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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 개요 == |
2022년 12월 8일 (목) 23:16 판
기호지방(畿湖地方)은 수도인 서울과 그 주변 지역을 뜻하는 경기도 지방(기전 지방)과 충청권인 호서 지방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1][2][3]
개요
서울특별시 중심으로 인천광역시, 경기도 등의 수도권 지역과 차령산맥 남쪽에 있는 충청도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일반적으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충청도를 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경기"의 "기"와 충청도 지방을 지칭하는 별칭인 "호서"의 "호" 한 글자씩을 따와 "기호"지방이라 한다. 분류에 따라 지리, 문화적으로 가까운 멸악산맥 이남의 황해도를 기호 지방에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실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시절 기호 세력의 거두로 분류된 이승만의 고향은 황해도 평산군이다. 백두진 재무 장관이 고향이 황해도라며 아꼈다는 일화도 있다. 김구는 아예 국외로 망명하기 전에는 황해도에서 활동하였으나 기호파로 분류된다. 이승만은 어렸을 때 한양으로 이사를 갔으나 그 가문은 몰락한 이래로 황해도에 살았으며, 이이가 강릉에서 활동했지만 파주 출신으로 여겨지고 이회창도 태어난 곳은 황해도지만 충청도 사람으로 여겨지듯이 이승만도 마찬가지다. 양반 가문이기에 기호파가 되었던 것이고, 양반이 드문 지역 중 가장 세력이 큰 평안도가 서북파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1]
명칭 유래
기호지방이란 기전(畿甸, 기중) 지방과 호서지방을 함께 부르는 지명이다. 기전 지방이란 왕실 주변에서 왕실의 통치를 받는 일정 범위를 일컫는 것으로, 현재의 경기도가 대체적인 범위에 포함된다. 호서지방은 충청북도 제천에 있는 의림지의 서쪽을 의미한다. 이 두 지방을 통합하여 기전 지방의 ‘기(畿)’자와 호서지방의 ‘호(湖)’자를 따서 기호지방이라 부르게 되었다. 삼국시대에는 한산주(漢山州), 한주(漢州), 한양(漢陽)으로 불렸고, 고려 초기에는 양주라고 불렸으며, 고려 성종 때에는 10도 편성(十道 編成)으로 인해 경기 일대를 관내도(關內道)라고 부르고, 공주 중심의 충청도 전역을 하남도(河南道)라고 불렀다. 고려 문종 때인 1058년에 다시 재편성하여 "경기"라는 행정구역이 창설되었는데 이때의 경기는 지금의 개성시 근처였고, 조선시대에는 도읍지가 지금의 서울특별시인 한양으로 이전되면서, 조선 시대 이후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측면에서 중심적 기능을 담당하였다.[4]
자연환경
- 기호지방의 동쪽에는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태백산맥에서 나누어진 마식령·광주산맥 등이 남서 방향을 주향으로 하고 있고, 그 사이를 임진강·한강·안성천·금강 등 남서류하는 하천들이 있다. 또한 산맥들을 따라서는 대둔산·북한산·계룡산 등의 명산들이 분포하고 있다. 하천의 중상류에는 침식분지가 발달해 있으며, 대 하천 하류에는 광대한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어 인구 부양력이 뛰어나다. 하나의 통일적 지역을 이루고 있으며 한반도의 중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전체적인 고도가 낮아진다. 서해안은 해안선의 굴곡이 매우 심하고 간석지가 넓게 발달해 있다. 일부 간석지는 간척 사업을 통해 공장·주거지 등으로 변화하였다. 또한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서울의 관문도시인 인천에서는 갑문식 부두가 설치되어 있다.
- 주요 평야에는 한강 하류의 김포평야, 안성천 하류의 평택 평야, 삽교천 하류의 내포평야 등이 있으며, 이들 평야는 곡창을 형성한다. 기후는 북부와 남부의 점이적 성격을 띠고 있다. 기온의 연교차는 30℃ 내외로 40℃를 나타내는 압록강 유역과 25℃를 나타내는 남해안 일대의 중간성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강우량에 있어서도 남다우(南多雨)와 북과우(北寡雨)의 중간치를 나타낸다. 기후는 서해안으로 갈수록 비교적 온난다습한 남부 서안형이며, 동쪽 내륙으로 갈수록 한랭 건조한 긴 겨울과 고온다습한 긴 여름이 나타나는 남부 대륙형이다. 해안에 접한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2.4℃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1,250㎜ 내외이다. 1월 평균기온은 -0.8℃이고, 8월 평균기온은 25.5℃를 기록하였다. 서울의 연평균기온은 12.5℃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1450㎜ 내외이다. 1월 평균기온은 -2.4℃이고 8월 평균기온은 25.7℃를 나타내었다.[4]
형성 및 변천
- 기호지방은 수운교통의 유리함과, 내륙과 해양으로의 이동성, 넓은 농경지 등의 이유로 예로부터 남북 세력의 각축장이 되어왔을 뿐 아니라, 한반도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다. 삼한시대에는 마한 땅이었으나 삼국시대에 들어와 삼국 세력의 각축장이 된 곳이기도 하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한산주(漢山州)·한주(漢州)·한양(漢陽)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고려 때에는 양주(楊州)라고 하였고, 성종의 10도 편성 시에 경기 일원을 관내도(關內道), 공주 중심의 호서지방을 하남도(河南道)로 명칭하였다.고려의 왕도가 개경에 자리잡음으로써 통치중심지가 비로소 한반도의 중앙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종 때에는 적현(赤縣)주 01)과 기현(畿縣)주 02)이 생겼다. 이들 현들을 바탕으로 1058년(고려, 문종 12)에는 ‘경기’라는 행정구역을 창설하였으며, 공양왕 때에는 이것을 다시 경기 좌·우도로 세분하였다. 한편, 고려의 왕도는 개경이었으며 서울에는 남경을 설치하였고, 1308년(충렬왕 34)에는 남경을 한양부로 고쳐 불렀다.
