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필립만
포트필립만(Port Phillip Bay)은 호주 빅토리아주의 만으로 멜버른과 맞닿아있다. 부르난큰돌고래의 서식지라고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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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 포트필립만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빅토리아주 남부 해안에 있는 만(灣)이다. 넓이 1930㎢, 해안선 길이 264㎞인 거대한 만이다.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이 24m이고 절반 이상이 8m에도 못 미칠 정도로 만의 크기에 비하여 수심이 매우 낮은 편이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항행은 가능하다. 만의 북쪽 끝 야라강 어귀에 빅토리아주의 주도인 멜버른이 있고, 만의 서부 분기점 끝에 있는 코리오만(Corio Bay)에 절롱이 있다. 코리오만을 비롯하여 보매리스만(Beaumaris Bay)·세인트킬다해변(St. Kilda Beach)·브라이턴해변(Brighton Beach)·홉슨스만(Hobson"s Bay) 등을 포함한다. 립(Rip)이라 부르는 만의 입구는 론즈데일곶(Point Lonsdale)과 네피언곶(Point Nepean) 사이에 좁게 나 있는데, 해수면의 불규칙한 등고선으로 인하여 조류가 사납다. 만의 동쪽은 길게 이어지는 모래사장이 특징이다. 연안의 조류가 겨울에는 모래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여름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시킨다. 절벽의 사방공사로 인하여 종종 모래가 부족하기 때문에 근해를 준설하여 해변에 보충한다. 만의 서쪽에는 퀸스클리프(Queenscliff)·세인트레너즈(St. Leonards)·인덴티드헤드(Indented Head)·포탈링턴(Portarlington) 등지에 다양한 해변이 형성되어 있다. 만의 남쪽에는 모래톱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2]
- 포트필립만은 호주 남동부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도시 멜버른을 보유한 만이다. 만 이름은 호주 최초의 정착단을 지휘한 아서 필립을 따서 이름 지었다. 남서쪽은 베라린 반도와 남동쪽은 모닝턴 반도에 둘러싸여 있다. 베라린 반도의 북서쪽에는 질롱을 보유한 항만 만 코리오만이 있다. 만 밖은 인도양과 태즈먼해를 맺고 있는 배스해협이다. 만에 동북에서 야라강 북서쪽에서 매리비농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1982년 12월, 포트 필립만 북서 연안의 갯벌은 람사르 협약 등록지가 되었다. 기타 절멸위기종인 비터 오렌지배 앵무새가 이 만의 3곳의 월동지와 베라린 반도에 2011년에 발견한 100에서 150마리 정도 밖에 생존하고 있는 신종 돌고래 '부르난큰돌고래'의 주요 서식지이기도 하다. 또한 돌고래가 2006년에 만 동부에 정착하기 시작, 최근에는 혹등고래와 남방 [북태평양참고래]]의 항만에서 확인 수도 증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동만은 특히 남방 고래에게의 온상이었을 가능성이 있고, 지금도 가끔 프랭크스턴 등의 물가 근처에 나타나는 일도 있다. 기각류는 정착하는 호주 물개 등 3종류의 물개, 호주 바다사자가 들어갈 수 있는 다른, 때로는 남방코끼리물범가 들에 대해서 하거나 표범물개도 나타난다.[3]
- 포트필립만은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빅토리아 주 남부, 배스 해협에 면하여 있다. 영국 탐험가 매튜 플린더스는 1802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일주 보고서에서 훗날 빅토리아 주가 된 이곳 바다에 입성하던 당시와 멜버른의 위치를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새롭고 유용한 발견을 한 나 자신을 축하했다. 하지만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훗날 포트잭슨에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이곳은 나보다 10주 전에 레이디 넬슨의 (중략) 존 머리 대위가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이곳의 이름을 포트필립이라고 붙였다.' 포트필립만은 지질학적으로 보면 이곳은 지구(地溝)에 해당하며 약 1만 년 전인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 형성되었다. 당시 거대한 육지가 지금의 모닝턴반도의 한쪽 끝에 발생한 단층선을 따라 침강해서 큰 바다가 만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육지가 가라앉으면서 큰 바다가 웨스턴포트베이를 형성하자 두 번째 지구가 형성되었다. 만은 물이 맑고 수심이 깊지 않은데, 평균 수심이 13미터에 불과해서 빛이 바닥까지 닿을 정도이다. 좁은 지협이 배스해협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로 손꼽히는 곳을 갈라놓고 있다. '립'이라고 하는 이 바다에서 지난 160년간 100척에 가까운 배가 난파했다. 좁고 암초투성이에 파도조차 예측할 수 없는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려면 이곳을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그레이트쉽 채널의 가운데로 배를 몰아야 한다. 이를 위해 도선사(導船士, 도선법에 따라 일정한 지역에서 배들을 안전하게 수로로 인도하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두 곳의 등대를 기준으로 삼는다. 19세기에는 대형 선박들이 만으로 들어와 빠져나가려다 많이 난파했다. 지금은 도선사가 모든 선박에 승선한다. 이 해협의 거친 바다는 모래 해변과 험준한 화강암 곶을 마구 할퀴어 해안선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포인트네핀은 모닝턴 반도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로 풍경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포트필립만 입구의 거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포트필립만의 지리환경[편집]
- 포트필립만은 물새와 철새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주요 지점이다. 소렌토(Sorrento)에서 떨어진 머드제도(Mud Islands)는 흰얼굴바다제비(White-faced Storm-Petrel)·은갈매기(Silver Gull)·오스트레일리아사다새(Australian Pelican)·태평양갈매기(Pacific Gull)의 주요 서식처이다. 또 오스트레일리아물개의 번식지이기도 하고, 등대 위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부비새(Australian Gannet)가 번식한다. 만 북서쪽에는 국제습지조약에 따라 습지대로 지정된 염소(鹽沼)가 있다.
