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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키'''(wiki)란 [[하이퍼텍스트]] 문서를 만들 수 있는 공개 [[소프트웨어]]이다. 1995년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ref>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은 '워드 커닝엄'이라고도 한다.</ref>이 개발했다. 2001년 [[지미 웨일스]](Jimmy Wales)가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위키(wiki)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분산 버전 관리 시스템인 [[깃허브]](GitHub)에도 위키가 사용되고 있다. 위키위키(wiki wiki)란 하와이 말로 | + | '''위키'''(wiki)란 [[하이퍼텍스트]] 문서를 만들 수 있는 공개 [[소프트웨어]]이다. 1995년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ref>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은 '워드 커닝엄'이라고도 한다.</ref>이 개발했다. 2001년 [[지미 웨일스]](Jimmy Wales)가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위키(wiki)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분산 버전 관리 시스템인 [[깃허브]](GitHub)에도 위키가 사용되고 있다. 위키위키(wiki wiki)란 하와이 말로 '빨리빨리'라는 뜻이다. [[미디어위키]](MediaWiki), [[도쿠위키]](DokuWiki) 등 다양한 종류의 [[오픈소스]] 위키 소프트웨어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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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시 == | == 창시 == | ||
최초의 위키 소프트웨어는 1995년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이 개발했다. 커닝햄은 위키위키 웹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위키'의 개념을 고안했고, '위키'(wiki) 라는 이름을 지었으며, 첫 위키위키 [[서버]]를 만들었다. 위키위키(Wiki Wiki)란 하와이 말로 "빨리빨리"라는 뜻으로서,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의 무료 셔틀 버스의 이름이었다.<ref>류재훈 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8&aid=0000071026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돌풍]〉, 《한겨레》, 2004-07-28</ref> | 최초의 위키 소프트웨어는 1995년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이 개발했다. 커닝햄은 위키위키 웹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위키'의 개념을 고안했고, '위키'(wiki) 라는 이름을 지었으며, 첫 위키위키 [[서버]]를 만들었다. 위키위키(Wiki Wiki)란 하와이 말로 "빨리빨리"라는 뜻으로서,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의 무료 셔틀 버스의 이름이었다.<ref>류재훈 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8&aid=0000071026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돌풍]〉, 《한겨레》, 2004-07-28</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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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와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에서부터 [[빈트 서프]](Vint Cerf)와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에 이르기까지, 역대 컴퓨팅 분야의 저명한 선구자들이 공통적으로 품었던 목표는 '정보를 공유한다'는 개념이다. 버니바 부시가 1960년대에 고안한 메멕스(Memex)와 하이퍼텍스트 개념은 1972년 [[카네기멜론 대학교]]의 ZOG와 1987년 시장에 나온 애플의 하이퍼카드(HyperCard) 등 하이퍼텍스트를 활용한 초기 지식 기반 시스템을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다. 하이퍼카드는 프로그래머 빌 앳킨슨(Bill Atkinson)이 고안했다. 앳킨슨은 애플 매킨토시 원조 개발팀 30인 중 한 명이자, 그 유명한 비트맵 그래픽 생성 프로그램 맥페인트(MacPaint)를 만든 장본인이다. 이 프로그램이 와일드카드(WildCard)라는 이름으로 개발되는 동안, 애플 팀의 또 다른 팀원이었던 켄트 벡(Kent Beck)은 퍼듀 대학에서 컴퓨터과학 석사 학위를 받은 동료 프로그래머 [[하워드 커닝햄]](Howard Cunningham)에게 이 프로그램을 시연했다. 커닝햄은 하이퍼카드가 사실상 단일 사용자 카탈로그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하면서 비교적 사용자에게 편리한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정보를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커닝햄은 1990년대가 시작될 무렵, 갈수록 발전해 가는 컴퓨터의 성능과 편재성을 활용할 새로운 솔루션을 찾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 설계 패턴을 분석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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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동료들과 함께 1994년 일리노이주 몬티셀로에서 최초의 '프로그램 패턴 언어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 