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수
수비수(守備手, Defender)는 축구, 농구, 하키 등 여러 스포츠에서 상대 공격을 저지하고 골이나 득점을 방어하는 주요 역할을 담당하는 포지션이다. 경기의 마지막 방어선이자 팀 전체의 안정감을 책임지는 중요한 위치로, 일반적으로 골문 가까운 위치에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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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수비수(守備手)는 골키퍼(GK)와 수비(DF) 플레이하는 선수를 뜻한다. 영미권에서는 보통 Defender라고 칭한다. 문화어로는 '방어수'라고 불린다. 또한 원형 풋볼에서 파생된 여러 구기종목들처럼 Back이라고도 부른다. 말 그대로 뒤에 있는 선수다. 마찬가지로 풀백, 센터백, 윙백, 하프백 등의 어원도 여기서 나왔다. 주 임무는 상대팀의 공격을 막아서 실점하지 않는 것이다.
실점에 가장 연관되어 있는 선수들인지라, 90분 경기중 89분을 잘해내도 찰나의 순간 실수를 범해 실점을 하면 바로 역적이 되는 경우가 있다. 90분 내내 경기중에 버로우를 타도 추가 시간 막판 승부를 결정 짓는 골을 기록하면 바로 영웅이 되는 공격수들에 비해 어쩌면 수비수들은 축구에서 가장 냉혹한 위치에 놓여있는 선수들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축구만큼 수비수의 존재감이 없다시피한 종목도 없다. 야구는 수비가 뛰어난 선수들에게는 골드글러브라도 주어지지만 축구에서는 수비가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즉 수비력이 좋으면 그건 "당연한 거지."이고, 수비력이 엉망이면 "수비수가 왜 저래?"라는 비난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축구 해설가나 전문가들도 공격수의 부진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는 경향이 높지만 수비수가 부진하면 그 즉시 갈굼을 시전한다. 이래저래 수비수들은 힘들고 인정받기 힘든 포지션임은 부인하지 못한다.
공격수의 실수는 스코어를 변화시키지 않지만, 수비수의 실수는 스코어를 변화시킨다. 게다가 수비가 불안하면 감독으로서는 적극적인 공격전술을 이어가기 힘들다. 모든 구기종목 팀들 가운데 최악의 팀의 특징 중 하나가 어렵게 득점하고 쉽게 실점하는 것인데 이는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수비가 불안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게다가 수비수들의 실수가 잦아지면 골키퍼 역시 심리적인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 최전방 공격수들의 움직임 마저 경직되기 마련이다.[1]
상세[편집]
팀을 책임지는 뼈대. 공격은 팬을 부르지만 수비는 우승 트로피를 가져온다고 하듯, 한 팀이 참가한 대회의 기간 전체를 봤을 때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다. 팀의 필드 플레이어 중 가장 후방에 위치하며 찬사보다는 비난을 받기 쉬운 위치이다. 아무래도 성격상 경기를 패한 원인의 대부분이 수비불안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난이 향할 수 밖에 없다. 공격수의 부진으로 돌리는 경우 역시 볼 수 있지만 이때는 대개의 경우 상대 수비진이 효과적으로 방어한 것이거나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실드가 쳐질 수 있으므로 공격수로 인해 경기가 졌다고 욕을 듣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골키퍼는 슈퍼 세이브 몇 번하면 구세주 취급을 받지만 수비수는 다르다.
수비수의 전통적 임무는 상대방의 공격을 방해하고 공을 최대한 위험지역에서 걷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수비수는 거기에 덧붙여 공격, 패스의 최초 연계점의 역할도 동시에 요구되면서 수비적 능력 이외에 많은 것을 요구받게 되었다. 현대에는 과거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하는 일이 수비수로 옮겨진 것이다. 심지어 골대를 방어하는 골키퍼에게까지 이런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표적인 예가 마누엘 노이어로 골키퍼임에도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일이 많아 신개념 골키퍼로 불려지기도 한다.
또한 공격이 전개될 경우 공격수가 상대방의 수비수에 차단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임무에 특화된 선수가 세르히오 바티스타 전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감독, 비셴테 리사라수, 하비에르 사네티, 마르코 마테라치, 헤라르드 피케 등이 있다.
