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호미는 한국의 전통 농기구로, 주로 논밭을 매는 데 쓰이며, 말뿌리(어원)는 오목하고 길다랗게 패어내는'홈'을 판다고 하여 '홈+이' 이렇게 '호미'가 된 것이다.
호미는 쇠로 만들어지며 날, 슴베, 자루로 구성된다. 날은 땅을 파거나 풀을 뽑는데 이용되는 철판이고, 자루는 손잡이며, 슴베는 날과 자루를 연결해 주는 부분이다. 날의 형태는 대개 역삼각형으로 아래 부분은 뾰족하고 위쪽은 넓적하다. 북으로 갈수록 호미날과 자루가 넓고 길다. 밭매기에는 1년 내 쓰이고, 논매기는 음력 7월 무렵 세 벌 논매기가 끝나면 '호미씻이'라고 하여 호미를 씻어서 걸어 두고 흥겹게 하루를 노는 풍속이 있다.
개요[편집]
논밭의 김을 매거나 주로 사용하는 한국고유의 연장이다. 쇠 날의 앞이 뾰족하고 위는 넓적하며 한쪽에 가느다란 목이 휘어 꼬부라지고 그 끝에 둥근 나무토막의 자루를 박은 김매는 데 쓰는 농기구이다. 우리 호미는 서유구(徐有榘, 1764∼1827)의 『임원경제지』에서도 동서(東鋤, 동쪽나라의 호미)라고 했을 만큼 우리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연장이었다. 부등변 삼각형인 날의 한쪽 모서리에 목을 이어대고 거기에 자루를 박은 독특한 형태의 연장인 호미는 이미 통일신라시대의 안압지 출토유물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제1편, 호미〈사진 24-3〉), 고려시대의 호미〈사진 5-1〉도 오늘날의 호미와 꼭 같다.
지역에 따라 호맹이 · 호메이 · 호무 · 홈미 · 호마니 · 허메 · 허미 · 희미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쇠날의 앞은 뾰족하고 위는 넓적한데, 이 한 끝에서 목이 휘어 꼬부라져서 넘어간 부분에 둥근 나무토막을 박아 자루로 삼는다.
역사[편집]
집약농법, 그러니까 조그마한 땅에서 집중적으로 농경을 펼쳐 생산량을 늘리게 된 때에, 땅을 조금씩 파고 덮고, 모양도 잡고, 제초작업도 할 수 있게끔 말 그대로 정원 손질을 하듯이 농사를 지어야 하게 돼서 등장하게 된 농기구다. 토지의 지력이 그리 좋지 않아 넓은 땅에서 경작을 해야 할 때는 사용되지 않다가, 나중에 토지의 지력 또는 생산력이 향상됨에 따라 쓰임새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한민족 금속공학의 정수라고 불릴 만한 물건으로, 경험에 의해 오로지 인체공학적으로 최적화하여 만든 나머지 구조공학적으로는 최악의 디자인이다. 힘이 가해지는 방향이 비스듬한데다 날이 비대칭이고, 연결부가 가늘고 직각으로 휘었기 때문에 겉보기만으로는 튼튼함을 기대할 수가 없다. 괜히 한국 말고 다른 나라에 호미 같은 농기구가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현실적 필요 때문에 불굴의 기술집약 노가다로 그러한 구조적 약점을 씹고 어거지로 튼튼하게 만들어낸 것이 호미다.
호미의 조상으로 볼 수 있는 농기구 유물은 서울 구의동 유적이나 창녕 교동 3호분 등지에서 보이지만 이때는 보습의 파생형에 가깝다. 남북국시대 안압지 유물에서 본격적으로 낫 형태를 보이기 시작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삼각형 형태를 딴 호미 유물이 실제로 출토되는 것은 빨라도 고려시대 이후부터다. 중국 강남지역의 농사법이 많이 도입되었던 시기인데, 강남은 물론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호미 유물이 출토된 적은 없다. 이 무렵에 중국의 농기구를 수입하면서 같이 들여왔는지, 아니면 독자적으로 만들었는지는 농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이렇게 유래는 불명이지만 시대가 흐르고 나서는 중국과 일본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고유의 농기구가 되었다. 고려시대부터 호미의 모습이 보이니 호미의 역사는 꽤 깊다.
형태와 용도[편집]
주용도나 자연조건(지역토질 등) 등에 따라 약간씩 다른 형태로 나뉜다.
- 보습형 논호미: 쟁기의 보습처럼 날끝이 뾰족하고 위는 넓적하다. 자루에 흙이 묻으면 미끄러워 짚이나 베헝겊을 둘러서 쓴다.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등지의 평야에서 쓰인다.
