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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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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1월 29일 (금) 22:53 판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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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시 위치
선양시 지도

선양시(중국어 간체자: 沈阳市, 중국어 정체자: 瀋陽市, shěn yáng shì, 중국조선어: 심양, 영어: Shenyang)는 중국 랴오닝성의 성도이다. 면적은 12,860km², 인구는 약 914.7만 명, 중공업과 군수공업이 발달하고 지리상 중국 내륙에서 둥베이한반도로 통하는 요충지로서 둥베이의 심장인 격이다. 국가역사문화명성(國家歷史文化名城)에 선정된 관광 도시로 옛 이름은 펑톈(중국어 간체자: 奉天, 병음: Fèngtiān), 만주족은 묵던(만주어: ᠮᡠᡣᡩᡝᠠ Mukden)이라고 부르고 유럽에서도 묵던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원나라 시기에는 고려 국왕을 심양왕으로 봉하였다.[1]

개요[편집]

  • 행정 단위: 부성급시
  • 시정부소재지: 훈난취 선중다루 206번지 (浑南区沈中大街206号)
  • 면적: 12,860km²
  • 인구: 914.7만 명(2022년)
  • 정부 공식 홈페이지: www.shenyang.gov.cn
  • 우편번호: 110000[2]

선양시는 랴오닝성 중부에 위치한 성회(省会) 도시로 부성급성시(副省级城市)이며 상하이(上海), 베이징, 천진, 충칭에 이은 중국 5대 도시로 중국역사문화명성(2차, 1986)으로 지정되어 있다. 시인민정부는 훈난구(浑南区)에 소재하며 행정구획은 선허구(沈河区, 심하구), 허핑구(和平区, 화평구), 다둥구(大东区, 대동구), 황구구(皇姑区, 황고구), 톄시구(铁西区, 철서구), 쑤자툰구(苏家屯区, 소가둔구), 훈난구(浑南区, 훈남구), 선베이신구(沈北新区, 심북신구), 위훙구(于洪区, 우홍구)의 9개 시할구(市辖区)와 신민시(新民市)의 1개 현급시, 랴오중현(辽中县, 요중현), 캉핑현(康平县, 강평현), 파쿠현(法库县, 법고현)의 3개 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국인민해방군의 7대 군구(军区)의 하나인 선양군구사령부가 소재하고 있다. 선양의 명칭은 1625년 청의 누루하치가 랴오양(遼阳)에서 선양으로 천도하면서 선양을 성경(盛京)이라 개칭하였고, 1644년 베이징을 수도로 정한 후에는 선양을 배도(陪都)로 삼았으며, 1657년 선양에 펑톈부(奉天府, 벙천부)를 설치하면서 펑톈(奉天)으로 개명하였다. 1929년 장쉐량(张学良, 장학량)이 펑톈시를 선양시로 다시 고치고, 1931년 일본이 9.18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선양을 강점함으로서 중일전쟁 시발점이 되었다. 1932년 만주국이 설립되며 일본에 의하여 펑톈으로 다시 개명되었으나, 1945년 2차 대전 후 펑톈시는 선양시로 공식 행정 지명이 환원되었다. 한족의 입장에서 보는 펑톈(奉天)이라는 지명은 9.18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도시명이며, 만주국펑톈군관학교가 있었던 일제시대의 주요 거점 도시이었던 치욕의 지명으로 여겨지고 있다.[3]

