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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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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 플레이어(cassette player)는 카세트 테이프소리를 재생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를 말한다.

개요[편집]

카세트 플레이어는 음성반주 음악을 따로 분리시켜 재생할 수 있는 장치이다. 음악이 수록되어 있는 음원에서 음악을 재생하는 재생부, 재생부가 재생한 음악에서 음성을 제거하는 음성 제거부, 재생부의 출력과 음성 제거부의 출력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부를 구비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구성되었다. 또한,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는 원래의 음악과 음성이 제거된 반주 음악을 사용자가 임의로 선택하여 들을 수 있으며, 반주 음악을 선택하면 가요 반주로도 이용할 수 있다. 카세트 테이프란 하나의 케이스 속에 테이프 릴과 테이프를 매끄럽게 주행시키기 위한 장치를 내장하여 테이프 녹음기에 쉽게 장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카세트 테이프라고 하면 필립스사의 콤팩트 카세트 테이프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는 파벨이 최초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다. 1979년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가 처음으로 출시된 이래 많은 사람이 소니 워크맨을 최초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라고 생각한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는 이동 중에 음악을 듣는 것을 유행시켰으며 오늘날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이팟의 직접적인 선조이다. 그러나 1973년경 전자 기기 분야의 전문 지식이 없던 한 발명가가 이와 거의 동일한 개념을 생각해냈다. 이 발명가의 이야기는 1972년 브라질에서부터 시작된다. 독일 출신인 안드레아스 파벨(1945년 출생)은 일을 하는 동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으며 조그만 한 쌍의 헤드폰을 통해 음성이 재생되는 소형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제작하고 이를 '스테레오벨트'라고 불렀다.

브라질을 떠나 스위스로 이주한 파벨은 여러 대형 전자제품 제조 회사를 방문했지만 아무도 그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음악을 들으려고 공공장소에서 헤드폰을 끼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발명품을 후원해 줄 사람을 찾는 데 실패했지만 파벨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으며 1977년 전 세계에 자신의 발명품을 특허 등록했다. 소니사(社)가 그 유명한 워크맨을 출시한 지 1년 후 파벨은 거의 24년이란 세월이 소요된 마라톤 법적 분쟁에 착수하였다. 이 사건은 마침내 소니사(社)가 파벨에게 1,0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지불하면서 2003년에 해결되었다.[1][2]

종류[편집]

YoYo[편집]

말 그대로 대우전자에서 생산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는 요요(YoYo)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삼성전자에서 내놓은 마이마이나 금성(현 LG전자)에서 내놓은 아하에 밀려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나마 두 업체 제품보단 값이 좀 더 싸서 찾는 일도 있지만 내구성이 3사 중 최악이었고 일본 도시바의 데크를 차용한 제품(요요깜)도 출시되었으나 그제품 또한 내구성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역대 요요 TV광고는 1980년대 후반에는 변진섭이 광고 모델로 나왔었다. 참고로 요요 초창기 제품은 뜯어 보면 거대한 금속 바퀴에 고무벨트를 걸어놓아 구동시키는 구조다. 동시기 일본 제품들(소니 워크맨이나 파나소닉 등)이 오토리버스가 되는 소형 모터를 구동계에 직접 적용한 것에 비하면 당시 양국간 기술력의 차이를 알 수 있다.[3]

아하[편집]

아하LG전자로 상호를 바꾸기 전인 '금성사' 시절에 내놓은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이다. 삼성전자의 마이마이, 대우전자의 요요와 함께 1980년대 중후반 국산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 삼대장 중 하나이다. 사실 금성사는 아하 시리즈 이전에도 휴대용 카세트로 쟈키라는 제품을 내놓았는데, 사실 쟈키7 모델은 WM-7이라는 워크맨 모델을 그대로 들여와서 마크만 바꾼 제품이다. 쟈키 시리즈를 발빠르게 내놓았지만 이 제품은 내수시장규모 부족 등의 이유로 그리 알려지지 못하고 묻혀졌다. 이후 1980년대 중반, 3저 호황,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 등 한국 경제가 호재를 맞으며 생활이 윤택해졌고 이에 금성사는 다시 한 번 아하 시리즈를 론칭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든다. (상술한 마이마이, 요요 등도 이 시기에 나왔다.)