- 포트필립만은 마지막 빙하기인 약 1만 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원주민들은 그 훨씬 전인 약 2만~4만 년 전부터 거주하였다. 1802년 2월 15일 존 머리(John Murray)가 이끄는 레이디넬슨(Lady Nelson) 호가 유럽인으로는 처음 발견하여 당시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지사인 필립 기들리 킹(Philip Gidley King)의 이름을 따서 포트킹(Port King)이라 명명하였으나, 나중에 킹이 선임자였던 아서 필립(Arthur Phillip)을 기려 포트필립만으로 개칭하였다. 킹은 이곳에 유형지를 세우기로 하고 1803년 데이비드 콜린스(David Collins) 대위를 파견하였다. 콜린스 일행은 원래 설리번만(Sullivan Bay)에 개척지를 세우기로 하고 호바트라고 이름까지 지었으나 용수(用水)와 목재 부족으로 포기하고, 태즈메이니아로 이동하여 그곳에 호바트를 건설하였다. 1835년 존 배트먼(John Batman)과 존 패스코 포크너(John Pascoe Fawkner)가 이끄는 사람들이 태즈메이니아에서 올라와 야라강 하류의 멜버른에 정착하였으며, 1838년에는 절롱이 건설되었다. 멜버른은 1851년 골드러시의 영향으로 빅토리아주의 최대 도시로 자리를 잡았으며, 멜버른이 번성하자 부자들이 포트필립을 여가 활동지로 이용하였다. 이에 따라 세인트킬다와 브라이턴 등 해변의 교외지가 도시의 남동부를 따라 형성되었고, 소렌토와 포트시(Portsea) 등 좀 더 남쪽에도 리조트가 형성되어 휴양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빅토리아주[편집]
빅토리아주(Victoria)는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에 있는 주이다. 주도(州都)는 멜버른. 처음에는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일부였으나 1851년에 분리되었다. 지형적으로는 동부산지, 남부 해안평야, 중앙고지, 머리강 유역 평야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 주는 면적은 작으나, 삼림 ·물 ·광산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머리강 유역에서는 관개공사가 진전됨에 따라 농목축 생산이 활발해졌으며, 대규모로 소와 양을 사육한다. 또 동부산지의 스노위 ·흄 댐에 의한 수력발전은 크게 발전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최대의 전력공급지이다. 광물자원으로는 석탄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편 빅토리아주 인구의 2/3가 집중된 멜버른은 이 나라 제2의 도시로서 시드니와 함께 상공업 ·문화 ·교육의 중심지를 이룬다.
멜버른[편집]
- 멜버른(Melbourne)은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빅토리아주(州)의 주도(州都)이다. 깊이 만입한 포트필립만(灣)의 북안(北岸) 야라강(江)의 저지 및 구릉지에 있다. 기후가 온화하여 연평균기온이 14.7℃이며, 가장 더운 달(2월)의 평균기온 19.9℃, 가장 추운 달(7월)은 9.6℃이다. 연강수량은 691mm이며, 월평균강수량이 50∼70mm로 고르다. 멜버른이 급속하게 발전한 것은, 포트필립만이 빅토리아주에서는 대형선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항구이기 때문에 외국무역이 성행하였고 이에 따라 각종 공업이 활발해졌기 때문이었다. 현재 멜버른은 중화학공업도시이며 오스트레일리아 제2의 무역항이기도 하다. 농산물 가공 외에 자동차·전기기계·항공기·화학공업·석유정제·금속·직물 등의 공업이 발달해 있으며, 그 중심은 포트필립 북부의 만입(灣入)인 홉슨만(灣) 연안의 포트멜버른에 있다.
