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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반도(영어: Somali Peninsula)는 아라비아해로 돌출되어 있는 동아프리카의 반도이다. 흔히 아프리카의 뿔(영어: Horn of Africa, 소말리어: Geeska Afrika)이라고 부른다. 소말리아반도는 아덴만의 남쪽을 따라 놓여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동쪽에 돌출되어 있고 코뿔소의 뿔과 닮아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뿔에 있는 나라는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소말릴란드, 지부티가 있다. 넓게 수단과 케냐를 포함시킬 때도 있다.[1]
개요[편집]
소말리아반도는 홍해를 사이에 두고 서아시아 아라비아반도와 마주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반도이다. 면적은 약 2,000,000km²에 이르며 약 8천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소말리아반도는 적도와 북회귀선의 중간쯤 위치하고 있으며 매우 건조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 지형은 주로 고산지대와 협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터키에서 모잠비크에 이르는 동아프리카 지구대가 지나고 있다. 산악지형은 이 대 지구대로 인해 형성된 것이다. 가장 높은 산은 에티오피아 북서쪽의 시미엔산인데, 광활한 빙하가 시미엔산과 베일산을 덮고 있었으나 홀로세 때 녹아버렸다. 산악 지대는 홍해 방향으로 경사가 급하고 인도양쪽은 완만한 편이다. 소코트라섬은 인도양에 접한 소말리아 해안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아프리카의 일부로 분류된다. 크기는 약 3,600km²이며 아라비아반도 최남단의 국가 예멘의 영토이다. 소말리아반도는 인도양과 홍해를 감시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동서세력의 각축장소가 되고 있다.
역사[편집]
소말리아반도에서 고대의 피라미드 구조물, 무덤, 도시 유적, 와르가데 벽 등 산재한 유적들이 정교한 고대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고고학적 조사와 연구에 따르면 이 문명은 아직 해독되지 않은 자체적인 문자 체계를 갖고 있었으며, 기원전 2세기경까지 고대 이집트와 미케네 문명과 무역을 했다. 고대 소말리인들은 기원전 3세기~2세기 경에 낙타를 길들였다. 고대에는 모실론, 오포네, 말라오, 문두스, 타바에 등 소말리아 지역의 도시 국가들이 페니키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고대 그리스, 파르티아 등과 활발한 교역 네트워크를 연결하였다.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의 이슬람의 전파는 아라비아 이슬람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초기의 박해 받은 무슬림들은 오늘날의 에티오피아인 악숨 왕국으로 도피하였다. 보호를 인정 받은 무슬림 중 일부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의 몇몇 지역에서 이슬람교를 전파하기 위해 정착하였다고 알려져있다. 7세기에 선지자 무함마드의 무슬림들이 비무슬림 씨족이었던 쿠라이시족에 맞서 승리하였다. 소말리아의 상인들과 선원들은 교역 상대들이 전부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주요한 교역로인 지중해와 홍해가 무슬림 칼리프들의 지배를 받게 됨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교역을 매개로 삼아 이슬람은 소말리아 해안 도시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불안정한 아라비아반도의 상황에 영향을 받은 아랍인들이 소말리아 해안 도시로 이주하여 소말리아반도의 이슬람 확장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모가디슈는 동아프리카 해안의 이슬람 중심지가 되었다. 소말리아에 정착한 페르시아인 상인들은 몸바사, 잔지바르와 교역하였으며, 금을 얻기 위해 모잠비크에 식민지를 세웠다. 