그리고 1989년에 당시 남녀 혼성그룹인 세대교체가 모델을 맡은 적이 있다. CM송은 카일리 미노그의 The Loco-Motion을 가사를 바꿔 사용했다. 해당 광고는 뉴욕페스티벌 애니메이션 부문 파이널리스트까지 갔으며 1980년대 초반생까지의 세대들에게는 후뢰시맨 끝나면 나오는 광고로도 유명하다. 마이마이나 대우전자 요요와 같이 일본제 워크맨보다 한 단계 낮은 라인업에 싼 값으로 주로 팔렸다. 이후 한국의 경제력도 상승하고 소비자들의 눈도 높아지며 1995년부터 아하프리로 브랜드명을 바꿨고, 투자와 기술력 확보에 힘썼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CD플레이어 겸으로 내놓은 기종은 당시 언론으로도 크게 보도될 정도로 판매량이 상당했다.

1997년에는 수억 원의 개발비를 들여 모터 제어용 초저전력 IC 개발에 성공했다. 그 이전에는 일본 업체가 만든 제어용 IC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저가형 기종(국내 중소기업 OEM)을 제외하고는 1997년까지는 서울 구로동에 있던 LG전자 직영 오디오 공장에서 생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로는 평택공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2002년 전후로 LG가 휴대용 카세트 장치 시장에서 철수함에 따라 아하프리의 명맥은 끊겼다.[4]

mymy[편집]

마이마이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마이마이(mymy)는 삼성전자에서 1981년 5월 발매 이래로 2000년대 초반까지 생산해 판매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이다. 초창기에 최수종이 광고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힙합가수 리듬파워는 90년대 중반의 대중가요를 추억하는 내용을 이 제목의 노래 가사에 담기도 했다. 아무래도 성능, 내구도면으로 일본 소니 워크맨보다 품질이 떨어졌지만 값이 훨씬 쌌고, 서비스센터가 전국 곳곳에 있어 사후 서비스면에서 더 낫던 점이 있기에 LG전자에서 만든 아하, 대우전자에서 만든 요요와 같이 3대 한국 전자업체 한국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시장을 점유했다.

레트로 열풍을 겨냥해 삼성전자에서는 마이마이처럼 생긴 무선 이어폰 케이스를 출시했다. 자사의 갤럭시 버즈와 갤럭시 버즈 라이브 전용이다. 해당모델은 1989~1990년까지 생산되었던 중저가 녹음형 모델 MY-A60을 기본으로 했다.[5]

아이와[편집]

아이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아이와는 1951년부터 2002년까지 존재했던 일본의 전자제품 회사 및 브랜드이다. 1969년에 소니가 인수해 소니의 자회사가 되었고, 2002년부터 소니에 합병되어 소니의 상표가 됐다가, 2008년에 폐지되었다. 이후 2015년과 2017년에 각각 미국과 일본 기업에 상표를 매각해 브랜드가 부활하였다. 1951년 초대 창업주인 이케지리 미츠오(池尻光夫)가 일본 도쿄에서 '아이큐(愛興)전기산업'이라는 사명으로 설립했으며, 1959년에 상표명인 '아이와(AIWA)'로 사명을 변경했다. 1969년 실적 부진으로 소니가 인수해 소니의 자회사가 되었으며, 이케지리 미츠오는 이를 책임지고 물러났다. 이후 아이와의 역대 CEO들은 모두 소니에서 임명한 사람들이었다. 이후로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붐박스, 미니컴포넌트, 카오디오, 휴대용 라디오 등 다양한 아날로그 음향기기를 출시했다.

특히 아이와의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는 특유의 음색 때문에 경쟁 제품인 소니 워크맨을 제치고 이 회사 제품을 찾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아이와의 히트작인 HS-JX505와 HS-JX707은 레전설 수준으로 대중화된 하이엔드 명기. 당시 소니와 파나소닉이 채택한 Ni-Cd/Ni-MH(1.2V) 껌전지 대신 2V짜리 납축전지를 사용한 게 특징이었다.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콘덴서 품질에 문제가 발생했고, 한국에선 저가형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가 많이 수입된 탓인지 대체로 저가 브랜드라는 인식이 있었던 듯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 디지털 시대가 도래됐음에도 아이와는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비롯한 아날로그 음향기기에 집착한 탓에 2000년대 들어서 파산 위기에 직면해, 결국 2002년 10월 1일 부로 소니에 합병되어 상표로만 남게 되었다.