- 낫형 밭호미: 낫처럼 날의 길이가 너비보다 길다. 자갈밭이 많은 경상도, 전라도의 산간이나 섬에서 쓰인다.
- 세모형 북부호미: 긴 세모 모양으로 양변에 비해 바닥의 길이가 길다. 한국 호미 중 날과 자루 모두 가장 길다. 보리밭, 옥수수밭, 밀밭 등 밭이랑이 넓은 곳에서 쓰인다. 폭이 좁고 길이가 길어서 흙을 퍼내는 힘은 모자라서 논에는 맞지 않다. 북부 지방에서 주로 쓰인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나무 손잡이에 완만한 곡선으로 꺾어지는 목이 이어지고, 목의 끝에 비대칭 삼각형 삽날이 달린 형태를 따른다. 한반도의 북부 지역은 토양이 척박하여 잡초의 뿌리가 깊게 박히지 않아 무겁고 날이 평평한 호미가 쓰였지만 일반적으로 농어촌에서 쓰는 호미는 중부 이남 지방에서 쓰는 날렵하고 날카로운 종류가 대부분이다.
제주도에서는 일반적인 형태의 호미가 아닌 날 부분이 아주 가늘게 생긴 ᄀᆞᆯ갱이라고 부르는 도구를 쓴다. 아래아가 입력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그나마 비슷한 발음인 '골갱이' 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흔하다.
용도는 매우 다양하게 잡초 뽑기부터 시작해서 씨앗 심기, 옮겨 심기, 북돋기, 흙 파서 뒤집기, 흙덩이 쪼개기, 호미목에 걸어서 당기기 등 어지간한 농사일을 다 감당할 수 있다.
날카로운 호미는 하고자 한다면 사람도 죽일 수 있다. 농경시대를 살아오신 주변 노인이 있다면 호미로 사람이 다친 일이 있냐고 여쭤보자. 수많은 증언들이 쏟아질 것이다. 심지어는 아마존닷컴 리뷰에도 "대장간에서 갓 나온 듯 실제로 보면 훨씬 굵고 튼튼하며 환상적으로 쉽게 화단 정리를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좀비가 덤비면 후려쳐서 목도 딸 수 있을 것 같다."는 찰진 평도 있다. 힘을 쓰는 방향이 다를 뿐 호미는 단검 수준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호미는 괭이, 낫, 쇠스랑, 도끼 등과 함께 민란, 농민봉기 묘사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 당연히 평생 매일같이 써온 농민들의 손에 자주 들린다.
발굴용 도구로도 쓰인다. 날이 평평한 호미를 발굴현장의 지층(문화층)의 흙을 깎고 정리하는 데 사용한다.
해외[편집]
의외로 외국에서는 개인 정원, 혹은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에게 많이 팔리는 한류 열풍의 농기구이기도 하다. 2019년에 이런 사실이 뒤늦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작은 화제가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한국 말고 다른 국가에는 호미 같은 소형 다목적 농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뽕성 어그로 주장이 결코 아니다. 유튜브나 구글에서 'Homi' 내지는 'Easy Digger' 등으로 검색해 보면 영어권 사람들이 호미를 정원 취미자의 필수도구라고 선전하는 영상과 포스팅이 흔하게 나온다. 영상의 연도를 봐도 굉장히 오래된 것부터 최근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특히 두툼한 쇳날의 거친 맛에 뒤뜰을 가꾸는 미국인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명칭도 로마자로 homi, ho-mi라고 표기하고 발음도 '호미'라고 한다. 아무래도 받침도 없고 이중모음도 없는 단어라, 서구권 사람들에게 생소한 한국어라도 발음하기 쉬운 것이 이유인 듯. 'Easy Digger'는 호미가 삼각날 덕에 특히 좁고 깊은 구덩이를 쉽게 파기에 매우 유용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실, 호미는 모종삽보다 휘두르는 힘이 덜 들어서 땅을 파기에도 좋다.
호미가 한국 말고는 제대로 구할 곳이 없다 보니 이런 나라들에서는 전량 수입을 해야 해서 아마존 등지에서 한국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만들기엔 노하우도 전무하고, 오리지널 생산국인 한국에서는 소규모 대장간에서 수제로 생산하여 동네 철물점 같은 곳에서나 팔기 때문이다.