선양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선양고궁(沈阳故宫, 심양고궁), 장쉐량구거(张学良旧居, 장학량구거), 복릉(福陵), 소릉(昭陵), 석대자산성(石台子山城)이 있으며 이 중 선양고궁(沈阳故宫)은 명청황가궁전(明清皇家宫殿)으로, 복릉(福陵)과 소릉(昭陵)은 명청황가능침(明清皇家陵寝)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종교건축이 널려있으며 도교의 태청궁(太清宫), 한족지구불교전국중점사원인 자은사(慈恩寺), 반약사(般若寺)가 있다. 기타 건축물로 무구정광사리탑(无垢净光舍利塔), 장안사(长安寺), 사탑사(四塔寺), 선양야소성심주교좌당(沈阳耶稣圣心主教座堂), 소서관청진사(小西关清真寺) 등이 있다. 선양은 일본강점기 시대에 우리 독립군 삼부 중의 하나인 정의부가 길림과 봉천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수많은 독립지사가 망명하여 활동했던 곳으로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만주 봉천으로 알려져 있다. 선양에는 주선양총영사관이 허핑구(和平区, 화평구)에 주재하여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의 동베이 3성을 관할하고 있으며 또한 한국인회와 한국상회가 선허구(沈河区, 심하구) 경내에 결성되어 있고 기업은행, 하나은행 및 많은 국내 지방자치단체가 선양시 및 현급 행정구와 자매결연을 체결하였다. 경기도는 1993년 10월 랴오닝성과 자매결연을 맺고 도내기업의 중국진출지원을 위해 선양경제기술개발구로부터 50년간 토지사용권을 취득하여 한국토지공사에서 1995.04~1996.12 기간 동안 94억 원을 투자하여 한국전용공단을 조성하여 분양하였다.

행정구역[편집]

선양시는 10개의 시할구와 1개의 현급시, 2개의 현을 관할한다.

시할구[편집]

  • 허핑구(和平区)
  • 선허구(沈河区)
  • 다둥구(大东区)
  • 황구구(皇姑区)
  • 톄시구(铁西区)

선양 교외 및 외곽지역[편집]

  • 쑤자툰구(苏家屯区)
  • 훈난구(浑南区)
  • 선베이신구(沈北新区)
  • 위훙구(于洪区)
  • 랴오중구(辽中区)

현급시, 현[편집]

  • 신민시(新民市)
  • 파쿠현(法库县)
  • 캉핑현(康平县)

개명 역사[편집]

라오닝성의 선양시 지역은 한나라 이전부터 북방 민족들의 지역이었으며, 개모성이 있던 고구려(高句麗)의 영토였다가 신라의 나당연합 통일 전쟁이후 당(唐)의 영향아래 잠시 심주(瀋州)로 불리었다. 그 후 발해(渤海)에 속했다가 요(遼), 금(金)시대에는 동경로(東京路), 원대에는 심양로(瀋陽路)가 설치되었으며, 이 후 명나라가 이 곳에 심양위(瀋陽衛)를 두었다. 그러므로 선양(瀋陽)이라는 이름은 원대의 작명과 명대의 개칭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행정적인 지명과는 별도로 원주민인 만주족은 '묵던'이라는 지명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 1657년 청나라가 선양(瀋陽)에 봉천부(府)를 설치하면서 선양을 '펑톈'으로 개명하였다.
    • 1625년 청나라는 랴오양(遼陽)에서 선양으로 천도하면서 선양을 성경(盛京)이라 개칭하였다.
    • 1644년 베이징을 수도로 정한 후에는 선양을 배도(陪都)로 삼았다.
  • 1911년 펑톈은 (펑톈의 군벌이라는 뜻인) 봉계군벌(奉系軍閥)의 수부 (지휘부가 있는 주둔지)가 되었다.
  • 1923년 펑톈 현에서 펑톈 시(奉天 市)로 개정되었다.
  • 1929년 장쉐량은 펑톈 시를 선양 시로 다시 고쳤다.
  • 1931년 일본 제국이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선양을 강점한다.
  • 1932년 만주국이 성립되고 일제에 의하여 펑톈으로 다시 개명되었다.
  • 1945년 2차 대전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난 후 펑톈 시는 선양 시(瀋陽市)로 공식 행정 지명을 환원했다.
  • 1953년 중앙직할시가 되었다.
  • 1954년 요녕성 성직할시 되었다.

