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그믐은 음력으로 그달의 마지막 날을 말한다. 섣달그믐이라고도 한다.
개요[편집]
그믐 또는 섣달그믐은 음력으로 달의 마지막 날인 29일 또는 30일을 뜻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믐은 삭일(朔日) 전날이다. 삭일(朔日)은 삭(朔)이 속한 날이며, 삭(朔)은 달이 황도(黃道)를 지나는 순간이다. 그믐은 세밑, 눈썹세는날, 제석(除夕), 제야(除夜), 제일(除日), 세제(歲除), 세진(歲盡)으로도 부른다. 이날을 제석(除夕)이라고 하는 것은 제(除)가 구력(舊曆)을 혁제(革除)한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믐달(old moon)은 보름달의 반대로서 가장 작아진 달을 말한다. 그믐달은 새벽녘이 돼서야 나오므로 관측이 힘들 뿐 아니라 그렇게 잠시 새벽에 동쪽 하늘에 보였다가 해가 뜨면 곧 여명 속으로 사라지므로 관측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믐달의 관측기록이 되어있지 않는 대신 그믐달은 이론적으로 오후에 진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음력 28일 이후인 음력 29일부터는 달이 보이지 않는 시기가 되는데 바로 이때부터 그믐이 시작되는 것이고 음력 30일까지 이어지다가, 다시 음력 1일로 돌아가서 신월(new moon)이 된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인 섣달의 그믐을 섣달그믐이라고 하여 설날을 맞이하기 위한 세시풍속이 있다.[1][2]
유래[편집]
섣달그믐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이므로 새벽녘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새해를 맞이한다. 이러한 수세(守歲) 풍습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로서 대한민국에 역법(曆法)이 들어온 이래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세는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통과의례로 마지막 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2]
상세[편집]
섣달그믐에는 묵은세배(舊歲拜), 수세, 만두차례, 나례(儺禮), 약태우기, 연말대청소, 이갈이예방, 학질예방과 같은 풍속이 전한다. 또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벽온단(辟瘟丹)을 진상(進上)하기도 했다. 섣달그믐은 묵은설이라 하여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일가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데, 이를 묵은세배라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저녁 식사 전에 하기도 하는데, 이날 만두를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한다. 저녁에 만둣국을 올려 차례를 지내며 이를 만두차례, 만두차사, 국제사라고 한다. 한 해 동안 잘 보살펴주신 조상에 감사드리는 의식으로 해질 무렵 만둣국, 동치미, 삼실과, 포 같은 음식을 차려서 조상에게 올린다.
일부 가정에서는 복만두(보만두)라 하여 만두 하나 속에 엄지손톱만한 작은 만두를 여러 개 집어넣어 만든다. 차례가 끝난 후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만둣국을 끓일 때 복만두를 넣는데, 이것이 들어간 그릇을 받는 사람이 신년 복을 가져간다고 점친다. 소를 키우는 집에서는 만두를 소에게 먼저 먹이고 식구들이 먹는다고 한다.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지나가는 한 해를 지킨다는 뜻으로 밤을 새우는 풍습을 수세라 한다. 수세는 장등(長燈), 해지킴, 밤새우기라고도 부르는데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인가에서는 다락, 마루, 방, 부엌에 모두 등잔을 켜놓는다. 흰 사기접시 하나에다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 변소까지 환하게 켜놓으니 마치 대낮 같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데 이것을 수세라 한다. 이는 곧 경신을 지키던 유속이다."라고 하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새벽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데, 그 유래는 섣달 중 경신일(庚申日)에는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얻는다는 경신수세(庚申守歲)의 도교 풍속에서 나왔다. 경신수세의 풍습은 중국 한(漢)나라 때도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고려 원종(元宗) 6년(1265)에 태자가 경신수세를 했고, 연산군(燕山君)도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성대하게 경신수세를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경신일에 밤을 새워 지키는 것은 동지가 지나 경신이 되는 날에 하는데, 섣달 경신일이 진정한 경신수세 또는 수야(守夜)라 한다. 이 풍습의 유래는 사람의 몸에는 세 마리의 시(尸)가 있어 삼시(三尸)라 하며 이것이 그 사람의 잘잘못을 기록해두었다가 연말 경신일에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고한다고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병에 걸려 죽게 되므로 경신일에 밤을 새워 삼시가 몸에서 빠져나가 하늘로 올라가 고하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다. 동지 이후의 경신일은 6년에 한 번 드는데 경신수세를 7번 하면 삼시신은 아주 없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42년 동안 경신수야(庚申守夜)하면 불로장수할 수 있다고 하는데, 도교의 삼시설이 불교로 흡수되어 일부 사찰에서 행하고 있다.
