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방송
라이브방송(Live Broadcasting)은 미리 녹음하거나 녹화한 방송이 아니라, 촬영과 동시에 방영되거나, 짧은 지연 시간(5~7초 정도)을 두고 방영되는 텔레비전 방송 또는 라디오 방송 혹은 온라인 방송 등을 일컫는다. 간략히 라방이라고 한다. 현장 방송, 생방송, 실시간 방송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목차
개요
라이브방송의 라이브(Live)는 '살아 있다'라는 뜻으로, 가공·계획·녹화되지 않은 방송을 의미한다. 비디오테이프 녹화와 같은 기술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텔레비전에 특화된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방영하는 것이 여러 해 동안 일상화되어 왔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고급 녹화 기술이 도입되기 전에는 드라마가 생방송으로 방영되는 때도 있었으며 중간에 엔지(NG, no(t) good)라도 나 버리면 그 해당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타기 때문에 배우들과 제작진들은 엔지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196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하여 테이프를 도입하고 시작 녹화 방송 기술이 보편화되었다. 다만 초기 비디오는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편집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중간에 엔지라도 나면 다시 찍어야 했고, 편집 기능이 있는 테이프가 들어온 것은 1969년의 일이었다. 대부분의 티비 프로그램들은 녹화, 편집 뒤 방영하고 있다. 생방송을 사용하는 경우는 뉴스나 생활 정보 프로그램같이 빠른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프로페셔널 스포츠 게임과 수상 프로그램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행사에서 사용되며 녹화 방송과 달리 스포일러에 대한 염려가 없어서 중요한 행사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생방송은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타기 때문에 편집할 수 없으며 녹화 방송보다 진행자의 실수 및 방송사고에 취약하다. 따라서 생방송은 보통 경험이 많은 진행자가 맡으며, 생방송의 장점을 살리면서 방송사고에 대처할 시간을 벌기 위해 짧으면 몇 초에서 길게는 몇 분 정도 지연 방송을 하는 경우도 있다.[1] 2005년 라이브방송이 개인컴퓨터(PC Personal Computer)를 기반으로 시작된 이후 2016년은 모바일로 이동한 라이브방송 원년으로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8년 틱톡, 콰이쇼우 등의 클립 동영상 채널의 인기와 1990년 이후 출생한 소비자의 이커머스 진입과 함께 라이브방송은 본격적인 성장의 길을 열었다. 2019년에는 본격적으로 이커머스 플랫폼들을 통한 라이브방송이 확장되기 시작했다.[2]
역사
텔레비전 방송
1817년 스웨덴의 화학자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Jöns Jakob Berzelius)가 셀렌을 발견하고, 1873년 아일랜드의 전신 기사 조지프 메이가 셀렌의 광전 효과를 발견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875년 미국의 조지 케리(George Carey)가 이를 이용하여 물체의 영상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데 성공하였다. 셀렌으로 수많은 광전지를 만들어 각각을 전구에 연결한 뒤 셀렌 판 앞에 물체를 두자 전구가 물체의 윤곽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케리의 텔레비전은 좋은 화상을 얻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전구와 전선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러한 단점을 개선한 것은 1884년 독일의 전기 기술자 파울 고틀리베 닙코프(Paul Gottlieb Nipkow)였다. 그는 셀렌판 앞에 24개의 구멍이 뚫린 원판을 세우고 이를 모터로 회전시켜 빛을 차례대로 전달하도록 하였다. 이를 이용하여 수많은 광전지에서 나온 전기 신호를 하나의 전선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신호를 전달받은 수상기는 같은 역의 방법으로 전구를 켜서 이미지를 재생할 수 있었다. 그는 영화의 기술과 같이 빛이 차례대로 이미지를 재현하더라도 잔상 효과 때문에 사람들은 전체의 이미지로 파악한다는 것을 이용하였다. 이러한 주사 방식은 텔레비전의 화상 표현 방법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닙코프의 장치는 '전기 망원경'이라 불렸다. 1926년 영국의 사업가 존 로지 베어드(John Logie Baird)는 닙코프의 전기 망원경을 이용한 사업을 시작하였다. 베어드가 텔레바이저(televisor)라고 부른 이 기계는 이후의 음극선관을 이용한 텔레비전과 구분하여 기계식 텔레비전이라 부른다. 1929년 BBC는 기계식 텔레비전을 이용한 방송을 시작하였다. 1897년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Karl Ferdinand Braun)이 음극선관을 발명하였다. 발명가의 이름을 딴 브라운관이라고 널리 알려진 음극선관은 진공관과 같은 원리에 의해 전자총에서 발사된 전자가 형광물질을 입힌 화면에 부딪혀 나는 빛을 이용하여 화상을 재현하였다.
