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잔글 (→역사) |
잔글 (→정치) |
||
238번째 줄: | 238번째 줄: | ||
== 정치 == | == 정치 == | ||
+ | [[파일:페드로 산체스 총리.jpg|썸네일|300픽셀|[[페드로 산체스]] 총리.]] | ||
+ | 스페인은 입헌 군주제 국가이다. 양원제 국회를 갖추고 있으며, 입법부가 있어 분권 체제를 갖추고 있다. 국가 원수는 국왕이며, 상하원은 직접·간접 투표로써 선출된다. 임기는 4년이다. 행정부의 수반은 총리이며, 부총리가 보좌한다. 스페인 내각(Consejo de Ministros)의 수반인 장관은 총리가 지명한다. | ||
+ | === 헌법과 정치 === | ||
+ | 스페인 정치체제는 1978년 12월 29일 공포된 스페인 [[헌법]]에 기초한다. 스페인 헌법의 특징은 과거 프랑코 체제의 헌법은 폐기했지만 그 법적-제도적 구조를 민주주의 체제 속으로 통합시켰다는데 있다.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주도 아래 제헌의회에서 작성된 스페인 헌법은 전문에서 민족과 지역들(Nationalities and Region)의 자치권을 보장하면서도 모든 스페인인들의 조국인 스페인 국가의 해체 불가능한 통일성에 토대를 둔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는 정부 형태에 대한 정의로서 스페인이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단일국가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헌법 정신은 최근 카탈루냐에서 일어난 독립 선언을 무효화시킨 스페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나타났다. | ||
+ | |||
+ | 스페인 헌법의 또 다른 특징은 스페인의 정치사회적 정체성을 '사회적이고 민주적인 국가(social and democratic State)'로 정의하여 스페인이 사회민주주의 국가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스페인의 소득 분배와 사회복지 등 다양한 사회적 권리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 ||
+ | |||
+ | 국가 형태로서 스페인은 전형적인 의회민주주의 입헌군주국이다. 1978년 헌법은 스페인을 의회군주국(Parliamentary Monarchy)으로 명명하고있다. 입헌군주국의 국왕의 권한이 헌법에 의해 제한되어 거의 권한이 없어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인 반면, 의회군주국에서 국왕은 의회와 권한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의회군주국인 스페인 국왕의 권한은 다른 입헌군주국 국왕의 권한에 비해서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 ||
+ | |||
+ | 스페인의 국왕은 헌법 아래 존재하고, 정부는 의회에 의해 통제되는 헌정질서를 가진다. 스페인 정치는 민주주의의 토대인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권력이 분산되어 있다. 스페인 전체의 통일성을 상징하는 인물인 국왕은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이렇게 분립된 권력을 연결하고 중재하는 기능을 가진다. 국왕은 국가수반으로서 국군통수권, 선전포고 및 강화권, 외교사절 파견 및 접수권을 가지기도 하지만 행정부와 의회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국왕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통해 새로운 의회를 구성할 권한을 가진다. 이 외에 국왕은 법률의 폐지 및 공포권을 가지기도 한다. | ||
+ | |||
+ | === 의회와 정당 === | ||
+ | 스페인 의회(Cortes Generales)는 양원제로 임기 4년의 하원과 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원은 상원의 입법행위를 무효로 할 수 있고, 하원만이 총리를 신임할 수 있다. 상원과 하원이 각각 법안을 제출할 수 있지만 상원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상원에서 거부된 법안은 하원에서 절대다수에 의해 다시 통과될 수 있다. 따라서 하원이 상원에 비해 보다 우월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
+ | |||
+ | 총 350명으로 구성된 스페인 하원의원은 비례대표를 통해 선출되고 선거를 통해서 다수당 혹은 다수연정을 획득한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연정을 통해서 정부를 구성한 경우는 없으며, 통상적으로 다수당이 없을 경우 소수정부가 구성된다. | ||
+ | |||
+ | 4년 임기의 하원의원 선거 지역구는 50개의 도와 2개의 자치시로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 선거법에 따르면 50개의 도 선거구에는 최소한 2명의 하원의원이 할당되고 자치시에는 각각 1명씩 할당된다. 나머지는 248개 의석은 각 도의 인구비례에 따라서 할당된다. 이러한 할당 방식은 소규모 도가 과대 대표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선거에 참여하는 각 정당들은 할당된 인원만큼의 후보자 리스트를 제출하고, 선거인들은 투표소에서 후보자 개인이 아니라 정당에 투표하게 된다. 투표가 종료된 후 각 선거구에서 각 정당이 얻은 득표수에 따라서 동트방식에 따라 각 정당에 의석을 배정한다. 정당이 의석을 배정받기 위해서는 선거구에서 최소 3%의 득표율을 기록해야 한다. 따라서 하원의원 선출은 정당명부 권역별 비례대표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하원의원 선출방식은 거대정당에 유리한 방식으로 스페인을 양당제 정치 체제로 만들고 있다. | ||
+ | |||
+ | 상원의 경우 헌법에 정해진 정원은 없지만 본토의 경우 각 도에서 인구에 관계없이 각각 4명씩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다. 따라서 인구 650만 명의 마드리드나 9만 명의 소리아 도(province)가 동일한 상원의원을 선출하는 것이다. 상원의원 선출을 위해 각 정당은 선거구마다 3명의 후보자를 내세우고 이들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4인이 선출된다. 또한 도서지방 도의 경우 큰 섬은 3명, 작은 섬은 각각 1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한다. 아프리카에 위치한 체우타(Ceuta)와 멜릴라(Melilla) 자치도시는 2명씩의 의원을 선출한다. 이렇게 해서 선출직 상원의원은 총 208명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17개의 자치주와 2개의 자치시 의회가 각각 1명씩 선출하고 여기에 인구 백만 명 당 1명씩 추가해서 임명해 총 58명의 상원의원이 자치주를 대표한다. | ||
+ | |||
+ | 스페인은 1937년 제정된 정치단체 통합법에 따라 국민운동(Moviendo Nacional)이라는 단일정당 의회를 가졌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자유화 정책에 따른 정치결사법이 통과되면서 정당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정당법에 따라 정치단체는 등록제로 운영되고 있고 자유로운 정당 활동이 보장된다. 현재 스페인에는 지역정당 등을 포함해 약 70여 개의 정당들이 활동하고 있다. | ||
+ | |||
+ | 스페인은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스페인사회노동자당(PSOE)과 인민당(PP) 등 두 정당이 스페인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사회노동자당은 중도좌파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시민자유나 사회적 소외계층의 권익 보호 등을 대변하고 있다. 경제정책으로는 기업의 자율적 사회화라는 시장경제를 인정하면서 공공성 측면을 보완하고 있다. 외교정책은 기본적으로 유럽통합에 호의적이면서도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관계 정립이라는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중도우파인 인민당은 군주제와 정치적 안정이라는 보수주의 노선을 취한다. 경제적으로는 기업의 자유를 옹호한다. 하지만 고용 창출이나 사회보장제 확립 등과 같은 공공성 노선을 취하기도 한다. 외교적으로 유럽연합에 호의적이면서도 중남미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외 주요 정당으로는 카탈루냐 지역의 지역정당으로 출발하여 전국정당이 된 중도노선의 사민당(Ciudadanos)은 원래 , 바스크 지역의 바스크민족당(PNV)과 카탈루냐 지역의 카탈루냐공화당(ERC)과 카탈루냐유럽민주당(PDeCAT)등이 있다. | ||
+ | |||
+ | === 왕가 === | ||
+ | 스페인 왕가는 헌법기관으로 국왕은 국가수반으로서 스페인의 통일성과 영속성을 상징한다. 16세기 이후 스페인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오늘날의 스페인 왕가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부르봉 왕가 후손이다. 2014년 왕위를 계승한 필리페 6세는 스페인에서 부르봉왕가의 시작을 알린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 필리페 5세의 뒤를 잇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필리페 5세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이후 스페인 왕으로 임명되어 스페인에서 첫 부르봉 왕가를 시작했다. | ||
+ | |||
+ | 스페인 군주제는 두 차례의 단절의 시기를 거쳤다. 첫 번째 단절은 1873년 2월부터 약 1년 10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1974년 12월 왕정복고에 의해 스페인으로 돌아온 부르봉 왕가는 1831년 지방의회 선거에서 공화파들이 승리하자 알폰소 13세가 프랑스로 망명함으로써 다시 단절되었다. 하지만 193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프랑코는 망명 중인 1947년 알폰소 13세의 손자인 후안 카를로스를 국내로 불러들여 스페인이 왕국임을 선포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국가수반으로서 통치함으로써 국왕이 없는 왕국이 유지되었다. 프랑코의 유언에 따라 1975년 프랑코 사후 카를로스 1세가 즉위함으로써 스페인은 다시 군주제 국가가 되었다. | ||
+ | |||
+ | 20세기 이후 유럽의 군주제 국가들에서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로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했다. 하지만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을 프랑코 독재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변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기존의 보수주의를 버리고 자유주의적 개혁을 통해서 스페인을 의회민주주의 체제로 변화시키는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있다. | ||
+ | |||
+ | === 사법체계 === | ||
+ | 스페인 사법체계의 최고 의결기관은 사법부 총평의회이다. 법관의 선발, 교육, 배치, 승진 및 징계 등 예산을 제외한 사법부 운영에 관한 전권을 행사한다. 사법부 총평의회 의장은 대법원장이 겸임하는데 국왕이 임명한다. 임기 5년의 20명으로 구성된 위원은 법관들 중 상하원이 6명씩 추천한 후보자를 국왕이 임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나머지 8명은 시민사회에서 상하원이 각각 4명씩 추천한 사람으로 국왕이 임명한다. | ||
+ | |||
