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산업
잡지산업은 잡지를 출판, 판매하는 일 또는 그와 관련된 광고 등 산업을 말한다.
개요[편집]
잡지가 발행된 것은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16세기부터 시작되며, 19세기 후반까지는 정부의 언론통제 때문에 그 영향이 적었다.잡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영국의 <젠틀맨스 매거진>(Gentleman's Magazine)(1731~1922)이다. 당시 이 잡지의 영향력은 매우 커서 이 잡지가 당시 영국 상류층의 상징이 될 정도였는데 이때문에 탄창이라는 의미의 magazine이 잡지라는 의미를 얻게 되었다. 잡지에 현재와 같은 사진이 실리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의 《일뤼스트라시옹》(L'Illustration)(현 파리 마치의 전신)지가 최초이다. '잡지(雜誌)'라는 번역어가 처음 쓰인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존 맥고완(John Macgowan, 1835~1922)이 상하이에서 발간한 <중외잡지(中外雑誌)>(1862~1863), 1867년 일본에서 발간된 <서양잡지(西洋雑誌)>(1867~1869) 등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독립협회의 기관지 《대조선독립협회회보》를 시작으로 해서 수많은 잡지들이 발간되었다. 한국에서는 잡지의 영향력과 활용도가 굉장히 높았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에는 시각적인 정보제공 능력은 잡지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젊은 세대는 잡지를 통해서 한국 문화의 유행도를 알 수 있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인터넷과 방송매체, 스마트폰 등의 영향으로 잡지의 영향력은 잡지의 전성기이던 90년대에 비해 크게 쇠퇴했으며, 이에 따라 폐간되거나 무기한 정간된 잡지가 속출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순수 인쇄 상태의 잡지보다는 스마트폰 앱과 병행하여 다양한 광고와 접목한 형태의 잡지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책이라는 것이 점점 시대에 뒤처지고 있어 인쇄업 자체가 엄청나게 규모가 줄어드는 판국에 잡지는 과장 많이 섞어 존재자체의 위협을 받고 있다. 현대의 잡지는 소설책 등과 달리 대체로 판매 부수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책이다. 과거 잡지가 트렌드의 큰 축이었던 시절에도 판매수익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잡지는 광고비로 먹고 사는 책이다. 잡지에 광고가 많다면 그 잡지는 그 만큼 건실하고 인지도가 높은 잡지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잡지는 많은 부수를 찍어낼 수 있는가 → 많은 부수를 찍어낼 만큼 자금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 → 광고로 자금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 → 광고를 따내기 위해 잡지의 충분한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는가 → 인지도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부수를 찍어낼 수 있는가로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문의 경우 잡상인이 자꾸 신문구독하라고 하던가 신문을 그냥 넣어둔다 하는 이유는 그만큼 구독자 수를 늘려야 인지도 높은 매체로 인정받아 기업에서 광고비를 주고 광고를 싣기 때문이다.
따라서 TV나 신문같이 순수하게 광고비로 기업을 굴릴 수 있어야 하는데 잡지는 TV처럼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접하는 것이 아닌 데다, 인쇄업이 점점 죽어가고, 책이라는 매체가 찬밥 신세 당하는 상황에서 잡지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실제로 잡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2010년대 초중반 이후 불과 몇 년 사이에 잡지 종류가 급격히 줄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이는 기업들이 광고 및 홍보비를 줄일 때 가장 먼저 자르는 것이 잡지 분야의 광고비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해외 라이선스를 달고 있는 몇몇 메이저급 잡지사나 특정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는 소수의 잡지가 아닌 어중간한 잡지들은 줄줄이 망했다. 특히 광고가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여성지나 남성지의 볼륨이 대폭 줄어든 것이 눈에 띄고 있다.