이후 LCD와 LED가 발명될 때까지 브라운관은 텔레비전 수상기를 비롯한 컴퓨터 모니터 등에 두루 쓰였다. 기계식 텔레비전에 대비된 음극선 방식의 텔레비전은 전자식 텔레비전이라 불렸다. 텔레비전이란 말은 1900년 8월 25일 파리에서 열린 국제전기기술총회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텔레비전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20여 년의 세월이 더 흘러야 했다. 그동안 여러 과학자와 발명가들은 텔레비전의 발명을 성공시키기 위해 경쟁하였다. 미국의 발명가 필로 판즈워즈(Philo Farnsworth)는 고등학교 졸업 무렵 자신의 스승이었던 저스틴 톨만(Justin Tolman)에게 전자식 텔레비전의 스케치를 보여주었고 졸업 후 투자자를 모아 연구에 전념하여 1927년에 시제품을 발명하였다. 그의 발명은 1년 뒤에 일반인에게 알려져 1928년 9월 3일 샌프란시스코 신문은 "SF맨이 텔레비전 혁명을 일으켰다"고 보도하였다. 미국의 거대 방송사 RCA는 1930년 러시아에서 미국에 이민한 발명가 블라디미르 코지미치 즈보리킨(Владимир Козьмич Зворыкин)를 고용하여 텔레비전의 발명을 진행하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즈보리킨은 판즈워스의 연구소를 방문한 뒤 그의 아이디어를 빌려 전자식 텔레비전을 완성하였다. RCA는 텔레비전 특허의 우선권을 주장하며 판즈워스와 특허권 분쟁을 일으켰다. RCA는 1939년 4월 뉴욕의 세계박람회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설을 텔레비전으로 내보내며 자신들의 발명을 자랑하였으나 1939년 10월 판즈워스의 특허권을 인정하고 로열티를 지불하였다. 그러나 오래된 법정 분쟁으로 판즈워스는 이미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더욱이 곧바로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텔레비전 산업은 제약을 받았다. 이로써 판즈워스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전쟁 이후 RCA는 미국 텔레비전 사업의 80%를 점유하는 독과점 기업이 되었고 자신들이 텔레비전을 발명했다고 광고하였다. 판즈워즈는 1957년 CBS의 텔레비전 퀴즈쇼를 통해 텔레비전의 발명가라는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99년 타임스지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100명'의 한 명으로 판즈워스를 꼽았다. 한편, 1930년대 독일은 기존의 기술과 함께 즈보리킨과 여러 명의 특허권을 사들여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였다. 또한, 영국, 일본, 프랑스 등도 이 시기에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전 세계에 생중계될 수 있었다.[3]
라디오 방송
1906년 캐나다의 발명가 레지널드 페선던(Reginald Fessenden)이 진폭 변조 방식을 이용하여 최초로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다. 1910년대 초 전파를 이용한 무선 통신의 사용이 점차 확대되고 있었다. 수많은 아마추어 발명가들이 다양한 방식의 송신기와 수신기를 개발하였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좌초되는 사고가 발생하였을 당시 인근에 있던 선박이 조난 신호를 수신하여 700여 명의 인명을 구하자 무선 통신에 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이로 인해 아마추어 송신국에서 송출하는 라디오 방송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한편, 1912년 미국 의회는 라디오 법안을 입법하여 정부의 승인 없는 전파 사용을 금지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을 하는 동안 미국은 미국 해군이 방송을 독점하도록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유럽과 미국에서는 라디오 방송의 성격을 놓고 일대 격론이 벌어졌다. 한정된 자원인 전파를 이용하는 방송이 공공 서비스인지 아니면 개인 영리사업의 대상인지를 놓고 벌인 이 논쟁의 결과 유럽에서는 라디오를 공공 서비스로 보고 국가 독점 방송사의 설립을 추진하였다. 한편, 미국에서는 특허 풀(patents pool) 제도를 도입하여 특허 분쟁을 해결하고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Company), AT&T,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등이 지분을 소유한 RCA를 설립하여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였다. 