컨퍼런스 참가자 중에는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당시 걸음마 단계인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위한 모자이크 그래픽 브라우저를 개발 중이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브라이언 푸트(Brian Foote)는 이 새로운 브라우저를 커닝햄에게 시연했고, 웹(Web) 하이퍼텍스트를 사용하면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작성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로 웹에서 찾을 수 있는 저장소를 만들어 전파하고, 공유하며,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994년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 커닝햄의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기존 방식과 같이 커닝햄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텍스트 파일을 받아 이를 HTML로 변환하여 최종적으로 월드와이드웹에 게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변환 프로세스는 한 사람이 수행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어, 커닝햄은 [[펄]](Perl)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하여 소프트웨어를 제작했다. [[HTML]]을 모르는 사용자라도 정보와 프로그램 패턴을 입력하면, 스크립트가 해당 정보를 자동으로 HTML을 디스플레이 하여 웹페이지로 변환해 주는 양식을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였다. 즉,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위키의 시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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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닝햄은 정보 공유와 공동 작업의 속도를 높이도록 설계한 이 소프트웨어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던 중, 이전에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 자신과 다른 승객들을 호놀룰루 공항에서 태워 이동했던 [[셔틀버스]]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 버스의 이름은 '위키 위키(Wiki Wiki)' 셔틀이다. 그는 '빠른'이라는 뜻을 가진 하와이어 '위키'를 채용해 자신의 발명품에 위키위키웹(WikiWikiWeb)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1995년 3월 25일 본인의 회사 커닝햄 & 커닝햄(Cunningham & Cunningham)의 웹사이트 www.c2.com에 처음으로 설치하게 된다. 원래 그가 의도했던 위키는 텍스트를 읽는 그 자리에서 텍스트를 작성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 이전의 웹에서는 정보를 읽는 장소가 따로 있고, 정보를 작성하려면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을 거쳐야 해서 웹에서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커닝햄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항목을 작성하여 사이트에 올릴 것을 독려했고, 2004년이 되자 위키위키웹은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무려 2만 5,000개가 넘는 항목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 중 커닝햄 본인이 작성한 항목은 300개가 채 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전 세계의 [[프로그래머]]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참여해 작성한 것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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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닝햄은 위키의 콘텐츠를 편집하여 통제하지 않고 각 개인이 자유롭게 사이트에 항목을 작성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개방되어 있고, 수정 가능하며, 주로 웹을 통해 전파되는 지식의 보고 '위키'의 시대가 열렸다. 커닝햄의 위키위키웹을 만든 이후, 위키의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노래 가사 위주의 리릭위키(LyricWiki)를 비롯하여, 사람들의 관심사를 중점으로 하는 위키가 여럿 생기게 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위키는 위키피디아이다. 위키피디아는 알렉사 랭킹에 오른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방문자 수가 많은 사이트로 등극하기도 했다.<ref> 클라이브 기포드, 〈[https://www.lgcns.com/blog/it-trend/17481/ 위키(wiki)의 탄생]〉, 《LG CNS》, 2016-08-16 </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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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프로그램은 [[위키피디아]](Wikipedia)로 알려진 [[위키백과]]에 채택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2001년 1월 15일 [[지미 웨일스]](Jimmy Wales)는 위키 프로그램을 적용한 영어판 인터넷 백과사전을 만들고 '위키피디아'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위키피디아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 '위키' 프로그램은 [[위키피디아]](Wikipedia)로 알려진 [[위키백과]]에 채택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2001년 1월 15일 [[지미 웨일스]](Jimmy Wales)는 위키 프로그램을 적용한 영어판 인터넷 백과사전을 만들고 '위키피디아'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위키피디아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 ||
