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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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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업(通信業)

통신업(通信業)은 우편이나 전신, 전화 따위의 통신에 관한 사업을 말한다.

개요

통신업은 우편 ·전신 ·전화 ·데이터통신과 같이 소정의 대가를 받고 통신 역무(役務)를 공급하는 공익사업이다.

종래에는 제3차산업으로 불려왔으나 정보산업의 등장으로 제4차산업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보산업은 정보생산업 ·정보가공판매업(정보의 저축 ·가공 ·판매) ·정보유통업(통신사업) ·정보관련산업(컴퓨터 ·단말기기산업)으로 분류된다. 통신사업은 성질상 신속 ·안전 ·정확 ·저렴 ·간편 ·공평이 요구되며, 통신의 비밀보장이 강하게 요구된다.

국내 균일제(均一制) 우표에 의한 전납제(前納制)를 채택하는 근대 우편제도의 실현은 1840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급속히 전세계로 보급되었다. 우편의 공익성으로 인하여 세계 각국은 현재 국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근 우편물의 다양화는 재래의 우편대책과는 다른 대책이 요구됨에 따라 우편물의 규격화, 요금제도의 개선, 우편물 구분의 기계화, 그에 따른 우편번호제의 채택 등 새로운 합리화대책이 취해지고 있다. 경영형태에 있어서도 정부 형태에서 독립채산제의 공사(公社) 형태로 바뀌고 있다. 전신사업은 1944년 미국의 워싱턴~볼티모어 사이에서 취급된 것을 효시로 그 후 해저전신 ·무선전신의 발명 ·보급으로 급속히 국제간의 통신수단이 되었다. 전화사업은 1976년 보스턴에서 시작하여 급격한 발전을 보아 현재로서는 사회의 신경으로서 기간산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신 ·전화사업은 미국 ·캐나다와 같이 사기업에 의하는 국가도 있으나 정부가 경영하거나 공사의 형태로 운용된다. 한국에서는 1898년 궁중에 처음으로 전화가 가설되었고 그 후 정부에서 전신 ·전화를 관장하였다.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급증하는 전기통신의 증가를 충족시키기 위해, 체신부(정보통신)로부터 전기통신사업을 분리하여 1981년부터 한국전기통신공사를 설립하여 경영을 이관하고, 정부는 감독기능만을 관장하고 있다. 또 1980년대 후반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무선전화의 신장률은 눈부시어, 이제는 이동통신시대가 열렸다.

통신업의 국가정책

통신은 인류의 집단생활이 시작되면서 사상과 정보의 단순한 전달만이 아니라, 집단생활 구성원들의 지적·감정적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에 일찍이 통신업은 국가권력의 간섭내지 통제를 받아왔다.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약간의 지역적·시대적 배경에 따른 변화가 있다고는 하지만 일찍이 역마제도(驛馬制度)가 갖추어지고 있었다든가, 대부분의 국가에서 통신수단을 국유 또는 공영화하고 있는 것은 모두 통신이 그 나라의 정치·경제·문화·군사(軍事)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데 연유한다. 통신사업은 인간의 신경계와 같은 국가의 중추산업으로서 산업·경제·문화·사회·정치·군사상 그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인지(人智)가 발달하고 발전하면서 통신수요는 질적·양적인 면에서 고도화되고 급팽창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에는 그에 상응하는 통신기술의 개발, 통신수단의 정비·보관이 뒤따라야 할 것은 물론, 또한 적절한 국가정책적 작용이 강구되지 않으면 안 되는 당위성(當爲性)이 개재한다. 여기서 적절한 국가정책적 작용의 당위성이란 다음의 3가지 목적에 입각하고 있다. 즉 (1) 통신의 공익·공안성에 입각한 통신수요(즉 통신시장)의 질적·양적 통제, (2) 통신서비스의 향상과 기술발전에 의한 통신수단간의 마찰 제거, 사회적 비용의 절약, (3) 통신업 경영의 기업성 유지(企業性 維持)를 들 수 있다. 이처럼 통신에 대한 국가작용의 개입이 거의 일반화되어 있음에도 그 개입의 형태는 각 국가별로 상이한 바, 위의 3가지 개입목적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이른바 공기업(公企業)의 성격을 갖춘다. 통신업의 생산물인 통신서비스는 저장성이 없고 수요의 발생과 동시에 생산하여야 된다는 점에서 통신업의 경제활동상의 특성이 부여되고 있다. 또한 통신서비스는 특정부류·특정사회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닌 대중성·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 2가지를 모두 충족할 수가 있는 경영형태 내지 경영방침이 설정되지 않는 한 통신업은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 점이 국가권력이 개입되는 허용조건이며, 나아가 정부 또는 공공기관에 의한 통신시장 독점체제가 받아들여지는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비스 요금과 서비스 편익수준의 결정에 있어서도 여러 공공사업과 마찬가지로 공공정책의 합목적성(合目的性)에 입각한 경영자세가 요망된다고 할 것이다. 한국은 1980년대 초까지 중앙행정기관인 체신부가 정부기업 형태로 통신업 전반을 관장하여 왔으나 1982년 1월 공법인인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설립되어 대부분의 전신전화업무를 취급하게 되었고 우편·체신금융업부만을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다.