2002년 이전 아이와에서 출시한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는 그 특유의 구조 탓에 애호가들이 수리에 애를 먹고 있다. 아이와를 합병한 소니는 아이와 로고를 다시 만들었고, 청소년 및 젊은층을 어필하는 브랜드로 육성하려고 했으나, 신통치 않았다. 사실 소니 상표의 기종들을 디자인만 약간 변형하거나 디자인까지 소니의 것을 그대로 재탕하는 등의 문제가 있긴 했었다. 일부 저가형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는 소니 합병 전의 모델이 그대로 계승된 것이었다. 결국 2006년부터 2008년까지의 기간 동안 소니는 아이와의 상표를 단 제품들을 모두 단종시켰다.

공식 홈페이지는 http://www.aiwa.com이지만, 브랜드가 버려진 상황에도 한 동안 홈페이지를 그대로 유지했으나, 현재는 소니 홈페이지에 접속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 일본어 홈페이지는 현재도 운영 중이지만, 한국어 홈페이지는 소니코리아가 현재 여의도로 이전한 상태인데도 아직도 주소가 강남구 삼성동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대표이사 이름도 여전히 '윤여을'로 표기된 것으로 보니 2007년 시점에서 시계가 멈춰선 것으로 추정됐고, 결국은 폐쇄되었다. .com이 아닌 co.kr 도메인을 쓰던 국내 홈페이지는 Whois 도메인 검색 결과 1999년 등록, 2003년 마지막 정보 수정, 2013년 10월 15일 도메인 사용 종료일로 검색된다. 그나마 남아있는 홈페이지도 2019년 중반, 접속 불가가 되었다.

2015년 미국 시카고의 한 기업가가 소니에게서 아이와 상표를 사서 새로운 독립 회사를 차렸다. 북미 지역에서는 아이와 상표를 단 제품들을 다시 만날 수가 있다. 미국 공식 사이트 로고는 소니 합병 직전 것을 사용한다. 2017년에는 일본에서 아이와가 재탄생했다. 소니의 라디오 제품을 위탁생산(OEM)하는 토와다 오디오(十和田オーディオ)가 2월에 브랜드를 인수하여, 4월에 그 자회사로 아이와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관련기사). 9월부터 TV, 휴대용 오디오 등을 일본에 출시할 예정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2018년 11월에는 단파 라디오 AR-MDS25, AR-MD20를 출시할 예정이지만, 사실 TECSUN의 OEM 기종이다. PL-398MP, PL-310ET에 아이와 상표만 붙여놓은 격이다.[6]

찍찍이[편집]

찍찍이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찍찍이소니의 어학용 휴대 카세트 테이프 녹음기로, 수동 되감기 기능이 되는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재생/녹음기의 별칭이다. 수동 되감기 할 때마다 찍찍거린다 해서 찍찍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원래는 비즈니스용으로 개발되었으나, 수동 되감기, 속도 조절 기능 때문에 특히 한국에서는 어학용으로 많이 쓰이게 되었다. 2003년 이후에 출시된 일부 소니 카세트 워크맨(모델명이 TCM이 아닌 WM으로 시작하는 진짜 워크맨)은 어학기능의 일부로서 찍찍이 기능을 탑재했다. (WM-EX651, WM-FX700 등) 소니 같은 유명 메이커가 만드는 지라 중국산 휴대용 카세트 어학기에 비해 튼튼하여 어학용으로 많이 애용되었다. 토익 등 영어 듣기능력이 중요해지자 찍찍이를 찾는 사람이 많았으며 인기가 많은 시절에는 수동 되감기시 찍찍거리는 소음을 없앤 비공식 개조품도 꽤 팔렸다. 한국에서는 TCM-200DV와 TCM-400DV이 많이 팔렸다.