한국어 위키백과는 2002년 10월 11일에 시작되었고 2012년 5월 19일 20만 개 문서를 돌파했다. 2012년 10월 13일(토)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코엑스(COEX)에서 한국어 위키백과 10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구글코리아]]와 [[㈜아사달]]<!--아사달-->이 공동 후원하였다. | 한국어 위키백과는 2002년 10월 11일에 시작되었고 2012년 5월 19일 20만 개 문서를 돌파했다. 2012년 10월 13일(토)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코엑스(COEX)에서 한국어 위키백과 10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구글코리아]]와 [[㈜아사달]]<!--아사달-->이 공동 후원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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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위키 문헌 ==== | ||
+ | 위키문헌은 [[위키미디어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유 콘텐츠 도서관 프로젝트이다. 문서 자료와 번역 등을 모으는 자유로운 온라인 도서관을 목표로 한다. 글로 된 자료, 즉 문헌(source text)을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정보 자료를 모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주로 사료(史料)·문학 작품·법령·종교 경전·선언문 등과 그것을 번역한 것, 그리고 그러한 자료들의 저자에 대한 정보를 다룬다. 자비 출판 문서나 서적을 올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위키문헌은 [[위키백과]]에 통째로 넣기 곤란한 문서 자료들을 제공할 공간을 마련하고자 2003년 11월에 시작되었으며, 처음에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빗댄 말로 '프로젝트 소스베르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프로젝트는 시작된 이후 빠르게 성장하여, 2005년 5월에는 여러 언어로 된 2만 개 이상의 문서 자료를 확보했다. 2005년 8월과 9월에는 서로 다른 언어로 된 자료들에 대해 각각 하위 도메인을 만들어 따로 관리하게 되었다. 2008년에는 쾰른 도서관에 소장된 모든 도서가 위키문헌 독일어판에 업로드되었다. 또한, 2012년에는 [[미국]]의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된 저서가 위키문헌 영문판에 업로드되는 등 정부 및 공공기관이 문서 기부를 하고 있다. 위키문헌 프로젝트가 고안되어 첫 발을 내디딘 이래 참여자가 늘어남에 따라서, 위키미디어의 다른 성공적인 프로젝트들을 모범으로 삼아 위키문헌도 여러 언어로 독자적인 언어판을 열게 되었다.<ref name="이란"> 〈[https://ko.wikisource.org/wiki/%EC%9C%84%ED%82%A4%EB%AC%B8%ED%97%8C:%EC%9C%84%ED%82%A4%EB%AC%B8%ED%97%8C%EC%9D%B4%EB%9E%80%3F 위키문헌:위키문헌이란?]〉, 《위키문헌》 </ref><ref> 〈[https://ko.wikisource.org/wiki/%EC%9C%84%ED%82%A4%EB%AC%B8%ED%97%8C:%EC%86%8C%EA%B0%9C 위키문헌:소개]〉, 《위키문헌》 </ref> 본래 한국어 위키문헌 공동체에서는 위키문헌의 한국어명을 '위키자료집'(Wiki-資料集)이라고 명명했었다. 그러나 파일 자료실로 오해하는 사용자가 나오는 등의 문제가 있어서, 2008년 10월 공동체 내부에서 위키문헌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2009년 5월에 명칭 변경이 완료되었다.<ref> 〈[https://ko.wikipedia.org/wiki/%EC%9C%84%ED%82%A4%EB%AC%B8%ED%97%8C 위키문헌]〉, 《위키문헌》 </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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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류재훈 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8&aid=0000071026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돌풍]〉, 《한겨레》, 2004-07-28 | ||
+ | * 클라이브 기포드, 〈[https://www.lgcns.com/blog/it-trend/17481/ 위키(wiki)의 탄생]〉, 《LG CNS》, 2016-08-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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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0일 (월) 17:53 판
위키(wiki)란 하이퍼텍스트 문서를 만들 수 있는 공개 소프트웨어이다. 1995년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1]이 개발했다. 2001년 지미 웨일스(Jimmy Wales)가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위키(wiki)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분산 버전 관리 시스템인 깃허브(GitHub)에도 위키가 사용되고 있다. 위키위키(wiki wiki)란 하와이 말로 '빨리빨리'라는 뜻이다. 미디어위키(MediaWiki), 도쿠위키(DokuWiki) 등 다양한 종류의 오픈소스 위키 소프트웨어가 있다.
