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
위키(wiki)란 하이퍼텍스트 문서를 만들 수 있는 공개 소프트웨어이다. 1995년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1]이 개발했다. 2001년 지미 웨일스(Jimmy Wales)가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위키(wiki)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분산 버전 관리 시스템인 깃허브(GitHub)에도 위키가 사용되고 있다. 위키위키(wiki wiki)란 하와이 말로 '빨리빨리'라는 뜻이다. 미디어위키(MediaWiki), 도쿠위키(DokuWiki) 등 다양한 종류의 오픈소스 위키 소프트웨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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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요
위키는 웹브라우저에서 간단한 마크업 언어(markup language)를 이용해 공동 문서를 작성할 수 있고, 사용자들이 내용을 추가할 수 있는 웹페이지다. 하이퍼텍스트 글의 한 가지로, 일종의 협업 소프트웨어기도 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글을 쓰고 수정하면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웹서비스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블로그, 게시판 등과 구분된다. 위키의 어원인 '위키위키'는 하와이 말로 '빨리빨리'라는 뜻이다. 1994년 워드 커닝엄이라는 디자인 전문가에 의해 자동화 도구로 개발된 이후, 다양한 디자인 패턴 축적과 대가들의 참여로 대표적인 디자인 패턴 사이트가 됐다. 대부분의 웹사이트는 관리자와 네티즌의 구분이 명확해 관리자만이 내용을 수정할 수 있고, 네티즌은 관리자가 써 놓은 내용을 읽거나 기록만을 남길 수 있을 뿐 수정할 수는 없다. 위키위키는 웹사이트의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 네티즌이라면 누구라도 관리자 혹은 다른 접속자가 써 놓은 내용을 수정하거나 보충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자유로운 글쓰기가 오히려 인터넷 언어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표적인 위키 서비스로 오픈 백과사전인 위키백과, 나무위키 등이 꼽힌다.[2][3][4]
창시
최초의 위키 소프트웨어는 1995년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이 개발했다. 커닝햄은 위키위키 웹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위키'의 개념을 고안했고, '위키'(wiki) 라는 이름을 지었으며, 첫 위키위키 서버를 만들었다. 위키위키(Wiki Wiki)란 하와이 말로 "빨리빨리"라는 뜻으로서,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의 무료 셔틀 버스의 이름이었다.[5]
역사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와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에서부터 빈트 서프(Vint Cerf)와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에 이르기까지, 역대 컴퓨팅 분야의 저명한 선구자들이 공통적으로 품었던 목표는 '정보를 공유한다'는 개념이다. 버니바 부시가 1960년대에 고안한 메멕스(Memex)와 하이퍼텍스트 개념은 1972년 카네기멜론 대학교의 ZOG와 1987년 시장에 나온 애플의 하이퍼카드(HyperCard) 등 하이퍼텍스트를 활용한 초기 지식 기반 시스템을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다. 하이퍼카드는 프로그래머 빌 앳킨슨(Bill Atkinson)이 고안했다. 앳킨슨은 애플 매킨토시 원조 개발팀 30인 중 한 명이자, 그 유명한 비트맵 그래픽 생성 프로그램 맥페인트(MacPaint)를 만든 장본인이다. 이 프로그램이 와일드카드(WildCard)라는 이름으로 개발되는 동안, 애플 팀의 또 다른 팀원이었던 켄트 벡(Kent Beck)은 퍼듀 대학에서 컴퓨터과학 석사 학위를 받은 동료 프로그래머 하워드 커닝햄(Howard Cunningham)에게 이 프로그램을 시연했다. 커닝햄은 하이퍼카드가 사실상 단일 사용자 카탈로그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하면서 비교적 사용자에게 편리한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정보를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커닝햄은 1990년대가 시작될 무렵, 갈수록 발전해 가는 컴퓨터의 성능과 편재성을 활용할 새로운 솔루션을 찾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 설계 패턴을 분석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1994년 일리노이주 몬티셀로에서 최초의 '프로그램 패턴 언어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 컨퍼런스 참가자 중에는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당시 걸음마 단계인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위한 모자이크 그래픽 브라우저를 개발 중이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브라이언 푸트(Brian Foote)는 이 새로운 브라우저를 커닝햄에게 시연했고, 웹(Web) 하이퍼텍스트를 사용하면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작성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로 웹에서 찾을 수 있는 저장소를 만들어 전파하고, 공유하며,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994년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 커닝햄의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기존 방식과 같이 커닝햄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텍스트 파일을 받아 이를 HTML로 변환하여 최종적으로 월드와이드웹에 게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변환 프로세스는 한 사람이 수행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어, 커닝햄은 펄(Perl)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하여 소프트웨어를 제작했다. HTML을 모르는 사용자라도 정보와 프로그램 패턴을 입력하면, 스크립트가 해당 정보를 자동으로 HTML을 디스플레이 하여 웹페이지로 변환해 주는 양식을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였다. 즉,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위키의 시초이다.