현황[편집]
잡지산업 매출액은 2012년 이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종사자 수도 큰 폭으로 줄었다. 잡지 업계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2022 잡지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1개사 평균 매출액은 3억 7700만 원으로 이는 2019년(4억 3800만 원) 대비 약 13.9%p 감소한 수치다. 언론재단은 "2015년 조사 이후 잡지산업은 매출 감소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언론재단은 메가리서치에 의뢰해 2021년 잡지 발행이 확인된 1788개 사업체(1382개 업체 참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연간 매출액 규모는 '1억 원 미만'이라는 응답이 50.8%로 가장 많았다. '1~3억 원 미만'은 27.0%, '3~6억 원 미만' 12.6%, '10억 원 이상' 5.4%, '6~10억 원 미만'은 4.1%다. 언론재단은 "총 매출액 3억 미만 사업체가 77.8%로 잡지산업 전반의 매출액이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며 "또 연 매출 6억 이상인 사업체가 전체의 10% 미만인 것을 미루어보면 소규모 자본으로 발행하는 사업체가 증가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출 구성은 '구독료를 포함한 잡지판매 수입'과 '광고 수입'이 각각 41.6%, 32.2%로 나타났다. 반면 콘텐츠 판매 수입은 2.9%에 불과했다. 언론재단은 잡지판매와 광고 수입에 대한 의존이 커져 양질의 콘텐츠 제작에 집중할 수 없는 재정 구조라고 진단했다.
2021년 잡지산업 종사자는 6926명으로 2019년(9104명) 대비 23.9%p 감소했다. 1개사 평균 노동자는 3.9명으로 이 역시 2019년 5.1명보다 34.5%p 줄어든 수치다. 규모별로 보면 '2명 이하 사업체'가 45.9%로 가장 많았으며 '3~5명'이 36.4%로 그 뒤를 이었다. '6~10명'은 13.7%, '11~24명' 3.0%, '25명 이상'은 0.9% 순으로 5명 이하 소규모 사업체가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고용 형태별로 보면 정규직 5879명(84.9%), 비정규직 331명(4.8%), 프리랜서 716명(10.3%)이다. 연령별로 보면 '30~39세 이하'가 2036명(32.8%)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40~49세 이하'는 1984명(31.9%), '50~59세 이하' 1288명(20.7%), '29세 이하' 491명(7.9%), '60세 이상'은 411명(6.6%)이다.
직무별 종사자는 '기자(기획/취재)'가 2220명(35.7%)으로 가장 많았으며 '사진/편집/디자인' 직군이 1965명(31.6%)으로 뒤를 이었다. '경영/관리' 680명(11.0%), '광고/마케팅' 552명(8.9%), 'IT/디지털 제작' 372명(6.0%) 등이다. 언론재단은 "잡지 발행에 있어 콘텐츠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고 전했다.
조사에 응답한 매체의 성격은 '문학·문화·예술' 분야가 20.2%로 가장 높았으며 '사보·기관지·회보' 10.8%, '종교' 9.2%, '산업·경제·경영'이 9.1%, '시사·교양' 8.7% 등이다. 유료 잡지 비율은 66.7%이며 무료 잡지는 33.3%다. 유료 비율은 '시사·교양'(82.1%)과 '문학·문화·예술'(81.7%)가 높았다.
유료 잡지 유통형태는 '온·오프라인 정기구독'이 35.0%로 가장 많았다. '오프라인 유통' 19.4%, '온라인 유통' 10.4%다. 오프라인 유통은 '서점', '잡지 도매 총판', '위탁판매' 등이며 온라인 유통은 '인터넷 서점', '오픈마켓' 등이다.
'온라인 서비스 실시' 여부를 묻는 질문에 61.7%가 '실시 중'이라고 답했다. 이는 2019년 대비 16.5%p 증가했다. '향후 서비스 계획이 있다'는 응답은 8.9%로 이들 업체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 변화 대응'을 이유로 꼽았다. '온라인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업체의 84.8%가 '홈페이지'를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었으며 '동영상 기사'(30.5%), 'SNS'(29.5%), '블로그'(19.6%)가 뒤를 이었다.[1][2]
잡지산업과 콘텐츠[편집]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먼은 근대사회에서 후기근대사회(포스트모더니티)로 넘어가는 변화를 단단했던 사회적 가치와 인종, 국가 같은 개념들이 유동화됐다는 의미를 담아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라는 표현을 만들었다.
'액체 근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액체 미디어(liquid media)'라는 키워드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설명한다. 액체가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콘텐츠 역시 형태와 기능을 다양한 미디어에 담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미디어가 지켜온 단단한 경계가 흐려져서 잡지 사업자들도 모두 인터넷 홈페이지는 물론 동영상과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콘텐츠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고, 디지털과 온라인에서 출발한 사업자들도 종이로 된 무언가를 발간하기도 한다.