지리와 기후[편집]

선양의 서쪽은 랴오허강의 충적 평원에 위치해있는 반면, 동쪽은 창바이산맥의 일부로 숲으로 덮여있다. 선양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은 414m인 반면 가장 낮은 곳은 7m 밖에 안된다. 주 도시 지역은 랴오허강의 지류인 혼하의 북쪽에 위치해있다. 도시 지역의 평균 고도는 29m이다. 북쪽의 운하와 남쪽의 운하는 혼하를 따라 각각 도시 지역의 북쪽과 남쪽을 흐른다.

선양의 기후는 계절풍의 영향을 받는 습윤 대륙성 기후이다. 여름은 계절풍 때문에 덥고 습하며, 겨울은 시베리아 고기압 때문에 춥고 건조하다. 선양은 사계절이 뚜렷하다. 연평균 기온은 8.3 °C이고 추울 때는 -28.5 °C까지 떨어지기도 하고 더울 때는 36.1 °C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비는 7월과 8월에 집중된다. 연평균 강수량은 705.5mm이다.

역사[편집]

이름의 유래는 선양 남부를 흘러 지나는 훈허(渾河)의 옛 이름 심수(瀋水)의 북쪽에 있다는 심수지양(沈水之阳)에서 유래된다. 7200년에 이르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며, 구석기에 취락했던 신락유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17세기 초반, 사르후 전투에서 승리한 만주족의 누르하치는 선양을 점령하고 1625년 후금의 수도로 정했으며, 1634년에는 성경(盛京)(만주어: 묵던)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 청나라로 이름을 고친 후금은 1644년 명나라를 멸망시킨 후 중국을 점령하고 수도를 베이징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선양은 제2의 수도 대접을 받아 1657년에는 봉천부라고 명명되었고, 형식적이나마 중앙정부에 준거한 관제를 행사할 수 있었다. 지금도 시내에는 그 때의 황궁과 선양고궁이 남아 있다.

19세기 후반, 선양까지 한족의 이동을 인정하지 않았던 만주(현재의 중국 동북부)가 러시아 제국의 남하정책으로 인해 지역을 개방하자 선양은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다. 선양은 지역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여, 둥베이을 묶는 관청도 설치되었다. 도시로서 선양이 크게 팽창했던 것도 이 시기이다. 1905년 러일전쟁 중에는 당시 사상 최대 규모의 야전을 치렀다. 본군은 3월 10일 펑톈에 입성하였고, 12월 3일에 서울에서 펑톈까지 협궤선이 개통되었다. 1912년 청조 멸망 후에는 장쭤린이나 장쉐량 등의 선양 군벌의 거점이 되었고, 1923년 선양 시 정부가 설치되고 시정이 시행되어 1929년 장쉐량에 의해서 선양 시라고 개칭되었다. 1924년에 대한민국의 독립군 삼부 중의 하나인 정의부가 지린성과 펑톈을 중심으로 형성되기도 하였으며, 대한민국의 수많은 독립 지사가 망명하여 활동했던 시기이며, 당시에는 '만주 봉천'으로 알려졌었다. 역을 중심으로 하는 시가지의 대부분은 남만주 철도의 부속지로 여겨져 일본이 행정권이나 경찰권을 쥐고 있었다. 1931년 만주사변에 의해서 일본의 관동군에 점령되면서, 그 이름을 펑톈이라고 하였고, 1945년의 일본의 패전 후에는 선양이라는 이름을 회복하였다.

한족의 입장에서 펑톈이라는 지명은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도시명이며, 만주국 봉천군관학교가 있었던 일제 시대의 주요 거점 도시였다. 중국의 입장에서 '펑톈'은 '일제 만주국의 펑톈'으로 강점되었던 치욕의 지명이므로, 지명을 바꿀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구 펑톈은 현재의 랴오닝성과 지린성의 동남부로 지금은 개편을 통해 랴오닝 성과 지린 성으로 개편, 흡수되었다.