+ | 법무부는 예산 할당 등 사법부를 운영하는 행정적 지원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판사와 검사는 법무부 소속이 아니라 사법부 소속으로 사법부 총평의회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 ||
+ | |||
+ | 스페인은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헌법재판소를 가진다. 헌법재판소는 1978년 헌법에 의해 탄생한 기관으로 위헌심판, 헌법소원, 사전적, 예방적 규범 통제 등을 담당한다. 또한 중앙정부와 자치주정부 사이, 자치주 정부 사이에 발생하는 권한 문제에 대해 심판하기도 한다. 9년 임기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12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상원과 하원이 각각 4명씩 추천해 국왕이 임명한다. 또한 행정부와 사법부가 각각 2명씩 추천해 국왕이 임명한다. | ||
+ | |||
+ | 고도의 지방자치 국가로서 스페인의 법원은 전국적 관할 영역을 가지는 법원과 자치정부 법원이 존재한다. 전국적 관할 영역을 담당하는 법원은 대법원(Tribunal Supremo)과 우리나라의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국가법원(Audiencia Nacional)이 있다. 반면, 자치정부 법원으로는 17개의 자치주 최고법원(Tribunal Superior de Justicia)과 50개 자치도에 위치한 지방법원(Audiencia Provincial)이 있다. 이들 법원들은 3~4인의 판사가 합의체를 구성해 재판을 담당하는 합의법원이다. | ||
+ | |||
+ | 대법원은 사법부의 최고 상급 법원으로 하급 법원의 상고 사건을 담당한다. 또한 정당의 불법성이나 총리, 각료, 의원 등을 포함한 정부 및 자치주의 고위관료를 상대로 한 민형사 사건을 단심으로 담당한다. 기본권 침해 문제를 제외하고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 및 상고할 수 없다. 대법원은 각각 10~12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민사, 형사, 행정, 노동, 군사 등 5개의 재판부로 구성된다. 특수법원 형태인 국가법원은 수도인 마드리드에 위치해 있으며 형사부, 행정소송부, 노동부로 구성된 재판부를 가진다. 형사부의 경우 테러, 마약, 조직범죄, 위조화폐 등 특수범죄를 담당한다. 자치주 최고법원은 각 자치주에 소재하며 민사, 형사, 행정, 노동재판을 담당한다. 지방법원의 1심사건에 대한 항소를 담당한다. 한편 지방법원은 민사 및 형사 사건만을 담당하며 민사사건의 경우 하급법원의 사건에 대한 상고를 담당하고,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1심을 담당한다. | ||
+ | |||
+ | 하급법원은 모두 재판관 1인에 의해 단독으로 판결하는 법원으로 담당 분야에 따라 세분화 되어 있다. | ||
+ | |||
+ | === 행정구역 === | ||
+ | [[파일:스페인의 행정 구역.png|썸네일|500픽셀|스페인의 행정 구역]] | ||
+ | 스페인은 17개의 광역자치주(comunidad autónoma)로 구성되며, 2개의 자치시(ciudad autónoma)인 세우타(Ceuta)와 멜리야(Melilla)가 있다. 모두 스페인 최고 일선 행정구역이다. 17개의 광역자치주는 50개의 도(provincia)로 다시 나뉜다. 각 도는 다시 시(municipalidad)로 나뉜다. 단 카탈루냐주(Cataluña)는 꼬마르까(comarca)와 베게리아(veguería)라는 행정구역이 더 있다. 시(municipalidad)가 모여 꼬마르까를 이루고, 꼬마르까가 모여 베게리아를 이룬다. 다른 지방에도 꼬마르까는 존재하지만, 카탈루냐와는 달리 역사적 혹은 지리적인 구역에 불과할 뿐, 행정상의 구획은 아니다. | ||
+ | ;광역자치주 | ||
+ | 광역자치주는 스페인 최고 행정구역 단위이다. 1978년, 스페인 내 민족과 지방의 자치 권한을 승인한 헌법이 공포된 이후, 광역자치주가 생겼다.[58] 광역자치주는 공동의 역사, 문화, 경제를 공유하는 인접해 있는 여러 도(provincia)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권한 이양(devolución)에 기반한 영토조직을 자치주라고 인식한다. | ||
+ | |||
+ | 각 광역자치주의 기본 조직법은 자치법(Estatuto de autonomía)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역사에 바탕한 정체성, 영토 경계, 정부 조직 및 구성, 헌법에 근거한 권한에 따라 자치법은 광역자치주라는 명칭을 수립한다. | ||
+ | |||
+ | 모든 광역자치주 정부는 삼권분립 형태에 기반한다. 각 권한은 다음과 같다. | ||
+ | * 입법의회(parlamento) : 의원들은 비례대표제에 따라 보통선거권에 의해 선발되며, 영토를 아우르는 모든 영역을 대표한다. | ||
+ | * 행정의회(consejo de ministro) : 입법의회가 선발하고 스페인 국왕이 지명하는 대통령(presiedente)이 수반이다. 집행 및 행정 기능을 가지고 있다. | ||
+ | * 최고재판소(tribunal supremo) : 스페인 최고재판소(El Tribunal Supremo) 휘하, 광역자치주 내 판사(judicatura)가 우두머리이다. | ||
+ | 카탈루냐, 갈리시아(Galicia), 바스코(el País Vasco) 지방은 독립된 민족성을 가지고 있어 신속한 과정을 거쳐 자치정부를 구성하였다. 안달루시아(Andalusia)도 자치법령을 통해 최초로 자치주 이름을 취득하였지만, 장기적인 과정을 통해 다른 자치주들보다 늦게 헌법에 명기되었다. 이후 다른 지방들도 조금씩 자치법령 수정을 통하여 자치주가 되었다. 발렌시아(Valencia),[60] 카나리아 제도(Islas Canarias), 발레아레스 제도(Islas Baleares), 아라곤(Aragon) 등이 자치주가 되었다. | ||
+ | |||
+ | 광역자치주는 광범위한 입법 및 행정 자치 권한이 있고, 의회와 지방정부를 가지고 있다. 권력이양이 비대칭적으로 이뤄졌기에, 각 광역자치주마다 권력 분산은 제각각 다르다. 바스코와 나바라(Navarra)만이 완벽한 재정 자립을 이루고 있다. 안달루시아, 바스코, 카탈루냐, 갈리시아는 별개의 민족성을 주장하고 다른 자치주들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이양받았다. 이들 지방 대통령은 의회 해산 및 재선거 요구 권한이 있다. 게다가 바스코, 카탈루냐, 나바라는 각각 에르차인차(Ertzaintza), 모소스 데스콰르다(Mossos d'Esquadra), 폴리시아 포랄(Policía Foral)이라는 자치 경찰이 있다. 다른 자치주들은 경찰력이 제한되어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안달루시아의 경우 안달루시아 자치 경찰(Policía Autónoma Andaluza)이 있으며 마드리드에는 BESCAM이라는 경찰이 있다. | ||
+ | |||
+ | 그러나 최근 시행된 자치법 개정 혹은 신자치법 공포를 통해 별개의 민족성을 가진 지방과 기타 지방 갖의 비대칭을 완화시켰다. | ||
+ | |||
+ | 세우타와 멜리야는 북아프리카 연안에 있는 고립영토이다. | ||
+ | ;시도 | ||
+ | 광역자치주는 도(provincia)로 나뉜다. 이는 자치주의 영토의 구성요소이다. 도는 시(municipalidad)로 나뉜다. 두 행정단위는 헌법에 의해 보장된다. 시는 새 업무 경영에 관한 자치 권한이 있다. 도는 미국의 주와 같은 활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구획되었다. | ||
+ | |||
+ | 현재 도 구획은 1833년 스페인 영토 분할에 기반한 것이다. 스페인 영토 전체는 50개의 도로 나뉜다. 또한 아스투리아스주(Asturias), 발레아레스 제도(Islas Baleares), 칸타브리아주(Cantabria), 라리오하주(La Rioja), 마드리드주(Madrid), 무르시아주(Murcia), 나바라주(Navarra)는 그 자체가 도이자 광역자치주이다. 이 경우, 도의 행정 기관은 광역자치주 정부 기관으로 대체된다. | ||
== 경제 == | == 경제 == |
2023년 2월 20일 (월) 17:24 판
스페인(스페인어: España 에스파냐) 또는 스페인 왕국(스페인어: Reino de España 레이노 데 에스파냐)은 유럽의 남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국가이다. 수도는 마드리드(Madrid)이다.
스페인의 영토는 이베리아 반도에 걸쳐져 있으며, 대서양에 위치한 카나리아 제도와 지중해에 위치한 발레아레스 제도 역시 스페인 영토이다. 스페인은 세우타, 멜리야, 페뇽데벨레스데라고메라와 같이 아프리카에 영토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스페인은 유럽 국가 중 아프리카 국가와 유일하게 육지상 국경이 있는 나라이다. 알보란해에 있는 플라사스 데 소베라니아 역시 스페인 영토이다. 스페인 본토는 동쪽과 남쪽이 지중해에 접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영국의 지브롤터만이 육지 국경이다. 북쪽의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안도라와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쪽 바다는 비스케이만을 접한다. 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 바다는 대서양이다.
많은 소왕국들이 8세기 초부터 이슬람 세력에 지배당하다가 이슬람으로부터 실지회복(失地回復)을 꾀하는 국토회복운동이 1492년 성공함으로써 통일이 이루어졌다.
목차
개요
스페인은 남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로 전성기 시절에는 무적함대로 대표되는 강력한 해양 국가이자 대영제국 이전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까지 여겨졌던 세계적인 열강이었다. 북쪽으로는 프랑스와 안도라, 서쪽으로는 포르투갈, 남쪽으로는 모로코와 지브롤터와 인접하고 있다. 국토 면적은 505,990㎢으로, 서유럽과 유럽 연합에서는 영토가 두 번째로 넓으며, 유럽 국가 전체에서는 4번째로 영토가 넓다. 인구는 유럽 전체에서 9번째로 많으며, 유럽 연합에서는 4번째로 많다.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다. 마드리드의 인구는 2021년 기준으로 6,661,949명이다. 다른 주요 도시에는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세비야, 빌바오, 말라가 등이 있다.
스페인의 역사는 35,000년 전 이베리아 반도에 호모 사피엔스가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페니키아, 고대 그리스, 켈트, 카르타고 문화와 이베리아 고유의 문화가 발달하였고, 기원전 200년 로마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히스파니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독일 부족이 중앙 유럽으로 유입되었고, 서고트족이 이 지역을 정복하여 서고트 왕국을 세웠다. 이후 동로마 제국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를 정복해 스파니아라는 관구를 설치했으나 곧 서고트 왕국이 다시 이 지역을 정복했다. 이후 8세기 초, 서고트 왕국은 우마이야 왕조의 무어인들의 공격으로 726년 멸망했고, 이후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은 이슬람의 영향권이 되었다. 이후 약 7세기 동안 레콩키스타가 일어나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 나바르 왕국과 같은 크리스트교 국가들이 등장했으며, 1492년 이 국가들의 대부분은 가톨릭 군주라는 이름 하에 스페인으로 통합되었다.
근대 시기에 스페인은 세계 최초의 제국이 되었고, 많은 문화적, 언어적 유산을 남겼다. 오늘날 스페인어 사용자는 약 5억 7,000만 명에 달하며, 스페인어는 중국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모국어가 되었다. 스페인 문화의 황금 시기에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등장했고, 이 시기에 돈키호테가 출판되었다. 오늘날 스페인은 세계에서 11번째로 많은 세계 문화 유산을 보유한 국가이다.