북부 소말리아에서는 아달 술탄국이 초기 단계에 있었다. 1150년에서 1250년에 걸친 100년간은 소말리아 역사에서 이슬람의 역할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아랍의 지리학자이며 사학자였던 야쿠트 알 하마위와 이븐 사이드 알-마그리비는 소말리아가 이 시기에 융성한 무슬림 국가였다고 기록하였다. 아달 술탄국은 이 시기 구아르다푸이 곶에서 하디야에 이르는 영토를 가진 상업 제국의 중심이 되어있었다. 아달인들은 이후 발흥한 이파트 술탄국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그 영향 아래에서 번성했다. 이팟 술탄국의 수도는 오늘날의 소말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제일라였다. 이팟인들의 군대는 1270년 쇼아 왕국을 지배하기 위해 진격하였다. 이때문에 무슬림인 이팟인들과 기독교도인 에티오피아의 솔로몬 왕조 사이에 지배권을 둘러싼 수 차례의 전쟁이 빚어졌다. 이 전쟁은 결국 이팟의 술탄인 사아드 앗딘 2세가 제일라에서 죽음에 따라 솔로몬 왕조의 승리로 끝났다. 사아드 앗딘 2세의 일가들은 예멘의 왕궁으로 도피하였다. 그 외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소말리아 남부에는 아주란 술탄국이 있었다. 14세기에 성립한 아주란 왕국 시대에는, 메르카, 모가디슈, 바라와, 호비오 등의 국가들과 그 국가들의 항구들이 아라비아, 인도, 베네치아, 페르시아, 이집트, 포르투갈 등에서 오는 배들로 번영하였다. 15세기 모가디슈를 통과한 바스코 다 가마는 모가디슈를 여러 층의 집과 큰 궁전들, 많은 모스크들이 있는 커다란 도시로 묘사하였다. 16세기, 두아르테 바르보사(Duarte Barbosa)는 오늘날의 인도인 캄바야 왕국에서 온 배들이 모가디슈에 와서 천, 향료와 금, 상아를 거래한다고 기록하였다. 바르보사는 또한 고기, 보리, 밀, 말, 과일 등이 풍부한 해안의 시장에 대해서도 기록하였다. 말라카 해협과의 교역 관계는 15세기에 만들어졌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점점 유럽인들이 해상 무역을 장악해가면서 예멘 지역과 소말리아 일대의 부와 교역 범위는 지속적으로 축소되었다. 일단 와르상갈리 술탄국, 바리, 고브룬 왕조, 호비오 술탄국 등, 아달과 아주란을 계승한 국가들이 소말리아에 성립되었다. 이들은 이전의 소말리아 지역 국가들이 수립한 전통을 이어나갔다. 고브룬 왕가의 3번째 술탄인 유수프 마하무드 이브라힘은 고브룬 왕조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의 군대는 동아프리카의 상아 무역과 지역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는 또한 무스카트 술탄국의 위투와 예멘 왕국의 술탄들 등 인접한 국가들의 지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브라힘의 아들이자 그를 계승한 아흐메드 유수프는 19세기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 중 하나였다. 동아프리카를 장악한 오만 제국이 멸망하자 소말리아는 해상 무역 수입이 크게 축소되면서 결정타를 맞는다. 1884년 열린 베를린 회담 이후 유럽의 열강들은 아프리카를 식민화하기 시작했다. 소말리아는 프랑스, 영국과 이탈리아에 의해 지배되게 되었다. 이에 동요한 데르비시 왕국의 지도자였던 사이드 무함마드 압둘라 하산은 아프리카의 뿔 전역에서 지원을 받아서 식민화에 저항하는 전쟁을 시작하였다. 데르비쉬 왕국은 1920년 대영 제국의 침공에 멸망하였으며, 보호국으로 전락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은 영국령 소말릴란드와 이탈리아령 소말리아를 보호령으로 지정하였다. 1949년 11월, UN은 10년 내에 소말리아의 독립이 이루어진다는 조건 하에 이탈리아령 소말리아에 대한 이탈리아의 신탁통치를 승인하였다. 이 조건은 소말리아 청년 연맹(Somali Youth League)와 다른 신생 정치 조직들이 제안하였다. 영국령 소말릴란드(오늘날의 소말릴란드 지역)은 1960년까지 영국의 보호령으로 존속했다. 프랑스령 소말릴란드였던 북서부의 지부티에서는 1958년 소말리아 공화국에 들어갈 것인가를 정하는 국민 투표가 진행되었다. 국민 투표 결과 프랑스와의 지속적인 협력을 선호하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국민 투표에서는 프랑스인들에 의한 부정 선거도 행해졌다. 