미국 최초의 라디오 방송은 1920년 11월 2일 피츠버그에 있던 100W 출력의 미국의 라디오 방송국(KDKA)에서 송출되었다. 라디오는 대중적 인기와 함께 급속히 확산하여 1926년 미국의 라디오 보급률은 6가구 당 1대꼴이 되었다.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시작된 이래 세계의 각국에 라디오 방송국이 설립되었다. 1925년 일본방송협회(NHK)의 전신인 도쿄 방송국이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였고 1926년에는 영국방송공사(BBC)가 전파를 송출하기 시작하였으며 1927년 한국방송공사(KBS)의 전신인 경성방송국이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였다. 주파수 변조를 이용한 라디오 송신 기술은 에드윈 하워드 암스트롱(Edwin Howard Armstrong)이 고안하였다. 1933년 특허가 등록된 이 기술로 라디오 방송은 진폭 변조보다 훨씬 깨끗한 음질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3]
인터넷 방송
국내에서는 1990년대 후반 초창기엔 네트워크 환경이나 컴퓨터 환경이 비디오를 스트리밍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었기에 음악 방송이 유행했다. 그러다가 2000년경 인터넷 방송국들이 개국했지만, 문제는 이 방송국들은 비제이(BJ)가 성적인 행위를 하는 '성인 방송'들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비제이(Broadcasting Jockey)라고 안 하고 포르노자키(Porn Jockey)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바나나TV' 등의 방송국에서 에로 배우나 무명 모델을 기용하여 유방 노출, 섹시 댄스, 자위 행위 흉내 등의 방송을 했으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결국 포르노 수준의 방송으로 진화하고 말았다. 'live 10 TV', 'live 69 TV', '조또TV' 등의 방송국들은 국내 법을 피하려고 캐나다 등 해외로 국내 에로 배우나 업계 여성들을 데리고 가서 방송을 제작해 송출하고 있었으나 결국 속인주의인 국내 법에 걸려 포르노자키(PJ)들이 강제 송환, 구속되며 성인 방송국들도 문을 닫고, 한동안 인터넷 방송은 성인물이라는 나쁜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잠잠해졌었다. 그러다가 2005년 유씨씨(UCC, user-created content) 열풍의 시작이었던 아프리카TV의 전신인 더블유 플레이어를 시작으로, 카카오TV(구 다음티비팟), 유 스트림 등 부담 없이 비디오와 오디오를 스트리밍할 수 있는 인터넷 방송 서비스들이 생겨났다. 또 캠코더를 이용한 현장 중계 등 인터넷 방송을 위한 다양한 장비가 개발되어 사용되고, 2008년 촛불시위와 2009년 용산4구역 철거 현장 화재 사건을 계기로 현장 중계방송이 알려지게 되고, 그리고 2013년을 기점으로 촉발된 유튜브 열풍, 2015년 마이리틀텔레비전 열풍을 거쳐 가면서 개인 인터넷 방송이 많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본격적인 인터넷 방송시대가 개막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다. 인터넷 방송인들은 2010년대 초반 이전에는 특별히 수익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혹은 취미로만 방송하였으나 2014년 이후로는 아예 전업으로 인터넷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별풍선같이 시청자들의 자발적인 기부로만 수입을 얻을 수 있었으나 점점 광고 스폰서(회사의 배너 광고 등)나 유튜브 스트리밍 수익 등 수익 경로가 다양해져 아예 다중 채널 네트워크(MCN, Multi-Channel Network)라고 칭하는 인터넷 방송인들을 위한 방송기획사들도 생겨나고 있다.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인터넷 방송이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음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방송인들이 '1인 콘텐츠 크리에이터(Content Creater)'라는 수식어를 달고 지상파 티브이는 물론 CF(Commercial film) 광고와 대기업 강연에까지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과 기타 웹상에 소개된 것과 달리 장래성은 매우 낮은 분야다. 성공하기도 어렵고 미래도 불확실하며, 승자독식 빈부격차와 빈익빈 부익부 현상 때문이다. 