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곡기
탈곡기(脫穀機, Threshing machine)는 벼, 보리 따위의 이삭에서 낟알을 떨어내는 농기계다. 탈곡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도리깨나 방아를 썼으며, 현대에는 콤바인이 추수와 탈곡을 함께하는데 쓰인다.
특수한 것으로 땅콩탈곡기 ·옥수수탈립기 등이 있다. 탈곡방법은 작물의 종류나 농업의 발달 정도에 따라 다르다. 옛날에는 두 나뭇가지의 한 끝을 동여매어 집게 비슷하게 만든 것에 벼이삭을 끼우고서 훑는 벼훑이를 사용하였고, 회전식 탈곡기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납작한 쇠못을 나무판에 촘촘히 박고 그 사이에 벼이삭을 끼워서 훑는 그네를 사용하였다.
콩이나 팥 등은 마당에 널어 건조시킨 후, 긴 장대 끝에 구멍을 맞뚫고 그 구멍에 가는 막대를 가로 박아서 돌게 한 다음 그 막대 끝에 2,3개의 회초리를 달아 휘둘러가며 내리치는 도리깨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작업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수고를 덜기 위한 연구 끝에 벼의 탈곡용으로 족답식(足踏式) 탈곡기가 발명되었고, 현재는 동력회전탈곡기뿐만 아니라 베는 동시에 탈곡 및 선별작업까지 하는 능률적인 콤바인이 사용되고 있다.
개요
벼·보리 등의 탈곡을 주목적으로 하는 농구이다.
넓은 의미로 콩·팥·옥수수·땅콩 등 탈곡과 탈립(脫粒) 또는 껍질을 까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탈곡기도 포함된다. 탈곡방법은 작물의 종류나 농업의 발달 정도에 따라 다르다.
옛날에는 두 개의 막대기에 한 끝을 끈으로 묶어 집게 모양으로 만든 것에 벼이삭을 끼워서 잡아당겨 훑어내는 훑이를 사용하였고, 납작하고 길쭉한 쇠못을 나무판에 촘촘히 박아 빗 모양으로 만든 것에 벼이삭을 끼워 훑어내는 그네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콩이나 팥과 같은 곡물은 잘 말린 뒤 장대 끝에 구멍을 뚫고 꼭지를 가로로 박아서 돌게 한 다음 꼭지 끝에 2, 3개의 휘추리를 달아 그것을 휘둘러 가며 내리쳐서 껍질을 까는 도리깨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재래식 기구를 사용한 탈곡작업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게 되므로 점차 농업이 발달됨에 따라 수고를 덜 수 있고 능률을 높일 수 있는 기계에 대한 연구를 한 결과 인력탈곡기(人力脫穀機)가 발명되었고, 현재는 동력을 이용한 자동탈곡기가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동력탈곡기는 손으로 줄기를 붙들고 이삭만 탈곡부에 넣는 수급식, 손 대신에 기계적으로 붙드는 자동공급식, 줄기도 같이 탈곡부에 넣는 투입식이 있으며, 회전하는 탈곡 급동의 수도 하나 또는 두 개가 있다. 인력탈곡기는 발로 페달을 밟아 급동을 회전시켜 탈곡을 하게 되는데, 힘이 많이 들고 탈곡 손실이 클 뿐만 아니라 선별장치 등이 없다.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볏짚을 기계적으로 물고 자동적으로 공급하면서 탈곡과 선별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자동탈곡기가 개발되었으며, 이것이 한국에 주로 보급되어 사용되고 있다.
자동탈곡기의 구조는 체인으로 된 볏짚 자동공급장치, 급동을 중심으로 한 탈곡장치, 풍구(風具)를 중심으로 한 선별장치, 탈곡된 벼를 보내는 이송장치로 되어 있다. 급동 주위에는 뾰족한 고리형태의 급치를 나선형태로 달아, 이것을 회전시켜 벼·보리 등의 이삭이 달린 곡물을 넣게 되면, 급치가 곡물을 타격하여 낟알(벼알)을 떨어뜨리게 된다.
탈곡 급동 아래로 떨어진 벼알이나 지푸라기는 풍구에서 나오는 바람에 의해 무거운 벼알은 밑으로 떨어져 이송장치에 의하여 곡물만 모으는 곳으로 옮겨지고, 가볍거나 불완전한 벼알과 검불은 밖으로 내보내게 되어 있다.
발명
1784년에 스코틀랜드의 기계 기술자이자 발명가 앤드류 메이클이 탈곡기를 만들었다. 그는 아마도 50년 전에 마이클 멘치스가 특허를 낸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어 탈곡기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곡물을 수확하고 나면 낟알을 이삭으로부터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1778년에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한 후 메이클은 시간을 혁신적으로 단축시키는 기계를 만들었다. 기계는 점차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마을 주민들의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과거에 탈곡은 노동자들의 동절기 수입원 중 하나였으나, 이제 그들의 생계가 위협을 당하게 됨에 따라 여기저기서 폭동이 일어났다.
