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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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공화국(스페인어: República del Perú, 케추아어: Piruw, 아이마라어: Piruw)는 남아메리카 서부에 있는 공화국이다. 지리적으로 북쪽의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동쪽의 브라질, 남동쪽의 볼리비아, 남쪽의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태평양 해안과 맞닿아 있다. 수도는 리마이며, 리마는 리마 주의 주도이면서 페루 최대의 도시이다. 페루는 면적 상으로 세계에서 19번째로 큰 국가이며, 남아메리카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국가이다.
개요
- 수도: 리마
- 면적: 1,285,216km²
- 인구: 34,294,231명(2021년)
- 공용어: 스페인어
- 정치체제: 공화제, 단일제, 이원집정부제
- 대통령: 페드로 카스티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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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페루 땅에 인류가 나타난 증거는 기원전 9,000년경에 나타난다. 페루에서 가장 오래전에 복잡한 사회를 이루었던 노르테 치코 문명은 기원전 3000년에서 1800년경 사이에 태평양 연안을 따라 번성하였다. 그 뒤를 이어 쿠피스니케, 차빈, 파라카스, 모치카, 나스카, 와리, 치무 문화가 고고학적으로 발견된다. 15세기경 잉카 제국이 강력한 세력으로 떠올라 백여 년간 콜롬부스 이전 아메리카에서 가장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안데스 사회는 농업에 기반을 두었으며 관개와 계단 농법 같은 기술을 이용하였고, 낙타과(라마,알파카,비꾸냐)동물을 기르고 물고기도 잡았다. 화폐나 시장의 관념이 없었으므로 이들 사회는 호혜와 분배를 기초로 한 사회 구조를 이루었다.
153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일군의 정복자들이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를 패퇴시키고 제국을 정복하였다. 10년 뒤 스페인 임금은 남아메리카 식민지 대부분을 포괄하는 페루 부왕령을 설치하였다.[7] 부왕 프란시스코 데 톨레도는 1570년대 이 영토를 재조직하여 은광이 경제 기반이며 원주민 노동력을 착취하는 경제 구조를 갖추었다. 페루에서 생산된 금은괴는 스페인 왕가의 수입원이었으며, 유럽에서 필리핀에 이르는 복잡한 무역망에 돈을 공급하였다. 그러나 18세기 은 생산이 줄어들고 산업이 분화되면서 왕가의 소득은 줄어들었다. 이에 대응하여 부르봉 왕가의 스페인 정부는 부르봉 개혁을 단행하여 세금을 올리고, 페루 부왕령을 분할하였다. 새 법으로 말미암아 투팍 아마루 2세의 반란을 비롯해 수차례 봉기가 일어났으나 모두 진압되었다.
19세기 초 남아메리카 대륙에는 독립전쟁 선풍이 휘몰아칠 때, 페루는 왕당파의 보루로 남아있었다. 상류층이 해방과 복종 사이에서 주저하였기 때문에 페루의 독립은 호세 데 산 마르틴과 시몬 볼리바르의 원정이 성공한 뒤에야 이루어졌다. 공화국 초기에 군사 지도자들 사이의 지역적 권력 다툼으로 정치가 불안하였다. 볼리바르가 계획한 라틴 아메리카 연합이 실패하고 페루-볼리비아 연합이 단명한 가운데, 이 시기에 국가적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1840년대에서 1860년대 사이 페루는 라몬 카스티야 대통령 하에서 구아노 수출을 통한 국가 수입 증대로 안정기를 맞았다. 1870년대에 이르러 구아노가 고갈되면서 국가는 빚더미에 올랐고 정치 내분이 일어났다.
1879~1883년 태평양 전쟁에서 페루는 칠레에 패배하여, 리마와 안콘의 조약에 따라 아리카 주와타라파카 주를 잃었다. 전후 내부 다툼이 일어나다 시민당(Partido Civil) 시대에 안정을 되찾았으나, 아우구스토 B. 레기아의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끝나고 만다. 대공황으로 레기아는 몰락하고 다시 정치 분쟁이 일어났으며 아메리카 혁명 인민 동맹(APRA)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반대파와 상류층-군부의 연합이 서로 대립하면서 이후 30여년간 페루 정계를 주도하였다.