커닝햄은 정보 공유와 공동 작업의 속도를 높이도록 설계한 이 소프트웨어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던 중, 이전에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 자신과 다른 승객들을 호놀룰루 공항에서 태워 이동했던 셔틀버스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 버스의 이름은 '위키 위키(Wiki Wiki)' 셔틀이다. 그는 '빠른'이라는 뜻을 가진 하와이어 '위키'를 채용해 자신의 발명품에 위키위키웹(WikiWikiWeb)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1995년 3월 25일 본인의 회사 커닝햄 & 커닝햄(Cunningham & Cunningham)의 웹사이트 www.c2.com에 처음으로 설치하게 된다. 원래 그가 의도했던 위키는 텍스트를 읽는 그 자리에서 텍스트를 작성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 이전의 웹에서는 정보를 읽는 장소가 따로 있고, 정보를 작성하려면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을 거쳐야 해서 웹에서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커닝햄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항목을 작성하여 사이트에 올릴 것을 독려했고, 2004년이 되자 위키위키웹은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무려 2만 5,000개가 넘는 항목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 중 커닝햄 본인이 작성한 항목은 300개가 채 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전 세계의 프로그래머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참여해 작성한 것이었다.
커닝햄은 위키의 콘텐츠를 편집하여 통제하지 않고 각 개인이 자유롭게 사이트에 항목을 작성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개방되어 있고, 수정 가능하며, 주로 웹을 통해 전파되는 지식의 보고 '위키'의 시대가 열렸다. 커닝햄의 위키위키웹을 만든 이후, 위키의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노래 가사 위주의 리릭위키(LyricWiki)를 비롯하여, 사람들의 관심사를 중점으로 하는 위키가 여럿 생기게 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위키는 위키피디아이다. 위키피디아는 알렉사 랭킹에 오른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방문자 수가 많은 사이트로 등극하기도 했다.[6]
기능적 특성
하이퍼링크
위키는 하이퍼링크(hyperlink)를 통해 위키 내외부 문서가 연결되게끔 하는 하이퍼텍스트 기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독자는 위키 페이지 내에 삽입된 하이퍼링크를 클릭해 자신이 원하는 지식의 맥락을 자유롭게 구성하는 비선형적 읽기를 경험할 수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위키 페이지를 작성하면서 해당 위키 내외부로 연결되는 하이퍼링크를 자유롭게 생성해서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기능은 디지털 환경의 글쓰기를 위한 최적의 플랫폼으로 위키를 자리 잡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하이퍼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위키의 특수한 쓰기와 읽기 방식은 'Wiki Wars'라는 독특한 놀이문화 또한 만들어냈다. 'Wiki Wars'는 위키피디어의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놀이로서, 아무 관련이 없는 A와 B 두 가지 정보를 제시하고, A 페이지에서 출발해 오직 위키피디어의 내부 하이퍼링크를 통해서 B 페이지에 먼저 도달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형식이다. A와 B는 언뜻 보기에 아무 관련이 없는 정보 요소인 것처럼 보이지만 A → (C → D → E → F → G) → B와 같은 형태로 여타 정보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양상은 곧 비선형적 형식으로 정보가 조합되고 연결되는 디지털 환경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Wiki Wars'는 하이퍼텍스트 기술로 대표되는 디지털 환경의 경험이 문화적 차원으로 확장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위키가 제공하는 하이퍼링크는 단순히 텍스트 연결에만 한정된 기능은 아니다. 