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시
나하시(일본어: なはし, 오키나와어: ナーファ)는 일본 오키나와섬 남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오키나와현의 행정·경제·문화의 중심인 한편 최대 도시이며, 국제 공항인 나하공항과 일본 본토와 주변 섬을 묶는 나하항이 소재하여 오키나와현의 관문이기도 하다.
면적은 일본의 도도부현청 소재지 가운데 신주쿠구를 제외하고 가장 작고 인구밀도는 수도권과 긴키지방을 제외하면 일본에서 가장 높다(1제곱킬로미터당 8,040명). 특히 나하 공항이 도시 면적의 8%이상을 차지하는데 공항 면적에는 항공 자위대의 점유지도 포함된다. 주일 미군의 시설이나 나하 항의 항만 시설까지 포함하연 민간의 도시 이용 면적은 훨씬 좁아진다. 게다가 나하 공항의 고도 제한 때문에 시가지 상당수는 초고층 빌딩을 지을 수 없으며 그에 따라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나하시 외부 지자체의 주거지역화가 진행되어 나하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권의 인구는 약 75만이다. 특히 대도시를 제외하고 인구 감소가 보편적인 일본의 지방 도시들 중에서 나하시는 예외로 인구 증가가 계속되고 있다.
나하의 중심부는 흐르는 하천인 고쿠바 천(国場川)과 아사토 천(安里川)에 둘러싸인 평지 지대에 펼쳐져 있으며 나하시 및 오키나와현 주요 시설의 대부분이 그곳에 입지하고 있다. 근래에는 미군의 마키미나토(牧港) 주택지구가 반환됨에 따라 나하 신도심으로서 개발이 진행되어 고층건물과 상업지구등 나하시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목차
개요
- 지방: 규슈지방, 오키나와지방
- 도도부현: 오키나와현
- 시청소재지: 오키나와현 나하시 泉崎 1초메 1-1
- 면적: 39.98km²
- 인구: 312,099명(2024년 3월 1일)
- 시장: 시로마 미키코(しろま まきこ)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city.naha.okinawa.jp/
역사
류큐 왕국
나하는 원래 코쿠바 천과 아사토 천 하구의 만에 산재한 섬들이었다. 삼산시대인 1406년, 사시키의 아지(按司)[15]였던 쇼하시가 중산(中山)의 수도였던 우라소에를 공격, 당시 중산왕 부네이(武寧)를 물리치고 자신의 아버지 쇼시쇼를 중산왕에 옹립했다. 이 때 중산의 수도를 우라소에에서 슈리로 옮겼으며 슈리성을 류큐의 궁궐로 삼았다. 동시에 지금의 나하 일대가 정비되어 작은 항구가 되었다.
1451년에 쇼킨부쿠왕이 명나라로부터의 책봉사를 맞이하려고 명나라의 기술자 회기(懐機)에게 명해 쵸코테이(長虹堤)라는 길이 1㎞에 이르는 둑길을 건설시켜 오키나와 본섬의 아사토 천 쪽과 연결시켰다. 육로 교통이 정비됨으로써 항구로서의 발전이 시작되어 나하 4정(那覇四町)로 불리는 시가지가 형성됐다.
1392년 중국 푸젠성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은 나하의 쿠메 촌(久米村)에 정착하고 있었다. 이들은 쿠메삼십육성(久米三十六姓)이라 불렸으며 진공사, 통역, 선박 제조 등 류큐의 무역과 외교를 지탱하는 일에 종사해 왔다.
쇼신 왕(재위 1477-1526)은 중앙집권 정책으로 류큐 왕국 각지에 할거하고 있는 아지들을 슈리에 모여살게 했으며 슈리는 크게 확장되어 왕족, 귀족 그리고 관리들이 모여사는 류큐 왕국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이 때의 슈리를 가리켜 수이웨구니(首里親国, すいうぇーぐに)라고 불렀다. 한편 항구도시 나하는 중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잇는 중계무역으로 번영하였다.
16세기 왜구 등의 습격으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나하항 인근 해상에 있는 섬에 성벽을 쌓고 둑길을 만들어 코쿠바 천 하구의 나하항의 남북으로 방어용 포대 미에구스쿠(三重城)와 야라자모리구스쿠(屋良座森城)를 건설했다. 게다가 나하항의 맞은편 남쪽의 카키하나(垣花) 등에도 시가지와 항만이 건설되었다.
1609년 류큐가 사츠마 번에 종속당한 후, 류큐에서 사츠마측에 도자기 장인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고,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포로로 잡혀온 장헌공(張献功)이 류큐에 정착하여 나하의 치바나(知花)와 슈리의 타카라구치 (宝口)에 가마에서 도자기가 구워졌다.
