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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게이사
하르게이사 위치

하르게이사(소말리어: Hargeysa 하르게이사, 아랍어: هرجيسا, 영어: Hargeisa)는 소말리아 반도 북부의 도시로, 미승인 국가 소말릴란드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인구는 약 215만 명이다.[1]

개요[편집]

하르게이사는 아프리카 동부,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한 소말리아 북서부, 해발고도 약 1,200m의 고원에 위치하나 일찍부터 이 지역 대상로(隊商路)의 중심이 되었다. 국제적으로 여전히 소말리아의 일부로 간주하며 소말리아 마루디 지엑스(Maroodi Jeex) 지역의 주도이다. 19세기 현지 샤리프계 왕조가 세운 이사크 술탄국의 마지막 수도였으며 영국령 소말릴란드 시대부터 중추 도시였다. 소말릴란드 독립 전쟁 동안 국가가 후원한 폭력 캠페인인 이사크 대량 학살 동안 도시의 최대 90%가 파괴되었다. 1991년 5월 18일 소말릴란드가 소말리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수도가 되었다. 북동쪽 약 190km 지점에 외항(外港) 베르베라가 있으며 이 외항을 통해서 가축, 피혁, 유제품 등을 수출한다. 하르게이사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 전체의 상업 중심지다. 또한 토마토, 양파 및 레몬 생산지로도 이름이 있다. 현재 교통망이 확장되면서 다시 보석 등을 가공하는 가공업과 되파는 금융업이 발달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거의 유일할 정도로 정상적인 버스가 운행하는 곳이며 하르게이사 국제공항이 있다. 보육원과 학교, 대학이 소말리아 내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과 벽화, 동북아프리카의 흔치 않은 야생동물들이 있어 주변국 대상으로 한 관광업이 발전 중이다. 치안은 아프리카 전체를 기준으로 보아도 안전한 편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소말릴란드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아 소말리아와 함께 여행금지 지역에 해당되기 때문에 한국 국민은 외교부 허가없이 방문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2]

역사[편집]

선사시대[편집]

신석기 시대의 수많은 동굴 벽화들이 하르게이사 외곽의 라아스 겔(Laas Geel) 단지에서 발견되었다. 2002년 11월과 12월 사이에 프랑스 연구팀에 의해 이 지역에서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졌다. 탐험의 목적은 소말리아 이 지역(기원전 5~2천년기)에서 생산경제가 출현했던 시기를 기록할 수 있는 층화된 고고학적 매립지가 포함된 암석 보호소와 동굴을 찾는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 프랑스 고고학 팀은 10개의 동굴 지역에 걸쳐 있는 라아스 지엘(Laas Geel) 암각화를 발견했다.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이 그림에는 손을 들고 긴 뿔이 있고 혹 없는 소를 바라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나와 있다. 암벽화는 프랑스인이 발견되기 수세기 전부터 이 지역 주민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해당 사이트의 존재는 국제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다. 2003년 11월 라아스 지엘에게 임무가 돌아왔고 전문가 팀은 그림들과 그것들의 선사시대의 맥락에 대한 자세한 연구에 착수했다.

소말리아는 일반적으로 유사한 암각화 또는 담 발린 암각화와 같은 고대 건축물이 있는 수많은 고고학 유적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래된 건축물 중 다수는 아직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으며, 이는 지역 역사를 더욱 조명하고 후세를 위해 보존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독립전[편집]

전통적인 시적(gabay) 구술 기록에 따르면 하르게이사는 에이다갈레(Eidagale)에 의해 유목민과 캐러밴을 위한 물 공급 및 교역 장소로 설립되었다. 하르게이사의 초기 정착민들 중 하바르 윤이족과 아라프족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하르게이사는 하르게이사 종교 공동체의 설립자로 널리 여겨지는 셰이크 마다르 쉬르와(Sheikh Madar Shirwa)의 도착과 함께 계속해서 성장했다.

마다르 쉬르와는 베르베라(Berbera)에서 태어났으며 사아드 무사 하브르 아왈(Sa'ad Musa Habr Awal)의 누 이스마일(Nuh Ismail) 구역에 속해 있었다. 마다르는 하라르의 지도하에 이슬람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하라르에 도착했는데, 이들은 하라리와 소말리아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라르의 울레마 중 한 명인 셰이크 칼릴은 셰이크 마다르에게 오늘날의 하르게이사에 카디리야 타리카 공동체를 설립하고 그가 배운 가르침을 전파하라고 조언했고, 이는 셰이크 마다르와 그의 동료들이 1860년 리틀 하라르(하르게이사)의 빅 코뮌(자마아웨인)을 설립하도록 이끌었다. 소말리아의 목축민들은 비와 목초지를 많이 따르고 있으며, 이는 마다르가 대규모 수수 농장을 등지고 도입할 농업 및 정지 생활 방식으로 바뀔 것이다. 이것은 자급자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고 셰이크 마다르와 다른 물라인들은 증가하는 정착지의 병든 노인들을 돌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셰이크 마다르는 부족만으로 정체성을 파악하기 보다는 공동의 종교적 정체성을 추구했다. 돌로 지은 집들과 다른 건축물들이 지어지고 하르게이사는 수십 년 전 카라반 무역에 관계없이 거대한 영구 정착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셰이크 마다르는 1870년 하르게이사 외곽에서 제4대 아이작 그랜드 술탄 데리아 하산을 만나 하르게이사 신도시와 관련된 문제들을 논의하고 인근에서의 밀렵과 나무 베기를 금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1888년, 당시 통치하던 소말리아 술탄 및 추장들과 연속적인 조약을 체결한 후 영국은 베르베라를 수도로 하는 영국 소말릴란드라고 불리는 지역에 보호령을 설립했다. 영국은 현재 예멘의 아덴에 보호령을 주둔시키고 1898년까지 영국령 인도에서 이를 관리했다. 영국 소말릴란드는 그 후 1905년까지 외무부가 관리했고 그 이후에는 식민부가 관리했다.

