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은자메나

위키원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은자메나
은자메나 위치

은자메나(프랑스어: N'Djamena, 아랍어: أنجمينا, 문화어: 느쟈메나)는 중앙아프리카 차드수도이자 최대도시이다. 인구는 약 100만 명이다. 1973년에 아랍어로 '쉼터'를 의미하는 니자미나(أنجمينا)에서 유래한 은자메나로 개칭되었다.[1]

개요[편집]

은자메나는 로고네강과 샤리강(Chari River)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카메룬국경을 맞대고 있다. 샤리 강(Chari River) 북쪽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으며 강 건너 남서쪽엔 카메룬 북부 국경도시인 쿠세리(Kousséri)가 있다. 은자메나는 1900년 5월 29일 프랑스령 차드 식민지 시절에 차드에 주둔하는 프랑스군의 주둔지로 건설되었고, 이후 프랑스령 차드의 행정업무도 은자메나에서 맡게되면서 은자메나가 차드의 중심지가 되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포르 라미(Fort-Lamy)라고 불렀다. '은자메나'라는 명칭은 1973년 당시 대통령 프랑수아 톰발바예가 식민 잔재 청산을 이유로 포르라미 근처에 있던 작은 마을 인자미나(انجامينا‎‎)에서 이름을 따와 새로 개명한 것이다. 사하라 사막을 지나던 대상로가 쇠퇴하여, 지금은 나이지리아 북부의 카노, 수단의 수도 하르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방기 등과는 육로로 연결되며 차드 분지에서 나는 농축산물을 집산·가공한다. 도시는 트랜스 사헤란 고속도로의 동쪽 종점이며 대부분 포장되지 않은 은자메나 지부티 고속도로에 의해 동아프리카와 연결되어 있다. 트리폴리 케이프타운 고속도로는 또한 은자메나를 통과하여 트랜스 아프리카 고속도로 네트워크의 중앙아프리카 위치에 있다. 또한 외곽 지역에는 은자메나 국제공항이 자리하고 있다. 은자메나는 은자메나 대학이라는 대학이 있다. 프랑스어를 교육 언어로 사용하며 1971년에 건설되었다. 도시의 명소로는 차드 국립 박물관, 알무나 문화 센터, 평화의 성모 대성당, 그리고 여러 모스크가 있다. 차드 국립박물관 내에서는 현지인들이 "토우마"라고 부르는 사헬란트로푸스의 두개골 일부를 볼 수 있다. 이 두개골은 차드의 북부에서 발견되었으며 인류의 가장 초기 조상 중 하나인 것으로 간주된다. 은자메나는 2009년 이슬람 문화의 수도로 선정되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은자메나는 로고네강(Logone)과 샤리강(Chari River)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주로 행정 중심지인 도시에는 나사라 스트립(Nassara Strip) 상업 중심지와 음볼 롤로(Mbololo), 차구아(Chagoua), 파리 콩고(Paris Congo) 및 무르살(Moursal)과 같은 주거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기후대는 전형적인 건조기후에 속한다. 그냥 한 마디로 건식 사우나를 생각하면 된다. 연 강수량이 500mm 정도이지만 증발량이 많아 더운 스텝 기후(BSh)를 보이며 사하라 사막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실제로는 흙먼지가 날리고 매우 건조하며 비는 구경도 못 하는 그냥 사막기후라고 보면 된다. 이 곳은 사헬 한복판에 위치하는지라 화끈한 더위를 자랑해 1년 내내 최고기온 30℃를 넘고 혹서기때는 40℃가 넘어간다. 사막기후답게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서 얼어 죽는 사람도 생기기까지 한다. 지구에서 가장 더운 곳 중에 하나다.

역사[편집]

은자메나는 1900년 5월 29일 프랑스 사령관 에밀 젠틸(Émile Gentil)에 의해 포트 라미(Fort-Lamy)로 건설되었으며, 약 한 달 전에 쿠세리 전투에서 전사한 육군 장교 아메데 프랑수아 라미(Amédée-François Lamy)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곳은 주요 무역 도시였고 지역과 국가의 수도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프랑스인들은 군대와 물자를 이동시키기 위해 이곳에 위치한 공항에 의존했다. 1942년 1월 21일, 독일 공군은 성공적으로 비행장을 폭격하여 석유 공급품과 항공기 10대를 파괴하였다.

1973년 4월 6일프랑수아 톰발 바예(François Tombalbaye) 대통령에 의해 이름이 은자메나(N'Djamena)로 변경되었다.

도시는 1979년과 1980년에 국가 통일 정부동안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이 시기에 거의 모든 인구가 도시를 탈출해 반대편 카메룬의 샤리강 반대편 강둑의 쿠세리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주민들은 충돌이 끝난 후 1981-82년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1984년까지 시설과 서비스는 엄격한 배급을 받았으며 학교는 폐쇄된 상태를 유지했다.