위키는 텍스트 외에 여러 미디어 형식의 자료를 대상으로 하이퍼링크 기능을 지원함으로써, 멀티미디어 환경에서 정보와 지식을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표현할 수 있게끔 한다. 예컨대 외부의 멀티미디어 자원을 위키 페이지에 연결하고자 할 경우 간단한 HTML 태그를 사용해 삽입할 수 있다. 또한 '파일 올리기' 기능을 통해 위키에 직접 업로드한 멀티미디어 자원은 업로드 시 지정한 파일 이름을 표제어로 한 개별 위키 페이지로 생성된다. 해당 자원의 명칭을 특정 위키 페이지에서 내부 링크로 연결하면 해당 파일을 브라우저 화면상에 직접 출력할 수 있다.[7]
분류, 틀
위키에서 제공하는 하이퍼링크 기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용되는 위키 마크업 언어의 추가 기능으로 분류(Category)와 틀(Template)이 있다. 분류는 특정 맥락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위키 페이지에 인덱싱을 하는 기능으로, 해당 분류와 관련된 문서의 집합을 자동으로 생성한다. 위키 문서에 적어도 하나 이상의 분류를 명기함으로써 해당 문서의 맥락이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다. 틀은 위키 페이지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정보를 모아 하나의 고정된 형식으로 만드는 기능이다. 특정 페이지에 해당 틀을 삽입함으로써 간편하게 정보를 작성할 수 있고 일관된 형식으로 페이지를 관리할 수 있다.[7]
문화적 특성
집단지성
집단지성에서의 집단은 군집이 아니라 공동의 의미를 가진다. 이 개념은 단순히 여럿이 모이는 양태를 가리키지 않고, 공동으로 무언가를 도모하는 행위로서 집단(the Collective)의 가치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공동으로 무언가를 도모한다는 것은 다수의 주체가 해당 행위에 동참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위키 소프트웨어가 가진 미디어적 특징은 웹에서 여러 사람의 참여를 통한 지식 편찬이 가능하도록 한다. 그리고 위키 플랫폼은 각각의 고유한 원칙에 따라서 운용된다. 동일한 위키 소프트웨어로 구축하였더라도 각각의 위키 웹사이트는 서로 다른 규약에 따라서 운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위키로 구축된 웹사이트들은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다. 위키 소프트웨어는 공유와 협업을 지향한 미디어적 특징을 갖지만, 웹사이트의 운영 규약에 따라 개별 위키 공간이 수행하는 공유와 협업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7]
한편, 집단지성에 의해 지식이라는 개념이 변화하면서 부정적인 면도 생겨났다. 첫째는 집단사고와 집단지성의 혼용이다. 집단사고는 소수의견이나 갈등을 억압하고 집단이나 사회 내의 의견 일치를 유도하며 비판을 불허하는 것을 말한다. 집단사고는 다수가 선택했으므로 오류가 없다거나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고 만장일치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할 수 있으며 사회적 소수자를 탄압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둘째는 전문가에 대한 적대와 불신이다. 기존의 지식인 및 전문가들이 지나치게 거만했고 사회와 소통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넘어서, 지식인과 전문가를 경멸하고 조롱하는 태도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집단지성이 힘을 발휘하려면 편견이 없고 독립적인 개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8]
위키 엔진