경계가 흐려지면서 일부는 위축되고 일부는 확장하는 상황에서 잡지라는 미디어의 힘도 액체적으로 사고해서 매거진 미디어의 본질에 집중하는 게 그 환경에서 가능성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디지털 스크린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넘나들며 소비하는 문화가 확대됐고 개별 미디어 단위로 구성된 이용자 집단이 콘텐츠 단위 팬덤 중심으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그 맥락에서 '잡지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이 나온다.
정보과잉 시대 큐레이션 역할을 비롯한 문화적 가치(전문성, 심층성, 다양성, 참신성)와 콘텐츠 창작의 핵심 수단으로서 크리에이터의 등용문 역할 및 콘텐츠에 기반한 혁신산업으로의 진화 가능성을 포괄하는 경제적 가치 안에 매거진 미디어의 본질이 있고 거기에서 활로를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지식정보 영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특정 전문분야에 특화된 지식정보서비스를 월정액 형태로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서비스로 출발했지만 책과 잡지 발간 등으로 영역을 확장중인 북저널리즘이나 월정액제로 전자책 기반 잡지 구독서비스를 제공하고 오디오 콘텐츠까지 제공하는 밀리의서재 등의 디지털 미디어 성공 사례는 잡지업계가 향후 방향을 잡는데 참고할만한 사례다.
특히 중앙일보 계열의 전자미디어 폴인은 월정액 구독료의 가치를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행사에서 느끼게 해주는 수익모델로 주목받고 있는데, 사실 이런 방식들은 과거 잡지산업이 성장하던 시기에 많은 매거진 미디어들이 이미 시행했던 사업모델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올드미디어로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는 매거진 미디어들의 성공적인 디지털 사례들이 눈길을 끈다.
미국의 타임과 뉴욕커는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 사례로 인정받고 있고, 종이잡지 프리미엄 모델로 소개됐던 영국의 모노클은 충성팬덤에 기반한 굿즈 사업과 디지털 라디오 방송을 통한 잡지 구독 확대 등의 성공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라쿠텐 재팬의 라쿠텐 매거진(육아와 라이프스타일 위주)과 도코모에서 제공하는 D매거진(주간지와 남성패션 위주)이 각각 월 이용료 380엔과 400엔으로 디지털 잡지 200개를 무제한 읽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외 사례에서 나온 뉴미디어와 디지털 전환 성공사례들을 한 마디로 묶으면 '전문영역을 발굴해서 그쪽의 독자커뮤니티와 호흡하면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이는 과거 왕성하던 시기 잡지업계가 늘 해왔던 일이다.
잡지를 비롯한 올드미디어들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디지털 전환의 흐름을 무력하게 바라보던 시기도 있었지만 최근 디지털 미디어들이 시도하고 있는 사업모델들을 더 잘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잡지업계에 이미 누적돼있다는 말이다,
미디어 생태학의 관점에서 보면 "미디어들은 복잡한 적응 시스템 안에서 공진화하고 공존(로저 피들러, 1997)"하며, "뉴미디어에 의해 완전히 대체·소멸하지 않고 새로운 적소를 찾아 새로운 환경에 적응(존 디믹, 2003)"한다.
다양한 독자들과 전문성을 연결해주는 매개 역할이 매거진의 본질이다. 또 잡지는 인쇄매체에 묶인 것이 아니라 인쇄매체마저도 잘 쓰는 미디어 콘텐츠 사업자이다.
각각의 매거진이 갖는 전문성과 그 전문성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커뮤니티가 오랜 시간 잡지가 가졌던 사회적 힘의 본질이고, 한국사회에서 잡지 매거진은 특정한 전문성을 가진 집단들을 만들어냈고 그 집단들이 늘 사회변화에 기여해왔다.
