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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비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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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비데오
몬테비데오 위치

몬테비데오(스페인어: Montevideo, 문화어: 몬떼비데오)는 우루과이수도이자 몬테비데오주주도이다. 인구는 약 132만 명이고 라플라타강 하구에 위치한 최대의 무역항이며 우루과이 인구의 약 절반이 거주하고 있는 우루과이 최대의 도시이다. 피서지휴양지로도 유명하며 1930년 제1회 월드컵이 개최된 곳이기도 하다.[1]

개요[편집]

몬테비데오는 우루과이 남단, 라플라타강 하구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아르헨티나를 마주하고 있다. 우루과이 전체 인구의 44%가 거주하는 이 나라 최대의 도시이자 무역항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다. 1726년 스페인이 성채를 건설한 뒤 무역기지로서 번영하면서 우루과이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고, 1830년 수도가 되었다. 말발굽처럼 생긴 천연의 양항을 중심으로 발달한 구시가지가 오늘날까지 상업 중심지를 이루고, 신시가지는 그 배후 및 동쪽으로 뻗어 있다. 우루과이의 정치, 상공업, 금융업, 문화의 중심지로, 모든 철도가 이곳을 기점으로 하여 국내에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쇠고기, 양털, 피혁, 곡물류, 아마 등이 이 항구에서 수출되고 대규모 정육(精肉) 공장을 비롯하여 섬유, 제화, 비누, 의류 공장과 조선소도 이곳에 건설되었다. 시가지 동쪽의 해안을 낀 거리에는 주택과 아파트가 늘어서 있고, 가로수가 잘 정비되어 있다. 남아메리카의 ‘작은 파리’라고 불리기도 한 몬테비데오는 유서 깊은 박물관, 근대미술관, 우루과이대학 등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미원이 있으며, 남아메리카에서 손꼽는 아름다운 해수욕장을 갖춘 피서지로 알려져 있다. 외국자본에 우호적인 우루과이의 조세법 덕분에 몬테비데오는 남미 최대의 금융 중심지로도 떠오르고 있다. 몬테비데오는 1930년 제1회 FIFA 월드컵 기간 모든 경기를 주최한 남미의 대표 국제도시이다. 남미공동시장의 본부가 위치하면서, 남미공동시장과 남미연합의 주요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도시로 성장하였고, 국제도시로서의 이미지도 강화되었다. 세계무역기구 또한 몬테비데오에 1998년 사무실을 개설하고, 2009년 건물을 완공하였다. 2019년 미국의 컨설팅 회사인 머서(Mercer)의 보고서는 몬테비데오를 라틴아메리카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도시로 평가하였는데, 2005부터 2019년까지 몬테비데오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삶의 질이 높은 도시라는 지위를 유지해왔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몬테비데오는 우루과이 국토의 남쪽 끝에 있으며, 라플라타강(Rio de La Plata) 하구 북쪽 기슭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남위 34°53′1″, 서경 56°10′55″에 해당하는 위치이며, 면적은 209㎢이고, 평균 해발 고도 43m로 평탄한 지형이다. 몬테비데오 항은 말발굽처럼 생긴 지형이 몬테비데오 만을 폭 감싸고 있는 형태로, 큰 파도로부터 배를 보호해 주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항구이다.

몬테비데오는 라플라타강 건너편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영토를 마주하고 있다. 몬테비데오는 라플라타강의 북쪽 대안에,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쪽 대안에 자리 잡고 있지만, 라플라타 강의 하구 폭이 220㎞에 이르기 때문에 두 도시에서 맞은편 도시가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몬테비데오는 한국의 대척점(지구 표면의 어떤 지점에서 지구의 중심을 직선으로 관통했을 때 도달하게 되는 반대편 지점)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정확히 전라남도 여수시와 대척점을 이룬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몬테비데오는 Cfa, 즉 아열대 습윤 기후이다. 남반구는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여서 7월이 최한월이고, 1월이 최난월이다. 몬테비데오는 연평균 기온 16.7℃, 최난월 평균 기온 23℃, 최한월 평균 기온 10.9℃로, 여름철 날씨는 온난하고 겨울철 날씨도 온화한 편이다. 연 강수량은 1,100㎜ 정도이고, 연중 비고 고르게 내려 월 강수량의 편차는 작은 편이다.[3]