위키는 위키엔진에 따라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다르다. 예를 들어, 미디어위키는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로 정보를 저장하지만, 모니위키와 모인위키, 도쿠위키 등은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지 않고 텍스트 파일로 데이터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텍스트 파일로 데이터를 관리하는 방법은 데이터의 규모가 크거나 복잡하지 않으며, 주로 플레인 텍스트를 다루기에 적합하다. 반면, 위키를 매개로 다루고자 하는 데이터의 규모가 크고 복잡하다면 미디어위키로 대표되는 데이터베이스 연동 시스템을 갖춘 엔진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위키 엔진에 따라 백엔드(back-end) 차원에서 데이터를 다루고 저장하는 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지만, 위키를 사용하는 사용자 입장에서 볼 경우, 대부분의 위키가 웹 브라우저 상에서 정보를 생성, 수정, 관리할 수 있는 UI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위키는 그 자체로 '넓은 외연의 데이터베이스'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디어위키는 백엔드에서 연동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지 않고도 웹브라우저 상에서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웹사이트로서 위키에 구축된 수많은 페이지는, 하나하나가 개별 데이터로 처리 가능하다. 이러한 가능성에 착안한다면, 상대적으로 거대한 규모의 정보를 지닌 위키피디어와 같은 사례는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로만 활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정교한 수준에서 데이터를 처리하고 그 결과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다.[7]
한국어 위키 목록
위키백과 |
나무위키 |
리그베다위키 |
리브레위키 |
제타위키 |
해시넷 |
비트코인위키 |
더위키 |
바다위키 |
아이티위키 |
제이위키 |
위키스 |
요다위키 |
팬덤 |
위키미디어 재단
위키백과
'위키' 프로그램은 위키피디아(Wikipedia)로 알려진 위키백과에 채택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2001년 1월 15일 지미 웨일스(Jimmy Wales)는 위키 프로그램을 적용한 영어판 인터넷 백과사전을 만들고 '위키피디아'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위키피디아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2002년 10월 11일에 시작되었고 2012년 5월 19일 20만 개 문서를 돌파했다. 2012년 10월 13일(토)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코엑스(COEX)에서 한국어 위키백과 10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구글코리아와 ㈜아사달이 공동 후원하였다.
위키 문헌
위키문헌은 위키미디어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유 콘텐츠 도서관 프로젝트이다. 문서 자료와 번역 등을 모으는 자유로운 온라인 도서관을 목표로 한다. 글로 된 자료, 즉 문헌(source text)을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정보 자료를 모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주로 사료(史料)·문학 작품·법령·종교 경전·선언문 등과 그것을 번역한 것, 그리고 그러한 자료들의 저자에 대한 정보를 다룬다. 자비 출판 문서나 서적을 올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위키문헌은 위키백과에 통째로 넣기 곤란한 문서 자료들을 제공할 공간을 마련하고자 2003년 11월에 시작되었으며, 처음에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빗댄 말로 '프로젝트 소스베르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프로젝트는 시작된 이후 빠르게 성장하여, 2005년 5월에는 여러 언어로 된 2만 개 이상의 문서 자료를 확보했다. 2005년 8월과 9월에는 서로 다른 언어로 된 자료들에 대해 각각 하위 도메인을 만들어 따로 관리하게 되었다. 2008년에는 쾰른 도서관에 소장된 모든 도서가 위키문헌 독일어판에 업로드되었다. 