소니 찍찍이는 다른 제품과 다르게 일찍부터 중국산이었다. 예를 들면, 소니 라디오 상당수가 일본제였던 1998년에 출시된 TCM-323(현 TCM-150의 이전 모델)은 중국산이었다. 이때부터 단종되기까지 아이와 제품은 중국산, 파나소닉 제품은 타이완산이었다. 저렴한 가격의 디지털 보이스레코더가 보급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까지는 신문기자들의 취재녹음용으로도 쓰이기도 했다. 다만 찍찍이는 방송용 취재녹음 목적으로 쓰인 적은 없다. 방송용으로 쓰기에는 녹음품질이 형편없기 때문. 어학용 이외에도, 고시생들 사이에서는 강의테이프 청취용으로 애용되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에 인터넷 MP3 제공 서비스 및 MP3CD 부교재 제공 등으로 어학용 카세트 테이프 시장이 급격히 쇠락하여 찍찍이를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특히 2010년경부터). 그래서 소니를 제외한 파나소닉, 아이와 같은 기업들은 찍찍이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았다.

아날로그적인 손맛의 이점이 있어 아직 찾는 사람이 있었기에 소니가 2012년 12월까지 생산했었다. 그렇지만 카세트 테이프의 퇴조를 피할 수 없는 건 현실. 2008년만 해도 도서관에서 찍찍이를 쓰는 사람은 몇몇 보였지만 2013년 현재는 코배기도 보이지 않는다. 카세트 워크맨 단종 이후로 신뢰할만한 품질[5]의 휴대용 카세트 장치로는 소니 찍찍이가 유일했다. 그런데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로 나온다는게 문제라고 음성 녹음용, 어학용으로 나온 것이라 재생 음질은 아무래도 소니 테이프 워크맨(특히 크롬, 메탈테이프가 지원되는 로직데크 기종)보다 안좋다. 여담으로 TCM 시리즈의 볼륨(가변저항기) 품질은 예술급으로 매우 좋은 편이었다. 이런 점은 최후의 기종인 TCM-400DV 등에도 적용된다.

2011년 11월, 아날로그 찍찍이를 대체할 소니 디지털 녹음기 ICD-LX30이 한국에서 정식 발매되었다. 소니 디지털 보이스레코더로서 최초로 3.6cm 내장스피커를 채용한 제품이다. 디지털 장치 답지 않게 스피커 음색이 참 부드럽다. 기존 아날로그 찍찍이를 사용하던 이들을 겨냥한 모양. 그래서 기본기능을 제외한 잡다한 기능은 제거되었다. 그래도 A-B구간 반복기능이 빠진 건 아쉽다. 하지만 마침내 2012년 12월 소니는 카세트 찍찍이(TCM 시리즈)의 생산을 다음달 중으로 중단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013년 2월 기준으로 한국 소니스타일 온라인 매장에는 TCM-400DV만 남아있는 상태이고 TCM-200DV와 TCM-450DV는 이미 단종. 일본 소니 카탈로그(PDF 파일)에서도 2013년 2월 자로 TCM-400, TCM-450 모두 '생산중지' 표시된 상태. 소니코리아와의 전화 통화에 따르면, 이미 수입이 중지되어 2013년 상반기 당시에는 재고만 판매 중인 상황이었다.

결국에는 2013년 1월 부로 소니 찍찍이는 영영 단종되었다. 이윽고 2013년 8월 즈음에 소니코리아 홈페이지에서도 사라졌다. 2013년 단종 이후로 오픈마켓 시세는 조금씩 올라가는 추세였는데, 2013년 상반기 까지는 아직까지는 판매업자들이 쌓아둔 재고는 많았었다. 그런데 2013년 10월부터 오픈마켓 가격이 대폭 올랐다. 2014년 10월 기준으로 TCM-150은 최소 6만 원, TCM-400DV는 9만 원대였고, 2014년 1월에 TCM-200DV는 재고소진되었고, TCM-150은 7~9만 원대, TCM-400DV는 12만 원대 가격대였다. 2016년 1월 현재 TCM-150가 11만 원대이고, TCM-400DV는 12만 원대이다. 중고나라 등 중고시장에 중고 매물이 예전 가격대(3~5만원 안팎)에 종종 올라오니 필요한 사람은 참고하면 된다.[7]

워크맨[편집]

워크맨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최초 모델인 TPS-L2

워크맨은 일본의 소니에서 1979년 7월 1일에 첫 발매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리코더 & 플레이어다. 흔히 세계 최초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인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브라질의 발명가인 안드레아스 파벨이 만든 스테레오벨트가 세계 최초다. 2009년 기준으로 3억 8500만 대가 팔렸다. 워크맨이란 명칭은 상표이자 고유명사지만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의 대명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MP3 플레이어와 스마트폰에 밀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자체가 멸종했으므로, 워크맨이란 단어는 다시 소니의 상표명으로 전락했다.