역사[편집]

1680년에서 1683년 사이에 포르투갈은 부에노스아이레스 건너편 라플라타 지역에 콜로니아 두사크라멘토라는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 도시는 포르투갈인들이 1723년 몬테비데오만(灣) 주변 구릉에 요새를 건설하기 전에는 스페인의 저항에 부딪히지 않았다. 1723년 포르투갈인들이 이 지역에 요새를 짓고 본격적인 점유권을 주장하자, 스페인은 총독 브루노 마우리시오 데 자발라가 조직한 원정대를 파견하였다. 1724년 1월 22일, 스페인은 포르투갈인들을 쫓아내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및 스페인의 카타리아제도와 유럽 각지로부터 정착민을 받아들여 도시를 정착시켰다.

도시가 형성된 몇 년 후 몬테비데오는 리오데라플라타 북쪽과 우루과이강 동쪽 지역의 대표 도시로 성장하였으며, 해상무역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경쟁하는 위치에 이르렀다. 라플라타 부왕령의 대표 항구로서 몬테비데오의 위상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갈등도 경험하였는데, 특히 포르투갈과 라플라타 부왕령의 경계에서 라플라타 부왕령을 지키는 방어 요새의 역할을 두고 몬테비데오와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첨예한 경쟁 구도를 이루었다. 이 경쟁에서 몬테비데오는 승기를 잡은 듯했다. 1776년 스페인은 몬테비데오를 남대서양의 주요 해군 기지로 삼았고 아르헨티나 해안과 페르난도 포, 그리고 말비나스 제도에 대한 권한을 몬테비데오에 이양하였다.

식민 시기 스페인 본국에 대한 충성 경쟁을 벌였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는 스페인이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한 후 등장한 부르봉 왕가에 대항하며 힘을 합치게 된다. 스페인 왕당파에 저항하는 1810년 5월 혁명과 리오데라플라타 지역의 독립운동을 피해 스페인 식민 정부는 몬테비데오를 근거지로 삼았다. 우루과이 혁명가 호세 게르바시오 아르티가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온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연합하여 스페인에 저항하기 시작하였다. 181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독립운동 세력과 아르티가스가 이끄는 군대는 스페인의 지배를 거부하는 5월 혁명군의 지시에 복종하기를 거부한 몬테비데오를 점령하였다. 1814년 스페인 총독이 추방되자, 몬테비데오는 마침내 독립을 이루는 듯하였다. 하지만 1816년 포르투갈은 최근에 해방된 영토를 침공했고 1821년에 몬테비데오를 브라질의 반다 오리엔탈에 합병하였다. 하지만 몬테비데오의 해방을 원했던 후안 안토니오 라바예하와 그의 부하였던 33명의 반다 오리엔탈 출신 군인들(Treinta y Tres Orientales)은 1825년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이 지역의 독립을 회복하였다. 우루과이는 1828년에 독립 국가가 되었으며, 몬테비데오를 수도로 삼았다.

독립 이후 여전히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등의 영향 아래 격변을 경험하던 몬테비데오는 19세기 말 안정을 되찾고 20세기 들어 발전을 경험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초 수많은 유럽 국가로부터 우루과이로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이주민의 규모는 1908년 30만 몬테비데오 인구 중 3분의 1이 이주민일 정도였다. 유럽으로부터의 이주는 몬테비데오와 주변 도시들의 성장을 가져왔으며, 동시에 우루과이 사회의 변화도 가져왔다. 이혼이 합법화되었고,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으며, 몬테비데오의 람블라스 거리가 해안을 따라 건설되었고, 전차, 항구 및 제빵 노동자들의 파업이 줄을 이었다. 시 정부가 세워졌고, 새로운 항구가 건설되기도 하였다.

우루과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중립을 유지한 국가였다. 하지만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루과이의 정치와 사회는 친연합국 대 친추축국, 친서방 대 친사회주의 등으로 분열된 혼란기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몬테비데오에서는 투파마로스(Tupamaros)라는 좌익 게릴라 집단이 결성되었고, 이를 빌미로 1970년대에 우루과이에 군부 정권이 수립되었다.

