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연도)
단기(檀紀)는 단군이 즉위한 해인 서력 기원전 2333년을 원년(元年)으로 하는 기원을 말한다. 한국의 기원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이를 사용하다가 1962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서기(西紀)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단군기원(檀君紀元) 또는 단군원호(檀君元號)라고도 한다.
개요[편집]
단기, 단군기원 또는 단군원호는 대한민국에서 한때 쓰던 기년법이며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인 단군의 고조선 건국 연대를 기준으로 하는 상징적인 기년이다.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전해지는 기원전 2333년을 단기 1년으로 헤아리는 방법이다. 서기 연도에 2333년을 더하면 단기가 된다. 반대로 단기 연도(2334 이상)를 서기 연도로 바꿀 때는 단기 연도에 2333을 빼면 된다. 또한,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기원전 2333년이 단기 1년으로, 서기 2024년은 단기 4357년이 된다. (단군 기원 = 서력기원 + 2333년) 전설 속 첫 임금이 기준이란 점에서 중국의 황제기원 및 일본의 황기와 유사하다. 전자는 황제 헌원씨의 즉위, 후자는 진무 덴노의 즉위가 기준이다. 단기도 그렇듯 이들도 현대에는 실생활에서는 잘 안 쓰인다. 전근대 한민족의 조상들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5000년간 지켜왔다는 것을 나타내는 자긍심의 표현인 것으로 평가되며, 현대에도 한민족의 상징적·신화적인 기년으로 인정되고 있다.[1][2]
역사[편집]
단군과 단군기원의 연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이다. 일연은 이 책에서 "단군왕검은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라고 하였다. 또한 그곳에 "요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니 즉위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라고 할주를 달았다. 이에 따르면 단군기원인 정사년은 기원전 2284년이다.
이승휴(李承休)가 지은 《제왕운기》 동국군왕개국연대(東國君王開國年代)에는 제석천(帝釋天, 옥황상제)의 손자 단군이 제고(帝高)와 같은 무진년에 즉위하여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에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는데, 그 동안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1028년이라 했다. 이러한 이승휴의 연대 기록은 당시의 전근대 역사학의 기준으로도 오류가 있는데, 전근대 역사학에서 공인되었던 기묘년(기원전 1122년)을 중심으로 계산하면 《제왕운기》에서 단군이 즉위한 해는 기원전 2313년이 되며 이 해는 무진년이 아니다. 대체로 학계에서는 1028년을 1048년의 오기로 여기는데, 이렇게 보정하면 무진년(기원전 2400년)이 된다.
한편 단군기원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사》 열전 '백문보(白文寶, 1303~1374)'조(條)로, 공민왕에게 올린 상소에서 단군을 언급했다.
하늘의 기수(氣數)는 순환하여 700년이 한 소원(小元)이 되고, 3600년이 쌓이면 한 대주원(大周元)이 되니, 이것이 황제(皇帝)와 왕패(王覇)의 치난흥쇠(治難興衰)의 기회가 됩니다. 우리 동방은 단군부터 지금(1363년)까지 이미 3600년이므로 주년(周年)의 기회가 됩니다.
여기서 백문보가 단군이 치세를 시작했다고 여긴 연도는 현재의 단기 원년(기원전 2333년, 무진년)과 다르다. 백문보의 글을 모은 문집 《담암일집》의 부록에 실린 편년(編年)에 따르면, 백문보는 이 상소를 공민왕 12년(1363, 계묘)에 올렸다. 따라서 백문보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1363년으로부터 3600년을 거슬러 헤아리면, 백문보가 생각한 단군 치세 원년은 기원전 2238년(계묘), 또는 기원전 2237년(갑진)이다.
기원전 2400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확정적으로 서술한 책은 조선 세종 때 서거정이 만든 《동국통감》이 최초이다.
이가 단군(檀君)이며 국호(國號)는 조선(朝鮮)이었는데, 바로 당요(唐堯) 무진년(戊辰年:기원전 2333년)이었다.[1]
단기와 비슷하게 일본에서 진무 덴노의 즉위기원을 근거로 한 황기(皇紀) 역시, 진무 덴노가 실존인물이 아닌 신화 속 인물이라는 점에서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애당초 고대의 기년법이란 이렇게 국가의 정통성을 위해 끼워맞춘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존재했을 수도 있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후대에 표준화된 것. 심지어 우리가 평상시에 주로 사용하는 서기의 원년도 역사적으로 정확하지는 않다. 예수가 태어난 해를 나름대로 추정한 것이지만, 현대 역사학자들은 그 추정이 몇 년 정도 오차가 있다고 본다.[2]
단기폐지 논란[편집]
1944년 7월 11일 국회 133명의 재석의원 중 106명이 찬성하여 "대한민국의 공용 연호는 단군기원(檀君紀元)으로 한다."는 내용의 「연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4호)이 의결되었고, 같은 해 9월 25일부터 단기연호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5.16 군사정부가 1961년 12월 2일 "대한민국의 공용 연호는 서력기원(西曆紀元)으로 한다."는 내용으로 「연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775호)을 다시 제정함으로써 1962년 1월 1일부터 단군기원이 폐지되고 서력기원이 채택되었다.