레프 야신 단 한명만 존재하는 골키퍼만큼은 아니지만 발롱도르 수상자가 나오기 무척 힘든 포지션이다. 발롱도르 뿐만이 아니라 FIFA 올해의 선수,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UEFA 올해의 선수도 수상자가 나오기 무척 힘든 포지션이다. 발롱도르는 2006년 파비오 칸나바로가 수상한 것이 마지막으로 역대로 따져도 프란츠 베켄바워(2회), 마티아스 자머, 그리고 파비오 칸나바로까지 단 3명 뿐이다. 심지어 FIFA 올해의 선수와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는 2006년 파비오 칸나바로 단 한 명만 수상하였고, UEFA 올해의 선수도 버질 반다이크 단 한 명만 수상하였다. 바비 무어, 뤼트 크롤, 프랑코 바레시,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네스타 같은 축구역사에 길이 남을 수비수들도 받지 못했다. 그나마도 수상자 3명 중 칸나바로를 제외한 2명은 리베로이며 3명다 국제무대에서의 호성적을 끼고 있었다. 공격수들은 호날두와 메시의 수상실적이 증명하듯 국제대회 성적이 부진해도 리그 성적으로 타간 사례가 많으나 수비수는 리그와 대표팀에서 모두 맹활약하면서 국제대회 우승한 선수들만 가져갔다. 공격수, 미드필더들과 달리 공격포인트를 많이 쌓기 힘든 수비수들의 능력이나 공헌도를 가늠하는 정확한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기준을 따지기가 골키퍼보다 더 힘든 포지션이다.
수비는 축구 못하는 사람이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가장 기피되는 포지션인 풀백, 윙백 정도에 한정한다면 반 정도는 맞는 말이라 볼 수 있다. 이는 풀백 포지션에서 뛰었던 선수들의 증언에 의해 대변되는 사실로, 제이미 캐러거는 풀백 포지션에는 주로 센터백 혹은 윙어를 지망하다가 성공하지 못한 선수들이 풀백이나 윙백으로 많이 간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라이트백인 게리 네빌은 본래 미드필더를 지망했었다가 풀백이 되었는데, 그 때 방출되기 직전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현대 축구에서 풀백이 측면 빌드업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이 많이 요구되면서 그 위상이 많이 올라가기는 했지만, 골대가 측면으로 옮겨가지 않는 이상 수비에 있어서 중요도는 중앙 수비보다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데다가, 아무리 측면 공격자원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중원 싸움에서 밀리면 경기 운영 자체를 전반적으로 비효율적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풀백은 다른 포지션에 비해 그 우선순위가 떨어진다는 서술도 그닥 틀린 말이 아니다. 게다가 과거에 비해 윙어의 역할이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는 역할보다는 드리블, 오프 더 볼, 스트라이커와의 연계를 통해 직접 득점에 관여하는 쪽으로 바뀌어감에 따라 정발 포지션의 윙어들이 도태되면서 측면 수비수로 포변하는 사례도 많아진 걸로 미뤄봤을 때 윙어가 될만큼 공격력이 좋지 못한 선수들이 측면 수비수를 한다는 말도 영 엉터리까지는 아니다. 혹은 피지컬이 매우 중요한 센터백 포지션을 지망하다가 키가 충분히 자라지 못한 선수들이 프로팀에서 풀백으로 포변하는 사례도 많다. 그런데 가레스 베일, 파울로 말디니, 한국 국내의 김진수를 비롯하여 유스 시절부터 측면 수비수를 지망하여 성장하는 경우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닌 데다가, 전통적으로 윙어를 두지 않는 전술을 쓰는 브라질과 같이 유스 시절부터 풀백으로 성장하여 월드클래스로 성장하는 예도 있기에 100% 맞는 말은 또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수비의 핵심인 센터백 포지션의 선수들이 공격수들보다 축구를 못한다는 말은 동네 축구, 아마추어 축구에 한정된 이야기인데 아마추어 축구에선 단순히 '공을 차서 골을 넣는 것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너도나도 공격수를 하려고하는 와중에 제일 잘하는 사람이 명분을 얻어서 하게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명분이 보통 "공을 잘차서 골결정력이 있다."이기 때문에 이것은 공격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 프로선수는 그게 직업이기 때문에 골넣는 재미로 축구를 하는게 아니다. 일단 공격수와 수비수는 요구되는 피지컬에서부터가 다르다. 최고의 공격수인 메시는 수비수로보면 키 때문에 체격조건에서부터 이미 실격이다. 공격수로서야 고공경쟁을 안하면 그만이지만 수비수는 공격방식을 선택하는 입장이 아니다. 상대 감독이 당연히 그 점을 공략해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격수는 순발력이건 제공권이건 어느 한 능력이 탁월하면 그걸 사용해 적을 뚫는데 사용하면서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지만 수비수는 피지컬에 결격사유가 하나라도 있으면 프로는 포기해야한다. 이걸 위와같이 악의적으로 묘사하면 "수비수로 쓰기에는 피지컬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어서 전방으로 밀려난다." 