몬테비데오가 20세기 초 경험한 번영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잦아들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 우루과이의 경기 침체는 몬테비데오의 쇠락을 가져왔다. 경기 침체와 이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몬테비데오에서 도시 게릴라가 출몰하는 원인이 되었고, 도시 게릴라의 출몰과 함께 혼란스러운 사회를 극복한다는 핑계로 군부가 쿠데타에 성공하며 우루과이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였다. 군부 독재 하에서 몬테비데오는 반정부 인사의 실종과 사망 등 반인권적인 만행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우루과이 국민은 1980년 군부 독재 정권의 정권 연장 시도를 거부하며 민주화를 이뤄내었다.

민주화 이후 몬테비데오는 다시금 남미의 주요 도시로의 명성을 되찾았다. 꾸준히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삶의 질을 자랑하는 도시로 선정되고 있으며, 남미공동시장의 본부, 세계무역기구의 남미 본부를 유치하며 국제도시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2002년 우루과이에 닥쳐온 경제 위기로 도시 전체가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했으나, 오늘날 몬테비데오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발전하고 있다.[4]

경제[편집]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는 이 나라의 경제 및 정치 중심지이다. 우루과이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기업의 대부분은 우루과이에 본사를 두고 있다. 또한 몬테비데오는 국가 대외무역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주요항인 몬테비데오항을 포함하며 양모, 육류 및 가죽 등을 주요하게 수출한다. 수많은 양모 가공시설과 육류 냉장 포장공장이 도시 근방에 집중되어있다. 또한 섬유, 신발, 비누, 성냥 및 의류 생산 공장들이 도시 전역에 위치하고 있다. 와인과 유제품도 몬테비데오에서 생산되는데, 우루과이의 국영기업인 ANCAP 정유 공장 및 시멘트 공장, 전력시스템이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은행업은 전통적으로 우루과이에서 가장 강력한 서비스 부문 중 하나였다. 우루과이에서 가장 큰 은행은 몬테비데오에 본사를 둔 국영은행인 방코 리퍼블리카(BROU)이며 그 외에 방코 산탄데르, BBVA, 씨티은행 등 9개의 민간은행이 이 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다. 또한 피쿠스 캐피탈(Ficus Capital), 갈핀 소시에닷 데 볼사(Galfin Sociedad de Bolsa), 에우로파 소시에닷 데 볼사(Europa Sociedad de Bolsa), 다리오 쿠키에르(Darío Cukier), GBU, 오르데냐나 & 아소시아도스 소시에닷 데 볼사(Hordeñana & Asociados Sociedad de Bolsa) 등 수많은 브로커 및 금융기관이 몬테비데오에 지사를 두고 있다.

2010년 몬테비데오는 남미 도시 중 19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주요 도시 중 9번째로 소득이 높은 도시이다. 2022년 GDP는 539억 달러, 1인당 GDP는 30,148달러로 추정된다. 몬테비데오는 피서지이자 휴양지로도 유명한 곳이어서 관광 산업도 발달해 있다. 라플라타 하구에 면한 해안 지역에는 포시토스 해변(Playa Pocitos)을 비롯한 여러 개의 해수욕장이 있으며, 이곳에는 해수욕과 피서, 휴양을 즐기기 위한 관광객들이 국내외에서 몰려들고 있다. 시내 관광은 옛 건물들과 박물관, 미술관 등이 있는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5]

교통[편집]

카라스코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de Carrasco)은 우루과이 최대 규모의 공항이자 허브 공항으로, 시내에서 약 19㎞ 떨어져 있는 카라스코에 있다. 세계 각국의 항공 노선이 취항하는 국제공항으로 우루과이의 관문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와의 직항 노선은 개설되어 있지 않다. 이 밖에, 시 서부에는 소규모 공항인 앙헬에스아다미 공항(Aeropuerto Ángel S. Adami)이 있다.