도시의 혼란기는 북부 총리 이센 하브레(Hissène Habré)가 남부 대통령 펠릭스 말로움(Félix Malloum)에 대해 시도한 낙태 쿠데타에 의해 시작되었다. 말로움과 그에게 충성하는 국가 군대가 패배하면서 개입 다른 북부 진영들과의 싸움에서 하브레와의 경쟁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1979년 국제 중재를 통해 임시 휴전이 이루어졌으며, 군벌인 구쿠니 우에데이(Goukouni Oueddei)가 국가 통합 정부의 수장으로, 그의 경쟁자인 하브레(Habré)가 국방장관으로 자리 잡았다. 구쿠니와 하브레의 격렬한 경쟁으로 인해 1980년 도시에서 새로운 충돌이 발생했다. 은자메나는 다양한 군벌에 의해 통제되는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졌다. 줄다리기는 구쿠니가 수도에서 하브레의 방어력을 탱크로 압도한 리비아인의 개입을 요청했을 때에만 몇 달 후에 결론에 이르렀다.

구쿠니와 무아마르 카다피 사이의 의견 차이 와 리비아 개입에 대한 국제적 반대에 따라 리비아 군대는 1981년 수도와 차드를 떠났다. 이로 인해 하브레는 새 대통령으로서 은자메나로 행진하여 1982년 거의 저항 없이 도시를 점령하고 스스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결국 1990년에 그의 전 장군이었던 이드리스 데비잇노(Idriss Déby)에 의해 비슷한 방식으로 해고되었다.

이 도시에는 1937년의 인구가 9,976명에 불과했지만 10년 후인 1947년에는 인구가 18,435명으로 거의 두 배가 되었다. 1968년 독립 후 인구는 126,483명에 이르렀다. 1993년에는 529,555명으로 50만 명을 넘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은자메나를 탈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장의 상당 부분은 안보를 위해 은자메나로 도망친 난민들에 기인한다. 2006년 4월 13일, 도시에 대한 반란군 민주당 랠리의 공격이 패배했다. 은자메나는 2008년 2월 2일 UFDD와 RFC 반란군에 의해 다시 한번 공격당했다.[3]

경제[편집]

은자메나의 1차적 경제 원천은 농업 작업이다. 은자메나 내 인구의 약 80%는 농작물 재배와 가축 재배 등 농업기반 산업에서 일한다. 은자메나의 경제는 거의 전적으로 좋은 날씨에 의존하고 있으며, 낮은 강우량으로 몇 년 동안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은자메나는 아프리카 개발 은행뿐만 아니라 세계 은행들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다. 은자메나 내에서는 석유와 가스 분야에서 일하는 숙련 노동자와 외국 비정부기구, 의료 서비스, 영어 교습에 종사하는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높다. 은자메나 거주자는 모든 순이익의 최대 60%까지 세금을 납부할 수 있다.

인구[편집]

은자메나에서는 총 면적의 약 26%만이 도시화되었다. 차드의 대부분의 주민들은 수도인 은자메나 또는 로곤 오시덴탈 지역에 산다. 인구의 절반 정도가 15세 미만이다. 이 사람들 중에서,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획일적인 구분이다. 성별의 구분이 고른 반면, 인종과 종교의 구분이 현저하게 다르다. 도시에서는 다양한 종교가 행해지지만 이슬람교의 우세가 뚜렷하다. 주요 민족은 투부족(16.97%), 차드 아랍인(11.0%), 하드제라이(9.15%), 남바예6.41%, 빌랄라5.83%, 칸부족(5.8%), 발마(2.10%) 등이다.

교통[편집]

은자메나의 관문은 은자메나 국제공항으로 한국에선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을 거치면 올 수 있다. 아디스아바바 외에는 파리, 이스탄불, 카이로 등에서 은자메나로 올 수 있다. 특히 과거에 식민 지배국이었던 프랑스 파리에 항공편이 많다. 에어프랑스는 매일 은자메나행 항공편을 제공한다.

육로로 나이지리아카메룬에서 와도 되지만, 보코 하람과 암바조니아 반군 때문에 치안이 불안하여 죽고 싶지 않다면 오지 말자. 수단 쪽 루트도 있는데 수단 공화국에서도 육로로 올 수 있으나 이쪽은 분쟁지역인 다르푸르 지역으로 접해 있는지라 역시 위험하고, 현재 수단-차드는 상호 국경을 자꾸 서로의 나라로 넘어가는 양국 난민 때문에 폐쇄한 상태다. 남수단 북부의 바르 알 가잘 주에서도 차드 진입이 가능하지만 남수단 자체가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대중교통은 거의 없다. 이집트, 모로코,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상태 좋은 나라는 물론 심지어 똑같이 막장인 이웃 수단 공화국에도 어느정도 구색은 갖춘 대중교통이 여기는 없다. 우선 지하철 및 시내버스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철도도 모두 화물용으로 은자메나에서 주변 도시들을 잇는 화물 노선의 성격이며 여객열차는 없다. 같은 프랑스어권인 모로코의 철도 환경과 같은 화려한 철도는 여기서 사치다. 과거 한국에서 다니던 통일호, 비둘기호 급 열차조차 없다. 이집트와 수단 공화국은 적어도 이 정도 급 열차는 있다.[4]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은자메나〉, 《위키백과》
  2. 은자메나(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은자메나〉, 《요다위키》
  4. 은자메나〉,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중앙아프리카 같이 보기[편집]

중앙아프리카 국가
중앙아프리카 도시
중앙아프리카 지리
중앙아프리카 문화
중앙아프리카 주변 지역


  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이 은자메나 문서는 세계의 도시에 관한 글로서 검토가 필요합니다. 위키 문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눌러 문서 내용을 검토·수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