스페인은 세속 국가이자 민주주의를 도입한 국가로, 펠리페 6세를 국가원수로 하는 입헌군주국이기도 하다. 스페인은 선진국에 속하며 고소득 국가이며 14번째로 경제 규모가 크다. 스페인은 유엔, 유럽 연합, 유럽 평의회, 이베로아메리카 국가 기구, 지중해 연합, 북대서양 조약 기구, 세계무역기구,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유럽 안보 협력 기구, 솅겐 지역을 비롯한 여러 국제 기구의 회원국이다. 또한 G20의 공식적인 회원국은 아니지만, 스페인은 G20 회담에서 영구 초청국의 지위를 확보해 사실상 G20 회원국으로 보기도 한다.
국가 상징
국호
스페인 헌법에서는 국명을 에스파냐(España)로 표기하고 있으며 외교 관계 등에서 사용하는 정식 국명은 에스파냐 왕국(스페인어: Reino de España)이다. 현재 대한민국 및 일본에서 통용되고 있는 스페인(Spain)은 영어식 국명이다. 자국어 표기 및 원어 발음과 차이가 있어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에스파냐"로 표기하였으나 정착되지 못했고, 현재는 대한민국 주재 대사관에서도 스스로를 "주한 스페인 대사관"으로 호칭하고 있다. 과거에는 한자 음역인 서반아(西班牙)로도 불렸으나 21세기 들어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España라는 국호의 이름과 영어의 동의어 "Spain"이나 "Spanish"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Hispania라는 단어는 고대 로마 시대에 이베리아 반도를 지칭했던 Hesperia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며, 이는 시적 용어였다. 고대 그리스인의 개념에서 이탈리아는 "서쪽의 땅"이거나 "해가 지는 곳"을 의미했으며, 이를 두고 그리스어로 Hesperia 혹은 Εσπερία로 썼다. 스페인은 그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이탈리아보다 더 서쪽이므로 Hesperia ultima로 일컬어졌다.
카르타고인의 관념에서 스페인은 Ispanihad으로 불렸으며 "토끼의 땅", "가장자리"를 뜻했다. 이는 지중해의 끝에 해당함을 가리킨다. 본디 히스파니아에서 태어난 하드리아누스의 통치 기간 중 동전에 새겨진 로마제국의 영토에서 스페인 위에는 여성의 모습과 함께 발 쪽에 토끼가 새겨져 있다.
한편, 바스크어의 단어 Ezpanna에서 에스파냐가 유래했다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그 뜻은 가장자리를 의미하며, 유럽 대륙의 남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는 스페인의 위치와도 관련돼 있다.
인문학자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Antonio de Nebrija)는 단어 Hispania가 이베리아로망스어에서 볼 수 있는 단어 Hispalis에서 의미했다고 보기도 하며, 그 뜻은 "서쪽 세상의 도시"이다. 헤수스 루이스 쿤치요스(Jesús Luis Cunchillos)가 2000년에 출판한 Gramática fenicia elemental (기초 페니키아어 문법)에는 단어의 뿌리를 span으로 보았다. 이를 다시 쪼개면 spy, 즉 "쇠를 벼리다", "날이 무뎌진 연장이나 금속 따위를 날카롭게 만들다"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Hispania를 더 작은 단위로 나눠 보면, i-spn-ya가 되며 의미는 "금속 따위를 벼르는 땅(대지)"이 된다.
국기
본래는 군함 깃발이었다가 국기로 1승격되어 사용된다. 위아래에 빨강, 중앙에 노랑을 배치했고 좌측에 스페인 국가 문장을 새겼다. 빨강은 국가를 사수하는 혈맹 정신과 스페인의 정열을, 노랑은 스페인의 영토를 나타낸다. 민간에서는 문장 없는 삼색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초기 국기. 제1공화국 때는 문장 위의 왕관을 제거했다가 왕정 복고이후 다시 왕관이 복구됐고, 제2공화국 설립 이전까지 사용했다.
스페인 제2공화국은 아래에 카스티야를 상징하는 보라색을 넣은 삼색기를 사용했다. 원래 카스티야를 상징하는 깃발과 색은 빨간 바탕 위에 국가 이름 그대로 성이 그려져 있는 문장이지만 19세기 역사학자들이 낭만주의적인 지방 민족주의의 흔적을 재발굴하는 과정에서 하도 오래되어서 색이 빨간색에서 보라색으로 바랜 깃발을 보고 카스티야의 전통 색은 보라색이라 생각했고 훗날 탈색으로 인해 생긴 착각으로 밝혀졌지만 이미 카스티야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보라색 깃발이 받아들여진 지 오래라 지금도 공화파나 카스티야 좌파 민족주의 계열은 보라색을 유지하고 있다.[7] 현재 공식 국기는 아니지만 반 왕정 시위 때 종종 사용하고 베리에이션 중에서 붉은 별이 박혀 있는 깃발도 볼 수 있다.
프랑코 정권에서는 요한의 복음서(복음사가 요한)의 독수리가 들어간 국기를 사용했는데 프랑코가 사망하고 왕정 복고가 이뤄진 이후에도 약간의 수정을 거쳐서 1981년까지 사용되다가 현 스페인 국기로 바뀌었다. 현재는 스페인 극우파에서만 사용될 뿐이다. 현지에서 이 깃발을 펄럭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네오나치나 팔랑헤 같은 극우파 집회가 열렸을 가능성이 높다.
국장
문장은 스페인 왕가의 문장으로 양측에 헤라클레스의 기둥이 형상화되어 있다. 각 기둥을 감싸는 띠에 쓰인 PLVS VLTRA는 카를로스 1세(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는 카를 5세)가 남긴 말로 '더욱 더 멀리(Más allá 마스 아야)'라는 의미를 지닌다. 당시 스페인의 국가적 정신을 요약한 표어로 카를로스 1세 때부터 줄곧 사용되어 왔다. 방패의 문장들은 스페인 왕국을 구성하는 옛 왕국들의 것으로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카스티야(성채), 레온(사자), 나바라(사슬), 그라나다(석류 꽃), 아라곤(적황색 줄무늬)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운데에 박힌 백합은 보르본 왕조의 상징이다. 레알 마드리드 CF의 엠블럼 위 왕관이 스페인 국장의 왕관에서 따온 것이다.
국가
국가는 '국왕 행진곡(Marcha Real, 마르차 레알)'으로 원래 스페인군 척탄병 행군가였는데 이후 왕가의 승인을 받아 국가로 승격되었고 작곡자나 처음 불렀던 이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공식적으로 가사가 없는 멜로디풍의 국가다. 2019년 기준으로 국가에 가사가 없는 국가가 네 국가인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산마리노, 코소보가 나머지 세 국가다. 국가 자체는 무려 250년이나 된 전통있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가사가 없어서 일반적으로 가사 없는 국가 하면 대표적으로 꼽히기도 한다. 국제대회 같은 곳에서 선수들이 국가가 나올 때 멀뚱히 서 있는 것이 정신이 썩었다거나 귀찮아서 안 부르는 게 아니라 원래 가사가 없다.
예전부터 가사가 없는 국가는 아니었다. 가사가 있는 버전으로는 알폰소 13세 버전과 프랑코 버전이 있는데 각기 1879년~1946년, 1897년~1981년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2008년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가사를 공모해서 공식화하려 했으나 5일 만에 짤렸다.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이라며 가루가 되도록 까여서 그런 듯하다. 문제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 ¡Viva España! (에스파냐 만세!)
- Cantemos todos juntos (함께 노래부르자)
- con distinta voz (서로 다른 목소리로)
- y un solo corazón (그리고 하나된 심장으로)
- ¡Viva España! (에스파냐 만세!)
- desde los verdes valles (초록빛 계곡으로부터)
- al inmenso mar, (광대한 바다까지)
- un himno de hermandad (형제애의 찬가를)
- Ama a la patria (조국을 사랑하라!)
- pues sabe abrazar, (조국은 포옹한다,)
- bajo su cielo azul, (그 푸른 하늘 아래에서,)
- pueblos en libertad (우리 자유로운 국민들을)
- Gloria a los hijos (자손들에게 영광 있으라!)
- que a la Historia dan (그들은 역사를 장식할 것이다)
- justicia y grandeza (정의와 장엄함으로,)
- democracia y paz. (민주주의와 평화로!)
사실 여느 국가 가사들과 비교해 봐도 전혀 무리는 없다. 저 정도의 민족주의를 강조하지 않는 국가는 거의 없고 타 국가와의 분쟁이 될 만한 가사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카탈루냐인들에게는 작사자가 카스티야인이라는 이유로 까였고 프랑코 독재 정권의 기억 때문에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라는 것 자체에 대해 큰 환멸을 가지고 있는 탓도 커서 채택되지는 않았다. 또 프랑코 시절에는 3개의 찬가(Triple Himno)라는 것도 있었는데 스페인군 행진곡인 오리아멘디, 팔랑헤당 당가인 태양을 마주하며, 국가인 왕의 행진을 3등분해서 만든 것으로 1936년부터 1975년까지 쓰였다. 현재는 RNE에서 녹음한 녹음본밖에 없다. 스페인 제2공화국 시절에는 리에고 찬가가 국가로 사용되었다.
지리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세계에서 51번째로 큰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면적은 50만 4,782km²이다. 본토는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하는데, 그밖에 지중해와 대서양의 제도, 두 개의 자치시인 세우타와 멜리야가 있다. 본토의 1/3 정도가 산지이며, 평균 해발 고도 660미터로 유럽을 통틀어 스위스 다음가는 고산 국가이기도 하다. 북부에는 피레네 산맥, 대서양 연안 지방에는 칸타브리아 산맥, 남부에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중앙부에는 메세타 고원(이베리아 고원)이 있다. 과달키비르 강, 과디아나 강을 비롯해 에브로 강, 두에로 강 등이 스페인의 주요 강이다.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토지가 비옥해 예로부터 포도 및 오렌지, 올리브 재배가 이루어졌으며, 이슬람의 지배를 오래 받아 아직도 아랍 문화의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다. 스페인 본토의 동쪽을 보면 큰 섬이 몇 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요르카섬을 비롯한 발레아레스 제도라 불리는 이곳은 지중해에서 가장 각광받는 휴양지 중 하나이며, 1950년대 스페인 정부의 관광 개발 정책에 힘입어 관광업이 계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성장했다. 세우타와 멜리야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스페인령으로 모로코와 인접하는 한편 지브롤터 해협의 중요 항구인 지브롤터는 영국령이다. 비다소아 강의 작은 섬인 피센 섬은 프랑스와 공동 관리한다.