민간에 전하기로는 이날 잠을 자면 영원히 자는 것과 같은 죽음을 뜻하기 때문에 밤을 샌다고 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날과 그 전 해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 이날 잠을 자면 계속 연결하여 새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관념에서 수세의 풍속이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집안 곳곳에 밤새 불을 켜두면 광명이 비쳐서 복이 들어오고 잡귀를 쫓는다고 믿는다. 일부 지역에서는 불 하나씩을 식구불로 정해 점을 치는데, 새해 고생할 사람의 불은 가물거리고 운 좋을 사람의 불은 빛이 좋다고 한다. 또 개를 키우는 집에서는 이날 불을 밝혀두면 새해에 개가 잘 큰다고 한다.
수세 풍속은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설계하면서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풍속인데, 이날 밤에는 밤을 새우기 위해 윷놀이나 화투를 치면서 놀며, 주부들은 세찬 준비로 바쁜 가운데 감주나 과줄, 호박엿 따위를 내놓는다. 유만공의 『세시풍요(歲時風謠)』에는 이날 "달걀 같은 만두며 꽃 같은 적을 해놓고 찬품을 많이 대접하니 특별한 정이라 하였다."라고 한 것처럼 매년 세모 때는 다양한 찬거리나 음식을 주고받는데 이를 세찬(歲饌)이라 하였다. 세찬 속에는 속칭 총명지(聰明紙)라 하여 특산품의 물목을 적은 편지를 함께 넣었으며, 궁중에서는 70세 이상 관원에게 쌀과 어류를 나누어 주었다.
조선시대에는 섣달그믐에 재앙을 쫓기 위한 연종제(年終祭)로 나례의식을 펼쳤는데, 민간에서는 대나무를 태워 요란한 소리를 내는 폭죽이나 대총, 지포인 딱총을 놓기도 하고 궁중에서도 연종포(年終砲)를 터뜨렸다. 이렇게 하면 집안에 숨어 있던 잡귀들이 놀라서 도망가고 무사태평(無事泰平)하다는 것이다. 『동국세시기』에는 궁중 풍속으로 제석 전날부터 연종포라 하여 대포와 불화살인 화전(火箭)을 쏘고 징과 북을 울렸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청단(靑壇)이라는 나례의식이다. 이것은 마치 둥근 기둥 안에 기름 심지를 해박은 것과 같이 하여 그것을 켜놓고 밤을 새워 징과 북을 치고 나발을 불면서 나희를 행하는 것이다. 함경도와 평안도에서도 빙등(氷燈)을 설치하고 나례를 행했다고 한다. 『열양세시기』에 의하면 섣달그믐날 내의원에서 벽온단이라는 향을 만드는데, 이것은 염병을 물리치는 데 유용하다 하여 임금은 설날 아침에 그 향 한 심지를 피운다고 한다.
섣달그믐은 한 해를 결산하는 마지막 날이므로 밀린 빚이 있으면 이날 안에 갚고, 그러지 못하면 정월대보름 이전에는 빚 독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섣달은 '남의달'이라 하여 한 해를 조용하게 마무리한다. 성주, 조왕, 용단지 같은 가신(家神)에게도 불을 밝혀주는데 예전에는 종지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만들어 넣어 불을 켰다. 섣달에는 매사를 정리하고 큰 물건을 함부로 사지 않으며, 솥을 사면 거름에 엎어두었다가 그믐날에 부엌 아궁이에 걸면 탈이 없다고 한다. "섣달그믐이면 나갔던 빗자루도 집 찾아온다."라고 하여 '막가는 달'에 마무리를 잘 하는데 "숟가락 하나라도 남의 집에서 설을 지내면 서러워서 운다."라는 말이 있으므로, 전에 빌렸던 남의 물건도 모두 돌려주고 돈도 꾸지 않으며 혼인도 하지 않고, 연장도 빌려주지 않는다. 이날 잠을 자지 않고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하여 새해 맞을 준비를 하면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것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경건하게 새해를 맞이하고자 하는 것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기 때문이다.[2]
지역사례[편집]
한 해의 마지막 밤인 섣달 그믐밤이 되면 집에서는 저녁밥을 남기지 않고 말끔히 먹으며, 바느질하던 것도 끝내어 해를 넘기지 않는다. 경남에서는 이날 밤에 맨발로 땅을 밟으면 무좀이 생긴다하여 반드시 버선과 신을 신은 다음 땅을 밟는다. 함경도에서는 도깨비가 잘 나오는 터가 센 집에서는 이날 밤에 도깨비가 좋아하는 메밀 범벅을 잘게 만들어 흩어주는 곳도 있다. 전북 지역에서는 섣달에 문종이를 많이 바르며, 정초에 창호지가 찢어지면 정월대보름이 지나서야 바른다고 한다. 또 섣달그믐날 밤에는 양말을 신고 잔다. 그러지 않으면 "비우자리 먹는다."라고 하는데, '비우자리'는 발바닥이 하얗게 되는 증상이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섣달그믐날 어둡기 전에 미리 빨랫줄을 거두는데, 그 이유는 조상이 들어오다가 목에 걸린다고 하여 치우는 것이다.