라는 이야기가 되고 그것도 한편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수포자라도 영어만 100점 맞거나 영포자라도 수학만 100점 맞으면 되는 공격수와, 전과목 90점을 찍어야만 좋은 수비수가 되는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신체조건부터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기도 어렵다. 공격수는 공만 차면 되지만 수비수는 사람도 차야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레벨에서는 당연히 축구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공격수와 같은 포지션에 있을수록 유리한데, 이는 축구의 특성상 애초에 '공을 다루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임은 물론, 아마추어 축구에는 전술에 따른 선수들 간의 포지션 분업화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각 포지션에 요구되는 능력과 팀 전술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동네 축구에서는 그나마 축구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공격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수 시절엔 수비수, 심지어는 골키퍼였던 사람을 동네 축구에서 스트라이커로 박아두어도 메시나 호날두 놀이를 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
수비수는 기본적으로 상대팀 선수들의 움직임을 저지하여 득점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부여받지만, 수비수가 득점을 기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킥 능력이 뛰어난 수비수들이 프리킥 키커로 나서서 득점을 하거나 중원에서의 루즈볼 상황에서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분야의 본좌는 단연 호베르투 카를로스. 그게 아니더라도 필드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신체 조건과 몸싸움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아 세트피스에서의 중요한 득점 루트가 되기도 한다. 존 테리가 특히 세트피스에서의 득점에 능하여 비록 공격수들만큼은 아니었지만 팀의 주요 득점원 중 하나였다. 로날드 쿠만 또한 현역 시절에 이런 방식의 득점에 능했다. 수비수가 득점력이 괜찮다면 당연히 팀에 보탬이 되긴 하지만, 수비수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상대 공격 저지이기 때문에 득점력이 수비수 기량을 측정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척도는 아니다. 당장 훌륭한 개인 기술과 킥 능력을 지니고 종종 득점도 하는 다비드 루이스가 반쪽짜리 선수 취급을 받았는지만 봐도 답이 나온다.[1]
센터백[편집]
센터백(영어: Centre-back)은 중앙 수비수(中央 守備手, 센터 하프(영어: Centre-half), 또는 스토퍼(Stopper)라고도 한다. 센터백의 역할은 상대편 선수가 득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주력하며, 발을 뻗어 태클을 걸거나 몸을 날려 블로킹을 시도하며, 공중볼에 대한 경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위치 상으로는 주로 페널티 에이리어 주변에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센터백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포지션이다. 순간의 집중력 상실로 팀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으며, 한 번의 판단 실수로 골을 허용할 수도 있는 포지션이 바로 센터백이다. 또한, 센터백은 뛰어난 헤딩 능력이 있어야 하며, 힘이 좋아 상대편 공격수와의 몸싸움에서 공을 쉽게 뺏을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센터백은 수비에 집중적인 역할이 부여되어, 패스에 대해서는 큰 부담을 가지지 않았다. 공이 페널티박스 등 위험 지역에 들어오게 되면, 길게 걷어내는 일이 가장 빈번했다. 때로는 정확한 롱패스로 공격을 전개시키는 능력도 센터백이 갖추어야 할 능력 중 하나이다. 그러나 후방에서도 패스로 경기를 만들어나가는 현대 축구에 들어서는 센터백에게도 정확한 패스에 대한 요구도가 높아지며, 경기 운용에 조금 더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센터백은 상대방 진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필드 플레이어이기에, 직접적인 득점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우월한 선수가 많이 포진해 있는 포지션인만큼, 코너킥과 같은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특별히 전방으로 올라가 공격작업에 투입되기도 한다. 코너킥 상황에서는 많은 선수들이 페널티 박스안에 좁게 모여 공중볼 경합을 치르기에, 신체적으로 압도할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센터백에도 여러 가지 역할이 주어지는데, 대인방어를 주로 하는 선수와 지역방어를 주로 하는 선수로 나눌 수 있다. 대인방어는 센터백이 특정한 상대방 공격수를 따라다니며 집중 마킹을 하는 방어 형태다. 지역방어는 상대편 선수를 따라다니지 않고, 각 수비수가 자신의 수비 진영에서 구역을 정해 할당된 지역에서만 수비를 펼치는 방식이다.