수도는 베르베라에서 하르게이사로 옮겨졌고, 도시는 1941년에 수도 지위를 부여받았다. 동아프리카 전역 동안 보호국은 1940년 8월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았으나 1941년 3월 영국에 의해 탈환되었다. 1945년 영국 행정부는 와다드가 보호령에서 휘두른 영향력에 지쳐서 하르게이사에서 몇몇을 체포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은 소말리아에서 '현대 교육'과 농업 개혁을 시행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6월 4일 그들이 체포된 후, 폭도들이 조직되어 투옥된 와다드(wadaads)들을 일시적으로 석방시켰으나 다음날 다시 체포되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도시 주민들에게 동기를 부여했고 수천 명의 폭도들이 투옥된 와다드를 석방하기로 결심하고 하르게이사 지역 본부로 행진했다. 그들은 셰이크를 구출하려다 한 명은 죽고 수십 명이 투옥되는 등 지역 위원의 군대에 의해 총격을 받았다.

1960년 6월 26일 소말리아 국가로 독립한 뒤 계획대로 며칠 후 소말릴란드 신탁 영토(이전 이탈리아 소말릴란드와 통합하여 소말리 공화국을 형성했다.

독립 후[편집]

독립 이후, 하르게이사는 소말리아의 와쿠이 갈비드 지방의 주도로 관리되었다. 소말리아 정부는 그 후 수많은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를 도시에서 시작했다. 이러한 계획들 중에 하르게이사 지방 박물관의 설립이 있다. 이 박물관은 1960년 독립 이후 소말리아에 처음으로 세워진 박물관이다. 하르게이사 국제공항도 더 큰 항공기를 수용하고 더 많은 비행 목적지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 궁극적인 목표로 개조되고 현대화되었다.

1988년 5월 31일 오전 2시 15분, 소말리아 민족 운동(SNM)이 하르게이사를 공격했다. 소말리아 중포와 탱크의 강력한 포격으로 인해 하르게이사 공항을 점령하는 임무를 맡은 SNM 부대는 후퇴했다. 6월 1일까지 하르게이사 공항을 제외하고 SNM이 도시를 점령했다. SNM 공격에 대한 독재자 시아드 바레(Siad Barre)의 대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 아이작 집단 학살의 가장 잔혹한 사건 중 하나로 정권은 아이작 집단의 민간인 구성원들 특히 하르게이사와 부르코를 표적으로 삼았고, 이를 위해 아이작 민족에 속한 민간인들에게 무차별적인 포격과 공중 폭격을 가했으며 도시의 최대 90%가 파괴되었다.

소말리아 중앙정부가 붕괴되고 소말릴란드 공화국이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이후, 하르게이사와 소말릴란드의 다른 도시에서 인프라 재건이 서서히 시작되었다.

1991년부터 하르게이사는 대대적인 페이스 리프트를 거쳤다. 개조 공사는 주로 현지 기업가들과 소말리아 국외 거주자들이 소말리아 소유의 다양한 송금 업체를 통해 해당 지역의 친척들에게 송금 자금을 보내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그 후 대부분의 파괴된 주상복합 건물들은 재건되었고, 많은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졌다. 시내의 단층 건물도 점진적으로 다층 고층 건물 로 바뀌고 있다.[3]

하르게이사 국제공항[편집]

하르게이사 국제공항(Hargeisa International Airport)은 소말리아 서북부 소말릴란드(Somaliland)의 수도 하르게이사 도심에서 남쪽으로 약 6km 거리에 위치한다. 에갈 국제공항(Egal International Airport)으로도 불린다. 영국군이 건설하여 1954년 군용기지로 최초 설립되었다. 1973년 현재의 활주로를 완공하였다. 1990년대 내전으로 시설이 파괴되었으나 2012년부터 2년간 대폭적인 시설 현대화, 확장 건설을 시행하여 2013년 8월 재개항했다. 공항 코드는 HGA(IATA), HCMH(ICAO)이다.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다. 활주로는 3,700m×45m 크기로 총 1개소를 운영한다. 취항 항공사로는 주바항공(Jubba Airways), 아프리칸익스프레스항공(African Express Airways), 에티오피아항공(Ethiopian Airlines), 다알로항공(Daallo Airlines), 플라이두바이(FlyDubai), 펠릭스항공(Felix Airways)의 총 6개사가 있다. 국제선은 케냐 나이로비(Nairobi), 예멘 사나(Sanaa), 아덴(Aden), 알무칼라(Al Mukalla), 아랍에미리트 두바이(Dubaï), 샤르자(Sharjah), 사우디아라비아 제다(Jeddah), 지부티공화국 지부티(Djibouti), 에티오피아 디스아바바(Addis Ababa)의 총 6개국 9개 도시를 연결한다. 국내선은 베르베라(Berbera), 보사소(Bosaso), 모가디슈(Mogadishu), 갈카요(Galkayo)의 총 4개 도시로의 직항 노선이 있다. 공항에의 교통편으로는 하르게이사 중심지를 연결하는 가리드 하지 고속도로(Guleed Haji Hwy)가 인접한다.[4]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하르게이사〉, 《위키백과》
  2. 하르게이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하르게이사〉, 《요다위키》
  4. 하르게이사 국제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프리카 같이 보기[편집]

동아프리카 국가
동아프리카 도시
동아프리카 지리
동아프리카 섬
동아프리카 문화
동아프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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