인터넷 방송인이 인터넷 방송뿐만 아니라 티브이 프로그램에 출현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그것도 게스트 역할일 뿐이고 고정 출연하는 인터넷 방송인은 아예 크리에이터들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랜선라이프를 제외하면, 대도서관 잡쇼의 대도서관, 가로 채널, 문제적 남자의 도티, 진짜 사나이 300의 감스트, 놀라운 토요일 - 도레미 마켓의 입 짧은 해님, 6시 내 고향의 쯔양 정도이다. 이외에도 국내에는 지상파/케이블에도 개인 인터넷 방송의 자유스러운 포맷을 빌려 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게임 전문 채널인 온게임넷(On-Game Net)이 두드러지는데, 개인 방송의 대부분이 게임 실황방송이어서 그 포맷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와도 채널 특성상 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어서 그렇게 된 듯하다. 아예 인터넷 방송인들을 데리고 와서 만든 G맨 게임종결자나, 나는 캐리다 라인의 리그 오브 레전드 실황 계열 등이 대표적인 예제. 심지어 지상파 방송인 MBC에서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인터넷 방송을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까지 생겼다. 정치계에서도 인터넷 방송 활용이 의외로 많은 편인데, 2011년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 프로그램이 무시하지 못할 열풍을 이끌었고, 2017년 대선을 앞두고는 문재인, 안철수, 안희정, 이재명 등 유력 대선주자들이 유튜브나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소통을 시도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는 특별히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아서 진보 성향 인터넷 방송뿐만 아니라 보수 성향 인터넷 방송도 활발한 편이다. 대표적으로 보수 성향 언론인인 정규재는 유튜브에 정규재TV를 세워 매일 저녁 생방송으로 뉴스를 진행하고 있으며, 2017년 1월에는 탄핵 이후 언론과 일절 접촉을 하지 않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단독으로 인터뷰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편 개인이 방송할 수 없는 인터넷 방송 플랫폼도 있는데, 곰TV 라이브와 네이버 브이앱이 대표적이다. 곰TV는 이미 2006년 4월부터 인터넷TV 서비스를 시작해 각종 전자스포츠 대회, 실시간 TV 서비스를 중계해 왔다. 네이버 브이앱은 2015년 8월에 생긴 스타들 전문 방송 플랫폼으로써, 젊은 배우들부터 유명 아이돌 그룹까지 많은 연예인이 주로 이 플랫폼을 사용한다. 실제로 V앱의 탄생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보기 드물었던 스타들과 팬들의 실시간 소통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9년 국내에서는 아프리카TV가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트위치가 그 뒤를 맹추격하고 있다. 카카오TV나 네이버TV 등 기타 인터넷방송이 이 밑에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의 인터넷 방송인은 유튜버를 병행하고 있으며, 유튜브 내에서 라이브를 진행하는 방송인도 소수 존재한다.[4]
특징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실제 상황과 방송 영상이 나오는 시점이 같다는 점에서 사건 시간과 보도 시간이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동시성을 통해서 우리가 보고 있는 장면이 실재함을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공간적, 시간적 지표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또한 온라인을 통한 라이브방송은 모바일, 방송 콘텐츠, 실시간 채팅 개입 및 소통의 적극성을 기반으로 해서 라이브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인 동시에 의견을 말하고 질문을 던지는 참여자가 될 수가 있다. 라이브방송 플랫폼에서 일련의 기획, 편집, 녹화, 제작, 시청자와의 소통 등에 참여하며, 본인이 작업을 진행하는 사람이나 직업을 크리에이터(Creator)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런 직업을 '주보'라고 부른다.[5]
장점
- 동시성 : 사건의 시간과 보도의 시간이 같다.