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접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 및 안도라 공국과 접하고 있다. 또한 피레네 근처에 있는 인구 약 1200명 규모의 리비아(Llívia)라는 마을은 프랑스 영토에 둘러싸여 있기도 하다.
섬
스페인의 영토에는 발레아레스 제도와 카나리아 제도 그리고 지중해 및 지브롤터 해협 근처에 접하는 여러 무인도가 포함된다. 지중해의 도서 영토를 두고 Plazas de soberanía로 칭하며 차파리나스 제도, 알보란 섬, 페레힐 섬 등을 포함한다. 비다소아 강에 있는 피전트 섬은 스페인과 프랑스가 공통으로 점유하고 있다.
- 1. 테네리페 899,833
- 2. 마요르카 862,397
- 3. 그란 카나리아 838,397
- 4. 란사로테 141,938
- 5. 이비사 125,053
- 6. 푸에르테벤투라 103,107
- 7. 메노르카 92,434
- 8. 라 팔마 85,933
- 9. 라 고메라 22,259
- 10. 엘 이에로 10,558
- 11. 포르멘테라 7,957
- 12. 아로사 섬 4,889
- 13. 라 그라시오사 658
- 14. 타바르카 105
- 15. 온스 61
산과 강
이베리아 반도에 속한 스페인 본토는 산악 지형이 두드러 지며 산악 지형을 중심으로 고지대 평원이 분포한다. 피레네 산맥을 잇는 산지로는 칸타브리아 산맥, 시스테마 이베리코, 시스테마 센트랄, 톨레도 산맥, 시에라 모레나 등이 있으며 최고봉 3,478m인 물아센(Mulhacén)이 있는 시스테마 페니베티고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위치하고 있다. 이 봉우리는 스페인 본토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서 스페인 전 영토를 포함하여 최고봉은 카나리아 제도의 화산인 테이데이다. 메세타 고원은 스페인 중앙부에 위치한 고지대 평원이다.
주요 강으로는 에브로 강, 두에로 강, 타구스 강을 비롯해 과디아나 강, 과달키비르 강이 있다. 충적 평야는 대부분 해안가에 분포하며 과달키비르 강에 위치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충적평야가 가장 넓고 비옥하다.
기후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그렇듯이 1년 내내 햇볕이 따사롭고 놀기 좋은 해변을 많이 갖고 있다. 덕분에 관광 분야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스페인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8,300만 명으로 세계 2위, 관광 수입은 80조원으로 세계 2위다. 독일 등 북유럽 노인들이 은퇴 후 살고 싶은 나라 1순위다. 실제로 말라가나 마요르카 섬 등 경치좋고 살기 좋은 동네에서는 독일, 영국 등에서 은퇴 후 이민으로 정착한 노인들을 흔히 만나볼 수 있다. 심지어 식당 메뉴에도 독일어가 병기되어 있을 정도. 그래서 각종 편견에서 마요르카는 반쯤 독일 땅 취급당하고 있다.
지중해에 면한 남유럽 국가라는 이유 때문에 일년 내내 따스하고 햇볕 강한 기후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스페인은 넓은 국가라 기후가 꽤 다양한 편이다. 북부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습하면서 서늘하고 남부와 내륙 지방은 중동과 북아프리카가 연상될만큼 덥고 건조하다.
특히 무르시아와 안달루시아 지역은 특히 여름이 매우 건조하며 덥다. 안달루시아의 주도인 그라나다의 1년 평균 강수량은 353mm, 무르시아는 297mm, 지중해 해안 도시인 알메리아는 고작 200mm에 불과해 사막성 기후를 띤다. 알메리아를 중심으로 그라나다에서 무르시아까지 지중해 해안을 따라 사막이 분포하는데 이 사막의 이름을 타베르나스 사막(Tabernas Desert)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유럽에서 유일한 사막으로 알려져 있어 유럽 전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관개 시설로도 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이어서 비닐하우스를 통한 온실 농업이 행해진다.
마드리드, 톨레도, 사라고사, 바야돌리드 등의 내륙 지역 역시 지중해성과 스텝 기후를 오갈 만큼 건조하다. 특히 여름에는 남동부만큼 강렬하게 뜨겁기까지 해서 사막 수준의 기후도를 보인다. 하지만 고지대가 많아 기온 자체는 남동부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은데, 그래도 40도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해발고도 600m가 넘는 마드리드의 역대 최고 기온이 44.3도일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곳이다. 겨울에는 평균 기온 5도 내외로 비교적 서늘하지만 해발고도 500m~1,000m의 고지대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기온이 낮은 편은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 지역도 남동부처럼 매우 건조해서 위의 주요 네 도시 중 1년 강수량 500mm를 넘는 곳이 없다. 특히 사라고사의 경우 1년 강수량이 300mm 초반에 불과해 관개를 하지 않으면 농사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건조하다. 스페인 내륙 역시 남동부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사막화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드는 지역이다.
실제로 말라가 - 하엔 - 시우다드레알 - 톨레도 - 살라망카 - 레온 - 부르고스 - 로그로뇨 - 사라고사 - 발렌시아를 잇는 선 안의 지역은 연평균 500mm 미만인 건조지대로 스페인 전체 면적의 1/3 이상을 차지한다. 동남부와 중부 고원 지대에서는 주변의 강물과 지하수를 끌어다 쓰는 관개 농업이 이루어지고 관개 시설이 없으면 농사가 불가능할 만큼 건조도가 심하다. 그나마 중부 고원의 산지는 고도가 높아서 증발량이 낮아 숲이 형성되어 있어 이곳에서 주로 강물이 공급되지만 동남부 해안가는 나무가 자라지 않는 황량한 민둥산과 와디가 펼쳐져 있다. 여름날 스페인 거리를 걸으면 왜 시에스타가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안달루시아나 무르시아 같은 남부의 내륙 지역은 여름엔 정말 바싹 타버릴 정도로 덥다. 섭씨 39도~40도는 예사로울 정도다. 이 지역은 사막 또는 스텝 기후를 띄는 곳이 많아 키낮은 초목이 듬성듬성 있는 민둥산과 황무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예전에는 이곳에서도 농사를 지었으나 사하라발 사막화가 지중해를 넘어 이곳까지 침투하는 바람에 농사를 포기하고 텅텅 비어버린 땅이 많다고 한다.
유일하게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기후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곳은 비스케이 만 부근, 갈리시아, 바스크 지방으로 대표되는 북부 해안 지대다. 이곳은 북대서양 난류(멕시코 만류)가 직접 통과하는 곳이라 온난 습윤 기후나 서안 해양성 기후를 띤다. 갈리시아의 간판급 도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의 경우 하도 비가 자주 내려서 "비가 막 그친 거리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 비고(Vigo)같은 해안가 도시들은 더 극단적이라 1년 강수량이 1,791mm에 달하며 푸른 녹음이 우거진 풍경을 보여준다. 오히려 강수량이 집중되는 겨울엔 음침하고 우울한 느낌까지 받을 수 있고 스페인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서늘하다. 히혼은 2월 평균 기온 10.3도, 8월 평균 기온 20.4도로 연간 차이가 고작 10도에 불과하고 빌바오 역시 1월 9.3도, 8월 20.9도로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비고의 여름 평균 기온은 20도를 채 넘지 않는다. 시에스타가 존재할 정도로 뜨겁고 건조한 타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후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지나가는 북부 내륙은 4월까지도 비가 잦고 꽤나 서늘한 편이기 때문에 햇살 좋은 스페인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가벼운 옷차림으로만 왔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이 지역도 이상 기후의 영향에서는 자유롭지 못한지 2020년 7월 바스크 기푸스코아의 산 세바스티안에서 기온이 무려 42°C를 기록하기도 했다. 북동부 피레네 산맥과 안도라 공국 지역, 안달루시아 남부의 시에라네바다 산맥 지역은 겨울에 눈이 내리는 지역으로 이 지역 스키 리조트가 유럽권에서 유명하다. 여름도 타 지방보다 선선한 편이다. 최근 이상 기후로 4~5월까지도 폭설이 내려 애먹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2021년 1월에 아라곤에서 -34.1°C까지 내려갔다. 1956년 예이다 지방에서 기록된 영하 32도보다 낮다.
역사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스페인의 로마 시대 옛 이름인 히스파니아는 로마 제국의 일부였는데, 곧 히스파니아는 제국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성장하였다. 중세 초반에는 게르만 족의 지배를 받았고, 그 시기 이후에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오랜 투쟁과 전쟁 끝에 1492년 기독교도들의 왕국이 다시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하였다. 같은 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절대 왕정과 식민지 개척을 추진하여 스페인은 가장 강대한 제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후 전쟁과 내분 끝에 이러한 전성기는 영원하지 못했으며, 스페인은 20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정권 아래에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5년에 독재 정권이 막을 내린 이후 스페인은 고도의 경제 발전과 사회적 안정을 이루었으며, 1986년에는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선사 시대의 이베리아 반도
약 3만 5천 년 전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 현재의 이베리아 반도로 크로마뇽인과 유사한 현대적 인류가 진출하여 거주하기 시작했다. 북부 지방의 알타미라 동굴에는 이러한 선사 시대의 유적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약 기원전 1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벽화가 남아 있다. 아타푸에르카 지방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적에서는 이미 백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지역에 살았던 고대의 두 민족은 이베리아족과 켈트족이다 이들은 지중해 쪽과 북동쪽에서 남서쪽에 모여 살았으며, 이후에는 대서양 방면에도 거주하기 시작했다. 코임브라 및 브라카와 세고비아에는 켈트족의 고대 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편 이베리아 족은 그들의 언어를 이베리아 반도의 두번째로 긴 강 이름인 에브로에 남겼다. 이베리아 족의 후예 중 한 갈래인 바스크족은 피레네 지방의 서부를 점령했다. 기원전 500년에서 300년 사이에는 페니키아인이 들어와 살았으며, 그리스인도 지중해 연안에 그들의 교역 중심지인 식민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중 현대에도 남아 있는 도시가 엠푸리아 및 마라가, 아리칸테가 있다. 페니키아인이 세운 도시로는 카르테지가 있다. 페니키아인은 그 뒤 로마 제국에게 정복당한다. 로마와 대적하여 유명한 한니발의 아버지인 하밀카르 바르카가 세운 카르타헤나가 현재까지 도시로 남아 있다. 그의 이름은 또한 당시 도시 중 하나인 바르키노에 남았는데, 이 이름에서 바르셀로나가 유래했다고 한다.