탈곡기는 작동이 그다지 안전하지는 않다. 기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식물의 이삭이든 사람의 팔다리든 관계없이 무조건 두들기고 때리기 때문이다. 메이클의 최종 디자인은 두들기는 기구가 고정되어 있는 강력한 드럼을 사용했다. 이로써 그는 이전의 실수, 즉 탈곡기가 곡물을 두드리는 대신 문지르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탈곡기를 사용한 최초의 농부들은 거의 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화 기계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18세기 말에 농부들이 물 대신 맥주를 마셨다는 것이다. 목마른 농장 일꾼들은 보통 하루 종일 몇 파인트의 맥주를 마시면서 수분을 보충했기 때문에 만취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익숙치 않은 기계와 피로, 거기에 술에 취한 상태의 조합은 많은 부상과 사망 사고를 일으켰다.
이 발명은 후에 농업을 더욱 발전시킨 복식 수확기의 발명에 기여하게 되었다.
원리
기계기구를 이용하여 탈곡장치를 회전시킨다. 원통 주위에 말굽쇠 모양으로 구부린 철사(급치)를 촘촘히 박힌 지름이 40∼50cm 되는 원통(급동)을 빠를 속도로 회전시키고 여기에 곡식의 이삭을 먹이면 빠른 급치(扱齒)가 이삭을 때리거나 훑어서 알곡을 떨어낸다. 급동의 회전력은 사람이 발로 밟는 힘을 이용하는데, 크랭크 기구를 이용하여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전환하고 회전속도는 치차를 이용하여 증속한다. 1900년대 초기에 일본에서 도입된 연장으로 보통 한사람이 볏단을 준비하고 두 사람이 탈곡기를 밟으면서 볏단을 먹이는데 앞사람이 애벌떨이를 하고 다음사람이 볏단을 받아 마저 떤다. 그러나 일할 사람이 적거나 탈곡할 양이 많지 않으면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세 사람이 하루 40여 가마의 벼를 탈곡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 연장을 '회전식 도급기(稻扱器)'라고 불렀으나 뒤에 발로 밟는 탈곡기라는 의미로 '족답식 탈곡기'라고 했다. 그리고 농가에서는 통이 구른다고 해서 '궁글통', 탈곡기가 돌아갈 때 나는 소리를 따서 '와랑' 또는 '호롱구'라 부르기도 했다.
이 탈곡기가 회전동력을 이용한 동력탈곡기로 발전하였다.
종류
탈곡기는 동력에 따라 인력식(人力式)과 동력식으로 분류할 수 있고, 짚공급방식에 따라 수급식(手給式) ·자동공급식 ·투입식으로 분류되며, 급동(扱胴)의 수와 공급위치에 따라 단동식 ·복동식, 배진장치에 따라 반자동식 ·자동식으로 분류된다. 인력탈곡기는 보통 족답탈곡기라고 하는데, 인력에 의해 동력을 발생시키므로 힘이 많이 드는 것이 단점이며, 탈곡손실이 많고 선별장치가 없다.
동력탈곡기(자동탈곡기)의 구조는 급동을 중심으로 하는 탈곡장치와 풍구를 중심으로 하는 풍선장치(風選裝置)가 주요 부분인데, 이것에 볏단의 자동공급장치와 탈곡된 벼 낟알을 내보내는 장치를 갖춘 것도 있다. 급등에는 역 V자 모양의 급치(扱齒)가 많이 꽂혀 있는데, 이것을 회전시켜 가면서 급치에 벼이삭을 갖다대어 벼알을 떨어뜨린다. 수망(受網)에 떨어진 벼 낟알이나 볏짚은 풍구에 의해 풍선되어 무거운 벼 낟알은 1번구로, 가볍고 불완전한 벼 낟알은 2번구로, 볏짚은 3번구로 배출된다. 한편, 옥수수는 손으로 탈립(脫粒)하거나 도리깨 같은 것으로 탈립하였으나 근래는 옥수수탈립기가 개발되었다. 더욱이 옥수수 수확기와 탈립기를 겸비한 특수 콤바인이 사용되고 있다.
동영상
참고자료
- 〈탈곡기〉, 《한국의 농기구》
- 〈탈곡기〉, 《두산백과》
- 〈탈곡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탈곡기〉,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상을 바꾼 발명품 1001》
- 〈탈곡기〉, 《나무위키》
- 〈탈곡기〉, 《위키백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