토사의 퇴적으로 인해 나하는 류큐 왕국 말기에는 육지와 이어지게 되었다. 1879년 류큐 처분으로 류큐왕국은 멸망하였다. 새로이 설치된 오키나와 현은 기존의 건물들에 일본군 시설까지 들어서 자리가 없는 슈리 대신 나하에 현청을 두었고, 이때부터 나하가 슈리를 대신하여 오키나와의 중심지가 되었다. 나하는 오키나와 현의 물자 집적지, 상업 도시로서 번영을 거듭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평양 전쟁이 발발, 1944년 10월 10일 대규모 공습과 1945년 4월부터 시작된 오키나와 전투에 의해 시가지는 완전히 파괴됐다.
전후, 옛 나하시 중심부는 미군의 관리하에 들어가 군 시설에서 1마일 이내로 출입금지지역이 되었다. 주민의 대부분은 현 북부의 수용소에 옮겨져 있었다. 생활 물자 부족 해소를 위해 1945년 11월 나하시 츠보야 지구의 도자기 장인들이 먼저 돌아오고 12월에는 마키 지구의 기와 장인들 136명이 돌아왔다. 이어 가족이나 친척이 이주했으며, 이에 섞여 허가 없는 주민도 속속 나하에 머무르면서 츠보야로부터 신 현도(현재의 국제거리)일대에 차례로 마을이 부흥, 암시장도 자연적으로 확대했다.
이런 가운데 주민 중 한사람인 타카라 하지메(高良一)가 미군과 직접 협상해 미군의 물자 집적소가 있던 신 현도 도로변 땅(현재의 텐부스나하 근처)에 1948년 1월경 극장"어니 파일 국제 극장"을 개관했다. 이후 주변은 상업지로서 급속히 발전해 신 현도는국제거리로서 '"기적의 1마일"'이라고 불리게 된다.
1954년에 슈리를, 1957년에는 마와시를 합병하였다. 1958년에는 슈리성의 정문인 슈레이몬이 재건되었다. 1989년 슈리성 복원을 시작, 1992년에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개장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말 거의 복원을 완료했던 상황에서 화재로 인해 상당수의 전시물과 건물이 소실되었다. 화재 이전까지 20여 년에 걸쳐 복원된 만큼, 다시 복원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2003년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이 운행을 시작했으며, 2013년에 중핵시에 지정되었다.
지리
류큐 열도 최대의 섬인 오키나와섬 남부의 서쪽에 위치해 동중국해에 접하고 있다. 시 중앙부는 거의 평탄하고 주변부에 작은 구릉지대가 둘러싸듯이 있다. 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고쿠바 강과 아사토 강이 흐르며 동중국해로 흘러들어간다. 도미구스쿠시와의 접경지대에 있는 만 호(漫湖)는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습지이다.
북쪽에 우라소에시, 남쪽에 도미구스쿠시, 서쪽에 하에바루정과 접한다.
나하는 아열대성 온난 습윤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Cfa)에 속한다. 연평균 기온은 약 23도이며 연 강수량은 2,000밀리미터 이상으로 고온 다습하다. 겨울에도 최저 기온은 10도를 윗돌며 해양성 기후로 인해 여름 최고 기온도 35도를 넘지 않는다.
경제
3차 산업의 비율이 높고 특히 소매업의 규모가 크다. 또 시내에 나하 공항이 있어서 비즈니스객이나 관광객의 대부분이 나하를 방문하고 있다. 1998년에 오키나와 현을 방문한 관광객 412만명 가운데, 나하의 숙박 시설을 이용한 관광객이 많았다. 중심 시가지인 국제 거리는 종래에는 현지의 주민을 대상으로 한 가게가 많았지만 관광객의 증가에 의해 관광객을 상대로 한 선물품점이 증가해 현재는 상시 관광객으로 활기를 보이고 있다.
교통
중심 시가지는 전후 스프롤 현상으로 충분한 도시 기반 정비가 되지 않고 무질서한 도시화가 추진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로가 폭 12m이하로 좁다. 이렇게 좁은 도로가 만성적인 교통 체증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국제거리와 기타 간선 도로의 기능을 보완하는 도로가 거의 없거나 폭이 좁은 구간이 많으므로 국제거리와 기타 간선 도로에 더 부담이 걸려 있다.
이들의 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유이레일)이 개통됐다.
공항
나하 공항을 통해 오키나와나 일본본토 각지를 비롯해 아시아 각국과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2020년 전세계적으로 덮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 항공사 무기한 운항중지였다가 2023년 현재 아시아나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제주항공, 대한항공에서 인천발 나하행 항공편을 운항하고있다.