[아사달] 믿을 수 있는 도메인 회사 |
창시
최초의 위키 소프트웨어는 1995년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이 개발했다. 커닝햄은 위키위키 웹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위키'의 개념을 고안했고, '위키'(wiki) 라는 이름을 지었으며, 첫 위키위키 서버를 만들었다. 위키위키(Wiki Wiki)란 하와이 말로 "빨리빨리"라는 뜻으로서,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의 무료 셔틀 버스의 이름이었다.[2]
역사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와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에서부터 빈트 서프(Vint Cerf)와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에 이르기까지, 역대 컴퓨팅 분야의 저명한 선구자들이 공통적으로 품었던 목표는 '정보를 공유한다'는 개념이다. 버니바 부시가 1960년대에 고안한 메멕스(Memex)와 하이퍼텍스트 개념은 1972년 카네기멜론 대학교의 ZOG와 1987년 시장에 나온 애플의 하이퍼카드(HyperCard) 등 하이퍼텍스트를 활용한 초기 지식 기반 시스템을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다. 하이퍼카드는 프로그래머 빌 앳킨슨(Bill Atkinson)이 고안했다. 앳킨슨은 애플 매킨토시 원조 개발팀 30인 중 한 명이자, 그 유명한 비트맵 그래픽 생성 프로그램 맥페인트(MacPaint)를 만든 장본인이다. 이 프로그램이 와일드카드(WildCard)라는 이름으로 개발되는 동안, 애플 팀의 또 다른 팀원이었던 켄트 벡(Kent Beck)은 퍼듀 대학에서 컴퓨터과학 석사 학위를 받은 동료 프로그래머 하워드 커닝햄(Howard Cunningham)에게 이 프로그램을 시연했다. 커닝햄은 하이퍼카드가 사실상 단일 사용자 카탈로그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하면서 비교적 사용자에게 편리한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정보를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커닝햄은 1990년대가 시작될 무렵, 갈수록 발전해 가는 컴퓨터의 성능과 편재성을 활용할 새로운 솔루션을 찾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 설계 패턴을 분석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1994년 일리노이주 몬티셀로에서 최초의 '프로그램 패턴 언어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 컨퍼런스 참가자 중에는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당시 걸음마 단계인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위한 모자이크 그래픽 브라우저를 개발 중이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브라이언 푸트(Brian Foote)는 이 새로운 브라우저를 커닝햄에게 시연했고, 웹(Web) 하이퍼텍스트를 사용하면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작성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로 웹에서 찾을 수 있는 저장소를 만들어 전파하고, 공유하며,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994년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 커닝햄의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기존 방식과 같이 커닝햄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텍스트 파일을 받아 이를 HTML로 변환하여 최종적으로 월드와이드웹에 게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변환 프로세스는 한 사람이 수행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어, 커닝햄은 펄(Perl)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하여 소프트웨어를 제작했다. HTML을 모르는 사용자라도 정보와 프로그램 패턴을 입력하면, 스크립트가 해당 정보를 자동으로 HTML을 디스플레이 하여 웹페이지로 변환해 주는 양식을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였다. 즉,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위키의 시초이다.
커닝햄은 정보 공유와 공동 작업의 속도를 높이도록 설계한 이 소프트웨어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던 중, 이전에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 자신과 다른 승객들을 호놀룰루 공항에서 태워 이동했던 셔틀버스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 버스의 이름은 '위키 위키(Wiki Wiki)' 셔틀이다. 그는 '빠른'이라는 뜻을 가진 하와이어 '위키'를 채용해 자신의 발명품에 위키위키웹(WikiWikiWeb)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1995년 3월 25일 본인의 회사 커닝햄 & 커닝햄(Cunningham & Cunningham)의 웹사이트 www.c2.com에 처음으로 설치하게 된다. 원래 그가 의도했던 위키는 텍스트를 읽는 그 자리에서 텍스트를 작성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 이전의 웹에서는 정보를 읽는 장소가 따로 있고, 정보를 작성하려면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을 거쳐야 해서 웹에서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커닝햄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항목을 작성하여 사이트에 올릴 것을 독려했고, 2004년이 되자 위키위키웹은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무려 2만 5,000개가 넘는 항목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 중 커닝햄 본인이 작성한 항목은 300개가 채 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전 세계의 프로그래머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참여해 작성한 것이었다.