디지털 변화의 파고가 몰려와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매거진 미디어는 전문성을 담보하는 브랜드의 힘을 가지고 독자들을 묶어내서 그 독자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일을 해왔고 그것이 사업적 성공으로도 이어졌으며 이런 것은 디지털 시대라고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3]
한국의 잡지산업 변화[편집]
팬데믹은 많은 것을 바꾼다. 코로나19 팬데믹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짓말이 진실을 가리는 페이크데믹도 있고,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파괴하는 플랫폼데믹도 있고,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무너뜨리는 디지데믹도 있고, 무료가 유료를 잡아먹는 프리데믹 등도 있다. 진화에는 방향이 없고, 재난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흐름에 올라타서 적응할 것인가, 무찔러 면역을 얻을 것인가, 견디지 못하고 사라질 것인가를 둘러싼 치열한 노력이 사회 전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잡지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소년>(1908) 이후, 100년 넘게 독자들과 함께하던 종이 잡지는 디지털 콘텐츠 팬데믹 앞에서 진화와 도태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일상의 기쁨을 전하는 샘물 같은 잡지 <샘터>는 2019년 폐간 위기를 간신히 넘겼으나, 시대와 인물에 관한 날카로운 비평으로 이름 높던 <인물과사상>은 역사의 유물이 되었다. 공연 예술 전문잡지 <더 뮤지컬>, <피아노음악> 등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종이 잡지의 멸종이 임박해 보였다.
광고를 디딤돌 삼아 에디터와 디자이너 수십명이 달라붙어 한 호를 만드는 '그랜드 매거진' 시대는 완연히 저물었다.
역설적 현상도 나타났다. '양질의 콘텐츠, 엄선된 큐레이션, 강력한 공동체'라는 잡지의 기본 모델은 '구독 경제'라는 이름을 통해서 식재료에서 자동차까지 사회 모든 영역에서 놀라운 인기를 끈다. 디지털 콘텐츠 유료 구독의 시대도 다시 열렸다. 넷플릭스와 왓챠는 동영상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어도비는 소프트웨어의,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스토리는 만화와 소설의, 뉴닉과 북저널리즘은 맞춤 뉴스와 고급 정보의 구독을 습관화했다. 출판사 또는 서점마다 북클럽 운영이 붐을 이루고, 이슬아·문보영 등 청년 글꾼들은 전자우편이라는 원시(?) 도구만으로 출판사 도움 없이 에세이 구독의 신대륙을 개척했다. 잡지는 사라져도 구독은 여전히 남는다.
2020년대 들어 길을 잃었던 종이 잡지도 구독 경제의 붐과 함께 어느새 곁으로 돌아와 있다. 매출은 줄었지만 다양성 측면에선 큰 진전이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기간행물등록현황’에 따르면, 2016년 4931종까지 감소했던 잡지 종수는 2021년 현재 5495종으로 11.4% 늘어났다. 휴간이나 폐간되는 잡지만큼 창간 잡지도 꾸준하다. 배달의민족의 <매거진 F>, 직방의 <디렉토리>, 나우의 <나우 매거진>, 코오롱스포츠의 <섬웨어> 같은 브랜드 매거진이 사보를 대신하고, <컨셉진>, <부엌>, <브리크>, <툴즈> 등 좁고 깊게 취향을 다루는 라이프스타일 잡지가 온갖 제품 광고가 넘쳐나는 옛 잡지를 밀어냈다. <보스토크>, <우먼카인드>, <프리즘오브> 등 고품질 독립잡지들도 여전히 건재하다. 정보 감염병 시대에 맞서 잡지는 다르게 존재하는 법을 터득했다. 이제 잡지는 소수의 전문가들이 협업적 창조성을 집중해 만드는 단행본 출판과 비슷해진다. 출판사들의 관심은 당연한 귀결이다.
