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
사나(아랍어: صنعاء, Şan‘ā’, 영어: Sanaa)는 예멘(Republic of Yemen)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다. 아라비아반도 남서부 누쿰(Nuqum)산 서쪽 기슭, 해발 2,300미터(m) 사라와트 산맥(Sarawat mountains)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상 사나주(州)가 아닌 아마나트 알-아시마주(Amanat al-Asimah)의 앗잘(Azzal) 구역에 속한다.
개요
역사
사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사람이 지속적으로 거주하였던 도시 중 하나로, 기원전 4세기부터 예멘의 수도였으며 중심지였다. 고대 남부 아라비아반도 문자인 무스나드(Musnad)로 작성된 고대 사바왕국(Sabaean) 문서에서 이 도시를 "함단의 땅"이라고 표현하였고, 기원전 5세기 바킬(Bakil) 부족 지도자가 남긴 문서에는 이 도시를 "산우(San’u)"라고 표기하였다. 사나는 초기 사바 왕국의 언어로 "하메드(Hamed)의 땅"으로 번역되었으며 이는 "초목이 없는 땅"을 의미한다.
기원전 4세기 사바 왕족은 함단(Hamdan)의 자손들에게 왕권을 양위하였고, 이후 사나의 정치적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기원후 1세기 이후 반란을 일으킨 힘야르족(Himyarite)이 사바 왕조를 물리치고 사나를 장악하였다. 함단(Hamdan)인들과 힘야르인들 간의 지속된 전투 이후 함단인의 지도자인 하쉬드(Hashid)는 힘야르인들을 사나와 마으립(Ma’rib)지역에서 추방시켰다. 그리고 함단인들이 3세기 중반까지 사나를 다스렸다. 사나의 중요성은 힘야르인들이 다시 침략하며 줄어들었다. 당시 힘야르인의 지도자인 샴마르 야흐라아쉬(Shammar Yahra’ash)가 사나가 아닌 마으립을 수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5세기 샤르하빌 야으파르(Sharhabeel Ya’far)의 통치기간 동안 힘야르인들은 늘어가는 마으립의 인구 압박을 줄이기 위해 다수의 인구를 사나로 보내기도 했고, 이에 사나는 또다시 그 중요성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7세기 이슬람 초기 예언자 무함마드는 자신의 사촌 동생인 알리 빈 아비 탈립(Ali bin Abi Talib)을 예멘으로 보내 전체 함단부족이 이슬람으로 한번에 개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바 왕조의 궁전이자 함단부족 지도자들의 본부인 감단(Ghamdan) 궁전 근처에 모스크 알-자미 알-카비르가 지어졌다. 4대 정통 칼리프 시기 사나는 지배계층의 본부로 여겨졌으며 이후 우마이야 왕조가 건설될 때까지 그렇게 여겨졌다. 이는 9세기 말 압바시야 왕조 시대에도 이어졌다. 11세기에 사나는 라술리 왕국(Rasuli) 시기 수도가 타이즈(Taiz)로 옮겨졌으나 이후 타히르 왕조(Tahirid) 시대에 예멘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되찾게 되었다. 16세기 자이디파가 타히리조와 그들을 추종하는 이들을 죽이면서 타히리조는 막을 내렸다. 1538년 예멘에 입성한 오스만 제국과 자이디파 간에 전투가 계속되었다. 19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이 사나를 장악하기 전까지 자이디파가 사나를 통치하였다.
20세기 중반 이맘 알-바드르(al-Badr)가 통치하던 무타와킬 왕국(Mutawakkil)이 혁명세력에 의해 붕괴되고 1962년 혁명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이 혁명공화국은 현재 북부 예멘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이후 근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사나는 피해를 입었는데, 이때 고대 성벽이 무너지고 밥 알 예멘(Bab al-Yaman)만 남게 되었다. 사나는 1990년까지 예멘 아랍공화국의 수도였다. 1990년 예멘 통일 후 사나는 새로운 예멘 공화국의 수도로 지정되었다. 사나 내에 대통령 궁, 의회, 대법원, 정부부처 등이 위치해 있다. 2004년 예멘은 아랍국가연맹(League of Arab States)에 의해 아랍문화의 수도로 선정되었다. 2011년 예멘에서 아랍의 봄의 영향을 받은 혁명이 일어날 무렵 사나의 광장은 예멘의 주요한 혁명 광장 중 하나였다. 2014년 예멘 반군인 후티족이 사나를 장악하였으며 2015년 후티족을 목표로 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공습으로 사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가옥들이 파괴되었다.