한국관련 유적[편집]

선양은 위나라, 수나라, 당나라 때에는 고구려에 속해 있었다. 선양은 창춘, 하얼빈과 더불어 고구려와 발해의 중심도시였다. 병자호란 후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 봉림대군, 인평대군은 청나라에 인질로 보내어졌는데, 내성 대남문안에 조선관이라는 관소에 머물렀다. 조선관은 현재 선양시립아동도서관에 있었다. 청나라에 잡혀왔던 삼학사 홍익한, 오달제, 윤집은 대서변문 밖에서 참수 당했는데 현재 중산 공원부근이다. 조선인들은 19세기 말부터 서탑지구에 몰려살았는데 그 수는 1만여 명에 이르렀다.

경제[편집]

선양은 중국의 중요한 산업 중추이다. 특히 우주항공산업, 공작 기계, 중장비, 방위 산업과 같은 중공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자동차, 전자 산업도 발전하고 있다. 제1차 5개년 계획(1951~1956년) 기간에는 많은 공장들이 톄시구에 세워졌다. 선양의 중공업이 최절정에 달하던 1970년대에는 톈진, 상하이와 함께 중국의 3대 공업 도시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 중공업이 쇠퇴함에 따라 선양은 러스트 지대의 도시가 되었다. 도시의 경제는 최근에 상당히 재건되었는데 이것은 소프트웨어 산업 개발과 공업 자동화를 추진하는 중국 정부의 "진흥동북로공업기지" 운동 덕분이다. 많은 주요 공업 회사들이 선양에 본사를 두고있다. 중국의 주요 자동차 제조사인 화신 기차의 생산 공장 대부분이 선양에 위치해있다. 선양비기공사는 시민들과 인민군을 위한 비행기를 생산한다. Neusoft는 선양에 있는 중국에서 가장 큰 소프트웨어 회사이다. 중국에서 가장 큰 공작기계 제조사인 선양 공작기계가 선양에 위치해있다.

교통 수단[편집]

선양은 둥베이 지구의 교통중심지이고 중국의 첫 번째 고속도로(선다고속도로)의 기점이다. 시내에는 3개의 순환로가 있고 동서간선도로, 칭니앤다제(靑年大街)-베이링다제(北陵大街), 난징제(南京街)-황허다제(黃河大街)가 주요간선도로이다.

선양은 둥베이 지구의 철도중심지이다. 베이징, 다롄, 단둥, 퉁화, 하얼빈, 청더로도 통한다. 기차역은 북선양역, 선양역, 남선양역, 서선양역, 동선양역이 있다. 선양의 주요공항은 선양 타오셴 국제공항이다.

현재, 시내에선 지하철 1호선과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었다. 1호선이 2009년 10월에 개통되었으며, 현재도 연장 공사중이다.

소수민족[편집]

선양은 36개의 소수민족이 거주하며 한족이 89.73%를 차지한다. 36개의 소수민족은 만주족 (满族), 조선족(朝鲜族), 후이족 (回族), 시버족 (锡伯族), 몽골족 (蒙古族), 좡족 (壮族), 먀오족 (苗族), 투쟈족 (土家族), 둥족 (侗族), 다우르족 (达斡尔族), 바이족 (白族), 위구르족 (维吾尔族), 티베트족 (藏族), 이족 (彝族), 고산족 (高山族), 쉐족 (畲族), 부이족 (布依族), 야오족 (瑶族), 하니족 (哈尼族), 카자흐족 (哈萨克族), 다이족 (傣族), 리족 (黎族), 수이족 (水族), 나시족 (纳西族), 징포족 (景颇族), 키르기스족 (柯尔克孜族), 투족 (土族), 무라오족 (仫佬族), 창족 (羌族) 마오난족 (毛南族), 거라오족 (仡佬族), 러시아인 (俄罗斯族), 예벤키인 (鄂温克族), 타타르족 (塔塔尔族), 어룬춘족 (鄂伦春族), 나나이족 (赫哲族), 뤄바족 (珞巴族)이 거주하고 있다.[4]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선양시〉, 《위키백과》
  2. 沈阳市〉, 《百度百科》
  3. 선양시(중국행정구획총람)〉, 《네이버 지식백과》
  4. 선양시〉,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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