통신업의 분류 및 시설

현대의 통신업은 크게 ① 우편사업, ② 전신전화사업, ③ 기타 부대사업으로 구분된다. 우편사업은 봉서·엽서 등 일반 우편물을 취급하는 보통우편업무와 등기우편업무, 그리고 소포우편업무가 있으며, 여기에 이 우편업무의 부대업무로 우표판매 및 우편수발(受發) 또는 우편집배 행위가 병행된다. 우편사업을 위한 매개시설로서는 우체국을 설치, 여기에 우편함이나 사서함(私書函)을 설치하여 우편물을 수집하고, 분류 과정을 거쳐 목적지에 배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신·전화사업은 국내전신(전보)·일반 시내전화·장거리전화, 그리고 국제전신전화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이를 위하여 전신국·전화국·전신전화국·무선전신국·국제전신전화국·선박무선취급소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전신·전화사업도 우편사업과 같이 통신이용자의 발신과 수신을 연결시켜주는 것이므로, 이에 필요한 매개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바, 이를 보통 전무시설(電務施設)이라고 한다. 전무시설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기계시설(機械施設) ― 전화교환시설·중계신(中繼信)시설·전신시설·전원(電源)시설·무선반송(無線搬送)시설·계전기(繼電器)·정류기(整流器)·라인 파인더(line finder)·라인 실렉터(line selector) (2) 선로시설(線路施設) ― 나선로(裸線路)·전주(電柱)·관로(管路)·공도(工道)·배단자함(配端子函) 등 (3) 차량·운반구(車輛·運搬具) ― 각종 차량 및 운반. (4) 비품·공구기타(備品·工具其他) ― 금속공작기계·각종계기 및 실험용 장비·측정용 공구 등. 통신업의 부대사업으로 가장 현저한 것은 우편저금·통신보험·전파관리·통신사업 연구업무와 통신시설 건설업무를 들 수 있다. 우편저금이나 통신보험 등을 통신업 자체가 정보전달에 필요한 자체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데서 일종의 겸업과 같은 형태로, 통신 이용대중의 신체상·재산상의 위험공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전파관리사업은 전파의 통제와 감사, 무선시설의 허가·감독, 무선종사자의 자격검정 등 업무를 행하는 것이며, 통신연구사업은 통신기술개발과 학술적인 시험, 전기기기에 대한 시험·검정, 전자회로 교환, 통신의 전송(轉送) 전력상태 등의 시험 검정업무를 행함으로써 통신업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기능을 한다. 통신시설 건설업무는 통신서비스 생산에 필요한 통신수단을 건설(경우에 따라서는 유지·보완)한다.

한국산업표준 분류

64 통신업
  • 641 우편 및 소포 송달업
  • 6411 우편업
  • 64110 우편업
  • 6412 소포 송달업
  • 64120 소포 송달업
  • 642 전기 통신업
  • 6421 유선 통신업
  • 64211 전기 통신 회선설비 임대업
  • 64219 유선 전화 및 기타 유선 통신업
  • 6422 무선 통신업
  • 64221 무선 전화업
  • 64229 무선 호출 및 기타 무선 통신업
  • 6429 기타 전기 통신업
  • 64291 별정 통신업
  • 64292 부가 통신업
  • 64299 그외 기타 전기 통신업

