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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2일 (목) 12:32 기준 최신판
베수비오산(이탈리아어: Monte Vesuvio, 라틴어: Mons Vesuvius)은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에 있는 화산이다. 높이 1,281m이며 산꼭대기에는 지름 500m, 깊이 250m의 화구가 있고, 그 안에 중앙화구구(中央火口丘)가 있다. 화구를 중심으로 화산쇄설물이 원뿔 모양으로 쌓인 성층화산으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활화산이다. 지난 백년 동안 유럽 본토(섬 제외)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이 있었던 화산이기도 하다. 1944년 분출을 끝으로 현재는 분출을 멈춘 상태이다.[1]
개요[편집]
베수비오산은 나폴리에서 6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나폴리만과 가깝다. 나폴리와 함께 바다에서 바라본 나폴리만의 전경을 이룬다. 베수비오산은 낙타등 모양의 두 봉우리를 가졌다. 그란 코노(Gran Cono) 봉우리에는 오랜 화산 분화구에 칼데라가 생성됐다. 이로 미루어 보아 베수비오 화산은 원래 지금보다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작은 봉우리는 소마 산(이탈리아어: Monte Somma)이라 부른다. 이 둘을 합쳐 베수비오-소마 화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베수비오산의 분출은 약 17,000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후 주봉인 그란 코노는 79번 분출했다. 주봉우리 높이는 1,281m이며 소마 산은 1,149m이다. 두 봉우리 사이에 5km 길이의 아트리오 디 카발로 계곡이 자리잡고 있다. 산 경사면은 용암이 흐르다 굳은 용암지대이며 수풀이 무성하다. 정상 부근은 황량하나 산기슭에는 포도원이 자리잡고 있다. 베수비오 화산은 지금은 분출하지는 않으나 여전히 증기를 뿜어내고 있는 활화산이다. 베수비오산은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의 활동 무대 중 한 곳이다. 이를 바탕으로 로마 제국에서는 베수비오 화산 아래 건설한 도시 이름을 헤르쿨라네움이라 하였다.
형성 원인[편집]
아프리카 판과 유라시아 판의 수렴 경계면에 있는 성층화산이다. 아프리카 판이 유럽판 밑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화산 활동의 원동력이다. 베수비오산의 용암대지는 안산암과 함께 스코리아, 화산재, 부석 등으로 이뤄져 있다.
분출[편집]
약 17,000년 전 화산활동을 시작한 이래 여러 차례 분출하였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파괴한 서기 79년의 분출과 청동기 시대의 인간 발자국을 남긴 아벨리노 분출이 유명하다. 서기 79년에 있었던 화산활동으로 로마 제국의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이 파괴된 것으로 유명하다. 베수비오산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분출이 있었으며 오늘날은 인근의 인구가 3백만 명에 이르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산의 하나로 여긴다. 79년 대분화 이후에도 수십 회에 걸쳐 산꼭대기와 산허리에서 폭발하여 용암이 흘러내렸다. 1631년에는 약 반 년에 걸친 진동 후 폭발하여 주변의 주민 1만 8000명이 희생되었고, 그 후에도 끊임없이 진동이 계속되어 산의 모습이 달라지고 분화구의 중앙에서 좀 남쪽에 화산구(火山丘)가 생겼다. 1944년에는 대용암류로 등산전차가 황폐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자동차 리프트로 산꼭대기에 오를 수 있고, 둘레 72km에 이르는 화산 기슭을 둘러싸고 관광철도가 달리고 있다. 높이 600m 이하의 비옥한 화산 비탈면에서는 포도 ·오렌지류 ·호두 등의 재배와, 가축 사육이 활발하다. 산중턱의 서쪽 높이 약 600m 지점에는 1845년 세계에서 최초로 건설된 화산관측소가 있다.[2]
폼페이[편집]
폼페이(Pompeii)는 현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나폴리 근처에 위치한 도시이자 역사적으로 유명한 고대 로마의 도시다. '멸망한 도시들' 가운데 손꼽히는 도시로 본래 농업과 상업이 활발했으며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로 매우 번성했던 도시였다. 하지만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인해 단 18시간 만에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오랫동안 역사에서 소멸한 도시 중 하나로 1592년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과 회화작품들이 발굴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탈리아에서 관광업계 관련이 아닌 이상 그냥 '폼페이'라고 부르면 지금 사람들이 살고 있는 폼페이 신 시가지를 가리킨다. 유적 쪽 폼페이는 Scavi di Pompei(스카비 디 폼페이)라고 부르며, 직역하면 '폼페이 발굴지'라는 뜻이다.