섣달 그믐날의 날씨를 보고 점(占)을 치는 것도 중요한 행사이다. 이날 날씨가 좋거나 비가 순하게 와야 이듬해 농사가 잘 되고 고기도 많이 잡힌다고 한다. 경남에서는 섣달그믐에 동남풍이 불면 이듬해에 잔고기가 많이 난다고 한다. 또한 그믐날 저녁에 샛바람이 불면 이듬해 고기가 적게 난다고 한다. 이날 밤은 아주 어두워야 좋고 다른 곳보다 더 어두운 바다에 미역과 고기가 많이 난다고 한다. 또 이날은 맞바람이 불어야 좋고 농사도 풍년이 든다고 한다. 충남 지역에서는 섣달에 눈이 많이 오면 유월에 비가 많아 농사짓기에 유리한 반면 동짓달에 눈이 많이 오면 5월에 비가 많다고 한다. 이를 각각 '육섣달' 혹은 '오동지'라 말한다. 전남에서도 섣달그믐의 밤이 어두워야 한 해가 좋다고 하는데, 이날 바깥을 보아 칠흑처럼 컴컴하면 길하다고 한다.
이날 바람이 부는 것으로 점치기도 하는데, 부산에서는 그믐날 저녁 날씨를 보아 이듬해 풍년을 점친다. 곧 날씨가 고요하면 올벼가 잘 되고, 새벽바람이 불면 늦나락이 안 좋다고 한다. 또 그믐날 저녁에 샛바람이 불면 흉년, 남쪽 들바람이 불면 풍년이라고 한다. 그믐날 하늘의 별이 많고 맑으면 이듬해 풍년이 든다고 한다. 그믐날 밤에 날씨가 맑고 바람이 잠잠하면 이듬해 풍년 들고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흉년 들고 바람이 많이 분다고 점친다. 제주도에서는 이날 하늘이 캄캄하면 목장에 잡초가 많고 바다 쪽이 캄캄하면 해변 농사에 잡초가 많이 생긴다고 여기며, 이날 목욕하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목욕을 하기도 하였다. 강원도에서는 샛바람이 불면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경남 어촌에서는 섣달 그믐날 배에 성황기와 만선기를 비롯해 모든 기(旗)를 달고 선주가 고사를 지낸다.
경북은 약(藥)불이라 하여 한 해 동안 가족들이 먹던 한약재를 섣달 그믐밤에 마당에 모아놓고 불에 태우는데, 이렇게 하면 새해에 병 없이 건강하다고 한다. 또 '정성불'이라 하여 함지박에 쌀과 가래떡을 담고 기름종지에 불을 켜 우물 속으로 내리는데, 이 불이 우물 속에 들어가서도 꺼지지 않고 잘 타면 이듬해 그 집 운수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섣달 그믐날 밤이면 "정성불 켜러 가자." 하며 샘과 같이 물이 있는 곳을 찾는다. 부산에서는 섣달그믐날 닭꼬리점, 벼종자 무게점, 촛불점, 실태우기점, 도깨비불점, 그믐밤점, 그믐날 날씨점을 치고, 부스럼 나지 말라고 이날 밤에 무나 달걀, 눈[雪]을 먹는다. 또 학질 예방을 위해 쌀을 구워먹거나 삼 껍질, 삼씨를 먹기도 한다. 이 외에도 발병 나지 말라고 맨발로 다니지 않으며 자는 사람 잠 깨우지 않는 금기도 전한다.[2]
인접국가사례[편집]
중국에서는 이날 오후에 사년(辭年)이라 하여 어린이들이 어른에게 예를 표하고 폭죽을 터뜨린다. 저녁에는 가족들이 연야반(年夜飯)을 먹고 수세주(守歲酒)를 마신다. 부뚜막에 불을 켜두고 집안 청소를 하며 문신화나 종규도를 문에 새로 걸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또 도화분(跳火盆)이라 하여 그릇에 짚불을 피워놓고 뛰어넘는데 새로운 해에 액운을 건너게 해달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는 제야의 종을 108번 치는데 일본에서도 종을 108번 울린다.
섣달그믐의 수세풍속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데, 양력 12월 31일 밤 자정을 기해 서울 보신각(普信閣)에서는 33번의 제야의 종을 친다. 33번은 108번을 줄여서 치는 것으로 불교의 33천(天)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종소리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이는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희망으로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해갈이 통과의식이다.[2]
엄폐[편집]
그믐달이 그대로 2012년 8월 14일 새벽에 떠오를 무렵, 공교롭게도 함께 동쪽하늘에 뜨는 금성이 함께 나왔으나 그믐달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뜰 때까지만 해도 금성은 그믐달 왼쪽 아래에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믐달 뒤에 가려지더니 그믐달이 점점 하늘로 떠오를 수록 그믐달 보다 조금 더 높이 떠오르면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는 23년만의 일이다.[1]
기타[편집]
그믐달이 뜰 때에는 밀물과 썰물 사이의 높이 차이, 즉 조수간만의 차, 조차가 가장 크다. 이는 보름달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통상 가장 어두운 시간대인 밤이 천체관측 및 천체사진 촬영의 적기로 알려져 있다.[1]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