센터백의 또다른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양쪽의 풀백을 커버하는 일이다. 풀백이 돌파당할 것을 대비해 미리 풀백 안쪽으로 들어와 지역방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센터백의 숫자는 대게 두 명 내지는 세 명으로 이루어진다.[2]
스위퍼[편집]
스위퍼(영어: Sweeper)는 센터백에 속하지만, 다른 수비수보다 약간 뒷선에 쳐져서 경기를 조율한다는 점이 일반 중앙 수비수와 다르다. 전통적인 스위퍼는 세명의 최종 수비수가 존재할 경우, 그 가운데에 있는 선수가 된다.
이탈리아어로 리베로(이탈리아어: Libero)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이탈리아어로 '마킹으로부터 자유롭다'(이탈리아어: Libero da impegni di marcatura)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1960년대의 이탈리아 축구에서 특정 선수를 마크하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결정적인 기회를 엿보는 선수가 처음 등장하면서 생긴 말이다.
스위퍼는 최종 수비수 역할을 하면서도 공격 선수를 맡지 않고 경기 상황에 따라 기습 공격을 펼치거나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하며,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득점과 연결시키는 특수 임무를 띤다.
스위퍼는 보통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가 맡는다. 스위퍼는 팀의 최후방에서 경기를 하기 때문에, 경기의 상황에 따라 다른 수비수들의 역할과 위치를 지정해야 할 때가 잦다. 따라서, 스위퍼는 경기 경험과 감각이 뛰어나고, 경기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선수가 맡는다. 또한 스위퍼는 센터백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헤딩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상대 공격수와의 일대일 상황에서도 볼을 뺏을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 볼-플레잉 디펜더
과거에는 스위퍼가 성행했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백포(영어: Back-four)가 절대적인 우세를 점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쓰리(영어: Back-three)는 꾸준히 유지되었고, 가운데에 위치한 스위퍼는 볼-플레잉 디펜더(영어: Ball-playing defender)로 변화하여 활용되었다. 백스리의 중심에 선 이 선수들은 수비적인 능력과 더불어, 볼을 다루는 기술적인 면과 경기를 운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볼-플레잉 디펜더는 최후방에서 플레잉메이킹 작업을 하는 것이 최선의 임무이다. 이들은 경기가 유리한 고지에 접어들 경우, 미드필드 진영으로 올라가 활동하기도 한다.[2]
풀백[편집]
풀백(영어: Full-back)은 과거 2 ~ 3명이 수비를 이루고 있을 때에는 중앙에 있는 2 ~ 3명의 수비수 전부를 풀백이라고 지칭하였지만, 오늘날 수비수의 역할이 다양해지고 대부분의 팀들이 4명이 수비를 구성하고 있는 백포 시스템을 채택하면서, 과거의 미드필더의 뜻인 미들백(영어: Middle-back) 또는 센터 하프(영어: Centre- half)가 수비 진영으로 내려오며 현재의 센터백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풀백은 측면으로 이동하게 되어 풀백이라는 용어는 수비 라인 양 끝의 2명의 선수들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풀백은 주로 상대방의 돌파와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올리는 크로스를 저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적절한 공격 가담도 풀백이 해야 할 임무 중 하나이다. 풀백은 공수를 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수비수에 비해 활동범위가 상당히 크다. 그렇기에 풀백은 보통 지구력과 체력이 뛰어난 선수가 맡는다. 또한, 뛰어난 상황 판단 능력 또한 풀백이 갖추어야 할 요소 중 하나이다. 상황에 따라 수비와 공격시 위치 선정을 통해 오프더볼로 팀의 운용에 관여하는 일이 잦다.