- 쌍방향 소통 : 시청자와 방송자가 서로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다.
- 현장성 : 실제 일어나는 사건이 꾸밈없이 그대로 방송되므로 생동감과 현장감을 줄 수 있다.
- 낮은 진입장벽 : 어려운 기술이나 전문성이 없어도 누구나 라디오 방송을 할 수 있다.
- 낮은 비용 : 스튜디오나 큰 투자가 필요 없어 비용이 저렴하다.
- 간편함 : 누구나 어렵지 않게 라이브방송을 할 수 있으며, 시간에 제약받지 않고 언제든지 라이브방송을 할 수 있다.[6]
단점
- 악플 : 시청자와 방송자가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를 악용하여 악의적으로 방송자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모욕적인 발언 등 방송자에 대한 악플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악플은 익명성에 기대어 사용되기 때문에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 유해성 :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내용이 여과 없이 방송되기 때문에 사회에 반하거나 선정적, 폭력적인 내용이 대중들에게 퍼질 수 있다.
- 언어 파괴 : 라이브방송에서의 채팅을 통해 과도한 축약, 이모티콘 표기, 자음 표기, 기호를 이용한 감정표현 등 어법, 문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언어를 훼손한다.[7]
라이브 커머스
오프라인 매장에서 대화하듯이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판매자와 소통하며 쇼핑하는 라이브 커머스(Live Commerce)가 주목받고 있다. 라이브 스트리밍(Live streaming)과 커머스(Commerce)의 합성어인 라이브 커머스는 실시간으로 쇼 호스트가 제품을 설명하고 판매한다는 점에서 TV홈쇼핑과 유사하다. 라이브 커머스 시장은 모바일 기반 거래가 증가하면서 모바일 플랫폼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타인과의 접촉을 피해 안전하게 소비하는 언택트(Untact) 서비스가 부상했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소통이 필요하다. 물리적 거리는 유지하면서 연결을 원하는 온택트(Ontact) 문화가 확산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형태의 이커머스(E-commerce)는 제품 검색, 주문, 구매, 배송까지 해결해 주지만, 소통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실시간 방송을 통해 판매자나 인플루언서에게 궁금한 점을 바로 질문하고 여과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라이브 커머스는 안전하게 소통하며 재미를 느끼도록 한다. 함께 라이브방송을 시청하던 소비자들끼리 대화하며 교감하기도 한다. 또한 라이브 커머스는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한다.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의 순으로 선호하는 콘텐츠의 유형이 변화했으며 5세대 이동통신(5G) 시대에 들어서며 라이브방송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고 있다. 제품 정보나 경험을 공유하는 방식도 직관적이고 실감 나는 라이브 영상을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티브이 홈쇼핑과 유사하게 스튜디오에서 전문 인력이 진행하는 라이브 커머스도 많지만, 라이브 커머스에 참여하는 판매자가 증가하면서 제품과 콘텐츠도 다양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물리적 이동이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동해 수산시장의 판매자가 살아 움직이는 새우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며 소통하는 라이브 커머스는 현장의 생생함을 그대로 전한다. 이렇게 여과되지 않은 날것의 매력은 새로운 재미를 준다. 현장감은 신뢰로 이어진다. 제품의 산지, 공장, 매장 등을 둘러볼 수도 있고 판매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제품의 속성과 품질을 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 촬영, 편집된 동영상은 단 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서 판매자가 원하는 정보와 모습만 보여주지만 양방향 소통인 라이브 커머스는 실시간 방송에 참여하는 소비자의 질문이나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관계를 형성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다. 라이브 커머스는 소통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주고 신뢰를 얻는 데 효과적이다. 최근 잼라이브, 그립 등 라이브 커머스가 성장하면서 네이버와 카카오가 라이브 커머스를 도입하기 시작했으며, 그 시장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8]
플랫폼
- 아프리카TV(AfreecaTV) : 국내 인터넷 기업으로, 1996년에 설립을 해서 현재 가장 많은 크리에이터들과 시청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까지 개인 방송을 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라는 의견이 많으며 크리에이터의 수익 구조도 가장 잘 마련되어 있다.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나오면서 위기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지만, 국내에서 인터넷 라이브방송이라는 분야를 선점했고 서비스도 오래 했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위기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 카카오TV(KakaoTV) : ㈜카카오와 자회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서 제공하는 종합 동영상 서비스이다. OTT, 개인 인터넷 방송, 그리고 동영상 플레이어를 아우르는 서비스이다.[9]