쿠로키 야스오(黒木靖夫, 1932~2007)의 회고록에 따르면, 쿠로키 야스오는 어느 날 어떤 젊은 엔지니어가 기자들을 위한 자사 소형 녹음기, "프레스맨"을 개조해서 음악을 듣는 걸 보았다. 이를 보고 상품 잠재력이 크다고 판단한 그는 모리타 아키오 사장과 이부카 마사루 명예회장에게 개조된 프레스맨을 보여줬는데, 둘도 이것을 보고 관심을 가지면서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워크맨 같은 제품은 전례도 없고 수요도 없을 거라 믿은 영업 부문에서 크게 반대했다. 그 당시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에는 녹음기 기능을 넣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데, 워크맨은 소형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재생 기능만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로키 야스오는 개발팀을 지휘해 워크맨을 내놓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그 공로로 '워크맨의 아버지' 또는 '미스터 워크맨'이라 불렸으며, 승승장구해 기획담당 이사까지 승진한 후 1993년에 퇴직했다. 참고로 최초 모델인 TPS-L2의 디자인은 쿠로키 야스오가 만든 것이다.

초창기에는 일본산이였고, 1980년대 후반, 1990년대에 들어서 저가형 기종은 말레이시아산이나 중국산으로 전환되었다. 중상급 및 고급 기종이 주로 일본산이었던 시절은 카세트 워크맨 기준으로 1999년까지. 2000년부터는 말레이시아제로 전환되었으며, 2004년경에 다시 중국산으로 전환되었다. 네트워크 워크맨(MP3 플레이어)과 CD 플레이어는 2000년초까지, 미니 디스크는 2004년까지 일본산이었으며(저가형 제외), 그 이후에는 말레이시아, 중국에서 생산했다. 2019년에 출시 40주년을 맞이하였으며, 2023년 현재는 유일하게 PMP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8]

카세트 테이프[편집]

카세트 테이프의 구조

카세트 테이프(cassette tape)는 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자기 테이프를 장치한 작은 플라스틱 갑을 말한다. 1963년 네덜란드 필립스사(Phillips社)가 개발하였다. 카세트 테이프는 하나의 케이스 속에 테이프 릴과 테이프를 매끄럽게 주행시키기 위한 장치를 내장하여 테이프 녹음기에 쉽게 장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카세트 테이프라고 하면 필립스사의 콤팩트 카세트 테이프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며, 동사가 특허를 일반에게 개방한 데서 세계적으로도 널리 보급되고 있다. 카세트 테이프는 테이프 속도가 4.75㎝/s로 일정하나 테이프의 길이에 따라서 녹음 시간이 다른 것이 각종 시판되고 있다. 또, 테이프의 재질에 따라서도 노멀 테이프를 비롯하여 크롬 테이프, 메탈 테이프 등 많은 종류가 있는데, 외형 치수가 통일되어 있으므로 어느 테이프 녹음기에도 사용할 수 있다. 단, 테이프의 특성에 따라서 바이어스 등을 가하는 방법이 다르므로 사용할 때는 주의하지 않으면 성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9][10]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상을 바꾼 발명품 1001》
  2.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Google Patents
  3. 요요(동음이의어)〉, 《나무위키》
  4. 아하〉, 《나무위키》
  5. 마이마이(mymy)〉, 《나무위키》
  6. 아이와〉, 《나무위키》
  7. 찍찍이(음향기기)〉, 《나무위키》
  8. 워크맨(음향기기)〉, 《나무위키》
  9. 카세트 테이프〉, 《전자용어사전》
  10. 카세트 테이프〉, 《네이버 국어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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