몬테비데오는 우루과이 철도 교통의 기점이다. 모든 철도가 몬테비데오를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뻗어 가는 형태로 부설되어 있다. 시내 대중교통으로 시내버스 노선이 잘 발달해 있으며, 시외버스와 철도 교통도 교통의 기점답게 편리하다. 1897년 개장한 헤네랄아르티가스 중앙역(Estación Central General Artigas)은 1세기 이상 몬테비데오 철도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으며, 역사(驛舍)는 건축사적인 중요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 역사는 2003년 신역사의 개장과 함께 폐쇄되어, 현재는 우루과이 철도사를 기념하는 유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몬테비데오 만에 있는 몬테비데오 항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더불어 라플라타강 하구의 대표적인 항구이다. 이곳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연결되는 페리선이 운행되고 있다.[6]

관광[편집]

몬테비데오는 18세기 초에 세워진 에스파냐군의 요새였으며, 우루과이가 독립한 이래 수도로 기능해 온 도시이다. 따라서 18~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적과 건물 및 독립 관련 명소들이 몬테비데오의 주요 관광지 구실을 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와 19세기의 고풍스런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몬테비데오는 ‘남아메리카의 작은 파리’라고 불린다.

독립 광장(Plaza Indepencia)은 몬테비데오 시가지 관광의 중심에 해당한다. 이 광장 둘레에 18~9세기에 세워진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아르티가스 장군의 동상 등 우루과이 독립을 기념하거나 상징하는 조형물도 많이 있다. 아르티가스 장군은 우루과이의 국부로 존경받는 인물인 만큼, 우루과이의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에는 독립 광장의 아르티가스 장군 동상에 대한 헌화식이 열리기도 한다. 광장 서쪽에는 구시가지(Ciudad Vieja)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으며, 이곳에는 19세기 풍의 경관이 많이 남아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독립 광장을 기점으로 하는 ‘7월 18일 거리’는 몬테비데오 최대의 번화가로, 거리의 이름은 몬테비데오 헌법 제정일인 7월 18일에서 따 왔다. 우루과이는 1830년 7월 18일에 헌법을 개정하고 포르투갈(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간섭을 벗어나 실질적인 독립을 선언하였다. 중심가답게 상점, 영화관, 레스토랑 등이 늘어서 있어 관광이나 쇼핑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 거리는 기점인 독립 광장을 포함한 여러 개의 광장으로 이어진다.

헌법 광장(Plaza Constitución)에는 1830년 헌법이 공포된 장소인 식민지 시대의 정무청(El Cabildo) 건물이 있는데, 오늘날에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광장 맞은편에 있는 마트리스 교회(Iglesia Matriz)는 몬테비데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871년 몬테비데오의 수도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분수도 이 광장의 명물이다.

1925년 완공된 몬테비데오 국회 의사당은 외벽이 대리석으로 신고전파 양식으로 설계되었으며, 몬테비데오 시내에서도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몬테비데오 언덕은 142m 높이의 언덕으로 해안과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으며, 몬테비데오라는 시명도 바로 이 언덕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정상에는 과거 에스파냐군이 설치한 요새가 있는데, 오늘날에는 군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16세기에 세계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1521)이 다녀간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몬테비데오에서도 이름 높은 관광 명소이지만 인근에는 치안이 열악한 빈민가가 있다.

로도 공원(Parque Rodō)은 우루과이 문학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호세 로도(José Enrique Rodó)의 이름을 딴 공원으로, 공원 내에 있는 국립시각미술관은 주로 20세기 이후의 전위파, 표현주의파, 입체파 등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프라도 공원(Parque Prado)에서는 매년 축산품 품평회가 열리며, 장미 화원 등의 볼거리가 있다.

몬테비데오는 남아메리카의 유명한 피서지이며, 해안을 끼고 있는 만큼 해변에 발달한 해수욕장도 유명하다. 포시토스 해변(Playa Pocitos)은 몬테비데오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다. 포시토스 해변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가 자랑하는 세계적 관광 명소인 코파카바나(Copacabana)를 축소해 놓은 듯한 경관과 분위기로 유명한데,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밖에도 하미레스 해변(Playa Jamirez) 등 여러 해수욕장이 있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몬테비데오〉, 《위키백과》
  2. 몬테비데오(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몬테비데오〉, 《나무위키》
  4. 몬테비데오〉, 《요다위키》
  5. 몬테비데오의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6. 몬테비데오의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7. 몬테비데오의 주요 관광 자원〉,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국가
남아메리카 도시
남아메리카 지리
남아메리카 섬
남아메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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