2020년 한해 출판사에서 무크(비정기 간행물) 형태로 발간하는 잡지들이 쏟아졌다. 1월에 인문 잡지 <한편>이 나왔다. 이 잡지는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등 하나의 주제를 놓고 주로 30~40대 연구자들의 생각을 담아내면서, 정기구독자 5000명을 확보하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젊은 감각과 호응하는 인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새로운 담론에 목마른 독자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한편>의 성공은 출판사 무크 붐에 불을 붙였다. 10월에는 음악 잡지 <풍월한담>이, 11월에는 사상 잡지 <다시개벽>이, 12월에는 지식교양 잡지 <매거진 G>와 고급 서평 잡지 <서울리뷰오브북스>와 비거니즘 정치 잡지 <물결>이 창간되었다. 부산에서는 인문 무크지 <아크>가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바야흐로 '잡지의 부흥기'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잡지의 집단적 등장은 주류 문화의 공백에 대한 폭로이자 주체의 변혁적 교체를 열망하는 도전이다. 중심들의 위력적 '끼리끼리'를 불편해하고, '나눠먹기'와 '돌려막기'를 경멸할 줄 아는 주변부 주체의 반란이 적합한 내용과 형식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업주의에 물든 담론의 지형을 무너뜨리려는 싸움터의 형성이고, 우울하고 답답한 현실에 맞서 생각을 전복하고 정서를 움직이는 언어의 발굴이기도 하다. 잡지의 성공은 언제나 규모의 크기보다 열광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1980년대의 무크지, 1990년대의 문화 잡지, 2010년대의 독립잡지의 등장은 저자의 열의와 독자의 환호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 바 있다. 우리 시대 잡지는 어디에서 싸우고 있으며, 어떤 독자와 열광을 공유하려 하는 것일까.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책에서 "세상에 변화와 차이를 만들어 내"는 현장을 발명한다. '인기도서 중심'의, '짤막한 겉핥기'에 그치는, '주례사 서평'이 넘쳐나는 현재의 서평 문화를 비판하고, "책의 내용과 주장에 정곡을 찌르는 비평을 통해 독서의 재미와 깊이를 더해 주는" 서평을 통해 "믿을 수 있는 지적 전통"을 세우겠다고 다짐한다. 독서를 "고독하고 서늘할 정도의 개인적 침잠"인 동시에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뜨겁게 손을 잡는 활동"임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좋은 책을 고르고 허황한 책을 무찌르는 서평 문화의 구축을 통해 ‘같이 읽고 함께 사는’ 사회적 독서 운동을 전면화하려 한다. 자연스레 독서공동체 운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매거진 G>는 우리 생활의 관심이 집약되는 질문의 자리를 비판의 공간으로 삼는다. "얄팍함"이 "흥미로움"이 되고 "깊은 의미"가 "지루함"이 된 부박한 현실을 비판하면서, "누구나 한 번은 꼭 마주하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필요한 질문들"에 "오래된 지혜와 최신 이론으로 접근"할 것을 약속한다. 인문학을 담론의 추상적 책갈피에서 생활의 구체적 현장으로 바꾸어 가려는 ‘라이프스타일 인문학’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풍월한담>과 <아크>는 풍월당과 상지건축의 아카데미 활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두 곳은 각각 서울 압구정동과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오랫동안 외부 지원 없이 시민들 대상의 아카데미를 운영해왔다. 이들은 "삶의 질은 높아졌지만 정신의 피폐는 더 커지는 역설적 상황"을 해소하고, "깊이 없는 재미와 말초적 자극에 치우"친 문화적 천박함에 맞서 “공동체의 선한 가치를 세우고 굳건히 하는 데에 기여"하는 "인문학 담론의 장"을 지향한다.
<다시개벽>과 <물결>은 잡지를 한 사람 혁명과 한 사회 혁명을 함께 이루기 위한 진지로 설계한다. 두 잡지는 공히 "생태계 착취에 토대를 둔" 근대 자본주의 문명이 지구를 "거주 불능 상태"로 만들고, "남성-이성애자-백인-성인-자본가-인간"이 나머지 생명 전체를 억압하면서도 수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영성의 황폐화"를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다시개벽>은 "경제 선진국이자 자살률 최상위 국가"의 고통 어린 삶에서 벗어나려면 "서로 모시고 더불어 사는" 철학의 내면화를 통해 사람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고, <물결>은 "공장식 축산"에 저항하고 "멸종 반란"을 선동하는 등 "비거니즘 정치"를 통해서 온 생명이 고통 없이 살아가도록 현대적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뒤엎는 "사회 대변혁"에 중점을 두면서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한다.
