매세인 부가가치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베이는 판매자에게 부가세를 단지 별도의 옵션이 아닌 그들의 리스팅 가격에 이미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이베이로서는 물건이 팔린 후 최종 가치 수수료를 청구할 때 물건 판매 가격에 더해 이미 부가세까지 포함되어 있으므로 수익을 내기에 더 유리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베이가 최종 가치 수수료 산정의 기준에 모든 배송료를 포함시키는 것과도 유사하다.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은 이베이의 사업 전략 중의 하나였다. 이베이는 중국과 인도를 포함하여 이미 24개 국가 이상으로 확장하였지만,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 전략은 대만과, 야후가 이미 선제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일본 그리고 트레이드 미(en:Trade Me)라는 지배적인 온라인 경매 사이트가 있는 뉴질랜드에서 실패하였다. 이베이는 또한 중국에서도 타오바오라는 현지 경쟁 사이트와의 대결에서 참패하였다. 이베이는 2002년 중국 시장에 진출하였지만 2007년에 중국 이베이 사이트를 문 닫아야 했다. 인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인도 지사를 인도의 가장 큰 전자상거래 회사 플립카트에 매각한 이후 인도 이베이 운영은 중지되었으며 후에 그 회사의 14억 달러 자금 모집에[48] 이베이는 참여하였다. 2008년 1분기 실적에서 이베이에서의 페이팔을 통한 총 지불 금액은 17% 증가했지만, 페이팔은 eBay 경매 사이트를 제외하면 61%의 증가를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페이팔의 커다란 잠재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대부분의 제품 분류 리스팅에서 이베이 판매자는 에스크로 닷컴(en:Escrow.com), 페이팔, 페이메이트(Paymate), 프로페이(Propay) 및 스크릴(Skrill)과 같은 다양한 지불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는데, 프로페이와 스크릴은 사용 빈도가 적어서 2015년 9월 27일부터 중지되었다. 에스크로 닷컴은 이베이의 승인된 에스크로 사이트이며 이는 주로 이베이 자동차 카테고리에서의 매매와 관련되어 이용되고 있으나 항상 이러한 자동차 매매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베이는 이베이 파트너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제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베이 제휴 마케팅 파트너는 물건 거래가 완료된 후 이베이 판매자가 지불해야 하는 거래 수수료의 일정 퍼센트 약 50~75%까지의 수수료에 해당하는 금액을 알선 중개료 즉 커미션으로 원래 지급받았는데, 2009년 10월 이베이는 제휴 프로그램의 지급 시스템을 퀄리티 클릭 프라이싱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제휴 파트너는 공개되지 않은 알고리듬에 의하여 결정된 금액을 커미션으로 받게 되었는데, 전체 지급 금액은 어닝스 퍼 클릭 또는 EPC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제휴 파트너가 이베이로 보낸 클릭 숫자에 의해 몫을 나누게 되었다. 2013년 10월 파트너 네트워크 프로그램은 새로운 지급 모델을 선보였는데 새로운 모델은 지급 방식이 보다 투명해졌으며 신규 및 재구매하는 구입자를 대상으로 보너스와 함께 카테고리 별 기본 커미션 요율을 기반으로 한다. 2018년 4월 25일 이베이는 1분기 매출이 작년 동기간 대비 12% 증가한 25.8억 달러라고 발표하였으며 총 상품 거래액은 236억 달러, 순 수익은 4.07억 달러로 또한 공개하였다.[1]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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