1968년 후안 벨라스코 알바라도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페르난도 벨라운데 대통령에 대항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새 정권은 국가 발전을 위해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널리 지지받지 못하였다. 1975년 벨라스코는 프란시스코 모랄레스 베르무데스 장군에 의해 폭력을 통해 물러났으며, 베르무데스는 개혁에 손을 놓고 민주주의 재확립을 방관하였다. 1980년대 페루는 상당한 외채와 인플레이션 상승, 마약 밀매, 대규모 정치 폭력에 시달렸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 시대에 다시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였지만, 권위주의와 부패, 인권 유린 고발로 말 많았던 2000년 총선거 이후 그는 사임하였다. 후지모리 정권이 종식되고 페루는 경제 성장을 계속하며 부패와 싸우고 있으며, 2006년 6월 대통령 선거에서 아메리카 인민혁명 동맹당(APRA)의 알란 가르시아가 페루를 위한 동맹(UPP)의 오얀타 우말라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이 되었다.
정치
페루는 대통령제의 대의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다당제를 채택한다. 현행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정부 수반이자 국가 원수이다. 대통령은 5년마다 선출되며 페루의 헌법의 의하여 연임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지명하며, 총리의 권고에 따라 나머지 각료를 임명한다.
페루 의회는 단원제이며, 5년 임기의 의원 120명으로 구성된다. 법안은 입법부나 행정부에서 입안하며, 법안은 의회에서 통과하여 대통령이 공포한다. 사법부는 보통 독립되어 있으나, 페루 역사에서 아직까지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 문제가 되곤 한다.
대통령은 직선제이며 18세에서 70세 사이 모든 시민의 의무투표제로 선출된다.[40] 2006년 선거가 열려 결선 투표를 거쳐 아메리카 혁명 인민 동맹의 알란 가르시아가 유효 득표수 52.6%로 페루를 위한 연합의 오얀타 우말라 후보(47.4%)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41] 의회는 현재 아메리카 혁명 인민 동맹(36석), 페루 민족당(23석), 페루를 위한 연합(19석), 국민 통합(15%), 親후지모리 정당 미래를 위한 동맹(13석), 의회 동맹(9석), 민주 의회 특별단(5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
에콰도르와 콜롬비아가 북쪽에 위치하였고 브라질이 동쪽, 남동쪽으로 볼리비아, 남쪽으로는 칠레와 접한며 태평양 연안을 끼고 있다.안데스 산맥이 태평양 해안을 따라 뻗어 페루 전역을 3등분한다.
- 서쪽에 있는 해안 지방(costa)은 좁은 평원으로 계절에 따라 강이 생겨서 형성된 계곡을 제외하면 대개 건조한 곳이다.
- 고원 지방(sierra)은 안데스 산맥의 여러 주로서, 알티플라노(altiplano) 고원이 있고 페루에서 가장 높은 6,768m의 우아스카란(Huascaran) 봉우리가 솟아 있다.
- 세 번째로 정글 지방(selva)는 동쪽으로 펼쳐진 아마존 강의 열대우림으로 뒤덮인 넓은 평원이다. 이 지역은 페루 국토 전체의 60%를 차지하며,(7천만 헥타르) 브라질, 콩고,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세계 네 번째로 열대 우림이 넓은 나라이다.
페루의 강은 대부분 안데스 산맥에서 흘러나와 주로 세 유역 가운데 한 곳으로 흐른다. 태평양으로 이르는 강은 짧고 경사가 급하며, 물이 간헐적으로 흐른다. 이보다 더 긴 아마존 강의 지류들은 유량도 풍부하며, 산지 지방을 지나면 경사도 낮아진다. 티티카카 호수로 흘러가는 강도 있는데 대개 수량은 많지만 길이가 짧다. 페루에서 긴 강은 우카얄리 강, 마라뇬 강(Maranon), 푸투마요 강(Putumayo), 야바리 강(Yavari), 우아야가 강(Huallaga), 우루밤바 강(Urubamba), 만타로 강(Mantaro), 아마존 강 등이 있다.
페루는 다른 적도 국가와 달리 열대 기후만 있는 것은 아니며, 안데스 산맥과 훔볼트 해류와 엘니뇨의 영향으로 기후특성이 다양하다. 해안 지방은 날씨가 온화하고 강수량이 적고, 북쪽 산자락을 제외하면 매우 습한 편이다. 산지 지방에서는 여름에 비가 잦으며 고도가 올라갈수록 기온과 습도가 떨어져서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는 빙하가 있다. 정글 지방에서는 비가 아주 많이 오고 날씨도 무덥지만 남부 끝 지역은 겨울이 춥고 계절에 따라 비가 온다.