대한민국의 통신업

역사

1952년 1월 국제 전기 통신 연합 가입, 1966년 8월 별정우편제도 창설, 1968년 4월 1일 우편물 매일·당일배달제실시, 1965년 12월 가입전신(TELEX)업무 실시, 1967년 마이크 로 웨이브 통신회로 개통, 1970년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개통, 1970년 7월 1일 우편제도 실시, 1971년 3월 서울∼부산간 장거리자동전화(DDD) 개통, 1977년 제2위성통신지구국 개통 등으로 이어진 한국의 통신사업은 이상과 같이 1970년대 초에야 현대화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1970년 대중에 계속된 통신망의 확대·현대화에 불구하고 경제·사회의 지속적인 성장추세는 통신사업의 후진성을 노정시켰으며 이에 따라 대규모의 설비투자와 기술혁신·개발, 통신사업에 관한 정책 및 계획수립·실적평가의 전문성 확립이 요청되었고 독립적인 통신사업경영 기능의 운용이 검토되기 시작했다. 1979년 서울과 미국·일본(도쿄·오사카)·홍콩간의 국제속달 우편제도가 설치되어 특히 무역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국제 우편환제도 개선 5개년계획이 실시되었으며 비적성공산국가 5개국과 항공 및 선편에 의한 소포우편물 교환업무가 시작되었다. 전신·전화부문에서도 전자교환방식의 도입이 가속화되었고 광섬유 전화케이블의 개발로 광섬유통신 시대가 개막되었으며 소련과의 국제전화선로가 개설되었다.

1980년대에는 1970년대 중 계속되어 온 전화적체현상을 해소하고 시설확장을 위한 재원확보를 위해 '통신시설확장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공포되었고 동법에 따라 전신·전화공채가 발행되어 전화 신규가입자·승계·양수자는 의무적으로 인수하게 되었다. 1982년 1월1일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발족되어 체신부로부터 전기통신사업 경영·연구 및 실용화·시험 및 검사업무 등을 이관받아 업무에 들어갔으며 체신부는 우정사업과 전기통신의 기본정책, 유관산업의 육성, 안보통신, 공사의 지도감독 등 전기 통신 행정업무만을 관장하게 되었다. 1982년 4월 통신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따라 도래하고 있는 정보통신시대의 개막에 대비해 컴퓨터와 전화의 기능을 결합, 신속·정확하게 정보를 교환·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 통신업무를 전담할 한국데이터통신 주식회사가 한국전기통신공사와 민간기업의 공동출자로 설립, 데이터 통신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의 통신산업은 급격한 기술발전과 고객 니즈 변화에 따라 유ㆍ무선 통합, 통신과 방송의 융합 등 컨버전스 영역으로 그 가치가 이동하고 있으며, 기존의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이동통신 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성장 정체의 상황이다. 하지만, IPTV로 대변되는 미디어사업은 기존의 통신과 방송으로 구분된 산업체계를 재편할 가능성이 높아 통신, 방송 산업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전신 및 전화

1982년 전자식 자동전화교환시설이 전국에 확대됨에 따라 4월 단축 다이얼, 착신통화전환, 부재중 안내, 통화중 대기 등 특수서비스가 일반전화가입자들에게 개발되었으며 통신서비스의 지역격차해소 사업으로 도서벽지의 전화서비스가 크게 개선되었다. 동년 12월 속칭 '삐삐'로 불리는 무선호출(paging) 서비스가 일반에 개방되었으며 광통신시스템이 시험운용에 들어가는 한편 농어촌지역 전화자동화사업의 일환으로 농어촌용 시분할(Digital)교환기가 개발, 시험운용이 시작되었다. 1983년 3월 전화선에 팩시밀리·데이터통신 단말기 등의 접속사용이 가능한 공중전기통신망이 개방되었고 동년 9월 무선전화기의 사용이 허용되어 전기전자산업의 관련부문에 일대 특수가 일기 시작했다. 동년 5월 지정시간통보·3인통화·직통전화 등 3종의 특수서비스가 추가 개방되었고 동년 8월 국제발신통화 자동화가 단계적으로 시행되었다. 1984년 4월부터 차량전화시스템이 서울지역에서 개방되어 동년 5월 이를 전담할 한국이동통신서비스 주식회사가 설립되었고 동년 12월 정부종합청사와 제2종합청사간에 화상회의 서비스 시설이 시험운용에 들어갔다. 동월 전국시외전화 전자교환망의 완성으로 전국의 자동식 전화가입자 상호간 DDD가 가능하게 되었고 1986년에는 무선호출기 서비스 지역이 5대도시로 확대되면서 전화번호 표시방식이 도입되었다. 동년 12월 전화사서함 서비스가 개방되었고 '86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르면서 카드식 공중전화기가 보급되는 등 각종 통신서비스가 확대·개방되었다. 1987년 7월 1일 전국전화자동화사업의 완료로 모든 전화가 자동화되었으며 9월에는 전화시설이 1,000만회선을 돌파, 1가구 1전화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1988년 1월에는 전신전화채권제도가 완전폐지되었고 차량전화서비스는 17개 시로, 무선호출 서비스는 26개 시로 각각 확대되었으며 국제자동전화(ISD) 이용지역도 148개국 172개 도시로 확대되었다. 1994년 말 전국의 전화시설수는 2,085만8,101회선, 일반전화 가입자수는 1,764만6,614명으로 전화보급률은 인구 100명당 39.7대이고, 공중전화는 총 30만5,272대로 보급률이 인구 1,000명당 6.9대이었다. 장거리통신망은 총 138만6,712회선이었는데, 이 중 전신용이 5,404회선, 전화용이 138만1,308회선이었으며, 국제통신망은 총 1만375회선을 보유하고 있고 국제자동전화(IDD) 이용지역은 189개국 231지역으로 북한을 제외한 전국가와 국제통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동전화는 전국 74개시 전역과 146개 읍지역에 제공되고 있었으며, 가입자수는 총 96만258명이었다.[3] 2010년말 기준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모두 5076만7241명으로 전년대비 5.9% 늘어났다. 2010년 12월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는 총 5051만5666명으로 이동전화 가입자가 총 인구수를 넘어서 이동전화 보급률은 100.5%를 나타냈다.