폼페이는 화산폭발이 일어나기 17년 전인 서기 62년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해 포룸, 유피테르 신전, 목욕탕 등 공공건물을 포함한 대부분 건물이 지진 피해를 입었고, 화산폭발 당시에도 그 피해가 다 복구되지 않은 상태였다. 지진 직후 네로가 이곳을 시찰하면서 가망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 날, 서기 79년 8월 24일은 불의 신 불카누스를 기념하는 축제일이어서 도시 내에서 축제가 진행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상한 구름이 밀려오자 시민들이 동요했으며, 이에 대 플리니우스 등이 해변으로 가서 조사를 하던 중 화산이 폭발했다. 분화로 화산재가 하늘을 덮은 뒤 18시간 동안 무려 수백억 톤에 달하는 뜨거운 화산쇄설류가 도시로 쏟아져 내려왔고 폼페이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도시는 3m 가량이나 되는 화산재로 뒤덮였고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 이탈리아-영국 공동 연구진은 화산 폭발 당시 화쇄류(Pyroclastic Flow) 지속 시간을 초고온의 화산재와 유독 가스 등이 약 15분간 분출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분화로 폼페이 주민들이 모조리 몰살당했다고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오해다. 실제로는 당시 폼페이 주민은 6천~2만 명 정도로 추정하는데, 사망자는 대략 2천 명 정도인 듯하다. 즉 나머지 최대 1만 8천 명 가량은 어떻게든 도시를 빠져나와 피신했다는 뜻이다. 그래도 최소 10%의 인구가 사망할 정도였고, 부상자는 더 많았을 테니 궤멸적인 피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화산 폭발로 한 번 망한 이후, 장장 15세기까지 폼페이의 존재는 사람들에게서 잊혔다. 그러다가 서기 1592년 이탈리아에서 수로 건설을 목적으로 땅을 파다가 폼페이의 유적이 발견되면서, 무려 14세기만에 폼페이가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이후 18세기인 1748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여러가지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한창 전성기였을 때 갑자기 멸망해버려 전성기 로마의 유물과 유적들이 잔뜩 남아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엄청난 가치가 있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굴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3분의 2 정도밖에 발굴되지 않았다.[3]
관련 뉴스[편집]
- 2017년 7월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시칠리아 등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40℃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12일 23건의 산불과 들불이 발생했다. 시칠리아의 중심 도시인 팔레르모 서쪽의 해변리조트에선 들불이 번지면서 이날 밤에 700여명의 관광객이 보트를 타고 시급히 대피했으나, 10여 명이 연기를 마시고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불길은 13일이 돼서야 잡혔다. 나폴리 인근의 베수비오 산에서도 불이 나 나폴리까지 연기가 퍼지면서 화산이 폭발한 것 아니냐는 공포감도 생겼다. 관광객도 이 지역에서 벗어나라는 권고를 받기도 했다. 이탈리아 당국은 산불의 방화 용의자를 체포했다. 지안 루카 갈레티 이탈리아 환경부 장관은 언론에 베수비오 산 방화범이 15년의 징역행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탈리아 당국은 화재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군대를 파견할지 고심 중일 정도로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은 베수비오 산 주변의 수천 명의 사람과 동물들, 자연보호구역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야당은 베수비오 산불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4]
- 2021년 12월 1일 약 2000년 전 화산폭발로 멸망한 고대 도시 헤르쿨라네움에서 용암을 피하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유골이 공개됐다. 약 2000년 전 베수비오산에서 화산이 폭발한 뒤 인근의 고대 도시인 헤르쿨라네움은 화산재로 휩싸였다. 당시 화산폭발은 헤르쿨라네움을 1m 두께의 유독한 화산재와 가스 및 용암으로 뒤덮었고 도시는 순식간에 매몰됐다.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의 2일 보도에 따르면 헤르쿨라네움 보존 프로젝트 연구진은 지난 10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묻혔던 한 남성의 유골을 헤르쿨라네움 유적지 인근 해변에서 발견했다. 연구진은 유골을 발견한 뒤, 유골의 훼손을 막고 더욱 정밀한 분석 작업을 실시하고자 특수 금속날을 이용, 유골을 덮고 있던 용암을 깎는 작업을 진행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발견된 남성은 40~45세로 추정되며, 발견 당시 유골은 밝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남성의 피가 얼룩지면서 생긴 흔적으로 보고 있다. 남성의 유골 근처에서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과 동전 등의 소지품도 발견됐다. 화산이 폭발했을 당시 값이 나가는 물건들을 가지고 바닷가 인근으로 도망치려다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이 남성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섭씨 500도에 가까운 고온에 급속도로 노출되면서 화를 당한 것으로 추측했다. 당시 헤르쿨라네움을 뒤덮은 유독한 화산재와 가스 등의 온도가 500도에 달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 남성이 구조를 기다리다 대피하려던 시민으로 추정했지만,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투입된 군인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추가 연구를 하고 있다. 이 남성 유골의 발견은 약 2000년 전 도시의 모습을 파악하고 베수비오 화산 폭발의 영향력을 짐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됐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베수비오산〉, 《위키백과》
- ↑ 〈베수비오산〉, 《네이버 지식백과》
- ↑ 〈폼페이〉, 《나무위키》
- ↑ 이광빈 기자, 〈폭염에 시름하는 남유럽…가뭄에 산불까지 '3중고'〉, 《연합뉴스》, 2017-07-14
- ↑ 송현서 기자, 〈짧고 끔찍한 지옥의 순간…2000년전 화산폭발 희생자 유골 공개〉, 《나우뉴스》, 2021-12-02
참고자료[편집]
- 〈베수비오산〉, 《위키백과》
- 〈폼페이〉, 《나무위키》
- 〈베수비오산〉, 《네이버 지식백과》
- 이광빈 기자, 〈폭염에 시름하는 남유럽…가뭄에 산불까지 '3중고'〉, 《연합뉴스》, 2017-07-14
- 송현서 기자, 〈짧고 끔찍한 지옥의 순간…2000년전 화산폭발 희생자 유골 공개〉, 《나우뉴스》, 2021-12-02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