로마와 게르만 족의 침략
2차 포에니 전쟁 후 로마 제국이 영토를 넓혀가면서 지중해를 따라 국력을 계속 확장하였다. 대략 이 시기는 기원전 210년에서 205년 사이로 추정되는데, 이때부터 이베리아 반도는 500년간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인들은 이때부터 스페인을 “히스파니아”(Hispania)로 부르면서 자연스레 법률을 비롯하여 언어, 로마의 도로 등의 제도를 정착시켜 나갔다. 로마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구분포도 달라지게 됐으며, 그 지배 계급은 로마 전체에서도 귀족 계급과 유사한 대우를 받게 된다.
로마인은 타라고나나 사라고사, 발렌시아, 레온 등 훌륭한 도시를 많이 건설했다. 곡창 지대이자 지중해를 바로 보고 있어 당시 스페인은 올리브기름이나 양모, 금, 포도주, 석탄를 수입하는 무역 지대로 각광받았다. 관개 시설도 발달되면서 농업 생산물은 로마 전역에 공급되었다.
트라야누스, 테오도시우스 1세 등은 이곳 출신이었다. 기독교는 1세기에 도입됐으며, 2세기가 되면서 대부분의 도시에서 널리 수용됐다. 거의 대부분의 스페인어와 종교, 법률 등은 대부분 이 시기에 비롯하였다.
최초의 게르만 족은 로마 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듦에 따라 5세기쯤에 이르러서 들어왔다. 서고트족과 수에비 족, 반달 족 등의 다른 부족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왔다. 415년경의 일이었다.
서고트 족이 세운 왕국은 점차 세력을 뻗쳐 이베리아 반도 거의 대부분의 영토에 이르렀다. 그들은 유사한 시기에 이주한 수에비 족과 비잔티움 제국이 관리하던 남동부의 영토를 복속시켰다.
로마인은 타라고나나 사라고사, 발렌시아, 레온 등 훌륭한 도시를 많이 건설했다. 곡창 지대이자 지중해를 바로 보고 있어 당시 스페인은 올리브기름이나 양모, 금, 포도주, 석탄를 수입하는 무역 지대로 각광받았다. 관개 시설도 발달되면서 농업 생산물은 로마 전역에 공급되었다.
트라야누스, 테오도시우스 1세 등은 이곳 출신이었다. 기독교는 1세기에 도입됐으며, 2세기가 되면서 대부분의 도시에서 널리 수용됐다. 거의 대부분의 스페인어와 종교, 법률 등은 대부분 이 시기에 비롯하였다.
최초의 게르만 족은 로마 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듦에 따라 5세기쯤에 이르러서 들어왔다.[13] 서고트족과 수에비 족, 반달 족 등의 다른 부족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왔다. 415년경의 일이었다.
서고트 족이 세운 왕국은 점차 세력을 뻗쳐 이베리아 반도 거의 대부분의 영토에 이르렀다. 그들은 유사한 시기에 이주한 수에비 족과 비잔티움 제국이 관리하던 남동부의 영토를 복속시켰다.
이슬람 통치기
711년 우마이야 왕조의 타리크 이븐 지야드 장군이 이끄는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연합군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피레네 이남의 안달루시아(포르투갈, 스페인)를 정복했다. 이때부터 781년 동안 스페인 지역에서 이슬람 왕국이 존재하였다. 751년 호라산 지방에서 봉기한 새로운 이슬람 왕조인 아바스 왕조가 우마이야 왕조를 대체하자 우마이야 가문의 압둘 라흐만 1세가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가 분열된 이슬람 왕국들을 통일하고 후 우마이야 시대를 열었고, 8대 원수 압둘 라흐만 3세 때 이르러 대외적으로 칼리프국임을 선언하였다.
8세기 초 북아프리카로부터 건너온 무어인(베르베르 무슬림)은 이베리아 반도 거의 대부분을 정복했다(711년~718년). 이 정복은 무슬림의 우마이야 제국의 확장 활동의 일환이었다. 아스투리아스와 나바라, 아라곤의 세 개의 작은 북쪽 산간 지방만이 겨우 남아서 독립을 유지하였다.
무슬림 지배 아래에서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자신들의 종교를 지킬 자유가 주어졌다. 차츰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커졌으며 귀족 계급부터 신분의 제한과 모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10세기와 11세기에 많은 이들이 개종을 하게 되면서 알안달루스(안달루시아) 주민의 다수가 이슬람을 믿게 되었다.
남부 지방에 있는 안달루시아의 코르도바는 무슬림 스페인의 수도로 중세 유럽에서 가장 크고 부유하며 발달된 도시였다. 지중해 무역과 문화 간 교류가 꽃을 피웠다. 아랍과 북아프리카의 풍부한 지적 유산이 유럽으로 전해져 왔다. 무슬림과 유대인 학자들은 서유럽의 고전 그리스 문화를 되살리고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하였으며, 이런 활동을 통해 스페인의 로마화된 문화가 아랍 문화와 유대 문화와 섞여 스페인의 독창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다. 한편 다른 유럽 지방은 중세의 암흑기로 종교적으로나 문화적, 과학적으로 많이 뒤처져 있었다.
압둘 라흐만 3세의 손자인 히샴 2세 시기에 이르러 여러 작은 도시 국가들로 분열된 안달루시아는 1031년부터 1085년까지 분쟁과 협력을 계속하다가, 북부 기독교 세력의 잦은 침략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시기에 무슬림들은 북부 기독교 왕국에 파리아스(Parias)라고 불리는 보호비 명분의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1085년, 북부 국경 지대의 톨레도 왕국이 기독교권에 넘어가자 여러 군소 이슬람 왕국들은 당시 모로코 지방의 강력한 이슬람 왕조였던 모라비드 왕국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모라비드 왕국은 이를 계기로 안달루시아로 진격해 들어가 이슬람 왕국들을 통합하고 기독교 세력을 재차 몰아내었다. 그 후 모하드 왕국 시대에 이르러 기독교 6왕국 연합군이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1212)에서 모하드 왕조군을 결정적으로 패배시켰고 이로 인해 무슬림들은 남쪽의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한 안달루시아 남부 지방만을 지배하다가 1492년 최종적으로 후퇴하였다.
스페인 통일
12세기에 이르러서는 종교적 관용 정책이 약화되어 종교적 탄압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북쪽의 기독교 세력들은 13세기 초부터 남진하여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레콘키스타(재정복; 국토 회복 운동)라고 한다. 그 시작은 722년의 코바돈가 전투이다. 기독교 군대의 승리는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슬람 군대들은 피레네 북쪽으로 옮겨가면서 세력을 확장했지만, 지금의 프랑스 투르 근처에서 전투로 패하면서 두에로 강과 에브로 강과 함께 피레네 산지를 낀 남쪽 지방(현재의 스페인)으로 후퇴하게 된다. 이 전투를 투르 전투 혹은 투르 푸아티에 전투라고 부른다. 이슬람 군대는 당시 유럽을 통틀어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던 갈리시아를 수호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기록에 따르면 적어도 739명의 군대가 강제로 쫓겨났다. 나중에 프랑크족 세력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그들 세력이 나뉘어 성장하게 된다. 카스티야 왕국을 비롯한 아라곤 왕국, 그라나다 왕국, 나바라 왕국 등 네 개의 왕국이 이들에 해당한다.
한편 8세기부터 스페인을 다스린 무어인의 알 안달루스는 주변의 토후국들과 경쟁하느라 결국에 기독교 세력의 팽창을 도와주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 다만 1085년 톨레도를 점령하면서 북쪽 지역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계속해서 국토 회복 운동이 남쪽 방향으로 향한다. 종교적으로 이때까지는 극심한 탄압이 이뤄지지 않아서 몇 안 되는 모스크나 이슬람 사원만이 교회로 바뀌었다. 이미 무어인이 스페인 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무어인의 예술과 건축, 음식 등 고유의 문화는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18] 막대한 위력을 떨치던 이슬람 세력은 기독교 세력에게 코르도바 지역을 시작으로 1236년 지금의 세비야까지 내주고 만다. 잠시 동안 여러 상황을 겪은 스페인은 유럽 전체를 집어 삼킨 흑사병으로 1348년 무렵에는 극도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슬람 세력을 지원하던 마리니드 왕조는 13~14세기에 다발적으로 무슬림의 규약을 부활시키기 위해 재침공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마리니드 왕조는 13세기 중엽부터 15세기까지 스페인 남부와 지금의 모로코를 통치하였다.
1469년 아라곤의 왕위 후계자 페르난도와 카스티야의 왕위 계승 후계자 이사벨의 결혼으로 공동 국왕이 지배하는 왕국이 성립됐다. 두 사람의 공동 왕국 출범 이후, 스페인은 1479년 카나리아 제도를 복속하고 1492년 무슬림의 마지막 보루이던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781년 간의 스페인 내 무슬림 지배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루었다. 이 시기에 스페인에는 팔렌치아 대학과 살라만카 대학 등이 설립된다. 이들 학교는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이른 시기에 설립된 대학이다.
1492년은 스페인에게 있어서 여러 의미를 지니는 한해였다. 이교도 세력을 몰아내고 통일을 이루었을뿐만 아니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스페인 내 유대인 박해가 시작된다. 철저한 로마 가톨릭 국가가 되기 위해 종교재판을 통해 이단을 색출한다는 명분 하에 무력으로 저항하는 다른 종교 신자들을 화형에 처하고 개종을 거부하는 이슬람교도와 유대교 신자를 죽였다.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르네상스 시대의 신흥 군주로서 지위를 확립하면서 지역 귀족과 합세하여 왕족의 권위를 세운다. 이런 과정에서 España(에스파냐)라는 단어가 출현하게 된다. 에스파냐라는 단어는 고대에 스페인을 지칭하던 히스파니아(라틴어: Hispania)에서 유래했으며,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 모두를 통칭하기 위해 쓰이기 시작한다. 스페인 전체에 통합과 더불어 안정기가 찾아오면서 종교, 정치, 군사 등 전반에 발전을 거두게 되며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르게 된다. 훗날 수많은 식민지를 복속한 국력 신장의 계기는 이때 다져진다.