이후에도 사회 일각과 국회의원들 일부에서는 국제적으로 많이 쓰고 있는 서기와 함께 우리의 주체성을 함께 살리는 단기를 병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어왔다. 단기병용론자들은 분단된 남북의 동질성 회복과 민족 통일을 위해서도 개천절의 의의와 가치를 재조명해야 하므로, 단기 연호는 부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제처는 2012년 7월 8일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서기이며, 단기를 함께 쓸 경우 불기(佛紀)도 문제될 수 있으므로 혼란이 커질 것"이라는 이유로 단기연호를 공용연호로 쓸 수 없음을 발표하였다.[1]
현실의 용례[편집]
- 1909년, 홍암 나철이 창교한 대종교에서 동국통감의 기록에 근거한 단기 사용을 적극 주장하였다. 이후 꼭 대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민족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종종 단기를 몰래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로 일본 연호를 따라 썼기 때문이다. 이후 대종교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만주에서의 무오독립선언서에 '檀君紀元(단군기원)'이라는 명칭으로 단기가 사용되었으며, 역시 이 영향을 받아 3.1 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에도 '朝鮮建國(조선건국)'이라는 명칭으로 단기를 사용하여 연도를 표기하였다. 다만,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 당시부터 단기 대신 3.1 운동이 일어나고 임시정부를 수립한 1919년을 원년으로 하여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하였다.
- 1948년(단기 4281년) 제헌 국회에서 새 정부의 연호로 단기를 채택하여 처음으로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단기를 사용하였다. 이때 이승만을 포함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신 정치인들은 대한민국 연호를 쓰자고 주장한 반면 국회의원들은 단기 연호를 쓰자고 하였다. 대한민국 연호는 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연호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단기를 새 나라의 연호로 채택했다. 이 시기 법률문서나 반민특위 관련 문서 등에서 단기로 연도를 적었음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호적 기록, 화폐 및 우표 발행연도, 신문부터 학위논문에 이르기까지 죄다 단기로 적었다. 당시에는 단기 사용이 당연했으므로 굳이 단기라고 명시하지 않고 숫자만 적은 경우도 많다. 지금 서기에 따라 연도를 적을 때에 굳이 서기라고 명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서기와 단기는 무려 2333년이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인지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 쌍팔년도라는 단어가 원래는 서기 1988년이 아니라 단기 4288년, 즉 서기 1955년을 의미했다.
- 1961년 12월,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있는 동안 연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1962년(단기 4295년) 1월 1일부터 단기를 폐지하고 서기를 채택하기로 하여 현재에 이른다. 공문서 등 공식적인 문서에서는 서기만 사용하지만, 민간에서는 단기를 함께 쓰는 경우도 나름대로 있다. 예를 들어 불교 달력에 서기와 함께 불기와 단기를 병용하거나, 신문 날짜란에 서기와 같이 쓰는 식.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졸업 앨범 등에 서기와 병기하여 쓰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 3009년 삼국통일, 3925년 임진왜란, 3956년 인조반정, 4278년 8.15 광복 등과 같이 주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연도가 명시된 국사, 세계사 교과서들이 있었는데, 이것이 단군기원이다. 또한 이런 학교에서 이런 교과서들로 학습한 사람들의 졸업장에도 연도를 단군기원으로 표기했다. 대략 1948년생까지는 이런 단기 졸업장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당시 국민학교 산수 과목에서는 서기 연도를 단기로 바꾸거나 단기 연도를 서기로 바꾸는 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이유는 물론 서기가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기년법이기 때문이다.
- 옛날식 분위기를 내려는 목적인지는 몰라도, 옛날 건물을 복원할 때 대들보에 이것을 써 넣는 경우도 있다. 태조 왕건을 비롯한 일부 사극의 내레이션에서도 단기로 일시를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상술했듯이 정작 건물이 처음 세워졌을 때나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단군기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 환빠들은 환단고기의 기록을 근거로 환국 기원, 신시개천이라는 가짜 연호를 단기와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Microsoft Windows에서도 단기 달력을 볼 수 있다. [2]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