- 판도라TV(PandoraTV : 국내 동영상 포털 사이트이다. 법인은 1999년에 김경익 창업주가 세웠으나 2004년부터 본격 영업을 했다. 본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왕판교로644번길 49 11층(삼평동, DTC 타워)에 있다.[10]
- 스푼 라디오(Spoon Radio) : 누구나 목소리로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모토로, 2016년경부터 서비스 중인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이다. 2017년 5월 첫 투자 유치 후 동년 9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발매했으며, 2018년에는 일본과 중동 지역에, 2019년 9월 미국에 진출해 서비스 중이다. 알토스벤처스,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시리즈 A,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으며, 2019년 12월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하며 성장 중이다. 아프리카 TV나 유튜브 등의 영상 스트리밍 방송과 다른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 클럽하우스, 오디오 클립 등 전 세계적으로 오디오 서비스가 주목받으며 꾸준하게 성장 중이다. 방송은 모바일(앱)과 데스크톱(웹) 모두 가능하다.[11]
- 하쿠나라이브(Hakuna Live) : 대한민국, 일본, 동남아, 중동, 터키 등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라이브 스트리밍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국내의 IT기업 하이퍼커넥트의 자회사인 무브패스트컴퍼니에서 제공하고 있다. 참여자가 채팅을 통해서만 호스트와 이야기할 수 있는 다른 앱과는 달리 하쿠나라이브에선 직접 영상을 통해 소통에 참여할 수 있다. 최대 4명이 지연 시간 없이 동시에 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게스트 모드' 기능을 통해서 가능하다. 진행자와 2~3명의 참여자가 분할 화면에서 영상을 통해 소통하고, 다른 참여자들은 채팅으로 반응하는 식이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안드로이드, iOS 버전을 발매했으며, 아랍 지역에 론칭 후 국내에 2019년 3월 후반에 발매했다.[12]
- 유튜브 라이브(Youtube Live) : 영상 플랫폼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유튜브는 늦은 출발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상에 대한 다양한 기술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라이브방송 또한 크리에이터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유튜브 라이브의 강점이라고 하면 화질이 상당히 좋다는 것과 함께 모바일, PC 어느 곳에서나 방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홍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리에이터들이 매력을 느끼는 곳이다. 하지만 아직 다른 인터넷 방송 스트리밍 서비스와 비교해서 제작자들의 수익 구조가 없는 것과 시청자들이 편리하게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들이 부족하다는 점이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할 만한 이유이다.
- 트위치(Twitch) : 시청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트위치는 게임 전문 방송 서비스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국내에도 알려지면서 크리에이터들이 방송하기 시작하고 있는 곳이다. 방송을 하기 위한 다양한 기능과 함께 수익 구조도 잘 되어 있어서 전문 방송인들이 많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게임 콘텐츠는 사용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영역이다.
- 페이스북 라이브(FaceBook Live) : 현재 가장 주목을 받는 서비스이다. 페이스북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페이스북에서 모든 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업데이트를 계속하고 있다. 그중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는 개인부터 기업들까지 활용하면서 사용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페이스북 라이브 서비스는 크리에이터들에게 만족할 만한 기능들이 없는 것과 함께 수익 구조가 없다는 점에서 지켜봐야 할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13]
방송사고
라이브방송으로 진행을 하게 되면 현장감과 생동감이 있을 수 있지만 반대로 실수나 사고, 테러나 자살 등이 그대로 대중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단점이 있다.
- 1983년 3월 20일 KBS '젊음의 행진'에서 일어난 배철수 감전 사건 이후 '젊음의 행진'은 생방송에서 녹화 방송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최소한 1987년까지는 라이브방송을 단행했다.