지부티는 1977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여 하산 굴레드 압티돈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영국령 소말릴란드는 1960년 6월 26일 독립하였고, 옛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도 5일 후 이를 따랐다. 1960년 7월 1일, 두 지역이 통합하여 소말리아 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초대 대통령으로 아덴 압둘라 오스만 다르가 취임한다. 1961년 국민 투표를 통해 소말리아의 새 헌법이 비준되었다. 독립 후 지부티를 비롯한 소말리인의 거주지까지 소말리아로 합병시키려 하는 대소말리아주의를 채택함에 따라 에티오피아와의 마찰을 빚었다. 1967년에는 후에 소말릴란드의 대통령이 되는 무함마드 하지 이브라힘 에갈이 총리로 취임하여 에갈 내각이 성립하였다. 이때 에티오피아 및 케냐와의 관계가 잠시 개선되었다. 현재 소말리아는 내전으로 인한 난민과 기아 문제로 UN 평화 유지 활동단이 설치되어 있다.[2]
기후[편집]
소말리아반도는 저지대는 적도에 가까운데도 보통 건조한 편이다. 우기에 열대 계절풍(몬순)이 사헬과 수단 지역에 비를 뿌리고 난 후, 지부티와 소말리아에 도달하면 습기를 잃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기에도 이 지역의 강수량은 매우 적다. 하지만 계절풍이 불어오는 방향인 에티오피아 중서부와 에리트리아 남쪽 끝은 매우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에티오피아 산악지대의 연간 강수량은 2,000mm에 달한다. 하지만 아스마라의 연간 강수량은 570mm에 불과하다. 이 비는 에티오피아 대부분 지역과 이집트에 이르는, 지구상에서 (강수량만을 따졌을 때) 가장 건조한 지역에 수분을 공급하는 유일한 원천이 된다. 겨울철에는 북동 무역풍이 불어오지만 북 소말리아의 일부 산악지대를 제외하곤 수분이 전혀 공급되지 않는다. 소말리아엔 늦가을 약간의 비가 내리는데, 그것이 500mm에 불과한 연간 강수량의 전부가 된다. 동부 해안지역은 상승기류와 해안에 평행하게 부는 바람으로 인해 연간 강수량이 51mm까지 떨어지는 곳도 있다. 홍해 연안은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곳 중에 하나로, 7월 평균 기온이 41°C에 달하며 1월에도 32°C를 유지한다. 동부 해안 지대는 해안풍으로 약간 기온이 낮지만 덥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고산지대는 온도가 낮다. 아스마라 지역은 연 최고 기온이 20°C 정도이며 구름 없는 밤에 결빙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장 높은 산인 시미엔산은 연간 기온이 –10°C ~ 14°C 정도이다.
주민[편집]
소말리아반도의 흑백혼혈 중에서 피부색이 옅은 흑인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백인:흑인 유전자가 4:6 비율로 흑인 유전자가 거의 우세하지만, 일반적인 흑인 반투어족과 아프리카의 뿔 지역 주민들은 생각보다 관계가 멀다고 한다. 사실 아프리카의 뿔 지역 흑인들은 나일사하라어족 흑인들로 건조한 평원 지대에 맞추어 몸이 마르고 팔다리가 길고 기골이 장대한 편으로, 체형 자체가 반투어족과 다르다. 더욱이 바다 건너 인접한 예멘 일대에서 암하라인, 티그리냐인의 조상에 해당하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의 코카소이드 계열 부족들이 이주해온 역사가 있다. 이들의 유전자는 유럽 백인이 속한 하플로그룹 R과는 조금 다른 하플로그룹 D이며, 남부 아라비아와 유사하다. 다만 에티오피아 서부나 소말리아 남부는 나일사하라어족에 해당하는 나일로트계 민족들이 코카소이드계와 혼혈이 덜 이루어져 외양이 다르다. 남수단과 케냐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나일로트 부족들은 키가 매우 크고 피부가 유달리 검으며 안면에 광대뼈가 발달했다. 수천여 년에 걸친 백인과 흑인간의 상호 통혼의 영향으로 아프리카의 뿔 내 흑백혼혈 중에서도 정도는 다르지만 키가 크고 안면에 광대뼈가 발달한 사람이 많은 편이다.[3]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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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프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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