<한편>은 청년 담론의 독립을 추구한다. 한국의 청년들은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생존주의 세대 등 호명된 주체로만 살아왔다. "2030을 위한 지면"처럼 발화 공간조차 시혜의 한 영역으로 베풀어졌다. 이에 맞서서 <한편>은 젊은 편집자와 젊은 연구자와 젊은 독자의 연대와 참여를 통한 지적 독립을 선언한다. 담론의 지형을 재설정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페미니즘 세대' 등 자기정체성을 스스로 만드는 실천을 통해서 이들은 능동적 행위자로 자신을 드러낸다. 익숙한 기성의 이슈를 전유하여 새로운 세대의 언어로 변화시킴으로써 '다른 현실'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새로운 잡지의 등장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필자군의 형성과 관련이 깊다. 1980년대 무크지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농민·빈민·지역의 목소리를 기성 잡지들이 담아내지 못하는 자리에서 생겨났다. 1990년대 문화 잡지는 하급 문화로 천대받던 영화나 음악, 에스에프(SF)나 판타지 등 비주류 문화에서 개성적 목소리를 얻었다. 2010년대 독립잡지는 페미니즘, 동성애, 반려동물 등 소수자의 삶에서 주류의 폭력적 무관심을 무너뜨릴 개미구멍을 뚫었다.
잡지의 물리적 기반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1980년대에는 복사기의 보급이, 1990년대에는 피시(PC)통신의 탄생이, 2000년 이후에는 인터넷의 보편화가 새로운 잡지 탄생의 밑바탕이었다. 해마다 숫자가 늘어나는 독립잡지들은 블로그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통한 필자의 대규모 공급, 독자와 작가가 함께하는 강력한 취향 공동체 형성, 소셜 펀딩을 통한 자본 형성이나 편집·디자인 같은 제작 환경의 외부화 등 "엘리트 중심의 폐쇄적 소통 구조"를 넘어설 수 있는 기술의 도움 없이 불가능했다.
독자를 찾아내기 힘들어서 유통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것은 기존 잡지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서점이나 가판대에서 독자 눈에 띄려면 부수도 많아야 했고 비용도 커졌으며 위험도 막대했다. 초연결사회는 유통 문제 대부분을 해결한다. 온라인 공동체 등을 통해 독자와 쉽게 연결되는 상황에서는 유통의 힘보다 콘텐츠 가치가 더 중요해진다. 내 취향에 맞춤한 질 높은 잡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하면 독자들은 온라인서점이나 독립서점 등을 통해 어떻게든 잡지를 찾아내고, 주변에 알리는 마케터 역할까지 기꺼이 떠맡는다.
물리적 조건은 충분하다. 문제는 콘텐츠다. 작년에 나온 잡지들은 대부분 기존 문화자본의 투자를 받아 만들어졌다. 이들은 과연 어떤 주체를 호명하고, 어떤 감각에 호소하며, 어떤 독자를 만족시키는가. 이 잡지의 필자들 중 낯선 얼굴은 드물다. 대부분 글 잘 쓰는 교수들, 글솜씨를 자부하는 글쟁이들이다. 덕분에 사유의 깊이는 넉넉하고 문장의 맛은 좋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긴박함을 담아내는 낯선 화법을 보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지난 10년 동안 독립잡지들이 보여준 문화적 반란의 역동성을 거의 느낄 수 없다. 당돌한 도전의 열정보다 판관의 냉정한 언어가 너무 많다. 현장의 날 선 감각에 대한 세련된 순치, 전선의 거친 목소리에 대한 우아한 입마개는 아닌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주변에 높다.[4]
각주[편집]
- ↑ 고성욱 기자, 〈한국 잡지산업 매출 14% 감소〉, 《미디어스》, 2022-11-30
- ↑ 윤수현 기자, 〈잡지 매출액 24.9% 감소〉, 《미디어스》, 2021-01-26
- ↑ 김경탁 기자, 〈“잡지, 본질은 콘텐츠 서비스와 독자 커뮤니티”〉, 《더피알》, 2022-12-12
- ↑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잡지가 돌아왔다…당돌한 도전인가, 세련된 순치인가〉, 《한겨레》, 2021-01-30
참고자료[편집]
- 〈잡지〉, 《나무위키》
-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잡지가 돌아왔다…당돌한 도전인가, 세련된 순치인가〉, 《한겨레》, 2021-01-30
- 김경탁 기자, 〈“잡지, 본질은 콘텐츠 서비스와 독자 커뮤니티”〉, 《더피알》, 2022-12-12
- 고성욱 기자, 〈한국 잡지산업 매출 14% 감소〉, 《미디어스》, 2022-11-30
- 윤수현 기자, 〈잡지 매출액 24.9% 감소〉, 《미디어스》, 2021-01-26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