- 1988년 8월 4일 생방송 MBC 뉴스데스크에서 '내 귀에 도청 장치' 사건이 일어났다.
- 2001년 한국경제TV에서 있었던 나라의 경제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파리가 앉았습니다' 사건이 발생했다.
- 2004년 2월 생방송 중 자넷 잭슨 노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에서 지연 방송을 시작했다.
- 2005년 7월 30일 MBC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출연자의 성기노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고 이후 신설된 쇼! 음악중심을 비롯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음악방송들은 5분 지연 방송을 시작했다.
- 2010년 12월 9일 CNN 뉴스에서 영화 덤 앤 더머 설사 사건이 일어났다.[1]
- 1960년 일본 TV 토론회에서 연설 중인 일본 사회당 당수인 아사누마 이네지로를 17세의 극우 학생 야마구치 오토야(山口二矢)가 흉기로 살해한 도쿄 찌르기 사건이 일어났다. 가해자인 야마구치도 나중에 자살했다.
- 1974년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당시 육영수가 문세광에게 피격되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전파를 탔다.
- 9.11 테러 당시 첫 번째 공격을 단순한 여객기 사고로 착각하고 수많은 방송국에서 생중계를 하다가, 두 번째 비행기의 충돌까지 그대로 생중계되는 바람에 큰 충격을 주었다.[14]
각주
- ↑ 1.0 1.1 〈생방송〉, 《나무위키》
- ↑ F&PLUS 지식연구소, 〈라이브 방송,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패션인사이트》, 2020-02-03
- ↑ 3.0 3.1 〈방송〉, 《위키백과》
- ↑ 〈인터넷 방송〉, 《나무위키》
- ↑ 주정이 외 1명,〈한․중 인터넷 라이브 방송 앱 사용현황 비교연구〉, 《정보시스템학회》, 2020-03-01
- ↑ 한지명 기자, 〈(라방 시대) '누가, 언제, 왜' 볼까… 유통업체가 라방 뛰어든 이유〉 , 《뉴데일리경제》, 2021-07-08
- ↑ 낙숫물소리,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통신언어의 문제점과 대책〉, 《다음블로그》, 2013-01-15
- ↑ 최세정 고려대 미디어학부교수, 〈라이브 커머스:커머스에 재미와 신뢰를 더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1-04-01
- ↑ 〈카카오TV〉, 《위키백과》
- ↑ 〈판도라TV〉, 《나무위키》
- ↑ 〈스푼라디오〉, 《나무위키》
- ↑ 〈하쿠나라이브〉, 《나무위키》
- ↑ 〈인터넷 방송 스트리밍서비스의 종류를 알아보자〉, 《그린블로그》, 2018-12-02
- ↑ 〈방송사고〉, 《나무위키》
참고자료
- 〈생방송〉, 《나무위키》
- F&PLUS 지식연구소, 〈라이브 방송,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패션인사이트》, 2020-02-03
- 〈방송〉, 《위키백과》
- 〈인터넷 방송〉, 《나무위키》
- 주정이, 문용은, 〈한․중 인터넷 라이브 방송 앱 사용현황 비교연구〉, 《정보시스템학회》, 2020-03-01
- 한지명 기자, 〈(라방 시대) '누가, 언제, 왜' 볼까… 유통업체가 라방 뛰어든 이유〉 , 《뉴데일리경제》, 2021-07-08
- 낙숫물소리,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통신언어의 문제점과 대책〉, 《다음블로그》, 2013-01-15
- 최세정 고려대 미디어학부교수, 〈라이브 커머스:커머스에 재미와 신뢰를 더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1-04-01
- 〈카카오TV〉, 《위키백과》
- 〈판도라TV〉, 《나무위키》
- 〈스푼라디오〉, 《나무위키》
- 〈하쿠나라이브〉, 《나무위키》
- 〈인터넷 방송 스트리밍서비스의 종류를 알아보자〉, 《그린블로그》, 2018-12-02
- 〈방송사고〉, 《나무위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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