지리
사나는 동쪽으로는 누쿰(Nuqum)산과 서쪽으로는 예멘에서 가장 높은 자발 안-나비 슈아이브(Jabal An-Nabi Shu'ayb)산 사이 고도 2,200m 이상의 평탄지에 위치한다. 사나가 자리잡은 완만한 지형은 동명의 평원에 속한다. 이 평원의 길이는 남북으로 약 50-60km, 동서로 약 25km 정도이며 남쪽으로 더 좁은 형태를 보이는데, 사나는 평원에서 가장 좁은 부분에 자리한다. 사나평원의 일부 지역은 비교적 최근까지 화산활동 징후가 발견되었는데, 사나에서부터 사나평원 북쪽으로 인접한 까알-바운(Qa al-Bawn)평원으로 가는 길에서 화산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기후는 사막기후 중에서도 매우 드물게 온화한 사막기후(BWk)에 속한다. 전체적으로 건조해 연평균 강수량은 약 265mm에 불과하지만, 2,200m 이상의 높은 고도로 인해 평균 기온은 아라비아반도의 다른 많은 도시들보다 훨씬 더 온화하기 때문이다.
가장 추운 달은 1월이고 가장 더운 달은 7월이지만 평균 기온은 일년 내내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로 인해 도시는 극한의 더위나 추위를 경험하지 않지만 사나 주변 고도가 더 높은 지역에서는 겨울 기온이 영하 9℃ 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사나는 기온의 연교차보다 일교차가 더 크게 나타난다. 가장 더운 기간인 6월부터 8월까지는 평균 일 최고기온 30℃ , 평균 일 최저기온 15℃ 를 보여 약 15℃ 의 일교차가 나타나고 겨울철에는 약 18℃ 의 일교차를 보인다.
강수량은 연평균 약 520mm이고 7월과 8월에 집중된다.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는 월평균 10mm 이하의 강수량을 보여 더욱 건조해진다. 또한 강수량은 해마다 불규칙한 특징을 보이는데, 연간 500~600mm의 강수를 경험하는 해가 있는 반면, 연간 150mm의 강수량을 기록하기도 한다.
사나는 예멘의 주요 도시들 중에서 강수량이 높은 편에 속하지만, 강수가 여름철에 집중되는 점과 증발량이 큰 환경적 이유로 인해 다른 도시와 같이 물 부족 문제를 겪는다. 사나는 대부분의 수원으로 지하수를 사용하지만, 1970년대에 지하 30m에 존재했던 지하수면이 2012년에 1,200m까지 내려간 조사 결과가 말해주듯이 지하수 사용도 어렵게 되었다.
행정 구역
사나는 예멘의 21개 주(州)정부(muhafaza)중 하나이며 명칭을 따라 사나주에 속하지 않고 확장된 도시 자체를 주로 형성한 아마나트 알-아시마주(Amanat al-A‘simah)에 속한다. 사나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1983년 사나 시는 시 자체가 한단계 더 높은 행정구역으로 격상되면서 그 자체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 아마나트 알-아시마주는 원래 9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2001년에 대통령령으로 바니 알 하리스(Bani al-Harith)구역이 포함되면서 총 10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 앗잘(A’zzal)
- 사브인(Sabeen)
- 올드 사나(Old Sanaa)
- 바니 알-하리스(Bani al-Harith)
- 앗-타흐리르(al-Tahrir)
- 슈아우브(Shua’ub)
- 마아인(Maa’in)
- 앗-싸우라(al-Thawra)
- 앗-사피야(al-Safiya
- 알-와흐다(al-Wahda)
도시구조
사나는 일반적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사나 옛 시가지는 굼단(Ghumdan) 왕궁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양분화된다.
구시가지는 원래 전체가 점토로 된 약 9~14 미터(m)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7개의 통로로 사용하던 아치형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현재 남은 것은 바브 알-예멘(Bab al-Yaman) 하나이다. 이 성벽 내에는 100개 이상의 모스크, 12개의 목욕탕(함맘, Hammam), 그리고 6,500채의 집이 있다. 동쪽에는 행정지역과 상업지역이 존재한다. 이 지역은 개발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호텔, 상점, 식당 들이 들어섰으며 대통령 관저와 국립박물관이 있다. 사나의 구시가지는 기하학적 패턴으로 장식된 돌과 벽돌로 지은 타워 형식의 건축 구조로 유명하며 이 건물은 세밀한 조각으로 이루어진 장식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높이는 최대 8층에 달한다. 보통 한 건물에 하나의 부계 가족을 수용해 아들이 결혼하면 새로운 층을 지었다.