스페인의 전성기
왕국의 통합은 스페인 제국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16세기와 17세기 대부분에 걸쳐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렸으며 식민지 무역으로 쌓은 부를 누렸다. 그중에서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 때에 이르러 최고의 영화를 쌓게 된다. 다만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 이탈리아 전쟁,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 영국과 스페인 간 전쟁(1588년~1604년)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6세기에 카를로스 1세에 의해 시작된 스페인-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는 남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오늘날 미국의 남서부 지방, 필리핀, 마리아나 제도, 포르투갈,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스페인 제국은 이때부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별칭을 얻게 돼 "스페인이 움직이면 전 세계가 두려워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바다와 육지를 넘어 바닷길이 열리면서 유럽의 제국주의가 첫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금은이나 향신료, 진귀한 농산물을 약탈하면서 스페인 항해자들은 유럽인에게 신세계를 소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당대는 분명 스페인의 개화기로서 지금은 스페인의 황금기로 칭송되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인들에게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을 강제하였으며 식민지 자원 수탈과 흑인 노예무역에 앞장서기도 했다.
한편 스페인은 황금기를 누리면서도 수많은 전쟁에 시달린다. 오스만 제국의 급성장과 더불어 오스만과 손을 잡은 해적들이 지중해 연안 지방에는 약탈을 일삼아 노예 매매와 침략 행위가 끊이지 않게 된다. 이슬람 세력에 의한 약탈도 빈번했으며 유럽의 강대국들은 이탈리아 반도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여러번 전쟁을 치구기도 했다.(이탈리아 대전쟁) 후에는 로마 가톨릭 내 교회 개혁 문제로 스페인 전체가 분열에 휩싸여 스페인은 한동안 종교 문제에 지속적으로 군사 대응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수십 년간의 전쟁과 기근 속에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여러 문제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스페인의 합스부르크가는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문제에 개입하며 사태를 악화시켜 국력 약화를 자초했다.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로서 땅에 떨어진 합스부르크가의 위신을 세우려 노력했다. 신성 로마 제국의 군대와도 함께 연합하여 개신교 세력이 일으킨 변혁을 뒤엎으려 시도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포르투갈이 독립을 쟁취하는 한편 네덜란드도 1648년 완전 독립하기에 이르렀다. 결국에는 유럽 전역에 30년 전쟁이 불어 닥치자 신교를 비밀리에 지원하던 프랑스에 패배하였다. 당시 스페인의 영향력은 유럽 전역에 미치고 있었으므로 유럽 전반의 경제 또한 상당한 침체기를 겪었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스페인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광대한 해외 영토를 유지하면서 더욱 그 영향력을 넓혀 식민지 통치를 19세기까지 계속하게 된다.
또 한 번의 쇠퇴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일어났다. 카를로스 2세가 후사없이 사망하여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조가 단절되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발생한 왕위 계승 전쟁은 귀족 세력뿐만 아니라 시민전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왕위 계승 전쟁 동안 유럽 내 스페인의 영향력은 물론 대륙 내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도 사실상 잃게 됐다. 영국과 오스트리아에 방대한 영토를 내주면서 해상 강국의 지위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전쟁의 결과,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인 펠리페 5세의 왕위계승이 확정되면서 스페인에 부르봉 왕조가 시작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스페인은 막대한 영토와 부를 토대로 다시 회복기를 맞는다. 더불어 유럽 내 스페인의 지위도 조금씩 향상되기 시작하였다. 스페인의 재도약의 시작과 함께 부르봉 왕가는 행정 체계 정비에 박차를 가해 견제하는 한편 상당수의 유럽 군주 또한 스페인의 발전에 귀 기울이게 됐다.
1763년에는 [[프랑스-인디언 에서 승리하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주, 유타주, 빌링스, 캐스퍼, 시애틀, 애리조나주, 미니애폴리스, 덴버, 캔자스시티, 세인트루이스, 배턴루지, 댈러스 등 미시시피 강 서부에 있는 모든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쇠퇴
1793년 스페인은 프랑스 제1공화국과 전쟁을 겪게 됐다. 프랑스의 공격으로 스페인은 지식인 사이에서는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전장에서 패하면서 1795년에 프랑스와 강화 조약을 체결하게 되며 결과적으로는 종속국이 된다. 스페인 왕실 자체가 멸족하지는 않았으므로 이듬해 스페인은 영국과 포르투갈에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그러나 잇따른 전쟁으로 되레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국력만 허비하게 된다.
대륙봉쇄령을 위반한 포르투갈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스페인 영내에 진주한 나폴레옹은 1808년 5월에 스페인 전쟁에 개입하여 왕위를 찬탈하였다. 나폴레옹은 형인 조제프를 새로운 스페인 왕으로 책봉하였다. 원래 스페인의 왕은 나폴레옹의 맹장(猛將)인 조아생 뮈라가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조아생 뮈라에 대한 스페인 군중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던 관계로 조아생 뮈라를 나폴리의 왕으로 임명하고 원래 나폴리의 왕이었던 조제프가 스페인의 왕으로 오게 된 것이다. 1808년 5월, 스페인 민중이 봉기하여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기 위한 무장투쟁이 시작되었다.(반도 전쟁)
프랑스 군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스페인 민병대를 격파하는 한편 참전한 영국군을 몰아내었다. 그러나 스페인 군의 게릴라전과 영국-포르투갈 연합군 전략이 성공하고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가 겹치면서 프랑스는 1813년 완전히 스페인에서 철수하였다. 이에 따라 폐위당했던 페르난도 7세가 스페인 국왕으로 복위하였다.
남미 식민지 독립
프랑스의 스페인 침공은 1세기가 넘도록 스페인 국내 정치 불안을 야기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스페인은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를 뺀 모든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게 되면서 이전의 부와 국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였다.
스페인-미국 전쟁
스페인이 19세기 내내 식민지 지배권을 잃고 경제 위기를 겪는 동안 필리핀과 쿠바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해진다. 식민지 내 독립 전쟁은 결국 미국 지역에서도 일어나 미국의 예견치 못한 공격으로 스페인은 패배하고 만다. 당대의 주역이었던 98세대(1898년 세대)는 전쟁을 뼈저린 "재난"("El Desastre")으로 느꼈다. 그에 따라 국가 안팎에 문제를 야기하였고 특별히 알폰소 12세가 쌓아놓은 치적을 송두리째 잃게 된다.
혼란한 20세기
1900년대부터 1910년대에 이르러서 스페인은 잠시 평화를 누린다. 서사하라와 모로코, 적도 기니를 식민지로 차지했고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대륙 침탈에 동참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로코의 리프 공화국(Rep. of Rif)과 전쟁(1920년)을 겪으면서 시민들의 군주제에 대한 의구심만 커졌다. 한편 스페인 군인으로서 모로코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앞장선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는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로 군림하나 1931년에 스페인 제2공화국이 들어서며 그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이때부터 공화국 정권은 바스크를 비롯한 카탈루냐, 갈리시아에 자치권을 부여하며 여성의 투표권을 허용한다.
좌파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국민전선/우파연합과 제휴한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모로코에서 정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인민 전선과 국민전선 간의 스페인 내전이 촉발됐다. 3년 뒤 스페인 내전의 시민 세력이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주도로 승리를 얻게 된다. 상당 부분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은 것이었다. 소비에트 연방과 멕시코 등은 스페인 내전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 비밀리 지원을 하나, 서방 세계는 영국이 주도하던 내정 무간섭주의(Non-Intervention)에 따라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 등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이 인민 전선을 지원하여 참전했으나 결국 내전에서의 승리로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정권을 잡았다. 민간인 학살 범죄인 게르니카 폭격 사건이 나치 독일 공군에 의해 벌어진 것도 이때였다(1937년). 내전으로 5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오십만 명 정도의 인구가 자신의 모국을 떠나게 됐다. 이들의 후예가 대부분 라틴 아메리카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에만 30만 명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스페인 내전은 2차 세계대전의 최초 시작이자 유럽의 시민 전쟁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한편 스페인은 제2차 세계 대전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지만 프랑코 정권은 은밀히 추축국에 협조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행적이 국제 사회로의 진출에 대한 미국 등 서방 국가의 반대를 부른 명분이 되기도 한다.
20세기 스페인은 좌파와 우파 간의 대립이 고조되고 있었고 당시 스페인 사회는 청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 국토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함을 보일만큼 부가 지주계층, 군벌, 로마 가톨릭 교회에 편중돼 있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인민 전선으로 불리는 공산주의 세력이 창궐하였다. 인민전선에서는 교회의 재산을 국유화하려고 하는 등 심각한 빈부의 격차라는 사회문제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프랑코 독재 정권은 유럽의 마지막 군사 정권으로 불리는데, 집권 후 좌파 탄압, 비밀경찰을 통한 통제 등 독재 정치로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했기 때문이다. 프랑코 군부 독재 정권 아래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당은 팔랑헤당(Falange española tradicionalista y de las JONS)뿐이며, 1937년 창립 후 반공주의와 민족주의, 로마 가톨릭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프랑코가 민주주의를 탄압하려는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내비치자 1949년에는 국민 운동당(Movimiento Nacional)으로 개칭하였다. 2차 대전이 종결되자 스페인은 유엔에 가입하지 못하는 등 정치·경제적으로 고립 상태를 겪기도 했다. 1955년이 돼서야 미국이 공산세력의 남하를 우려해 이베리아 반도와 지중해에 군사 주둔을 꾀함에 따라 유엔에 가입하게 된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스페인의 기적을 이루며 급진적인 경제 발전이 이뤄졌으며, 특히 관광 분야의 활성화와 더불어 산업 국가로서의 국가 정체성이 정립되는 한편 학력 수준 향상으로 인력 개발이 진척되기도 했다.
1975년 유럽의 마지막 군사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한 뒤에 스페인 왕정이 복고되었으며, 현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영단으로 스페인에서는 입헌군주제에 기반한 민주주의가 시작됐다. 1979년 스페인 국민들은 처음으로 보통 선거에 참여하였는데, 《스페인사》(청아)에 수록된 사진에 의하면 당시 스페인 국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에서 길게 줄을 설 만큼 보통선거 참여에 관심이 많았다. 또한 프랑코 정권 때 수감됐던 양심수들이 석방되었다. 또한 언론의 자유·결사·정치의 자유가 허용되었고, 1978년 스페인 헌법이 선포되면서 각 지방을 이루는 지방 정부가 출범한다. 그러나 일부 지방에서는 독립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급진적인 양상으로 번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스크의 경우이다.
1981년 2월 23일 군사 쿠데타가 날 조짐이 나타나기도 하나 대다수의 군부 세력은 왕실에 충성을 다짐한다. 사실 쿠데타 조짐을 억누르기 위해 카를로스 1세는 국영 방송을 통해 월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쿠데타 세력의 촉발로 국회가 군부에 점령되기도 했으며, 긴급 내각이 설립돼 국내 정치 양상에 격변기를 맞기도 했다.