또한, 2012년에는 미국의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된 저서가 위키문헌 영문판에 업로드되는 등 정부 및 공공기관이 문서 기부를 하고 있다. 위키문헌 프로젝트가 고안되어 첫 발을 내디딘 이래 참여자가 늘어남에 따라서, 위키미디어의 다른 성공적인 프로젝트들을 모범으로 삼아 위키문헌도 여러 언어로 독자적인 언어판을 열게 되었다.[9][10] 본래 한국어 위키문헌 공동체에서는 위키문헌의 한국어명을 '위키자료집'(Wiki-資料集)이라고 명명했었다. 그러나 파일 자료실로 오해하는 사용자가 나오는 등의 문제가 있어서, 2008년 10월 공동체 내부에서 위키문헌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2009년 5월에 명칭 변경이 완료되었다.[11]
위키낱말사전
위키낱말사전은 위키백과와 자매 관계에 있는 언어사전 프로젝트이다. 온라인 사전을 위한 비영리 사이트로, 위키미디어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언어 대 언어 사전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며, 최종 목표는 모든 언어의 모든 어휘를 수록하는 것이다. 위키낱말사전과 자매 관계에 있는 위키백과는 백과사전을 만드는 프로젝트로, 대니얼 올스턴(Daniel Alston)과 몇몇을 포함한 위키백과 사용자들이 현재의 모양새를 갖춘 프로젝트를 처음 출범시켰다.[12] 영어로는 위키(wiki)와 딕셔너리(dictionary)를 합친 '윅셔너리'(Wiktionary)이며, 위키미디어재단의 위키 중 'wiki'라는 네 글자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지 않은 유일한 프로젝트이다. 사이트 자체가 가벼운 데다가 다국어 검색을 한 번에 검색할 수 있고 사이트 접속도 쉽다는 장점이 있는데, 검색하고 싶은 단어가 있다면 'ko.wiktionary.org/wiki/(검색어)'를 주소창에 치면 바로 검색 결과가 나온다. 사이트 주소의 한국어를 지칭하는 코드 부호 'ko'를 다른 나라를 지칭하는 언어별 코드 부호, 예를 들어 'en'으로 바꾸게 되면 영어 위키낱말사전이 나오는데, 이는 다른 위키미디어 프로젝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2021년 8월 5일 기준, 영어 위키낱말사전에는 6,718,947개 이상의 문서가 저장되어 있고, 한국어 위키낱말사전에는 294,847개로 위키낱말사전에서 14번째로 많은 문서가 저장되어 있다.[13]
각주
- ↑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은 '워드 커닝엄'이라고도 한다.
- ↑ 〈위키〉, 《한경 경제용어사전》
- ↑ 〈위키 사전〉, 《IT용어사전》
- ↑ 〈위키위키〉, 《두산백과》
- ↑ 류재훈 기자,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돌풍〉, 《한겨레》, 2004-07-28
- ↑ 클라이브 기포드, 〈위키(wiki)의 탄생〉, 《LG CNS》, 2016-08-16
- ↑ 7.0 7.1 7.2 7.3 김지선, 장문석, 류인태, 〈공유와 협업의 글쓰기 플랫폼, 위키〉,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21-02-25
- ↑ 이선우, 〈위키와 집단지성〉, 《캠페인즈》, 2023-06-15
- ↑ 〈위키문헌:위키문헌이란?〉, 《위키문헌》
- ↑ 〈위키문헌:소개〉, 《위키문헌》
- ↑ 〈위키문헌〉, 《위키문헌》
- ↑ 〈위키낱말사전〉, 《위키백과》
- ↑ 〈위키낱말사전〉, 《나무위키》
참고자료
- 〈위키〉, 《한경 경제용어사전》
- 〈위키 사전〉, 《IT용어사전》
- 〈위키위키〉, 《두산백과》
- 〈위키문헌〉, 《위키문헌》
- 〈위키문헌:위키문헌이란?〉, 《위키문헌》
- 〈위키문헌:소개〉, 《위키문헌》
- 류재훈 기자,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돌풍〉, 《한겨레》, 2004-07-28
- 클라이브 기포드, 〈위키(wiki)의 탄생〉, 《LG CNS》, 2016-08-16
- 이선우, 〈위키와 집단지성〉, 《캠페인즈》, 2023-06-15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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