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차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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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차밤바(Cochabamba)는 볼리비아 중부 코차밤바주의 주도로,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인구는 약 63만 명으로 볼리비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코차밤바주의 행정부 소재지로 주의 서부에 위치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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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코차밤바는 안데스산맥 알티플라노 고원의 동쪽 산간 분지에 위치한 고산 도시로 해발고도는 약 2,600m이다. 라파스에서 남동쪽으로 230km 떨어진 곳에 있다. 연중 일조량이 많고 온화한 기후가 지속되어 ‘영원한 봄의 도시’ 또는 ‘정원 도시’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유럽인들이 남아메리카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케추아족 등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1571년 에스파냐 인들에 의해 오루로 등 인근 광산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기지로 건설되었다. 도시는 주민의 대부분이 인디오와 메스티소이며 주변의 비옥한 경지를 이용하여 보리, 옥수수, 밀, 과수 등을 재배한다. 볼리비아의 대표적인 농산물 집산지일 뿐만 아니라, 정유업 등 제2차 산업도 발달해 있다. 볼리비아 주요 농업 지역의 중심지로 교통의 요지이며 정유공장 외에 직물, 식품, 목재 등의 공장이 있다. 고원에 자리잡고 있어 기후가 쾌적하고 풍경이 뛰어나 휴양지로서도 알려졌다. 오루로와는 철도로, 라파스와는 고속도로로 연결되며 국제, 국내 항공로도 집중해 있다. 1832년 창립된 산시몬 대학 및 많은 교육기관이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코차밤바(Cochabamba)는 안데스산맥의 알티플라노(Altiplano) 고원 동쪽에 형성된 산간 분지에 위치하며, 평균 해발고도는 2,570m에 이른다. 볼리비아 전체 국토에서 거의 중앙에 해당하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볼리비아 지형의 큰 틀을 보면, 서부에는 알티플라노 고원이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으며, 동부는 아마존강(Amazon)의 여러 지류들이 흐르는 저지대이고, 중앙부는 여러 개의 산맥이 남-북 주향으로 평행하게 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코차밤바는 이 중앙부 산지에 레알산맥에서 오리엔탈산맥으로 이어지는 지점에 발달한 도시로서, 서부의 알티플라노와 동부 저지대를 잇는 길목에 해당한다. 코차밤바의 주변 산지는 아마존강의 지류인 마모레강(Mamoré)이 발원하는 곳으로, 수많은 하천이 동쪽 산기슭을 타고 흘러 내려가며 차례로 합류하여 마모레강을 이룬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코차밤바의 기후는 중위도 스텝 기후(BSk)의 특색을 띤다. 연평균 기온은 16.1℃이며, 연중 월평균 기온이 가장 높은 달은 18.3℃, 가장 낮은 달은 12.1℃로 기온의 연교차가 적고 일 년 내내 온화하다. 이러한 기후적 특색으로 코차밤바는 ‘영원한 봄의 도시’ 또는 ‘정원 도시’라고도 불리며, 볼리비아의 이름난 휴양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연평균 강수량이 363㎜ 정도로 적기 때문에, 오루로(Oruro) 등 인근 산간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강수만으로는 부족한 생활용수를 관개 시설을 통해 확보하고 있다.[3]
역사[편집]
온화한 기후를 띤 안데스 산지의 분지에 입지한 코차밤바에는 고대부터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모여 살았고, 잉카(Inca) 제국의 영토에도 포함되었다. 코차밤바 일대의 원주민들은 주로 케추아족(Quechua)이었으며, 이들의 언어인 케추아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남아메리카를 식민화한 에스파냐인들이 코차밤바에 도시를 건설한 때는 1571년이었다. 에스파냐의 페루 부왕(副王, Virreinato del Peru)이었던 프란시스코 알바레스 데 톨레도(Francisco Álvarez de Toledo)는 오늘날의 코차밤바 지역에 자신의 작위인 오로페사(Oropesa) 백작의 이름을 딴 비야데오로페사(Villa de Oropesa)라는 도시를 세웠다. 이 도시는 포토시(Potosí) 등 인근 광산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기지를 목적으로 세워졌다. 비야데오로페사는 에스파냐 식민 시대 당시 세계 최대의 은광 도시였던 포토시의 번영과 더불어 발전하였다.
1781년 오루로에서 일어난 원주민들의 봉기는 비야데오로페사가 오늘날의 코차밤바로 이름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1786년 에스파냐의 국왕 카를로스 3세(Carlos Ⅲ)는 이 봉기를 진압한 공로를 기리는 동시에 식민지의 또 다른 봉기를 미리 막으려는 차원에서 도시의 이름을 비야데코차밤바(Villa de Cochabamba)로 바꾸었다. ‘코차밤바’라는 지명은 케추아어로 호수라는 뜻의 쿠차(qucha)와 평원이라는 뜻의 팜파(pampa)에서 유래하였다.
1999년 12월부터 2000년 4월까지 코차밤바의 수도가 민영화되어 수도요금이 폭등하자 대규모 시위가 진행되었다. 육군 대위가 시위대에 발포하여 고등학생 1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볼리비아 정부는 코차밤바에 90일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비상사태 기간을 전후하여 발생한 충돌로 군경과 시위대 양측에서 총 6명이 사망하고 175명이 부상당했다.
볼리비아 독립 이후에도 코차밤바는 농업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으며, 20세기 이후에는 정유 공장 등의 산업 시설도 들어섰다. 쾌적하고 온화한 기후 덕분에 휴양지 및 관광지로도 널리 알려졌다.[4]
경제[편집]
코차밤바 일대는 토양이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하며, 강수량은 적지만 관개용수를 확보할 수 있어서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 이 지역은 지금도 볼리비아의 곡창으로 불리고 있으며, 코차밤바 시는 지역 농산물 거래의 중심지 구실을 하고 있다.