서쪽은 신시가지로 19세기 말 발전하였으며 그 당시 튀르키예인과 유대인의 거주지구가 있었다. 예멘에 존재하였던 유대인들은 아랍이스라엘분쟁이 시작된 후인 1949년에서 1950년 사이 모두 이스라엘로 떠났다.
신시가지는 1960년 북예멘의 수도가 되었을 때 개발되었다. 신도시는 구도시와 비교해 현대식 건물이 불규칙적으로 존재하는 형태를 지닌다. 또한 신시가지의 주택은 구시가지와 달리 울타리가 있고 마당이 있는 저층 주택의 형태나 철근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이집트 스타일'의 주택의 형태를 가진다. 이러한 주택의 형태는 사나 북부와 동부 지역에서 볼 수 있다. 교외 지역은 계획된 지역이 아니고 농촌지역에서 이주해온 이들이 정착하면서 발달하였고, 도심의 토지가격과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점차 인구가 이동해오기도 하였다.
교통
사나의 인구가 점차 증가하면서 교통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도시 내의 투자금은 도로정비를 위해 사용된다. 이에 사나의 도로망은 광범위하며 대부분 남북으로 도로가 이어지며 도시를 가로지르는 두 개의 순환대로가 있다. 대중교통 체계는 비공식적으로 운영된다. 정부에서는 내무부와 교통부가 교통 분야를 관장한다. 대중교통수단은 보통 버스나 미니밴이며 일부 버스 터미널도 운행되는 등 발달되어 있다. 도시의 외곽지역으로의 이동은 아직 힘들어 오랜 시간 걸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내전이 시작되고 사나 내부에서도 무력충돌이 있어 일부 도로는 재건이 필요한 상황이다.
도로교통법이 2003년 3월 적용되면서 예멘의 육상 교통수단 규정이 공표되었다. 이 전에는 육상교통 서비스가 독점으로 제공되어 다른 사립 회사가 신규 등록을 하려면 그 과정이 복잡하고 가격이 비쌌으나, 도로교통법의 규정을 마련한 후 여객과 화물 서비스의 가격이 낮추어지고 더 나은 환경이 구축되었다. 사나의 버스와 택시 서비스는 대부분이 민간기업이다.
사나에는 철도가 설치되어 있지는 않으나 국제공항이 위치한다. 사나 국제공항은 국내와 국제 운항을 모두 운영하는 예멘의 가장 주요한 공항이다. 예멘 국영항공사인 예메니아(Yemenia)는 사나에 본부를 두고 있다.
인구
국제연합(UN) 도시화 측정 프로젝트에 따르면 2021년 예멘의 인구는 약 3백 8만 명 정도이며, 인구의 약 10%가 사나 옛 시가지(Old Sana'a)에 거주하고 있다. 2015년 인구 추계가 약 290만에서 300만 사이였으므로 큰 폭의 인구증가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예멘의 인구는 1974년 4.38%대의 인구증가율이 1975년 7.08%를 넘어섰고, 1976년부터 1985년까지 꾸준히 약 11%가 증가하였다. 이 시기는 1960년 이후 도시로 이동하는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 후 1994년까지도 10% 대의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차 내전 이후인 1995년, 인구증가율은 7.47%대로 줄어들었고 그 후로 2004년까지 약 5.47% 의 증가율을 보였다. 남부 예멘과 북부 예멘의 통일 이후인 1990년부터 예멘 반군인 후티족이 반란을 일으킨 2004년까지 사나의 인구 증가율은 약 169%에 달했으며, 1차 내전이 있었던 1994년에서 2009년까지 사나의 인구는 100% 이상 증가하였다. 그리고 인구 증가율의 하락세는 결국 그 이후로 약 3.5%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숫자는 점차 더 작아지고 있다.