측면에 자리 잡고 있는 풀백의 위치적 이점상 풀백은 다른 수비수보다 공격을 해 나가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풀백은 공격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측면에서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스로인을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2]
윙백[편집]
다른 수비수와는 달리, 윙백(영어: Wingback)은 3백이나 4백 사용하는 포메이션에서 좌우 측면에 배치된 수비 성향보다 공격 성향이 뛰어나고 미드필더나 윙어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활발히 움직이며 공격하는 풀백 플레이어를 말한다. 쉽게 말해 일반 풀백보다 더 공격적인 풀백이라 보면 된다. 위치상으로는 윙백은 미드필더 진영에 있는데, 이는 윙백의 1차적 목표는 수비가 아닌, 공격이라는 말과 같다. 일반적으로 3백을 사용하는 포메이션에 많이 기용된다.
윙백은 뛰어난 스피드와 지구력을 필요로 한다. 윙백은 공 · 수를 쉴새없이 넘나드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강한 지구력과 체력을 필요로 한다. 또한, 경기를 읽는 능력 또한 윙백이 갖추어야 할 필수 요소이다.[2]
수비수 맞춤 훈련[편집]
- 기본 기술 훈련
수비수로서 기초 기술은 실전에서의 능력 발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태클, 헤딩, 공 탈취, 패스 등 기초적인 부분을 꾸준히 반복 훈련해야 한다.
- 태클 훈련: 공격수의 공 소유를 효과적으로 방해하며 위험 상황을 해소한다.
- 정확한 타이밍 태클 연습: 훈련 파트너가 공을 드리블하며 방어자의 태클에 맞춰 이동하거나 멈춰야 하는 상황을 재현한다. 태클로 공을 가져오되 공격수를 넘어뜨리지 않도록 한다.
- 슬라이딩 태클 시뮬레이션: 슬라이딩 태클 후 즉각적인 재정비 능력을 연습한다. 공격수가 실전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황을 가정하고 클린 태클에 집중한다.
- 공격수 예측 훈련: 드리블이 예측 가능한 상황부터 급격히 방향을 바꾸는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태클 연습한다.
- 헤딩 훈련: 공중볼 경합 상황에서 점프와 공의 정확한 처리 능력을 향상한다.
- 공중 경합 연습: 동료 선수와 경쟁 상황을 만들어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헤딩 경합을 반복한다.
- 방향 전환 헤딩: 공중 헤딩 시 의도적으로 볼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낼 수 있도록 정확성 훈련을 한다.
- 어려운 공중 상황 연습: 불규칙한 궤도로 오는 크로스를 헤딩 처리하여 실전 감각을 익힌다.
- 패스 차단과 인터셉트: 상대의 패스를 예측하고 공격 전개를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 패스 라인 차단 연습: 코치가 다양한 위치에서 공을 패스하고, 수비수는 이에 따라 움직이며 공을 가로챈다.
- 간격 유지 훈련: 여러 선수와 상대하여 위치 조정으로 패스를 차단하거나 공을 소유하는 연습을 한다.
- 패스 가로채기 게임: 상대 공격수의 패턴을 관찰하고 방해하는 팀 대 팀 게임을 진행한다.
- 빌드업 플레이: 공격의 시작점으로 안정적인 빌드업 기술을 향상한다.
- 트래핑과 짧은 패스 연결: 간단한 상황에서 정확하게 공을 트래핑한 후 팀 동료와 빠르게 패스를 주고받는다.