그래서 품질이 좋은 호미도 한국에서는 비싸봐야 만 원이면 살 수 있는 반면에, 외국에서는 프리미엄에 배송비까지 붙어서 하나에 30달러(대략 3만 원)가 넘게도 파는 것이다. 중국산은 가격이 싸지만, 금방 망가지기 때문에 한국산이 인기라고 한다. 한국에서 수요가 낮아져 먹고 살기 힘들었던 대장간들이 "해외수출로 좀 살 만해졌다" 같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세계시장 주름잡는 한국산 호미 영상 참조.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서 실제로 대장간에서 있었던 일을 취재한 이야기가 있는데, 한국말을 좀 하는 외국 백인 여성이 대장간에 파는 호미를 사갈 때 2000년대 중반 값으로 만 원 정도 달라고 하자 놀라면서 "이렇게 좋은 게 왜 이리 싸요!" 라면서 오히려 두 배인 2만 원을 흔쾌히 내어줬다고 한다.
2020년에는 아마존에서 유명해진 호미를 생산한 대장간에서 캐나다와 영국 수출, 미국 코스트코와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사실 대장간에서 수제 호미를 만드는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이유인즉슨 사람들이 농어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는 이촌향도 현상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구매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외국에서 호미 붐이 벌어지는 덕분에 수요가 급격히 늘어 영세 수공업자들이 한숨 트게 되었다는 일화도 존재한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대량의 값싼 중국산 짝퉁이 널리 퍼질만도 하지만 호미는 다른 제품에 비해 그 수가 많지 않다. 이유는 원조 한국산이 워낙 뛰어나서다. 물론 한국에서는 중국산을 싼 맛에 쓰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해외수출까지 하는 호미는 금방 망가지고 질적으로도 차이가 너무 나서 충분히 메리트가 있다. 땅에 여러 번 파는 행위를 반복하는 농기구 특성상 내구도가 약하면 금방 망가져버려서 좋은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많이 난다.
EBS 극한직업에 나온 장인의 말에 의하면 "국산 호미를 하나 쓸 때 외국산은 서너 개를 쓴다" 라고 한다. 품질 차이가 압도적이라 해외에서는 20~30달러를 주고서라도 써도 평생 쓸 수 있을 만큼 남는 장사인 것이다.
아직도 호미 대다수는 한국에서 대장간에서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다. 이것이 짝퉁이나 저질스러운 호미의 수가 많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다. 지역마다 만드는 사람마다 기술의 노하우와 제조법이 다른데, 심지어 같은 사람이 만들어도 조금씩 질적인 차이가 있다 보니 제대로 된 기술이 없으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서 흉내도 못 내는 것이다. 물론 장인의 숙련도가 몇십 년 단위로 높으면 이런 차이점도 보기 힘들다. 이 때문에 대량의 중국산 호미가 외국 시장을 쉽게 점령할 수 없다.
구조 자체는 간단함에도 불구하고 손잡이에서 이어지는 미묘한 목의 곡선과 비대칭으로 이어지는 삽날을 형성할 기술력이 어느 정도 필요한데 비해 수요는 적으니 영세 대장간의 소규모 공급에 의존해야 한다. 재료로는 주로 상용차량 서스펜션에 쓰이는 6150 합금강 판스프링을 가열한 다음 공압해머와 망치로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모양을 잡고, 손잡이용 목재도 좋은 것으로 쓰고 호미 몸체를 관통시킨 뒤 튀어나온 끝부분을 망치로 구부리는 방식으로 달기에 무지하게 튼튼하다.
이렇게 한국산의 호미가 명성이 세계적으로 높아진 것을 인식했는지 2021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국빈 방문 당시, 김정숙이 빈 대학교 식물원에 방문하여, 식물원에서 근무하는 연구원들의 이름을 각인한 호미를 선물로 증정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호미 붐이 일어난 것이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일본의 농업연구원들이 낙후된 조선의 농업 기술을 개선하고 근대적 농기구들을 전파하겠다는 목적으로 조선으로 들어가 조선의 농기구들과 농촌 작업 현장을 확인한 일이 있었다. 이 농업연구원들은 호미나 조선낫 등 조선의 농기구들이 상당히 효율성이 높고 오히려 서양식 근대 농기구들이 조선의 농사 현장에서는 효율이 상당히 안 좋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놀라워했다고 한다. 이후 오히려 조선 농기구들을 참고해 농기구들을 개량하기도 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나라가 한국보다 농업기술이 뒤떨어져서 호미 같은 도구를 발명하지 못했다고 해석하면 곤란하다. 애초에 논농사를 주로 짓는 아시아 문화권과 밭농사를 주로 짓는 서구권의 농기술이 같을 수 없다. 따라서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의 기후와 토질과 주요 재배 작물들에는 이런 것이 필요했고, 필요에 따라 한반도 사람들이 발명한 것이다. 세계사를 보면 이렇게 필요에 따라 그 나라에서만 발달된 특유의 기술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쟁기도 한나라 시절 중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지만, 질적으로 개선된 형태로는 서양권에서 만들어져서 개량되었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