새로운 법률에 따라 실시된 선거로 1982년 스페인 사회노동당은 내전 이후 기구 자체가 거의 운용되지 못하다 43년 만에 다시 생겨나면서 정권을 잡기도 했다. 한편 스페인은 1986년 유럽 연합의 전신인 유럽 공동체에 가입한다. 14년이나 스페인의 정권을 독점하던 좌파계열의 사회노동당은 개혁을 요구받으며 결국 1996년 우파에 참패하고 정권이 교체되었다.
스페인 정부는 오랜 기간에 걸쳐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 "Euskadi Ta Askatasuna")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1959년 결성됐으며 그들은 스스로를 게릴라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유럽 연합과 미국은 ETA를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과 미국의 주장은 '지금껏 테러 집단의 공격으로 40년간 800명이 넘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바스크 자치 정부는 자유 민족 바스크의 도를 넘은 폭력에 대해 특별한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라는 것이다.
21세기
2002년 1월 1일 스페인 페세타가 유로화로 대체되면서 15개국과 함께 유로존으로 편입, 새로운 변혁기를 맞게 된다. 유로존으로의 편입은 스페인에 새로운 경제 성장을 가능케 했다. 도입 후 스페인의 경제 성장률은 유럽 연합 평균을 웃돌았지만 지나치게 늘어난 국부 팽창이 미칠 악영향과 최근 대외 적자가 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04년 3월 11일 2004년 마드리드 동시 다발 테러 사건이 일어나 아침 시간에 출근하던 사람들이 희생됐으며 ETA가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2004년 3월 13일 토요일 정오, 중도 우파인 스페인 국민당(Partido Popular)의 대변인이었던 Eduardo Zaplana는 검찰 수사가 ETA에 집중되어 있다고 발표한다. 이는 스페인 총선거 하루 전날 일이었다. PRISA 그룹에 속한 la SER 에선 정부 대변인 발언을 부인하며 검찰 당국이 이슬람 세력을 수사 중이라고 발언, 총선거 하루 전날 시민들은 SMS와 전화 등을 통해 오후 6시 국민당 본부 앞에 모여 "사실을 원한다.", "거짓말쟁이들", "선거 전에 우린 사실을 알고 싶다.", "Aznar(당시 국민당의 스페인 총리) 너는 알고 있다!" 등의 슬로건을 내달고 시위가 이루어진다. 결국 다음 날 총선거에서 중도좌파인 스페인 사회노동당이 승리하게 된다. 이 총선거에 2500만명이라는 역사상 가장 많은 국민이 선거에 참여했으며 국민당과 사회노동당, 두 정당에 표가 가장 많이 집중된 선거(82%)로 기록되었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로 인해 스페인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로써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후 약 40년간 인민당과 사회노동당이 주거니 받거니 이어 오던 양당 체제가 붕괴되고 좌파 신생 정당 포데모스와 중도 우파 신생 정당 시우다다노스(Ciudadanos)가 제 3세력으로 대약진했다.
2009년 11월 부로 스페인 정부는 양성 평등 비율이 거의 평균으로 동등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공표했다. 18명의 정부 각료 중 9명은 여성이며 현재 호세 로드리게스 총리 하의 내각에서 스페인은 양성 평등에 관해서만큼은 상당히 안정된 평가를 받고 있으며 "스칸디나비아 지역 이외의 유럽 국가에서는 성평등 문제를 의식적으로 정부 내 문제로 각인하고 있는 정부가 스페인 이외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 입법 절차를 거쳐 성별에 관련한 정치, 경제에 대한 평등 문제를 용인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Gender Equality Act). 현재 입법부에서 350명 의석 중 128명은 여성으로 36.3%이다. 현재 하원의 경우 여성 의원이 더 많은 13번째 국가가 됐으며 상원의 경우에는 263석 중 79명이 여성으로 30%에 머물고 있다.
2014년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이 펠리페 6세 국왕에게 양위했다. 즉위식 때 반대파도 있었지만 환영 인파가 훨씬 많았고 국민들은 새로운 이미지를 바라고 있다. 아직까지는 상당수의 스페인 국민들에게 왕실은 옛 영광을 상기시키고 재현할 수 있는 상징물로 여겨지고 있다. 2018년 6월 1일에는 집권 인민당의 불법 정치 자금 모금 혐의의 책임을 지고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물러나고 사회당의 페드로 산체스 당수가 신임 총리가 되었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으로 일어난 대봉쇄로 인해 경제 성장률이 -15%까지 내려가면서 스페인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2021년 6월 기준으로 80,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기대 수명이 1년 이상 단축되었다.
2021년 3월 스페인은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한 세계 6번째 국가가 되었다.
2021년 5월 4일에 마드리드 주지사 선거에서 보수당 소속의 후보가 당선됐다.
정치
스페인은 입헌 군주제 국가이다. 양원제 국회를 갖추고 있으며, 입법부가 있어 분권 체제를 갖추고 있다. 국가 원수는 국왕이며, 상하원은 직접·간접 투표로써 선출된다. 임기는 4년이다. 행정부의 수반은 총리이며, 부총리가 보좌한다. 스페인 내각(Consejo de Ministros)의 수반인 장관은 총리가 지명한다.
헌법과 정치
스페인 정치체제는 1978년 12월 29일 공포된 스페인 헌법에 기초한다. 스페인 헌법의 특징은 과거 프랑코 체제의 헌법은 폐기했지만 그 법적-제도적 구조를 민주주의 체제 속으로 통합시켰다는데 있다.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주도 아래 제헌의회에서 작성된 스페인 헌법은 전문에서 민족과 지역들(Nationalities and Region)의 자치권을 보장하면서도 모든 스페인인들의 조국인 스페인 국가의 해체 불가능한 통일성에 토대를 둔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는 정부 형태에 대한 정의로서 스페인이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단일국가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헌법 정신은 최근 카탈루냐에서 일어난 독립 선언을 무효화시킨 스페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나타났다.
스페인 헌법의 또 다른 특징은 스페인의 정치사회적 정체성을 '사회적이고 민주적인 국가(social and democratic State)'로 정의하여 스페인이 사회민주주의 국가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스페인의 소득 분배와 사회복지 등 다양한 사회적 권리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국가 형태로서 스페인은 전형적인 의회민주주의 입헌군주국이다. 1978년 헌법은 스페인을 의회군주국(Parliamentary Monarchy)으로 명명하고있다. 입헌군주국의 국왕의 권한이 헌법에 의해 제한되어 거의 권한이 없어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인 반면, 의회군주국에서 국왕은 의회와 권한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의회군주국인 스페인 국왕의 권한은 다른 입헌군주국 국왕의 권한에 비해서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의 국왕은 헌법 아래 존재하고, 정부는 의회에 의해 통제되는 헌정질서를 가진다. 스페인 정치는 민주주의의 토대인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권력이 분산되어 있다. 스페인 전체의 통일성을 상징하는 인물인 국왕은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이렇게 분립된 권력을 연결하고 중재하는 기능을 가진다. 국왕은 국가수반으로서 국군통수권, 선전포고 및 강화권, 외교사절 파견 및 접수권을 가지기도 하지만 행정부와 의회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국왕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통해 새로운 의회를 구성할 권한을 가진다. 이 외에 국왕은 법률의 폐지 및 공포권을 가지기도 한다.
의회와 정당
스페인 의회(Cortes Generales)는 양원제로 임기 4년의 하원과 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원은 상원의 입법행위를 무효로 할 수 있고, 하원만이 총리를 신임할 수 있다. 상원과 하원이 각각 법안을 제출할 수 있지만 상원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상원에서 거부된 법안은 하원에서 절대다수에 의해 다시 통과될 수 있다. 따라서 하원이 상원에 비해 보다 우월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총 350명으로 구성된 스페인 하원의원은 비례대표를 통해 선출되고 선거를 통해서 다수당 혹은 다수연정을 획득한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연정을 통해서 정부를 구성한 경우는 없으며, 통상적으로 다수당이 없을 경우 소수정부가 구성된다.
4년 임기의 하원의원 선거 지역구는 50개의 도와 2개의 자치시로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 선거법에 따르면 50개의 도 선거구에는 최소한 2명의 하원의원이 할당되고 자치시에는 각각 1명씩 할당된다. 나머지는 248개 의석은 각 도의 인구비례에 따라서 할당된다. 이러한 할당 방식은 소규모 도가 과대 대표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선거에 참여하는 각 정당들은 할당된 인원만큼의 후보자 리스트를 제출하고, 선거인들은 투표소에서 후보자 개인이 아니라 정당에 투표하게 된다. 투표가 종료된 후 각 선거구에서 각 정당이 얻은 득표수에 따라서 동트방식에 따라 각 정당에 의석을 배정한다. 정당이 의석을 배정받기 위해서는 선거구에서 최소 3%의 득표율을 기록해야 한다. 따라서 하원의원 선출은 정당명부 권역별 비례대표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하원의원 선출방식은 거대정당에 유리한 방식으로 스페인을 양당제 정치 체제로 만들고 있다.
상원의 경우 헌법에 정해진 정원은 없지만 본토의 경우 각 도에서 인구에 관계없이 각각 4명씩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다. 따라서 인구 650만 명의 마드리드나 9만 명의 소리아 도(province)가 동일한 상원의원을 선출하는 것이다. 상원의원 선출을 위해 각 정당은 선거구마다 3명의 후보자를 내세우고 이들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4인이 선출된다. 또한 도서지방 도의 경우 큰 섬은 3명, 작은 섬은 각각 1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한다. 아프리카에 위치한 체우타(Ceuta)와 멜릴라(Melilla) 자치도시는 2명씩의 의원을 선출한다. 이렇게 해서 선출직 상원의원은 총 208명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17개의 자치주와 2개의 자치시 의회가 각각 1명씩 선출하고 여기에 인구 백만 명 당 1명씩 추가해서 임명해 총 58명의 상원의원이 자치주를 대표한다.
스페인은 1937년 제정된 정치단체 통합법에 따라 국민운동(Moviendo Nacional)이라는 단일정당 의회를 가졌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자유화 정책에 따른 정치결사법이 통과되면서 정당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정당법에 따라 정치단체는 등록제로 운영되고 있고 자유로운 정당 활동이 보장된다. 현재 스페인에는 지역정당 등을 포함해 약 70여 개의 정당들이 활동하고 있다.