- 롱패스 정확도 향상: 넓은 공간을 활용하여 동료의 발 앞이나 공간으로 보내는 긴 패스를 반복 연습한다.
- 압박 상황 연습: 상대팀의 적극적인 압박 속에서 여유롭게 공을 처리하고 공간으로 빠르게 볼을 전환한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수비수[편집]
- 홍명보
- 포지션:CB
- 신장:181cm
- 생년월일:1969년 2월 12일
- 주요 클럽:포항제철 아톰즈
주요 커리어
-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 FA컵 우승 1회
- 리그컵 우승 1회
- J리그컵 우승 1회
-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한국 축구의 '영원한 리베로'로 기억되는 홍명보는 아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만한 드넓은 시야, 정교한 롱패스, 기습적인 전진 플레이를 바탕으로 한 후방 빌드업, 그리고 호쾌한 중거리 슈팅이 그의 최대 장점이었다. 피지컬이나 스피드는 탁월하지 않았지만, 우수한 예측력과 판단력으로 커팅과 커버링을 통해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었다.
홍명보는 K리그의 포항 스틸러스와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양 리그에서 각각 1번씩 리그 우승, FA컵,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92년 데뷔 시즌에는 최초로 MVP를 수상하며 주목받았고, K리그 베스트 11에 5차례 이름을 올리며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로는 10년 넘게 주전으로 활약하며 4차례 월드컵에 참가했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며 뛰어난 폼으로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이뤄냈다. 그의 활약은 FIFA에 의해 인정받아 브론즈볼과 대회 올스타팀에 그의 이름을 새기게 했다. 특히, 스페인전 승부차기에서 4강 진출을 확정짓는 결승 슛을 성공시키고 활짝 웃던 장면은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 하나다.
- 김민재
- 포지션:CB
- 신장:190cm
- 생년월일:1996년 11월 15일
- 주요 클럽:SSC 나폴리
주요 커리어
-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 A매치 63경기 4골
2020년대를 대표할 대한민국 축구가 낳은 역대급 괴물 센터백이다. 강골의 몸싸움과 짐승 같은 스피드, 지능적인 인터셉팅과 태클까지 선보이면서도 안정적인 빌드업을 보여줄 수 있는 그는 이러한 기량들을 통해 아시아인 수비수, 그것도 센터백으로서 유럽 최상위 리그에서 전례 없는 활약을 펼쳤다.
전북에서 데뷔하자마자 리그 2연속 우승과 베스트 11에 들어간 김민재는 탈아시아급 활약을 인정받아 베이징 궈안을 거쳐 터키의 페네르바체로 이적했다. 그곳에서도 2021/22 시즌 리그 준우승과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이어서 나폴리 유니폼을 입고 2022/23 시즌 리그 최우수 수비수 타이틀을 달며 마라도나 시대 이후 33년 만에 스쿠데토를 품에 안는 영예를 누렸다.
대표팀에서 김민재는 2018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기여했으며, 그 다음 해 아시안컵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지만 본인은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 정용환
- 포지션:CB
- 신장:178cm
- 생년월일:1960년 2월 10일
-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주요 커리어
-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회
-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 A매치 86경기 3골
-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 1988 AFC 아시안컵 준우
홍명보 등장 이전까지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수비로 여겨지던 인물이다. 근력 운동은 축구 선수에게 해가 된다는 기성 세대의 잘못된 지도에도 개인 훈련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적극 시도해 얻게 된 초인적인 점프 능력과 철인의 대인 방어력으로 거구의 외국 공격수들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았던 정용환은 이러한 성실한 태도와 노력으로 K리그에서 원탑 활약을 펼쳤다.
대우 로얄즈에서만 모든 커리어를 보낸 그는 당시 아시아 최고 수준의 멤버들을 지휘하며 3번의 K리그 우승과 1986년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냈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3번의 리그 베스트 11 선정과 1991 시즌 MVP 등을 달성했다.
정용환은 국가대표에서도 그 활약을 이어갔다. 그는 2차례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뤘고, 1988년 아시안컵에서는 올스타팀에 선정되며 팀을 결승에 올린 바 있다.