2019년 3월에 국제선 청사와 국내선 청사가 통합되었고 국내선쪽에 몰려있던 각종 편의시설이 일부 새로 생긴 건물로 옮겨져서 국제선 이용객들이 좀 편해졌다.
철도
다이쇼 시대에는 오키나와 현영철도 요나바루선, 카데나선, 이토만선이 있었다. 오키나와전기의 노면전차가 시내를 달리고, 이토만 마차 궤도도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쇼와 시대에 들어서자 오키나와 전기의 노면 전차와 이토만 마차 궤도는 버스와의 경쟁에 밀려 폐지되었으며, 남아있던 오키나와 현영 철도 노선도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운행을 멈춘다. 이후 오키나와 전투에서 기반 시설이 파괴되었고 전후 미군정 하의 오키나와에서도 복구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인구 집중으로 교통 혼잡을 겪던 나하에서 모노레일 건설을 시작, 2003년 8월 10일 전후 최초의 궤도계 교통수단으로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유이레일)이 개업하여 현재 오키나와 유일의 궤도 교통수단이 되었다. 도심 교통 혼잡 및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에 2량으로 운영하던 모노레일의 3량 변경[28]이 예정되어 있다.
해운
나하 항구와 토마리 항구로 나뉜다. 대부분의 여객선은 토마리 항구에서 출발하나, 나하 항구에서 모토부 항구와 연결되는 여객선이 다닌다.
관광
2000년 12월 세계유산 "류큐 왕국의 구스쿠 유적지와 관련 유산"으로 등록된 9개의 사적 가운데, 나하 시내에는 총 4곳이 존재하고 있다.
- 슈리성: 류큐 왕국의 도성으로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 시키나엔: 류큐 왕조의 정원. 중국에서 오는 사신과 귀빈을 접대하는 장소였으며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 국제거리: 일명 기적의 1마일. 겐초마에역(오키나와)과 마키시역 사이의 구간이다. 각종 오키나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들과 오키나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라이브 하우스가 밀집되어 있다.
- 파렛트 쿠모지(パレットくもじ): 국제거리 서쪽 끝, 겐초마에역(오키나와) 바로 앞에 위치한 쇼핑몰. 문화 시설들도 여럿 들어차 있다.
-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미술관 : 오모로마치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 츠보야 야치문 거리: 과거 수백년 동안 도공들이 몰려있는 지역이었으나, 오키나와 전투 이후 도시 구획 재개편과 젠트리피케이션을 거쳤다. 현재는 그냥 소규모 공방들과 까페, 기념품샵이 섞이며 전형적인 상업화된 관광거리로 변했다. 대규모 가마나 류큐 유리 공예 등의 작업 과정을 보고 싶다면 요미탄손의 도자기 마을 쪽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 이유마치 수산시장: 토마리 항구에 위치한 수산시장이다.
- 나미노우에 해수욕장: 나하시의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하지만 규모도 작고, 해안선쪽은 다리가 지나고 있어 전망도 그닥 좋지 않다. 나하시 바깥으로 나가면 훨씬 환상적인 해변들이 많이 있다.
축제
- 나하 하-리-: 오키나와현 내 최대규모의 행사이다. 하리(ハーリー)는 아시안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드레곤 보트와 비슷한 수상 경기로, 예로부터 풍어와 항해의 안전을 빌며 행해졌다. 매년 골든 위크에 개최되며 지역 방송국들이 생중계한다. 경기 이외에도 콘서트도 성대하게 열린다.
- 나하 마츠리: 세계 최대 규모의 줄다리기인 나하대줄다리기(那覇大綱挽)로 유명하다. 줄의 길이가 200m, 무게만 40톤이다. 행사 전날 도로 한가운데에 줄을 가져다 놓는데 줄의 굵기가 경차한대 크기다. 원래는 17세기부터 나하의 마을들이 동과 서로 편을 나누어 벌이던 축제인데 일본 제국 시절을 지나며 1935년에 중단되었다가 1971년 부활했다. 국도 제58호선 쿠모지 사거리에서 열린다. 행사날에는 노점상부터 관광객까지 엄청난 인파가 몰리지만 원한다면 직접 참가해볼수도 있다. 다만 힘 깨나 드는건 필연이니 다음날 근육통으로 고생하고 싶지 않으면 구경만 하자.
- 오키나와 산업 마츠리: 오키나와 현 내 최대규모의 종합 산업전이다. 매년 10월에 3일간 오오노야마 공원에서 개최된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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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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