- 멜버른은 호주 대륙의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륙에서는 최남단에 위치한 빅토리아의 주도이다. 지리적으로 보면, 서쪽으로 네 개의 용암이 흘렀던 합류 지점에, 동쪽으로는 제4기 이암이, 포트 필립스를 따라서 남동쪽으로 홀로세 모래가 쌓인 합류지점에 건설되었다. 남동쪽 시외는 마사 산과 크레인본을 가로지르는 셀윈 단층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멜버른은 야라를 따라 야라 계곡과 단데농 산맥 쪽으로 뻗어있으며, 동쪽으로는 야라 산맥으로 확장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야라 지류의 침수된 관목 계곡을 관통하고 있다. 포트 필립 베이에 위치한 교외 동쪽으로 펼쳐져 있다. 만 입구의 남동부에 위치한 쇼핑센터와 야라 구릉에서 야라 강이 따라 흐르고, 마리비농 강과 그 지류의 서쪽과 북쪽은 평평한 농업지역이다. 구 시가지는 초 고층 빌딩이 늘어선 풍경을 볼 수 있고, 그 남단은 야라 강에 접한다. 교외는 인구 밀도가 낮고, 한쪽 편 4차선 정도의 도로가 바둑판의 목장에 깔려 있고, 단독주택에서는 넓은 정원을 가진 집들이 늘어서 있다.
포트필립만의 기후[편집]
- 포트필립만은 서안 해양성 기후(Cfb)로 분류되지만, 날씨가 변하기 쉽다. 겨울에는 굉장히 춥지만, 눈이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2006년에는 관측 사상 최악의 가뭄에 시달렸다. 평소라면 연간 비교적 강수량이 많은 9월, 10월에 전혀 비가 내리지 않았다. 2009년 2월 7일에는 관측 사상 최고 기온 46.4°C를 관측했다. 이는 평년보다 약 20 °C 높은 것이었다.
절롱[편집]
- 절롱(Geelong)은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州) 남부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멜버른의 남서 72km, 포트필링만(灣)의 서안에 위치한다. 빅토리아주 제2의 도시이며, 주변이 비옥하여 농목업의 중심을 이룬다. 산업은 화학비료·양모·모직물·농기구 등과 그 밖에 자동차·알루미늄·정유·유리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 또 밀의 수출항으로서도 알려져 있다.
야라강[편집]
- 야라강(Yarra River)은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에 위치한 강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비라룽(Birrarung)이라고도 한다. 강의 하류는 1835년 멜버른 시가 세워진 곳으로 오늘날 광역 멜버른이 하류의 풍경을 지배하고 영향을 미친다. 야라 산맥의 근원에서 서쪽으로 242km를 흘러서 멜버른을 지나 평야로 접어든 후 최북단 포트필립의 홉슨만으로 흘러간다.
윌리엄스타운[편집]
-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州) 있는 도시이다. 포트필립만(灣)의 해안에 있는 유서 깊은 항구로서 고풍스런 정취를 느낄 수 있다. 1803년 순양함을 타고 포인트젤리브랜드를 방문했던 유럽인이 첫발을 디딤으로써 알려졌으나, 이주민들이 정착하게 된 것은 1830년대 중반부터이다. 1839년 최초의 부두가 세워졌고 빅토리아주의 골드러시 시절에는 수천 척의 선박들이 이곳을 왕래하였다. 1859년 멜버른에서 윌리엄스타운까지 철도가 개통되었다. 1886년 읍으로, 1919년 시(市)로 인가되었다. 가볼 만한 명소로는 노스윌리엄스타운 역 근처에 증기기관차·디젤기관차·전기기관차·마차·왜건 등을 전시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철도역사박물관과 윌리엄스타운 역사사회박물관이 있다. 인근에는 오스트레일리아 각지와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의 초원지대에서 들여온 동물들을 방목하고 있는 윌리엄스타운 개방동물원이 있다.
사우스멜버른[편집]
- 사우스멜버른(South Melbourne)은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州) 멜버른의 교외지역이다. 멜버른에서 남쪽으로 2km 떨어져 있는 교외지역으로 야라강(江) 남쪽 제방과 포트필립만(灣) 사이에 있다. 정착 초기에는 에머럴드힐로 알려졌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에머럴드힐은 늪지대와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름에는 늪지대가 건조해져 개발 이전에는 오락장이나 군사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 야라강 남쪽의 정착지는 샌브리지 해변의 방파제에서부터 멜버른과 연결되어 있다. 1855년 5월 26일 멜버른과 분리되어 자치읍이 되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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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만〉, 《위키백과》
- 〈만〉, 《나무위키》
- 〈만〉, 《네이버지식백과》
- 〈배스 해협〉, 《위키백과》
- 〈포트 필립〉, 《위키백과》
- 〈포트 필립 만〉, 《나무위키》
- 〈부르난큰돌고래〉, 《위키백과》
- 〈배스해협(Bass Str.)〉, 《두산백과》
- 〈포트필립만(Port Phillip Bay)〉, 《두산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