스페인은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스페인사회노동자당(PSOE)과 인민당(PP) 등 두 정당이 스페인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사회노동자당은 중도좌파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시민자유나 사회적 소외계층의 권익 보호 등을 대변하고 있다. 경제정책으로는 기업의 자율적 사회화라는 시장경제를 인정하면서 공공성 측면을 보완하고 있다. 외교정책은 기본적으로 유럽통합에 호의적이면서도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관계 정립이라는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중도우파인 인민당은 군주제와 정치적 안정이라는 보수주의 노선을 취한다. 경제적으로는 기업의 자유를 옹호한다. 하지만 고용 창출이나 사회보장제 확립 등과 같은 공공성 노선을 취하기도 한다. 외교적으로 유럽연합에 호의적이면서도 중남미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외 주요 정당으로는 카탈루냐 지역의 지역정당으로 출발하여 전국정당이 된 중도노선의 사민당(Ciudadanos)은 원래 , 바스크 지역의 바스크민족당(PNV)과 카탈루냐 지역의 카탈루냐공화당(ERC)과 카탈루냐유럽민주당(PDeCAT)등이 있다.
왕가
스페인 왕가는 헌법기관으로 국왕은 국가수반으로서 스페인의 통일성과 영속성을 상징한다. 16세기 이후 스페인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오늘날의 스페인 왕가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부르봉 왕가 후손이다. 2014년 왕위를 계승한 필리페 6세는 스페인에서 부르봉왕가의 시작을 알린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 필리페 5세의 뒤를 잇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필리페 5세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이후 스페인 왕으로 임명되어 스페인에서 첫 부르봉 왕가를 시작했다.
스페인 군주제는 두 차례의 단절의 시기를 거쳤다. 첫 번째 단절은 1873년 2월부터 약 1년 10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1974년 12월 왕정복고에 의해 스페인으로 돌아온 부르봉 왕가는 1831년 지방의회 선거에서 공화파들이 승리하자 알폰소 13세가 프랑스로 망명함으로써 다시 단절되었다. 하지만 193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프랑코는 망명 중인 1947년 알폰소 13세의 손자인 후안 카를로스를 국내로 불러들여 스페인이 왕국임을 선포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국가수반으로서 통치함으로써 국왕이 없는 왕국이 유지되었다. 프랑코의 유언에 따라 1975년 프랑코 사후 카를로스 1세가 즉위함으로써 스페인은 다시 군주제 국가가 되었다.
20세기 이후 유럽의 군주제 국가들에서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로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했다. 하지만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을 프랑코 독재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변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기존의 보수주의를 버리고 자유주의적 개혁을 통해서 스페인을 의회민주주의 체제로 변화시키는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있다.
사법체계
스페인 사법체계의 최고 의결기관은 사법부 총평의회이다. 법관의 선발, 교육, 배치, 승진 및 징계 등 예산을 제외한 사법부 운영에 관한 전권을 행사한다. 사법부 총평의회 의장은 대법원장이 겸임하는데 국왕이 임명한다. 임기 5년의 20명으로 구성된 위원은 법관들 중 상하원이 6명씩 추천한 후보자를 국왕이 임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나머지 8명은 시민사회에서 상하원이 각각 4명씩 추천한 사람으로 국왕이 임명한다.
법무부는 예산 할당 등 사법부를 운영하는 행정적 지원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판사와 검사는 법무부 소속이 아니라 사법부 소속으로 사법부 총평의회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스페인은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헌법재판소를 가진다. 헌법재판소는 1978년 헌법에 의해 탄생한 기관으로 위헌심판, 헌법소원, 사전적, 예방적 규범 통제 등을 담당한다. 또한 중앙정부와 자치주정부 사이, 자치주 정부 사이에 발생하는 권한 문제에 대해 심판하기도 한다. 9년 임기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12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상원과 하원이 각각 4명씩 추천해 국왕이 임명한다. 또한 행정부와 사법부가 각각 2명씩 추천해 국왕이 임명한다.
고도의 지방자치 국가로서 스페인의 법원은 전국적 관할 영역을 가지는 법원과 자치정부 법원이 존재한다. 전국적 관할 영역을 담당하는 법원은 대법원(Tribunal Supremo)과 우리나라의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국가법원(Audiencia Nacional)이 있다. 반면, 자치정부 법원으로는 17개의 자치주 최고법원(Tribunal Superior de Justicia)과 50개 자치도에 위치한 지방법원(Audiencia Provincial)이 있다. 이들 법원들은 3~4인의 판사가 합의체를 구성해 재판을 담당하는 합의법원이다.
대법원은 사법부의 최고 상급 법원으로 하급 법원의 상고 사건을 담당한다. 또한 정당의 불법성이나 총리, 각료, 의원 등을 포함한 정부 및 자치주의 고위관료를 상대로 한 민형사 사건을 단심으로 담당한다. 기본권 침해 문제를 제외하고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 및 상고할 수 없다. 대법원은 각각 10~12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민사, 형사, 행정, 노동, 군사 등 5개의 재판부로 구성된다. 특수법원 형태인 국가법원은 수도인 마드리드에 위치해 있으며 형사부, 행정소송부, 노동부로 구성된 재판부를 가진다. 형사부의 경우 테러, 마약, 조직범죄, 위조화폐 등 특수범죄를 담당한다. 자치주 최고법원은 각 자치주에 소재하며 민사, 형사, 행정, 노동재판을 담당한다. 지방법원의 1심사건에 대한 항소를 담당한다. 한편 지방법원은 민사 및 형사 사건만을 담당하며 민사사건의 경우 하급법원의 사건에 대한 상고를 담당하고,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1심을 담당한다.
하급법원은 모두 재판관 1인에 의해 단독으로 판결하는 법원으로 담당 분야에 따라 세분화 되어 있다.
행정구역
스페인은 17개의 광역자치주(comunidad autónoma)로 구성되며, 2개의 자치시(ciudad autónoma)인 세우타(Ceuta)와 멜리야(Melilla)가 있다. 모두 스페인 최고 일선 행정구역이다. 17개의 광역자치주는 50개의 도(provincia)로 다시 나뉜다. 각 도는 다시 시(municipalidad)로 나뉜다. 단 카탈루냐주(Cataluña)는 꼬마르까(comarca)와 베게리아(veguería)라는 행정구역이 더 있다. 시(municipalidad)가 모여 꼬마르까를 이루고, 꼬마르까가 모여 베게리아를 이룬다. 다른 지방에도 꼬마르까는 존재하지만, 카탈루냐와는 달리 역사적 혹은 지리적인 구역에 불과할 뿐, 행정상의 구획은 아니다.
- 광역자치주
광역자치주는 스페인 최고 행정구역 단위이다. 1978년, 스페인 내 민족과 지방의 자치 권한을 승인한 헌법이 공포된 이후, 광역자치주가 생겼다.[58] 광역자치주는 공동의 역사, 문화, 경제를 공유하는 인접해 있는 여러 도(provincia)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권한 이양(devolución)에 기반한 영토조직을 자치주라고 인식한다.
각 광역자치주의 기본 조직법은 자치법(Estatuto de autonomía)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역사에 바탕한 정체성, 영토 경계, 정부 조직 및 구성, 헌법에 근거한 권한에 따라 자치법은 광역자치주라는 명칭을 수립한다.
모든 광역자치주 정부는 삼권분립 형태에 기반한다. 각 권한은 다음과 같다.
- 입법의회(parlamento) : 의원들은 비례대표제에 따라 보통선거권에 의해 선발되며, 영토를 아우르는 모든 영역을 대표한다.
- 행정의회(consejo de ministro) : 입법의회가 선발하고 스페인 국왕이 지명하는 대통령(presiedente)이 수반이다. 집행 및 행정 기능을 가지고 있다.
- 최고재판소(tribunal supremo) : 스페인 최고재판소(El Tribunal Supremo) 휘하, 광역자치주 내 판사(judicatura)가 우두머리이다.
카탈루냐, 갈리시아(Galicia), 바스코(el País Vasco) 지방은 독립된 민족성을 가지고 있어 신속한 과정을 거쳐 자치정부를 구성하였다. 안달루시아(Andalusia)도 자치법령을 통해 최초로 자치주 이름을 취득하였지만, 장기적인 과정을 통해 다른 자치주들보다 늦게 헌법에 명기되었다. 이후 다른 지방들도 조금씩 자치법령 수정을 통하여 자치주가 되었다. 발렌시아(Valencia),[60] 카나리아 제도(Islas Canarias), 발레아레스 제도(Islas Baleares), 아라곤(Aragon) 등이 자치주가 되었다.
광역자치주는 광범위한 입법 및 행정 자치 권한이 있고, 의회와 지방정부를 가지고 있다. 권력이양이 비대칭적으로 이뤄졌기에, 각 광역자치주마다 권력 분산은 제각각 다르다. 바스코와 나바라(Navarra)만이 완벽한 재정 자립을 이루고 있다. 안달루시아, 바스코, 카탈루냐, 갈리시아는 별개의 민족성을 주장하고 다른 자치주들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이양받았다. 이들 지방 대통령은 의회 해산 및 재선거 요구 권한이 있다. 게다가 바스코, 카탈루냐, 나바라는 각각 에르차인차(Ertzaintza), 모소스 데스콰르다(Mossos d'Esquadra), 폴리시아 포랄(Policía Foral)이라는 자치 경찰이 있다. 다른 자치주들은 경찰력이 제한되어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안달루시아의 경우 안달루시아 자치 경찰(Policía Autónoma Andaluza)이 있으며 마드리드에는 BESCAM이라는 경찰이 있다.
그러나 최근 시행된 자치법 개정 혹은 신자치법 공포를 통해 별개의 민족성을 가진 지방과 기타 지방 갖의 비대칭을 완화시켰다.
세우타와 멜리야는 북아프리카 연안에 있는 고립영토이다.
- 시도
광역자치주는 도(provincia)로 나뉜다. 이는 자치주의 영토의 구성요소이다. 도는 시(municipalidad)로 나뉜다. 두 행정단위는 헌법에 의해 보장된다. 시는 새 업무 경영에 관한 자치 권한이 있다. 도는 미국의 주와 같은 활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구획되었다.
현재 도 구획은 1833년 스페인 영토 분할에 기반한 것이다. 스페인 영토 전체는 50개의 도로 나뉜다. 또한 아스투리아스주(Asturias), 발레아레스 제도(Islas Baleares), 칸타브리아주(Cantabria), 라리오하주(La Rioja), 마드리드주(Madrid), 무르시아주(Murcia), 나바라주(Navarra)는 그 자체가 도이자 광역자치주이다. 이 경우, 도의 행정 기관은 광역자치주 정부 기관으로 대체된다.
경제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