지형과 기후가 다양하여 페루는 2003년 기준 21,462종의 동식물이 보고되었고 이 중 5,855종은 이 지역 고유종이다. 페루 정부는 생태 보존을 위하여 보호 구역을 몇 곳 지정하였다.
행정구역
페루는 25개 주(regiones)와 리마 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주는 4년 임기의 주지사와 주 의회를 선출한다.[31] 지방 정부는 지역 발전을 계획하고, 공공 투자 사업을 시행하고, 경제 활동을 촉진하며, 공공 재산을 관리한다. 리마 군은 시 의회가 관할한다.
경제
1970년대에는 오일쇼크의 여파로 경제는 그리 좋지는 못했고 1980년대에는 두어 차례 초인플레이션을 겪다가 1990년대 알베르토 후지모리 집권기 이후로는 남미에서 상대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은 국가로 평가되지만 그럼에도 임금수준이 여타 남미 국가와 비교해도 낮기 때문에 자국내에서도 불만이 많다. 최저임금이 월 10만원대 초반인 멕시코나 공식임금과 실질임금간의 갭이 큰 베네수엘라보다는 낫다지만 에콰도르나 콜롬비아, 칠레와 비교하면 서민들 생활수준은 나쁜 편이다. 2015년 이후 페루 솔화의 평가절하로 인해서 상대적인 임금수준이 낮아졌고, 2016년을 기점으로 해서 최저임금이 볼리비아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관광업이 발달했다. 아시아 이민자에 의한 독특한 식문화도 페루를 미식 관광의 새로운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미라플로레스 같은 번화가는 완벽한 관광지로 알려지고 있다.
광업은 페루 국가 경제의 중요한 원천으로 구리, 금, 은, 몰리브덴, 아연 등 현대산업에 필수적인 비철금속 매장량이 매우 풍부하다. 2019년 기준 구리와 은 산출량은 세계 2위이며, 아연 산출량은 세계 3위, 금 산출량은 세계4위로 자원 관련 추출, 제련 산업이 전체 수출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를 바탕으로 남미 전체로 봤을 때는 매년 우수한 경제 성장률, 뚜렷한 소득 증가,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들의 적극적인 투자 등으로 비교적 미래는 밝다. 이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수도 리마로 인구가 밀집하는 현상을 보여, 수도 자체가 남미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다른 남미 국가의 경우 인구가 너무 적거나 밀집된 도시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는 반대되는 현상이다.
페루 앞바다는 남하하는 남적도 해류(난류)와 북상하는 훔볼트 해류(한류)가 만나는 조경 해역인 관계로 인접한 칠레와 함께 수산업이 발달해 있다.
주민
페루는 지난 5백여년간 여러 집단이 모여 다인종 국가를 이룬다. 아메리카 토착민은 16세기 스페인인들이 침략하기 수천년 전부터 이 땅에 살았으나, 이들 인구는 1520년대 9백만으로 추산되다가 1620년에는 600,000여명으로 급감하였는데 주로 전염병 때문이었다. 식민지 시대에 스페인인과 아프리카인들이 페루로 몰려와 토착민과 더불어 뒤섞였다. 독립 이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이민자 페루로 이주하였다. 1850년대에 중국인이 페루에 이주하면서 중국인들이 페루의 정치계, 상권 등을 장악하였고 페루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주자 집단으로는 오스만인, 아랍인과 일본인이 있다. 페루의 인종 구성은 토착민 45%, 메스티소(토착민과 유럽인 혼혈) 37%, 백인 15%, 나머지 3%는 중국인, 일본인, 오스만 터키인, 아랍인, 한국인 등이 있다.[64] 이 중 일본계 페루인은 약 8만 명 정도이고 한국계 페루인은 919명 정도이다.
공용어는 스페인어, 케추아어(1975년부터), 아이마라어(1980년부터)이다. 2007년 5세 이상 페루인의 83.9%가 스페인어를 제1언어로 쓰며, 페루의 주요 언어이다. 그 외 토착 언어도 쓰이는데, 그중 가장 비중있는 케추아어는 인구의 13.2%가 구사한다. 다른 토착어와 외국어는 각각 2.7%, 0.1%가 쓰인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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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