- 김정남
- 포지션:CB
- 신장:170cm
- 생년월일:1943년 1월 28일
- 주요 클럽:한국외환은행 축구단
주요 커리어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회
- A매치 66경기 0골
- 1970 아시안 게임 금메달
-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가운데 한 명이다. 빠른 발을 이용한 영리한 인터셉트와 클리어링, 그리고 공격 가담에서의 발류를 장점으로 가진 스위퍼로, 특히 김호와 함께한 스위퍼-스토퍼 조합에서 뛰어난 케미를 발산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3차례 KFA 올해의 팀에 선정된 김정남은 1971년 KFA 올해의 선수로도 뽑혔으며, 2번의 컵 대회 우승과 양지 축구단 소속으로 1969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의 수비력에 힘입어 대한민국 대표팀은 아시안 게임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김정남은 2010년 축구 잡지에서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된 대한민국 역대 베스트 11에도 이름을 올렸으며, 홍명보와 함께 센터백으로 선정되었다.
- 김호
- 포지션:CB
- 신장:177cm
- 생년월일:1944년 11월 24일
- 주요 클럽:제일모직 축구단
주요 커리어
-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2회
- A매치 84경기 0골
- 1970 아시안 게임 금메달
-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김정남과 함께 한국 축구사에 남을 수비 파트너십을 선보였던 일류급 센터백이다. 원래 빠른 발을 자랑해 라이트백으로 뛰었으나, 김용식 감독 아래에서 김정남과 함께 센터백 듀오를 이루게 되었으며, 그 후 헌신적인 수비 스타일과 송곳 같은 슬라이딩 태클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K리그 창단 이전의 실업 리그에서 뛰며 1969년에는 우수한 모습을 보여 KFA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한 김호는 '호랑이 군단'의 믿음직한 방패 역할을 맡았다. 그는 상대 공격수들을 차단하며 1970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년 뒤 아시안컵에서는 결승까지 올랐다.
- 김영권
- 포지션:CB
- 신장:185cm
- 생년월일:1990년 2월 27일
- 주요 클럽:광저우 에버그란데
주요 커리어
- 중국 슈퍼 리그 우승 5회
-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 중국 슈퍼컵 우승 2회
-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 A매치 111경기 7골
-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1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탑 레벨의 중앙 수비수였다. 준수한 주력과 매우 뛰어난 왼발을 이용한 빌드업 능력을 가졌고, 지적받던 수비력도 후에는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으며, 특히 뛰어난 각 좁히기와 맹렬한 태클로 수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당시 아시아의 맨시티라 불리던 광저우 에버그란데에서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무한한 신임을 받으며 6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2015년에는 챔피언스 리그 올해의 팀과 함께 K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후 일본을 거쳐 울산에서 2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2023 시즌에는 리그 MVP까지 수상하며 그 기량을 더욱 빛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한때 안 좋았던 폼을 보여 '자동문'이라 불렸으나, 2018년 월드컵에서는 각성하여 '통곡의 벽'이라 불리며 큰 활약을 했다. 특히 독일전에서 승리의 결정적인 골을 기록했고, 이후 2022년 월드컵에서는 포르투갈전에서 결정적인 골을 넣어 16강 진출에 큰 기여를 했다.
- 최진철
- 포지션:CB
- 신장:187cm
- 생년월일:1971년 3월 26일
- 주요 클럽:전북 현대 모터스
주요 커리어
- FA컵 우승 3회
- 리그컵 우승 1회
-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 A매치 65경기 4골
- 2002 FIFA 월드컵 4강
홍명보, 김태영과 함께 200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책임졌던 듬직한 센터백이다. 최대 장점은 장신을 활용한 헤더와 포스트 플레이로, 특히 헤딩 해트트릭을 기록할 정도였다. 발이 느렸음에도 날카로운 태클과 영리한 위치 선정을 통해 이를 커버했다.
대학 진학 후 상무로 군입대하고 2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프로에 데뷔했지만, 최진철은 전북 현대에서 12년 간 원클럽맨으로 헌신하며 클럽은 3차례 FA컵 우승과 1차례 리그컵 우승, 그리고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3차례의 리그 베스트 11 선정과 2006년 아시안 챔피언스 리그 우승 당시 MVP에도 선정되는 위엄을 보였다.