커닝햄은 위키의 콘텐츠를 편집하여 통제하지 않고 각 개인이 자유롭게 사이트에 항목을 작성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개방되어 있고, 수정 가능하며, 주로 웹을 통해 전파되는 지식의 보고 '위키'의 시대가 열렸다. 커닝햄의 위키위키웹을 만든 이후, 위키의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노래 가사 위주의 리릭위키(LyricWiki)를 비롯하여, 사람들의 관심사를 중점으로 하는 위키가 여럿 생기게 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위키는 위키피디아이다. 위키피디아는 알렉사 랭킹에 오른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방문자 수가 많은 사이트로 등극하기도 했다.[3]
위키
위키백과 |
나무위키 |
리그베다위키 |
리브레위키 |
제타위키 |
해시넷 |
비트코인위키 |
더위키 |
바다위키 |
아이티위키 |
제이위키 |
위키스 |
요다위키 |
팬덤 |
한국어 위키 목록
위키미디어 재단
위키백과
'위키' 프로그램은 위키피디아(Wikipedia)로 알려진 위키백과에 채택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2001년 1월 15일 지미 웨일스(Jimmy Wales)는 위키 프로그램을 적용한 영어판 인터넷 백과사전을 만들고 '위키피디아'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위키피디아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2002년 10월 11일에 시작되었고 2012년 5월 19일 20만 개 문서를 돌파했다. 2012년 10월 13일(토)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코엑스(COEX)에서 한국어 위키백과 10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구글코리아와 ㈜아사달이 공동 후원하였다.
위키 문헌
위키문헌은 위키미디어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유 콘텐츠 도서관 프로젝트이다. 문서 자료와 번역 등을 모으는 자유로운 온라인 도서관을 목표로 한다. 글로 된 자료, 즉 문헌(source text)을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정보 자료를 모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주로 사료(史料)·문학 작품·법령·종교 경전·선언문 등과 그것을 번역한 것, 그리고 그러한 자료들의 저자에 대한 정보를 다룬다. 자비 출판 문서나 서적을 올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위키문헌은 위키백과에 통째로 넣기 곤란한 문서 자료들을 제공할 공간을 마련하고자 2003년 11월에 시작되었으며, 처음에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빗댄 말로 '프로젝트 소스베르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프로젝트는 시작된 이후 빠르게 성장하여, 2005년 5월에는 여러 언어로 된 2만 개 이상의 문서 자료를 확보했다. 2005년 8월과 9월에는 서로 다른 언어로 된 자료들에 대해 각각 하위 도메인을 만들어 따로 관리하게 되었다. 2008년에는 쾰른 도서관에 소장된 모든 도서가 위키문헌 독일어판에 업로드되었다. 또한, 2012년에는 미국의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된 저서가 위키문헌 영문판에 업로드되는 등 정부 및 공공기관이 문서 기부를 하고 있다. 위키문헌 프로젝트가 고안되어 첫 발을 내디딘 이래 참여자가 늘어남에 따라서, 위키미디어의 다른 성공적인 프로젝트들을 모범으로 삼아 위키문헌도 여러 언어로 독자적인 언어판을 열게 되었다.[4][5] 본래 한국어 위키문헌 공동체에서는 위키문헌의 한국어명을 '위키자료집'(Wiki-資料集)이라고 명명했었다. 그러나 파일 자료실로 오해하는 사용자가 나오는 등의 문제가 있어서, 2008년 10월 공동체 내부에서 위키문헌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2009년 5월에 명칭 변경이 완료되었다.[6]
각주
- ↑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은 '워드 커닝엄'이라고도 한다.
- ↑ 류재훈 기자,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돌풍〉, 《한겨레》, 2004-07-28
- ↑ 클라이브 기포드, 〈위키(wiki)의 탄생〉, 《LG CNS》, 2016-08-16
- ↑ 〈위키문헌:위키문헌이란?〉, 《위키문헌》
- ↑ 〈위키문헌:소개〉, 《위키문헌》
- ↑ 〈위키문헌〉, 《위키문헌》
참고자료
- 〈위키문헌〉, 《위키문헌》
- 〈위키문헌:위키문헌이란?〉, 《위키문헌》
- 〈위키문헌:소개〉, 《위키문헌》
- 류재훈 기자,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돌풍〉, 《한겨레》, 2004-07-28
- 클라이브 기포드, 〈위키(wiki)의 탄생〉, 《LG CNS》, 2016-08-1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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