사나 인구는 젊은 편으로 인구의 약 60%가 18세 이하이고 12%가 15세에서 24세 사이다. 사나는 역사적으로 실향민들이 향하는 목적지가 되어왔다. 직장이 없거나 가뭄과 같은 기후 관련 문제로 시골을 떠나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사나 출신이 아니라 예멘의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인구의 약 70%는 바니 알-하리스(Bani al-Harith), 마아인(Ma’ain), 그리고 앗-사빈(al-Sabine) 구역에 거주하고 있다.
경제
역사적으로 사나의 경제는 대부분 규산염, 준보석의 채굴, 금속가공 및 과일 재배에 의존하였다. 예멘의 수도라는 이유로 사나에는 국가에서 가장 많은 수의 상업 시설과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은행그룹의 《도시개발전략, The City Development Stratege》에서는 2009년 사나의 경제를 '수도경제'라고 정의하였으며, 사나의 경제는 인구에 비해 그 규모가 크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국가 경제 활동과 고용 및 공공 부문 행정기관이 사나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이다. 2002년 기준 사나의 약 30만 개 직업 중 공무직이 가용인력의 40%를 차지하였다. 사나가 속해있는 주정부 아마나트 알 아시마는 2004년 당시 국가 기관 전체 중 16%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해당기관에서 예멘 고용인력의 22%가 종사하고 있었다.
사나의 사업장 평균 규모는 사업장 당 3.88명으로 작은 규모에 속하며, 비농업 고용 중 약 30%가 공공부문이 차지한다. 상업과 소규모 서비스 사업이 사나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며 그 집중도가 다른 도시에 비해서 높은 편이다. 또한 예멘 전체 평균에 비해 일반 행정, 호텔 및 레스토랑, 그리고 운송 분야의 고용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농업은 예멘 경제의 핵심으로 특히 사나가 포함된 북부 예멘의 고지대에서 작물 대부분이 생산된다. 그러나 토양침식, 사막화, 수자원 부족, 명확하지 못한 법률, 구식 농경기술 등으로 결국 환금 작물에 대한 집중도가 높다. 보통 커피, 과일, 곡물 및 카트(Qat) 를 재배한다. 사나의 경우 도시 북서쪽에 있는 분지에서 물을 끌어오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아마 이 자연 분지에 있던 수자원은 이미 고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카트의 경우 환금성이 가장 높은 작물로 일부 고원지역 농부의 90%가 카트를 재배한다. 사나 외곽의 바니 하리스나 바니 후샤이쉬(Bani Hushaysh), 그리고 함단(Hamdan)의 농부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부족한 수자원을 무허가 시추를 통해 끌어와 카트를 재배한다.
사회
사나에서는 14세기에 형성된 '알-기나 알-사나이(al-Ghina al-Sana’i)', '사나의 노래'라고 불리는 특정한 형식의 음악으로 유명하다. 이 음악은 200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형식의 음악은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되며 결혼식이나 오후 사교행사와 같은 사회적 행사에서 연주된다. 이 음악은 보통 칸부스(qanbus)라고 하는 기타형식의 현악기와 사흔 누하시(sahn nuhasi)라고 하는 구리로 된 쟁반 모양의 악기로 연주된다. 사흔 누하시는 손가락으로 튕기며 소리를 낸다.
사나의 연극은 약 1세기 전부터 활발히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연극 공연은 마르카즈 알-타카피(Markaz al-takafi)라고 하는 문화극장에서 개최된다. 연극 분야에서 예멘 여성은 남성과 함께 각본, 연출 등에 참여한다. 그러나 2014년 예멘 반군인 후티족의 사나 장악 이후 복장, 성별 분리, 내용 검열 등 많은 규제를 받게 되었다.
사나에서는 여름 축제가 개최되는데 예멘 관광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최하는 축제로 일반적으로 한 달 동안 지속된다. 이 축제에는 민속무용, 전통 패션쇼 및 예술 전시가 진행된다. 축제 시작을 알리는 밥 알-예멘 카니발은 축제 기간 중 가장 인기있는 명소 중 하나이다.
사나 내에는 행정구역별로 별도의 공립학교가 존재한다. 사나의 국립대학은 사나 대학교(Sanaa University)로 1970년 교사양성의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총 17개의 단과대가 존재하며 학부과정에서 박사과정 교육까지 제공한다. 그 외 사립대학으로 과학기술대학교(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퀸 아르와 대학교(Queen Arwa University), 알-에만 대학교(al-Eman University), 그리고 사바 대학교(Saba University)가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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