코차밤바 주변의 비교적 서늘한 고산 지대에서는 옥수수 등의 곡물, 감자, 커피 등이 주로 재배되며, 동쪽 산기슭의 저지대에서는 사탕수수, 카카오, 담배, 과일 등 더운 기온에 잘 자라는 작물이 재배된다.
코차밤바에는 산타크루스(Santa Cruz), 수크레(Sucre), 오루로(Oruro) 등 인근 도시들과 연결된 정유 공장이 들어서 있다. 이 정유 공장은 산유국 볼리비아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산업 기반이다. 이 밖에 식품 가공업, 직물 제조업, 가구 제조업 등의 경공업도 발달해 있다.
교통[편집]
코차밤바에는 호르헤윌스테르만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Jórge Wilstermann)이 자리 잡고 있다. 볼리비아 최초의 민간 항공기 조종사인 호르헤 윌스테르만의 이름을 딴 이 공항에는 국내 지역을 연결하고 아르헨티나 등 인근 남아메리카 국가들을 오가는 항공사들이 취항 중이며, 볼리비아 국영 항공사인 볼리비아 항공(Boliviana de Aviación)의 본사가 입지해 있다.
코차밤바는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 데다 서부 알티플라노(Altiplano) 지역과 동부 저지대를 잇는 길목이기도 하여, 볼리비아 각지로 연결되는 도로망을 갖춘 육상 교통의 요충지이다. 이처럼 편리한 육상 교통은 코차밤바가 볼리비아의 농업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이기도 하였다.
관광지[편집]
광장과 재래시장[편집]
코차밤바 시내 중심부에 자리한 콜론 광장(Plaza Colón)과 9월14일 광장(Plaza 14 de Septiembre)은 시의 주요 랜드마크이다. 시민의 주요 휴식처이자 집회 장소이기도 한 이 두 광장을 따라 호텔, 업무용 빌딩, 쇼핑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9월14일 광장은 코차밤바가 건설된 날짜인 ‘9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라칸차(La Cancha) 시장은 코차밤바를 대표하는 재래시장으로, 코차밤바 고유의 생활 모습과 풍습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코차밤바 예수 그리스도상[편집]
코차밤바 동쪽 산페드로(San Pedro) 언덕에는 1994년에 세워진 높이 약 40m의 예수 그리스도상(Cristo de la Concordia de la Concordia)이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의 예수 그리스도상보다도 2m 정도 더 높고 한때 세계 최대 규모였으나, 2010년 폴란드에 높이 50m가 넘는 예수 그리스도상이 들어서면서 세계 최대라는 타이틀을 넘겨주었다. 이 예수 그리스도상은 내부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머리 부분뿐 아니라 몸 곳곳에 창문이 나 있어, 이를 통해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가톨릭 관련 유적[편집]
코차밤바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남아메리카의 도시답게 시내 곳곳에 도시의 오랜 역사와 가톨릭 문화를 간직한 성당들이 남아 있다.
9월14일 광장에 연해 있는 코차밤바 대성당(Catedral de Cochabamba)은 코차밤바시가 세워질 무렵인 1571년에 건설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성당이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8세기 초에 건축된 것으로 코차밤바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미사가 집전되고 가톨릭 신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코차밤바 대성당 다음으로 오래된 성당은 1581년에 세워진 산프란시스코 성당 및 수도원(Iglesia y Convento de San Francisco)이다. 코차밤바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이 성당도 최초의 건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18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졌다. 17세기에 세워진 레콜레타 성당(Iglesia de la Recoleta)은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예수 목상(木像)으로 유명하다. 또한 산토도밍고 성당(Iglesia de Santo Domingo)은 1612년에 계획되었으나 1778년에야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출입구 정면부인 석조 파사드(façade)와 기둥의 민속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다.
박물관 및 기타 명소[편집]
코차밤바 고고학박물관(Museo Arqueológico)은 볼리비아의 고고학 및 민속학 관련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볼리비아, 특히 코차밤바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민속학적 자료를 접할 수 있다. 케추아 족(Quechua) 등 코차밤바의 원주민 문화, 에스파냐 식민 시대 이후 에스파냐 문화와 원주민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를 체험하고, 코차밤바 일대에서 발견된 고생물 화석 등도 살펴볼 수 있다.
알시드도르비니 자연사박물관(Museo de Historia Natural Alcide d’Orbigny)은 남아메리카 답사를 바탕으로 고미생물학을 창안한 프랑스의 생물학자인 알시드 도르비니(Alcide Desalines d’Orbigny)의 이름을 딴 박물관으로, 지질학 및 생물학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포르탈레스 대저택(Palacio Portales)은 20세기 오루로(Oruro) 주석 광산 개발로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던 주석왕 시몬 이투리 파티뇨(Simón Iturri Patiño)의 별장이다. 이 화려하고 웅장한 대저택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바티칸 시국, 에스파냐의 알람브라 궁전 등 세계적인 건축물을 본보기로 해서 건축되었으며, 1915년에 착공하여 1927년에 완공되었다. 오늘날에는 문화 행사 및 교육 활동에 널리 활용되고 있는 명소이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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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코차밤바〉, 《위키백과》
- ↑ 〈코차밤바(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코차밤바의 위치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 ↑ 〈코차밤바〉, 《요다위키》
- ↑ 〈코차밤바의 주요 관광 자원〉,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코차밤바〉, 《위키백과》
- 〈코차밤바〉, 《요다위키》
- 〈코차밤바(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코차밤바의 위치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 〈코차밤바의 주요 관광 자원〉,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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