2002년 월드컵에서는 전설적인 활약을 펼쳤으며, 크리스티안 비에리,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을 상대로 준수한 수비력을 선보였다. 이어 2006년 월드컵에도 36세 최고참으로 참가해 원정 첫승에 기여하는 등 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김태영
- 포지션:CB
- 신장:180cm
- 생년월일:1970년 11월 8일
- 주요 클럽:전남 드래곤즈
주요 커리어
- FA컵 우승 1회
- A매치 105경기 3골
- 2000 AFC 아시안컵 3위
- 2002 FIFA 월드컵 4강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맹활약했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이다. 겁없는 파이터 기질로 공격수를 사냥하는 스타일 덕에 미국 원주민 부족인 '아파치'라는 별명도 얻었던 김태영은 빠른 발과 양발 사용 능력 덕분에 윙백까지 소화할 수 있었던 보물같은 자원이기도 했다.
늦은 나이에 고향팀이자 신생팀인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해 모든 커리어를 보낸 그는 부진한 팀 상황에도 끝까지 남아 1997년 구단 최초의 FA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1999년 위너스컵 준우승, 2002년과 2003년에는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활약을 보여주었다.
1998년과 2002년 월드컵에 참가한 김태영은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 최진철, 홍명보와 백3 라인을 구성해 대한민국의 4위 성적을 이끌었다. 특히 16강전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다음 경기에서 출전하는 투혼은 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 김호곤
- 포지션:CB
- 신장:172cm
- 생년월일:1951년 3월 26일
- 주요 클럽:서울신탁은행 축구단
주요 커리어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 A매치 120경기 5골
-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FIFA에서 선정한 20세기 아시아-오세아니아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린 전설적인 수비수다. 김호곤은 키가 다소 작았지만 엄청난 스피드, 빼어난 공격 가담, 대인 마크 능력, 특히 불굴의 정신력으로 큰 활약을 펼쳤다.
실업 리그의 서울신탁은행에서 주로 활약한 그는 1975년 FA컵의 전신인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며 KFA 올해의 선수로 뽑혔고, 커리어 동안 무려 8차례 KFA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금자탑을 쌓았다.
붉은 악마 군단의 일원으로 김호곤은 1972년 아시안컵 준우승과 1978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특히 1978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북한과 공동 우승으로 시상대에 올랐다. 여담으로 이 대회에서 북한 선수 한 명이 밀어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지만, 김호곤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올라가 어깨동무를 하며 대단한 멘탈을 보여주었다.
- 조영증
- 포지션:CB
- 신장:183cm
- 생년월일:1954년 8월 18일
- 주요 클럽:포틀랜드 팀버스
주요 커리어
-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회
-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 A매치 113경기 1골
- 1978, 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 1980 AFC 아시안컵 준우승
프란츠 베켄바워, 요한 크루이프 등이 활약했던 동시대 북미 리그 최고의 수비로 여겨졌던 남자, 조영증은 '코끼리'라는 별명에 걸맞은 뛰어난 몸싸움과 지능적인 커팅, 후배 홍명보에 버금가는 롱패스와 오버래핑 실력을 자랑했다. 그는 잠깐 공격수로도 뛰며 K리그에서 6경기 연속골이라는 기록을 세운 바 있다.
1977년 K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후, 1981년에는 포틀랜드 팀버스라는 미국 클럽으로 진출하여, 베켄바워, 조지 베스트, 요한 크루이프,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등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 뛰던 북미 리그에서 1982 시즌 리그 베스트 11에 뽑히는 위엄을 보였다.
국내로 돌아와서는 럭키 금성에서 활약하며 1985년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두 번의 아시안게임 우승과 1980년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1986년 월드컵 본선에도 참가한 바 있다.[3]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수비수〉, 《나무위키》
- 〈수비수〉, 《위키백과》
- 풋볼피디아,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수비수 Top 20〉, 《티스토리》, 2024-05-29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