- 1394년(태조 3)에는 서울로 도읍지를 옮겼다. 따라서 1395년(태조 4)에는 한성부로 지명을 고치고, 다시 동·서·남·북·중의 5부로 구획하고 그것을 다시 52방 340동으로 편성하였다. 1910년에는 경성부로 바뀌고 5부 8면 제로 편성하여 시역 및 관할권 확산의 효시를 보였다. 그 뒤 1943년에는 구제(區制)를 적용, 8구로 편성하고, 1946년에는 서울특별시로 승격되었다. 한편, 서울의 비대는 수도권의 번영을 가져와 안양·성남·부천·광명·의정부 등의 위성도시를 탄생시킴과 동시에 기존 도시의 성장을 가져왔다. 인천은 1981년에 직할시로 승격하였었으며, 1995년에 인천광역시로 바뀌면서 강화군·옹진군을 관할하게 되었다. 또한, 서울·경기는 정치를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중심권을 이루고 있다. 언어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의 표준어는 서울의 교양 있는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채택하고 있다. 호서지방은 삼한시대에 마한의 땅이었으며, 삼국시대에 들어와 백제의 세력이 이 지방을 중심으로 뻗어 나갔다.
- 통일신라시대의 9주 중에서 웅주(熊州, 공주)가 현재의 충청남도에 설치되었으며, 5소경 중에서 중원경(中原京, 충주)과 서원경(西原京, 청주)이 설치되었다. 고려 초에는 현재의 충청남도를 하남도, 충청북도를 양광도에 편입시켰다. 조선시대에 충청도라 불리기 시작하였고, 행정상의 편의를 위하여 충청도를 좌도와 우도로 나누었다. 충청이라는 명칭은 충주와 청주의 머릿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그 뒤 1896년에 13도 체제로 편성하면서 충청남북도로 분리하여 도청 소재지를 공주와 충주에 두었으나, 이후 충청남도는 대전(1932)으로, 충청북도는 청주(1908)로 이전하였다. 대전은 1989년에 대전직할시로 승격하였으며, 1995년에 대전광역시가 되었다. 2012년 충청남도 연기군과 공주시 일대에 세종특별자치시가 건설됨으로써 서울과 그 주변에 집중한 행정기능이 그곳으로 이전하여 대한민국 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4]
현황
- 서울을 중심으로 한 근교농업의 집약적 재배 지역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각종 농산물이 재배되며 특히 원예작물(과실·채소)의 집산지이다. 교통에 있어서도 일찍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을 형성하였던 만큼, 교통의 근본이 되는 도로망 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방사상으로 여러 곳에 통한다. 도시의 팽창 과정에서 서울 시민의 구성 요소에는 지방적 요소가 존재하고 있지만 서울말이 큰 흐름을 이루며 계승, 발전하고 있다. 그리하여 서울을 포함하는 경기도 방언구는 행정 구역상의 서울·경기에 한정되지 않고 황해도는 물론 충청남북도까지 확대되고 있다. 교육·문화 시설면에 있어서 다수의 종합대학을 비롯, 단과대학·전문대학이 산재해 있고, 박물관·도서관·미술관·문화회관·국립극장·어린이대공원·올림픽경기장·올림픽공원·운동장·체육관 등의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이외에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기상청을 비롯한 많은 연구기관이 모여 있고, 병원·종교 단체 및 각종 수양·사교·국제 친선도모 단체가 모여 있으며, 외국 공관들이 있다.
- 교육 문화시설의 서울 및 수도권으로 집중도가 매우 높다. 그 밖에 서울에는 언론 기관이 많이 모여 있고, 텔레비전 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 등이 있다. 주거 문화면에 있어서는 쾌적한 편익 시설을 제공해 주는 아파트가 보급되는 과정에서 전통가옥인 한옥이 뒷전으로 밀려났으며, 양옥 또한 아파트보다 비인기 주거공간이 되고 있다. 전통가옥은 서울의 가회동을 중심으로 보존되고 있지만, 도시권을 벗어날수록 산재하고 있다. 기호지방에는 서울특별시를 비롯하여 2개의 광역시, 1개의 특별자치시, 3개의 도가 있다. 경기도에는 28개 시와 3개 군이 있고, 충청남도에는 8개 시와 7개 군이 있으며 충청북도에는 3개 시와 8개 군이 있다.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의 인구는 2010년에 2,383만명으로 전국 인구의 49.1%를 차지하였다. 서울의 인구증가는 둔화되었지만, 경기도와 인천광역시의 인구증가가 두드러진다. 여기에 호서지방의 인구를 더하면 기호지방의 인구는 2,888만명이며, 이는 전국 인구의 59.5%에 달한다. 경기도의 화성시·용인시·남양주시·파주시와 충청남도 아산시에서의 인구증가가 현저하였다.
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