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잔글 (→같이 보기)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하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 |||
39번째 줄: | 39번째 줄: | ||
== 같이 보기 == | == 같이 보기 == | ||
* [[모로코]] | * [[모로코]] | ||
+ | * [[마그렙]] | ||
+ | * [[북아프리카]] | ||
− | {{도시|검토 필요}} | + | {{:북아프리카 같이 보기}} |
+ | |||
+ | {{아프리카 도시|검토 필요}} |
2023년 11월 12일 (일) 18:49 기준 최신판
카사블랑카(아랍어: الدار البيضاء, 영어: CasaBlanca)는 대서양에 위치한 모로코의 최대 도시이다. 도시 이름은 스페인어로 "하얀 집"을 뜻한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의 주요한 항구일 뿐만 아니라 모로코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마그레브 내에서도 가장 큰 도시이며,미인들의 도시로도 매우 유명하다. 모로코의 실제 수도는 라바트이지만 경제와 무역의 중심지는 카사블랑카로 여겨진다. 또한 모로코에서는 미인들이 화장품이나 로션 등을 매우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터키나 스웨덴 같은 나라들의 oriflam 등 유명한 화장품회사들이 카사블랑카에 몰려 있다. 특히 또 다른 미인들의 나라인 터키에서도 모로코와 미용사업으로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카사블랑카는 인기좋고 향이 좋은 오렌지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또 세계에서 4만개의 지역중 가장 사랑받는 호감형 도시로 50위 안에 들어 간다
카사블랑카에 모로코 내 굴지의 기업들과 그곳에 진출해 있는 외국 기업들이 본사와 주요 산업 시설들을 두고 있다. 산업 통계를 보면 카사블랑카가 모로코 내에서 산업 중심지로서 오랜 세월 동안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왕립 모로코 해군이 주둔한 제1기지가 있다. 카사블랑카 항구는 인공 항구 중에서 마그레브와 서아랍권에서 가장 가장 크고 세계에서도 가장 큰 항구 중의 하나이다.
개요[편집]
- 행정 단위: 모로코 도시
- 면적: 324 km²
- 인구: 3,359,81 명(2022년)
- 지역어: 아랍어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casablanca.ma/
지도[편집]
역사[편집]
오늘날 카사블랑카 지역은 적어도 7세기까지 베르베르인들이 정주했었다. 당시 안파로 이름지어졌던 그 지역에 작은 독립왕국이 그 지역에 생겨났으며 1068년 알모라비드 왕조에 의해 정복될때까지 지속되었다.
- 1468년, 파괴된 고대 도시 안파의 자리에 포르투갈인에 의해 건설되었다.
- 1580년 부터 1640년 사이 스페인이 점령하였지만 다시 포르투갈에 넘어 갔다.
- 1757년에는 모로코 술탄에게 점령되었다.
- 18세기 후반에 무역항으로서 재건되어 19세기에 유럽과 미국의 무역업자가 정착하였다.
- 1906년에는 무역액이 탕헤르를 앞질러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었다.
1907년 6월, 프랑스가 항구 근처에 묘지를 통하여 지나가는 경편철도 (軽便鉄道)를 건설하려는 시도를 했다. 주민들이 프랑스인 노동자들을 공격했으며 폭동이 일어 나고 프랑스 군대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상륙하면서 마을에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 이것은 비록 프랑스의 카사블랑카 지배가 1910년까지 공식화되지 않았을지라도 식민지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1940년대와 1950년대 사이, 카사블랑카는 반프랑스 폭동의 주요 중심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카사블랑카는 중요한 전략적 항구였으며 1943년,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카사블랑카 회담을 주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의 작전 현장 (European Theater of Operations)을 위한 미국 공군기지였다.
모로코는 1956년 3월 2일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아프리카 같이 보기[편집]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