정보 통신

1983년 2월 해외공중정보통신망을 개통하고 1984년 7월 국내정보통신망인 DACOM-NET를 개통한 (주)한국테이터 통신은 이에 부가하여 1983년 11월부터 전자사서함 서비스, 1985년 10월부터 DATABANK를 개통·운용하고 있으며 특수데이터통신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1987년 11월에는 신용카드검색서비스가 시작되었고 1988년 5월 국내 최초의 종합정보은행인 천리안 Ⅱ가 상용화되었다. 1983년 12월 공중전기통신사업법의 제정·공포로 제도적 기반을 갖춘 정보통신역무제공업은 개방·완화의 추세에 따라 민간기업에 의한 부가가치통신망(VAN)사업의 활성화가 기대되고 있다. 1994년 말 전국 77개지역 및 54개 국가와 연결되어 있는 데이콤­넷은 1만1,166가입자가 이용하고 있고 한국통신이 1992년 개통된 하이넷­P는 전국 213개 지역, 88개 국가와 연결되어 있고 5,035 가입자가 이용하고 있다. 국내PC통신서비스로는 천리안(데이콤), 하이텔(한국 PC통신), 나우누리(나우콤), 포스서브(에이텔) 등이 있는데, 유료가입자 수는 50만4,936명이다. 한편 세계 최대의 컴퓨터통신망인 인터넷 공중서비스가 1994년 6월 한국통신(KOR-NET)를 시작으로 국내에 도입되어 천리안, 한누리(아이넷기술) 등을 통해 제공되고 있다. 부가가치통신망(VAN)사업은 1987년 계열회사간의 그룹 VAN 형태로 허용되던 것이 점차 규제가 완화되어 1990년 등록제에서 1995년 신고제로 완화되었고, 데이터단순전송(DC)에서 데이터·음성·영상혼합서비스 등으로 사업 영역이 확대되어 1994년 말 등록된 VAN 사업자는 228개 사로 이 중 외국기업과의 합작사가 4개 사, 국제 VAN 사업자 12개 사가 있다. 1993년 우리나라 정보통신사업 시장규모는 총 6,684억원이었다.

기간통신사업자

케이티

KT(케이티, Korea Telecom)는 대한민국의 통신회사다. 유무선 전화, 초고속인터넷 등 유무선 통신서비스업이 주요 업종이다. 1981년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창립되었으며, 2009년 이동통신 자회사인 KTF와 합병을 하였다. 전기통신사업법상 전기통신사업자이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 등에 관한 법률 상 독과점 사업자로서 시장지배적사업자 지위 남용 규제를 받는다. 케이티는 과거 공기업적 요소가 남아 있는데, 회장추천위원회에서 회장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회사의 소유는 잘 분산되어 있는데,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관리공단(9.22%)이지만,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속성을 가지지 않은 주주로 평가되며, 지배주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SK브로드밴드

SK브로드밴드주식회사는 2008년 9월 22일에 SK텔레콤의 자회사로 재설립된 대한민국의 제2시내 전화 및 초고속인터넷 사업자이다. SK브로드밴드주식회사의 전신인 하나로 통신은 1999년 4월 1일부터 시내전화를 서비스하기 시작하였고, 최초로 ADSL 상용화 및 초고속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시작으로 현재 전화, 초고속인터넷, IPTV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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